청룡검(靑龍劍)
사방신검 중 동방검
동천신검. 청룡신검
검인 청백색. 재질 불명
검신 이 척 일 촌
검병 팔 촌
검폭 삼촌 반의 양수검
동방 이족의 고대 병기라는 설이 있음
연신의 공능이 지대하여 가진 자에게 불괴의 신체를 준다고 전해짐
연이 닿는 자에게 무공을 선사한다는 전설이 함께 함
신체 회복 능력. 내력 증폭 능력 유
제작자 불명
한백무림서 병기편
제 일장 검 중에서.
죽은 듯 늘어져 있는 서영령을 안아 들고 정신없이 달려간 길이다.
뉘엇 뉘엇 저무는 해가 서쪽 지평선에 걸려갈 때다. 지쳐버린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겨우겨우 서영령을 땅에 눕히고는 땅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아……”
하늘을 보고 누운 그다. 엷게 펼쳐지는 붉은 노을이 핏빛처럼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자책의 한숨을 내쉬었다.
‘몰랐다. 그 정도로 강할 줄은……’
굉장한 고수일 것이라고는 예상했었지만, 그 정도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상상을 넘어선 강함이다. 상대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다.
와호장룡이라, 세상에는 미처 알지 못한 고수들이 수두룩한 법이니까.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다. 안일했던 사고 방식이 가장 큰 실책이었다.
그 정도 고수라면 예와 법도를 지녀, 대화가 가능할 것으로만 생각했다. 악양루 앞에서도 그렇지 않았던가. 철기맹의 탁무양이라는 자와 화산파에는 그토록 깊은 골이 있음에도, 서로를 입증하는 대화를 벌임으로써 무력 충돌이 빚어지지 않았었다.
고수에 걸 맞는 성품.
육극신도 그처럼 말이 통할 수 있을 상대라고 무작정 믿어버린 청풍이다. 대화를 먼저 하고, 검을 겨루는 것은 그 다음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면면이 다르듯, 성품도 다른 법인 것을.
육극신은 나타남과 동시에 곧바로 실력행사에 들어갔고, 마주쳐 검을 뽑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피튀기는 싸움을 즐겁게 생각하고, 검을 겨루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자다.
그런 자를 본 적이 없기에, 그런 품성을 지닌 자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더라도 간과했을 것이다. 한창 무공이 늘어가고 있었던 때이기에, 어떤 상대라도 해 볼만하다 느끼고 있었기에.
‘결국……’
무지(無知)가 가져오는 폐해는 그와 같다.
무공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장현걸에 이어 서영령까지 끊임없는 경고를 발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백호의 용맹에 휩쓸려 무모함까지 나아가버린 결과였다.
‘이럴 때가 아니야.’
상념에 시간을 소비할 때가 아니었다.
육극신의 일격에 심해진 내상을 회복시키고, 다시금 안전한 곳으로 서영령을 피신시켜야 할 때다.
어렵사리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옆구리에 반토막 난 검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급박했던 상황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아직 뽑아서는 안 된다.’
이만큼 움직인 것도 기적이다. 어떻게 맞물려 박힌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행히도 출혈이 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내력을………’
자하진기의 구결을 외우면서 내력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워낙에 망가진 몸이어서 그런지, 모여드는 진기의 양이 시원치 않다. 기혈이 뒤엉켜 가슴이 꽉 막혀왔다.
‘어서 회복해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이다.
정검대 검사들이 적들을 막아주고 을지백이 육극신을 잡아 놓았다지만, 결코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기력이 쇠진하여 힘을 쓸 수 없는 지금, 다시 한번 추격자들이 따라붙는다면 그야말로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검 까지 없으니……’
검.
백호검.
백호검까지 없는 상황이다. 또 그러고 보면, 백호검도 없는 마당에 적들이 예까지 쫓아 올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것의 시작은 백호검, 분명 청풍에겐 그들이 찾아올 만한 구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리 된 것, 서영령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세를 살폈다.
아주 약간 더 화색이 돌고 있는 그녀. 천지일기공이 청풍의 자하진기를 받아들여 제 주인의 신체를 되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아야 할 텐데.’
청풍의 내상도 심하지만, 그녀의 내상은 더 심하다. 지금 당장 좋아지고 있다고 해도 미약한 수준,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다. 행여나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이제는 되돌릴만한 능력이 없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줘야 할 때였다.
‘내 내력이라도……’
없는 진기를 끌어올려 손 끝에 담았다.
명문혈을 짚고 내력을 쥐어 짜낸다. 청풍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더라도, 그녀만큼은 살려 내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후우……”
얼마나 지났을까.
서영령의 코에서 깊은 날숨이 새어 나왔다.
흡기와 호기가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증거다. 안정을 찾아가는 천지일기공. 이대로만 된다면 어느 정도 안심이라 할 수 있었다.
울컥.
서영령이 좋아진 만큼.
청풍은 얼마 남아있지 않던 기운마저 모두 소진해 버렸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 누가 와도 그에게는 줄 것이 없다. 제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 그에게 무엇을 바랄진가. 백호검이 없다면 그에게 볼일이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도 청풍은 잘못 생각했다.
백호검이 없이도 그들에게 볼일이 있는 자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촤아아악.
“이 등 터진 자라 같은 년놈들. 잘 만났다. 뒈질 것들아.”
장강 강변.
물길을 따라 내려오는 세 척의 쾌속선이 있다.
지저분한 입심을 자랑하며 붕대 감은 몸을 뻔뻔하게 내 세운 자. 다름아닌 방조교다. 결정적인 순간에 죽음의 위협으로 나타났다. 이 또한 예측하지 못했던 악운이었다.
“내 이쯤 까지 왔겠다 싶었지. 이 장강 물길에선 내 손바닥을 피하지 못해!”
기세 등등한 방조교의 목소리 위에 청풍과 서영령을 끊임없이 살피고 있는 작은 두 눈이 있다. 저항이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눈치챈 듯, 만면에 만족어린 웃음을 짓는다. 빠르게 강변으로 다가와, 수적들을 뭍으로 올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잡아라!”
난감하다.
수적들.
차라리, 무공이 뛰어난 강호의 무인들이라면.
이와 같은 오합지졸에게 당한다면, 그와 같은 수치가 어디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이렇게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압!”
달려오며 작살을 휘두르는 수적에 맞서, 탄탄하게 다져진 금강호보를 밟았다.
내력이 없어도 뛰어난 형(形)이 있고, 힘이 실리지 않아도 날카로운 감각이 있다. 금강호보에 이어지는 것은 태을미리장이다. 곧게 나아간 태을미리장에 얻어맞은 수적이 ‘컥.’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꼬꾸라졌다.
쐐액!
수창(水槍)을 찔러오는 수적을 맞이하여 땅을 박찬 청풍이다. 부드럽게 몸을 꺾으며 각법을 발출한다. 휘어 치는 일격, 창을 놓치고 엉덩방아를 찌었다.
“오라!!”
크게 외치는 청풍의 일갈은 내력이 제대로 담겨 있지 않음에도 온 강변을 울리며 달려드는 수적들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지닌 바 힘이 아니라, 의지로 만들어 내는 기세다.
내력과 무공이 얼마만큼인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청풍이 발하는 기세가 곧 강력한 무력이 되어 강력한 기파를 일으키고 있었다.
“저, 저.”
끊임없이 눈치를 살피던 방조교가 눈살을 찌푸렸다.
삼교채와 대천진에서 보여준 청풍의 실력이라면 감당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방조교다. 부상 정도를 계산하고서 겁 없이 덤벼든 것인데, 의외로 강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다. 눈동자를 굴리던 방조교, 그의 눈이 한 순간 한 쪽에 쓰러진 서영령에 닿았다.
“계집! 계집을 먼저 잡아라! 달려들면 죽여버려!”
청풍의 안색이 굳었다.
치사하기에 짝이 없는 명령. 제 아무리 수적들일지라도 이 명령 만큼은 꺼려지는 지 곧바로 움직이질 않는다. 그러자 방조교가 또 한번 욕설을 내 뱉으며 배를 박차고 뒤뚱 뒤뚱 달려 나왔다.
“빨리! 저 회 쳐 먹을 년놈들!”
몇몇 놈들이 결국 서영령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청풍에게 뛰어드는 것 보다는 그녀 쪽이 쉽다고 생각한 것인지. 비겁하기 그지없는 수작이다. 몸을 날리는 청풍의 눈에서 불 같은 분노가 타올랐다.
파팡!
달려간 청풍이 그녀의 앞을 막아 서며 일장을 날렸다.
흐르는 내력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온몸에서 뿜어내는 기백으로 힘의 부족을 메꾸었다. 결코 비켜줄 수 없다. 그녀를 건드리는 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퍼억! 파앙!
초식도 투로도 제대로 따르지 않는 병장기들이지만 수적들의 거친 외모만큼 찔러오는 기세가 사납기 그지없다. 맨손 박투로 상대해야 하니, 효과적인 거리를 잡는 것이 먼저다. 서슬 퍼런 창날을 비껴내며 적들의 품 안으로 몸을 날렸다.
위잉! 쐐애액!
귓전을 스치는 소리들이 선명했다.
내공과는 별개로 곤두선 감각이 적들의 사각을 찾고, 허점을 발견한다. 쫓기고 도망치는 나날이었을지언정, 언제나 생사를 건 느낌으로 싸워 왔으니 공격에 대한 반응만큼은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육극신이라는 절대 고수의 무공을 체험했던 청풍이다. 그에 비해 수적들의 공격은 지나치게 느리고 단조롭다. 몸만 정상이었다면, 순식간에 끝낼 수 있었으리라.
“큭!”
하지만.
기백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힘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정도 크게 보일 수는 있으나, 거기까지다.
점차 파탄을 드러내는 동작, 태을미리장이란 본디 화산에서도 절기로 치는 굉장한 상승무공인 바, 자하진기를 운용하지 않고서는 그 묘용을 제대로 살리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초식의 정묘함으로 버텨 보았지만 그것도 점차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저 놈! 힘이 다 빠졌다. 허세일 뿐이야! 축 늘어진 오적어(烏賊漁) 꼴을 하고서, 힘 센 교어인 척 하지만 안 통한다. 어서 쓰러뜨려라!”
방조교의 눈치는 실로 알아 줄만한 수준이었다.
청풍의 기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수적들을 독려한다.
거듭되는 위기.
적들의 공격이 더욱 더 거세지고 있었다.
퍼억!
마침내 휘둘러진 수창(水槍)자루에 일격을 얻어맞고 말았다.
날을 피했으니 망정이지, 제대로 찔렸다면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휘청 흔들리는 청풍의 몸 위로 적들의 공격이 쏟아져 내렸다.
‘위험하다.’
땅에 닿을 듯 허리를 꺾고, 손으로 땅을 치며 몸을 회전시켰다.
몇 줄기 공세가 아슬아슬하게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믿는 것은 오직 생사를 건 실전으로 갖추게 된 날카로운 감각밖에 없었다.
엉키고 후려치는 가운데에 청풍이 다시금 신형을 곧추세웠다.
나아가려는 일보.
순간적으로 금강호보 대신에 다른 보법이 나갔다.
어찌 된 일일까.
의아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적의 무기들을 타 넘고, 빠르게 삼권(三拳)을 내쳤다.
‘화형권?!’
퍼퍼퍽!
정확하게 격중시켜 수적 하나를 쓰러뜨려 놓았다.
얼마만에 펼치는 화형권인가. 그러고보면 보법도 화형권에 상응하는 화형보다. 태을미리장을 연성한 이후 한번도 시전해 보지 않았던 화형권이나, 이 순간 뻗어 친 권격은 너무도 시의적절하여 그 하나만으로 상승무공의 위력을 보여 주었다.
‘갈라진다?’
합쳐져 있다가 분열되는 태을미리장이다.
내력이 모자란 만큼.
소모가 덜한 수법으로 자연히 변화된다. 의도한 바를 넘어서 꿈틀꿈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무공이었다.
퍼퍽!
이번에는 이형권이다.
긴 작살을 찔러오는 수적의 옆을 돌아 짧은 일타를 박아 넣었다. 허리를 꺾으며 넘어지는 수적, 금강호보 대신에 이형보다. 이어지는 비형권이 허공을 갈랐다.
빠악!
어렵게 태을미리장의 구결을 따라가는 것 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펼치는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주먹에 느껴지는 충격이 시원했다.
태을미리장에서 비형권, 화형권, 이형권으로.
발을 내딛는 그의 몸 속에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미약한 진기가 느껴졌다.
‘다시.......!’
마침내 솟아나기 시작하는 것.
자하진기다.
석양이 곱게 물드는 저녁이라서일까.
신비로운 움직임이다.
아낌없이 퍼부어 주고도 어느 새 기력을 되살려 나가는 자하진기, 청풍의 무공이 또 한번의 전환점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빠악! 우직!
이형권, 바깥쪽으로 휘두르는 이권에 수창의 장대가 분질러져 날아갔다.
팔목에 시큰거리는 통증이 찾아왔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백호검이 없어도 그는 약하지 않다는 것, 아니, 백호검이 없으니 비로소 더욱 더 자유롭게 살아나는 무공이었다.
“합!”
청풍의 주먹이 수적 하나의 다리를 부숴 놓았다.
꼬꾸라지는 그를 여에 둔 채, 점차 기세를 올려간다.
더 이상 위태롭지 않은 움직임.
달려드는 수적들이 하나 하나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이, 무슨!!”
방조교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커 졌다.
하얗게 질려가던 방조교의 얼굴, 그가 땅을 박차며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여자를 잡아! 여자를!”
수적들도 이제는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대던 청풍이 한 순간에 난공불락의 고수로 변모하는 것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꼈을 터, 체면이고 뭐고 내 팽겨친 채, 일제히 서영령을 향하여 달려드니, 빠르게 움직이던 청풍의 신형도 더욱 더 다급한 기색을 띄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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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시간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