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청룡검이라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벌써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갔지."
신검(神劍)이라 했었다.
길쭉한 검날 옆으로 청룡의 문양이 곧바로 승천이라도 할 듯 아로새겨져 있다.
출중한 검신(劍身).
신검이라는 표현이 무색할진데,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기도 어렵다.
검을 들고 있는 자, 그 정신을 빼앗고 육체를 망가뜨리는 병기, 마병(魔兵)이라 부른다 해도 이 상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철컹!
크게 한번 튕겨지는 강 도장의 몸이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두 눈에 광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번뜩 번뜩 제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 처럼 보이는 청룡검, 청록색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이 희미하게 비쳐지고 있었다.
"어차피 쓸모 없는 검이다.......그런 것이오?"
장현걸의 한 마디, 도발적인 언사다.
강호인들에게 검을 내 주겠다는 것. 제어할 수 없는 것을 처리하려는 속셈인가.
몸을 돌려 장현걸을 직시하는 석대붕의 얼굴에 다시 한번 섬찟한 미소가 깃들었다.
"쓸모가 없다라니.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보검이야. 자네는 가지고 싶지 않나?"
장현걸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이런 마병(魔兵)이라면, 굳이 가질 이유가 어디에 있겠소."
"입과 눈이 다른 말을 하고 있군. 구파 일방, 명문의 제자들도 어차피 마찬가지다. 이 강도장이 그랬듯, 보물에 대한 탐욕은 어디에나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야."
강 도장.
모산파라고 했다. 모산파 역시 구대문파의 하나, 그 제자로서 훌륭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을 터, 그러나 결과는 이렇듯 참혹하기만 하다. 검의 공능에 휘둘려 온 몸이 결박 당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런 무서운 물건을 강호에 내 놓는 저의가 무엇이지요."
이번에는 연선하다. 낭랑한 연선하의 목소리, 웃음 깃든 석대붕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갔다.
"하늘이 내린 보물에는 주인이 있는 법이다. 보검이 주인을 찾도록 강호에 내보내는 것이 그리도 이상한가."
"이상할 수 밖에요. 저런 것이 밖에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잘 아실텐데요."
"매화검수. 뭘 모르는군. 원래 그런 것이야. 신병이기라는 것은."
"잔치를 피로 물들일 생각이시군요."
화악.
순식간에 얼어붙는 공기다. 연선하의 손이 움직여 그녀의 매화검 검자루에 닿았다.
"그것도."
흘러 나온다.
"나쁘지는 않겠지."
고조되는 살기.
당장이라도 출수가 이루어질 듯한 일촉즉발의 공기가 어두운 복도를 진득하게 채워나갔다.
터벅.
"후후후."
웃음 소리가 내려 앉았다. 횃불의 그림자를 받아 일렁이는 석대붕의 모습, 이제는 더 이상 병약한 노인의 얼굴이 아니다. 음험하고도 강력한 공력을 지닌, 노괴물(老怪物)의 실체가 거기에 있었다.
"싸워 보려는가. 젊음이란 역시 좋아. 좋은 것이야!"
한탄과도 같은 일갈을 내 뱉는 석대붕이다.
당장이라도 일장을 쳐 낼 기세.
하지만, 그는 출수하지 않았다.
큰 뱀의 땅을 스치듯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더니 한 쪽 벽면을 훑어냈다.
"기관!"
장현걸의 경호성.
하지만 늦었다.
쿠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천장으로부터 굵은 창살 십여 개가 밑으로 내리꽂혀졌다.
쿠쿵! 쿠쿠쿵!
밀폐된 공간에 번지고 울리는 굉음이다.
먼지가 흩날릴 때.
그들은 벽처럼 내려온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 씩 나뉘어진 자신들을 발견했다.
연선하와 장현걸.
매한옥과 고봉산.
따로 떨어져 차단되어버린 그들이다.
이어진 감옥 두 개에 갇혀버린 형세. 설상가상으로 석대붕의 한 쪽 뒤로부터 십여 명 자색옷을 입은 자들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이런. 니미럴! 천독문이잖아!"
고봉산의 욕지거리는 일견 상황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위기감에 불을 지르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장현걸과 한 쪽 창살에 붙어 선 연선하. 중얼거리는 장현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예측은 했었지만. 심한데."
후기지수라지만, 이 곳에 모인 네 사람 모두,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강호를 누볐던 이들이다. 놀라고 당황하긴 했으나, 거기까지다. 각자 주저 없이 내력을 끌어올리며 새로이 창살 밖, 새로이 나 타난 자들의 술수에 대비했다.
"일부러 붙잡히러 왔는지 어쨌는지. 개방 후개, 자네의 의도야말로 모호한 데가 있어. 뭐, 그것도 좋겠지. 잔치에 있어서 여흥이란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 법이니까."
장현걸과 석대붕의 눈빛이 창살을 사이에 두고서 치열하게 엉켜들었다.
웃음짓는 석대붕. 장현걸의 눈은 더욱 더 강한 정광을 발했다.
"좋아. 마침 둘로 나뉘었군. 어느 쪽이 나가겠나. 선택해."
나가게 해 주겠다는 석대붕의 말.
"기회를 주겠다는 것인가?"
빠르게 되 묻는 장현걸의 말에는 존대하는 어투가 사라져 있다.
이제 완전히 적으로 돌아섰다는 뜻.
석대붕은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 쪽, 아니면 저 쪽. 한 쪽은 나가게 해 주지."
"당연히 이쪽이 남는다."
즉각적인 장현걸의 대답.
석대붕의 두 눈에 이채가 깃들었다.
"후회할텐데. 나가서 일을 꾸미려면 머리가 나가는 편이 나을 것 아닌가?"
"그거야 이쪽 사정이지."
"후후후. 그럼 마음대로 해 보아라."
석대붕의 오른손이 벽면을 한번 더 훑었다.
쿠구구구구.
육중한 기관음이 들이며 매한옥과 고봉산이 있는 쪽에서, 사람 하나가 들락거릴 개수만큼의 철 창살이 천장으로 올라갔다.
창살 너머 흔들리지않는 표정의 장현걸.
그가 고봉산에게 말했다.
"당장 나가라. 늙은 대망(大 : 구렁이)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알겠습니다. 꼭 다시 오지요."
고봉산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몸을 돌린다. 달려나가 버리는 고봉산. 하지만, 매한옥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두 거파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가라. 매 사제."
"화산 문도는 싸울 상대를 두고 물러나지 않습니다."
"우린 싸울 상대가 없어. 싸울 수도 없고."
"하지만 사저."
"어서 가라. 개방과 협력해. 곧바로 나가는 개방의 모습, 배워야 할 점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마치, 문파 내에서 사제에게 충고하는 것처럼,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럼, 그리 하겠습니다. 보중하십시오. 사저."
매한옥이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창살 밖으로 암향표를 전개하는 젊은 검수.
노회한 석대붕의 음험한 눈길이 잠시동안 매한옥의 뒷모습에 머물렀다.
"자. 이제 어쩔 셈이죠?"
장현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똑같이 태연한 어조로 입을 여는 연선하다.
눈썹을 치켜 올리는 장현걸.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글쎄......뭐, 먼저 천독문의 독술을 견뎌 봐야겠지."
적대감이 분명해 지기 전까지는 잔뜩 긴장했었던 그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막상 위험한 상황이 되자, 도리어 평상심을 찾아가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적(敵)이 명확해 진 이상, 싸우면 되기 때문이었다. 굳이 심리전으로 심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후후후후. 그렇게들 말하는데, 아니 보여줄 수도 없겠군. 어디 얼마나 견디는지 보도록 하지."
석대붕의 말이 신호가 되어, 천독문 자의인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펴지는 손가락, 흩어지는 가루.
독(毒)이다.
화산과 개방, 두 남녀의 얼굴.
내력을 끌어올리는 두 사람의 전신에 강한 결의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연선하와 장현걸.
두 사람을 삼켜 버린 석가장은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였고, 지장촌 마을 전체의 분위기도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였지만, 실상 강호인들의 움직임 만큼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첨예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물 밑에서 이루어지는 수 많은 사건들이다. 아무도 모르는 새, 죽는 사람들이 생겼고, 교환되는 정보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석가장의 대문이 열렸다!"
석가장 장주의 육순 잔치가 그 막을 올리고 만다.
쏟아져 들어가는 사람들.
이름난 부자이면서도 구두쇠로 이름 높던 장주의 잔칫상을 얻어먹어 보려는 촌민들과, 잔치와 함께 열린다는 두 보검의 공개 밑, 검주(劍主) 선택에 관심이 있는 강호인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개방된 석가장 외원(外園) 전체가 삽시간에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어떤 방식으로 검을 가져가게 될까?"
"누가 되는 것이지?"
사람들이 늘면 늘어갈 수록, 그들의 화제는 석가장주의 육순 축하보다, 보검의 향방에 관한 것으로 변해갔다.
무림인이든, 일반인이든.
공통의 관심사다.
보검이 누구에게로 가는가. 석가장주는 어떻게 보검의 주인을 정할 것인가.
점심을 지나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수록, 사람들은 사람들의 기대감도 커져만 갔다. 석가장주가 모습을 드러내기를, 그리하여 보검 두 자루의 모습을 보게 되기를 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인 것이었다.
"식사들 끝나셨으면, 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 석가장 대문이 열렸을 때 얼굴을 비추었던 손진덕, 손총관이 다시 한번 내원에서 나와, 곡주(穀酒)를 있는 대로 풀었다.
대낮부터 술을 제공하니 더욱 더 고조되는 분위기다.
얼굴이 벌개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괜한 호기를 부리는 무인들이 있어, 시끌 시끌 험한 소리에 싸움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흥청거리는 공기가 가득해 질 때.
정문으로부터 들어오는 한 무리의 무인들이 그 분위기를 딱딱하게 굳혀갔다.
척. 척. 척.
숫자는 고작 십여 명. 정확히 열 한 명이다.
성큼 성큼 앞장서는 이는 다름아닌 조신량, 숭무련의 등장이었다.
수려한 얼굴에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잔칫상이 벌어지고 있는 한쪽 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자리는 마련해 두었습니다."
한 켠에 모여있던 무인들. 일제히 일어나며 자리를 튼다. 굽실거리는 모습, 사람들 사이에서 일대 소란이 일었다.
"저거, 일어난 자들, 청양파 아니야?"
"맞는데? 지금 저 사람이 부문주 최남(崔南) 이잖아."
"최남! 저렇게 허리를 굽히는 것은 처음 보는군!"
청양파. 이 일대에서는 그래도 목에 힘 좀 주고 다닌다는 무파(武派)였다.
헌데, 새로히 나타난 이들에게 조금도 맥을 못 추고 있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도 하다. 호되게 당한 후 수하들로 들어가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처음 보는 자들인데. 어딜까."
하나같이 명검으로 보이는 검들을 착용한 채, 절도있게 움직여 자리에 앉는다.
음식에는 손도 안 대는 그들.
보검을 노리고 왔음이 자명해 보이는 그 품세에 사람들 사이에서 소소한 웅성거림이 또 한 번 생겨났다.
나타난 숭무련.
그 다음은 성혈교다.
숭무련 무인들이 나타나고, 한 시진 정도 지났을 때.
정문을 가득 채우며, 나타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저긴 또 어디지?"
"웃. 저건 또 뭐야."
흰색 마의(麻衣)를 입은 자들.
평복을 입었으나, 같은 기도를 내고 있다.소란스러움을 얼어붙게 만드는 기운을 내 뿜고 있는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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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武판 공지] 12월 18일 Go!武판<송년의밤>2004
작가와 독자의 만남. 사인북 판매. 그리고 식사와 여흥을 함께....
♡♥ 2004년 수십 명의 작가 사인을 한꺼번에 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
자세한 사항은 커맨드 센터 >> 에벤트 란과 공동구매 란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갈까요?
그리고.
수능 본 여러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