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56)

  

"납셨군." 

먼저 온 조신량의 한 마디다. 

확 눈에 띄는 자는 무리의 중앙에 있는 큰 키의 남자였다. 

도사복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제사를 지내는 사제복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복장, 각진 얼굴에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에선 인세의 그것같지 않은 위화감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봐 둬라. 성혈교 오(五) 사도(使徒)다. 단주님께서도 오셨어야 했는데." 

조신량의 말. 

성혈교가 왔고, 숭무련이 왔다. 

이미 예전부터 잔칫상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들까지. 

나타날 곳은 다 나타났다. 

뜨겁게 비추던 해가 뉘엇 뉘엇 넘어가고, 사방을 밝히기 위한 횃불들이 타오르기 시작할 때. 

그제서야 판이 다 갖추어졌다고 생각했는지. 

내원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이 행사의 주인공, 석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이 잔치에 와 주시다니. 이 석모는 기쁘기 한량이 없소이다." 

최고급 비단 예복을 입고, 포권을 올리는 그의 모습이다. 

커다란 박수소리가 터져나오고, 치켜드는 술잔에 방울 방울 술들이 넘쳐났다. 

"감사하외다." 

내가 고수의 입장에서는 육순이란 나이가 크지 않아 보일지언정, 일반 촌민들이 느끼기엔 상당히 높은 연배다. 장수를 축하하는 말부터 앞으로의 건강을 축원하는 말까지 갖가지 축하 인사가 쏟아진다. 

그 안에 진심이 얼마나 담겨 있겠냐만은. 

그 순간만큼은 그래도, 환호성이 가득차는 시간이었다. 

"과분한 말씀들이오. 허나, 진실로 기분이 좋은 날이구려." 

과분하다. 

맞는 말이긴 하다. 

세상을 살면서 크게 베풀기보다는 얻어내는 데 치중하던 자다. 

평소의 덕(德)과는 무관한 환호성인 바, 보검 두 자루의 일이 없었더라면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을지 심히 의심되는 광경이었다. 

"정말 좋소. 이 나이 이 때까지 생각했던 바를 돌려드리기엔 더 없이 좋은 날이오." 

진지한 음성이다. 

활기찬 환호가 수그러들어간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는가. 

사람들의 시선이 석대붕의 입에 집중되었다. 

"내원에 있으며 수많은 분들이 모여든 것을 보았소. 그것으로 축하는 충분히 받았다 생각하오. 뿐만 아니라, 검을 모아오던 이 석모의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소." 

조용해진 외원이다. 

일렁이는 횃불의 불빛에 석대붕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이 더욱 깊게 보인다. 

기묘하게 빛나는 석대붕의 두 눈, 그 안에는 기쁨 같기도, 또한 정반대의 회한 같기도 한 기광이 어둡게 끓어 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즐기셨던 많은 분들! 이제는 마지막 여흥이 남았소. 미리 이야기 하겠소. 보검와 관심이 없는 이들은 돌아가도 좋소. 다만 지금 돌아가지 않고, 보검을 볼 요량이라면, 모든 여흥이 끝날 때 까지 돌아가실 생각은 안 하시는 것이 좋겠소." 

은근한 경고가 담겨있는 말투다. 

이제부터는 무림인들, 강호인들의 행사라는 뜻. 

허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바깥으로 나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겁 없는 민초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술에 취한 혈기일지. 

무인들까지 합하여 삼백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 안에 남았다. 

"많이 남았구려. 실로 많이 남았어." 

석대붕의 목소리엔 꽤나 즐거워하는 기색이 어려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관객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까. 허나, 그 뿐은 아닐 것이다. 석대붕의 즐거움은 그런 단순한 이유에 있질 않았다. 

"이제 내원으로 따라 오시오." 

석대붕이 먼저 활짝 열린 내원의 문 안으로 사라졌다. 

손 총관과 석가의 식솔들이 그 안으오 들어가고 나니, 잔칫상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도 우르르 일어나며 그 뒤를 따랐다. 

끼이이이이, 쿵! 

모든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 오기가 무섭게, 바깥으로 통하는 육중한 내원 문이 굳게 닫혀 버렸다. 

충분히 경계심을 가지고도 남을 일.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내원 중앙, 타오르는 불길 위에 빛나는 광채가 모두의 시선을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적사검........!!" 

누군가의 침음성이 정적을 깨고 퍼져 나갔다. 

무슨 연료를 어떻게 태우고 있는 것일까. 

굉장한 기세로 타오르고 있는 화로(火爐) 위 쪽에 온 검신이 붉게 달아오른 보검(寶劍)이 굵은 쇠사슬로 매달려 있었다. 

"적사검(赤獅劍), 주인을 찾겠다고 내 놓은 적검(赤劍)이오.

사자의 머리 형상, 그 입에서부터 검날이 솟아 나오는 형태다.    

붉게 달아올라서 그런지, 더욱 더 신비한 느낌이 들고 있다. 

그런 적사검을 어찌 하라는 것인가.

석대붕의 선언이 그 뒤를 이었다.

"복잡한 절차 같은 것은 필요치 않소. 보다시피, 이 적사검은 뜨겁게 달구어진 상태지. 누구라도 좋소. 가져가는 자, 그 검을 들고 이 장원을 나가는 자. 그 사람이 임자요."

너무도 단순한 법칙이기에 오히려 의외인 말이다.

비무대회로 무공을 겨루는 것도 아니요, 논검으로 지혜를 겨루는 것도 아니다.

그냥 던져준 것에 다름 아니다. 

던져 주었으니, 알아서 주인을 정하라. 

무한 경쟁, 살아서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단 하나의 규칙만이 있을 뿐이었다.

"과연 석가장주는 화통하오. 적사검은 이 양광대가 가져가겠소!"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며 나서는 자.

등 뒤에서부터 커다란 장창을 꺼내 들고 화로를 향해 높이 뛰어 올랐다.

채챙! 촤라락!

불에 달구어져 있는 만큼, 맨손으로는 잡기 힘들다. 쇠사슬에 걸려 있는 적사검을 쳐 내어 풀어내고는 장창의 움직임으로 적사검을 꺼내 왔다. 정교한 창술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가져가도록 놔 둘줄 아느냐!"

대감도를 휘드르며 뛰어 나오는 자가 있다.

그 뿐인가.

적사검이 화로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본 무인들 십 여명이 너나 할 것 없는 기세로 양광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 놈들!"

양광대의 일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방에서 짓쳐드는 병장기들.

쨍! 하는 높은 금속음이 울리며 적사검이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 올랐다.

"내 것이다!"

급한 마음이었는가.

붉게 달구어진 적사검 검자루를 맨손으로 잡아채는 이가 있었다.

치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매케하게 번져나가는 타는 냄새.

"으아아악!"

고통으로 몸을 비틀며, 밑으로 떨어진다. 착지하는 그의 몸, 달려드는 사람들의 눈에는 고통에 겨워하는 표정 따윈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챙!

사정없이 적사검을 내리치며 손에서 떨군다.

땅을 구르는 적사검, 어디선가 날아온 채찍이 검날을 얽어매 올라가나, 휘둘러지는 수십 자루 창검에 줄줄이 토막나면서, 다시금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채챙.

맨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버린 무인들이 제각각 병장기를 내 뻗으며 검을 회수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가 마침내.

스각!

"크악!!"

누군가의 피가 튀고, 첫 번째 싸움이 생긴다.

첫 번째, 싸움이 두 번째 싸움으로.

적사검을 회수하기 위해 들려오던 병장기 소리가, 서로를 향해 부딪치는 소리로 바뀌어 간다.

보검에 눈이 멀어버린 자들, 결국은 그런 결과로 치닫고 마는 것이다.

*                          *                         *

 "천독문 녀석들이 나가 버렸소. 바깥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 없어."

장현걸. 그리고 연선하.

지하의 철창 안에 갇혀 낮 밤도 구분하지 못한 채, 긴 시간을 버텨낸 그들이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장현걸이 벌떡 일어나며, 축 늘어져 벽에 기대어 있는 연선하를 돌아 보았다.

"우리도 나가야 되오. 운기를 하시오."

연선하가 눈을 뜨던 말든. 상관하지 않은 채, 어두운 벽면을 손으로 두드려 보면서 좁은 공간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바작 바작.

부서지는 독충의 껍데기 소리가 장현걸의 발을 따라 끊임없이 울려 왔다. 며칠 밤낮, 온갖 독충과 독무(毒霧)를 뿌려대던 천독문. 그들이 나가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퉁퉁, 벽을 두드리다가 한 곳에 멈춘 장현걸이 벽에다 귀를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역시 시작되었군. 싸움 소리요. 위에서 벌어지고 있소."

천정을 올려보았다. 

세심하게 살펴 나가는 눈동자. 뒤쪽에서 연선하의 맥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운도 좋군요. 당신은."

"나야 원래부터 지저분한 것을 많이 먹고 커서 그렇소. 그 정도 독(毒) 따위야 거지들에게는 별반 대단한 것이 못 되지. 하지만 또 보면 연 소저도 만만치 않소. 그것을 다 견뎌 내다니." 

  "견뎌 내고 이 꼴 아닌가요. 한 줄기 진기밖에 안 남았어요. 더 있었으면 한계에 달했을 거에요."

"아니오. 당신은 그러지 않았을 거요. 당신은 강한 여자니까."

장현걸이 웃음을 지었다. 

깜깜한 지하, 횃불 하나 없는 어둠에 내력까지 모여지지 않으니, 칠흙을 대낮으로 보던 안력도 없어진 상태다. 그럼에도 연선하는 장현걸이 웃고 있음을 알았다. 자유분방하고 시원한 웃음을 보이듯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듣기 나쁘진 않네요.  여하튼 한 가지 묻죠. 이 지경에 이르는 상황까지도 예측했었던 일이라 하실 건가요?"  

"딱히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오. 다만 이리도 아름다운 미인과 함께일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지.."

"그만 좀 하세요."

"하하. 당황하는 것도 재미있군. 하지만, 그렇게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소."    

"그보다, 대책이나 말해봐요."

"대책? 그런 것은 없소."

"........뭐, 좋아요. 그렇다면, 여기까지 들어온 이유가 뭐죠? 석 대붕의 말처럼, 그저 잡혀 들어올려고 온 것은 아니었을텐데요."

"그것은 말하자면 실수였소. 육순인데, 선물이라도 챙겨 왔으면 이렇게 가두진 않았을 거요. 그것이 모자랐던 게야. 쪼잔한 늙은이요."

"재미없어요."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는가.

한 줌 기운도 없는 듯 벽에 기대고 있던 연선하가 천천히 몸을 세우며 가부좌를 틀었다. 다시 운기를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알겠소. 알겠어. 내 이유를 말해주겠소."

계속하여 철창과 주변을 살펴보는 장현걸이다. 그가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이 몇 년 전부터, 개방에는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소. 조짐만이라도 나타나고 있었던 것 까지 치면 꽤나 오래전 부터였지."

"상계평, 상 장로의 역모 사건을 말하는 것인가요?"

"잘 아시는군. 상 장로의 사건은 일부일 뿐이오. 그러면 그 일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아고 있으시오?"

"자금(資金) 문제 아니었나요."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아, 그렇지. 화산 서천각의 일을 보셨다 했었군."

"어찌 그리 잘 아냐는 말은 이쪽에서 해야 하겠군요."

"원래 아리따운 미인에 관한 것은 다 꿰고 있다오."

"그래서, 자금 문제가 어쨌다고요?"

장현걸의 농담을 가볍게 넘어간다. 이미 요령을 깨우쳐 버린 연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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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번에 연재 한담 추천이 올라오면서 느낀 것인데.....(감사합니다)

꽤나 오랜만에 추천이 올라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글 흐름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댓글도 요즘에는 글에 대한 내용보다는 간단한 말씀들만 하시는 고로, 정확한 느낌을 잡기가 힘드네요.

하여, 요즘들어 화산질풍검에 느끼시는 바나, 원하는 바, 탁 터 놓고 이야기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스스로는 요즘들어 흐름이 확실하게 잡혀간다 느끼고 있지만, 무협이라는 것은 가요나 티비프로와 같아서, 제작자가 아무리 잘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평가는 전적으로 보시는 분들의 시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이에.

지금까지 댓글을 올려주신 많은 분들의 것들도 그랬지만, 여기에 대해 올려주시는 많은 의견들은 그대로 화산질풍검을 다듬는 작업에 적용될 것입니다. 지금, 화산질풍검 수정도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마지막으로 여러분께서 해 주시는 말씀들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수정을 끝내고, 수정본을 올리면서, 그 때를 전후하여, 저번에 발표하지 못한 이벤트-3의 결과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의 이벤트는 말하자면 절반의 성공이었을 뿐이어서, 잠정적으로 당첨자를 확정해 놓았음에도 딱 발표를 드리지 못했네요.  

건강하시고요. 우리, 주인공 청풍은 이번화에도 안 나왔네요. 곧 나옵니다. 판이 큰 만큼, 기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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