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156)

"개방 방도들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소. 잘 알겠지만, 그만한 인원을 움직이는데, 돈이 없어서는 절대로 안 되오. 아니, 없어서는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많이 필요하지. 거지들의 구걸로 채워질 수준이 아니오." 

" 그래서요?" 

" 개방 안에서 쓰여지는 자금은 아마도 구파, 단순하게 화산파 보다도 많을 것이오. 상상하기 힘든 액수가 움직이고 있지. 헌데, 그 중 일부가 사라지기 시작했소." 

"......." 

" 요즈음, 개방이 여러가지 면에서 마음껏 운신하기 어렵게 된 것에는 그 점이 가장 큰 이유라오. 어차피 집안 문제라지만, 또한 해결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 한 식구들의 문제인 법, 이 점에 있어 매우 골치가 아프다오." 

" 잘 알겠어요. 하지만 그것이 석가장과 무슨 상관이죠?" 

" 석가장주 석대붕은 풍 장로, 풍대해(馮大海) 태상 장로님과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소." 

" 천품신개(天品神개) 말씀이신가요." 

" 그렇소." 

" 의외군요. 석대붕 같은 자와 인의대협으로 알려진 천품신개라니....." 

" 맞소. 더 놀라운 것은 개방에서 사라진 자금의 흐름과 석가장의 사업에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오. 게다가.......풍대해 태상 장로께선 화산파 사방신검의 탈취 사건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소." 

" 설마!" 

" 내가 사방신검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소. 기실, 사방신검이란 무상지보(無上之寶)가 탐나기도 했었기도 하고........" 

"........" 

"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오. 석대붕의 이야기처럼, 그만한 보물이라면 누구라도 눈독을 들이기 마련이오." 

" 알았어요. 계속하세요." 

" 점수를 많이 잃었군. 여하튼, 한가지 물어 보겠소. 사방신검을 탈취해 간 진짜 흉수가 누군지는 아시오? 설마 아직까지도 철기맹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 성혈교. 심증은 있었지만 확증이 없었죠. 장강 대천진의 일로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장현걸은 연선하의 목소리에 들어있는 진한 안타까움을 놓치지 않았다. 또 한 마디 하려고 했으나 그만 둔다. 청풍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장현걸은 왠지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 좋소. 성혈교가 그 검들을 가져갔다면, 지금 쯤, 세 개의 신검은 모두 다 성혈교의 수중에 있어야 옳소. 하지만 그렇지 않지. 백호신검은 비검맹에 넘어갔고, 청룡검은 여기에 있소. 왜 그런지 알고 있소?" 

" 아니요. 서천각의 정보력은 지금 상당부분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있지 못해요." 

" 솔직하시군. 나도 그만큼 솔직해져야 할지 모르겠소." 

장현걸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더 사방을 둘러본 그가 먼 곳을 바라보듯 입을 열었다. 

" 성혈교는 세 개의 신검을 탈취하여 화산을 벗어났소. 이 때, 그들을 지원해 준 곳이 철기맹이오. 철기맹의 비호를 받으며 섬서성의 경계를 넘어서던 그들은 세 명의 낭인들과 마주쳤지. 최근 들어 낭인들 사이에 가장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되는 삭혼(削魂)의 귀도(鬼刀)와, 낭인들 중 가장 신비롭다 이야기되는 귀장낭인(鬼將狼人), 그리고 가장 요사스럽다 이야기 되는 귀호(鬼狐)가 그들이었소." 

길어지는 이야기. 

장현걸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 세 신검을 운반하던 성혈교는 이들 세 명의 습격을 받아, 두 개의 신검을 분실했소. 격전 중, 협곡으로 떨어져 물길 따라 건져 올려진 것이 지금 이 곳에 있는 청룡검인 것이오." 

" 낭인들이라면........의뢰인가요?" 

" 그럴 것이오. 그 세 명이 움직였다면 누군가의 의뢰에 의한 것이 틀림없겠지. 하지만, 의뢰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소. 거기까지는 우리로서도 힘들더군." 

그만큼 자세하게 알아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청룡검이 왜 성혈교가 아니라 석가장에 있는지. 오리무중으로 생각되었던 내막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 혹시.......그 의뢰인이 천품신개라 생각하시는 것은.......?" 

"......... 당신은 강할 뿐 아니라 총명하기도 한 여인이오. 풍장로께서 의뢰를 하셨다면.......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 여러 가지로 고려할 점이 산적해 있소. 이 것들은 개방에서도 극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 이것이 알려지면 개방은 분열되어 버릴 수도 있소. 풍장로의 인맥은 용두 방주 그 양반의 그것만큼이나 대단하니까." 

" 그렇다면." 

" 그렇소. 여기에 들어온 것은 어떤 것이든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소. 석대붕과 풍장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 또는, 풍장로와 사방신검의 탈취사건과의 연관성.......그 무엇이든지. 마음속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를 바라고 있을 따름이지만."

“그러니까, 저로서는 남의 집안 일에 끼어들고 만 것이로군요.”

“남의 집안일인 것만은 아니지. 청룡검은 화산파에서 나왔던 것이지 않소. 석대붕의 손에서 다시 찾아야 하는 것 아니겠소.”

“글쎄요. 빼내 오려면, 석대붕보다 당신을 더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

“엉뚱한 소리 마시오. 그보다 말이 너무 길어졌군. 운기는 끝났소?”

“이 쪽은 신경쓰지 말고, 나갈 방법이나 생각해 보세요.”

“알겠소. 청룡검을 들고 있던 강 도장이 밖으로 끌려간 것이 어림 잡아 여섯 시간 전........천독문 독인(毒人)들 까지 나갔으니, 바깥의 상황은 꽤나 안 좋을 것이오. 서둘러야겠소.”

*                      *                      *

붉게 달아올라 있던 적사검이 식어버리고, 맨손으로 잡아도 될 정도가 되자, 싸움은 더욱 더 거세져 갔다. 이제는 검자루를 잡을 수 있다. 더욱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게 된 것이다.

“핫!” 

한 남자가 난전 속에서 튕겨나온 적사검의 검자루를 잡아냈다.

잡기가 무섭게 달리기 시작하는 그다.

한 쪽에서 뛰쳐든 무인 하나가 박도를 휘둘러 적사검을 들고 있는 남자의 팔을 잘라내 버렸다.

“크아악!”

손목 째 매달린 적사검이 하늘을 날았다.

달구어져 있었기에 붉었던 색깔.

이제는 치에 젖어 붉은 빛깔을 띈다. 

갈수록 살벌함이 더해가는 장내, 인의와 법도따윈 사라진지 오래였다.

퍼억!

광기와 살육이 사람들을 지배한다.

무림인들의 재주를 구경하고자, 또는 보검이란 물건을 일견하고자 내원으로 들어왔던 일반 촌민들이 겁에 질려 뒷걸음을 친다. 쏟아지는 핏물에 기절하는 자들이 생기고, 주저앉아 부처님을 되뇌이는 사람들도 있다. 

차츰 차츰.

무서운 광경에 압도되어 있던 민초들이 점차 정신들을 차리며 들어왔던 내원 문을 향해 뛰어 나가기 시작했다. 커다란 대문에 이른 사람들. 하지만, 외원으로 통하는 문은 밖에서 빗장이라도 잠겨져 있는 듯, 열리지 않는다. 수십 명이 달려드는 데에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킬킬킬킬......”

음산한 웃음소리다. 

높다란 담장 위 쪽. 견고하게 버텨선 내원의 외문(外門) 위쪽에서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주께서 한 발작도 못 나간다 하지 않았었나.”

마치 한 마리 독충처럼 기어 나온다.

두 손과 두 다리를 벽에 붙이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자, 녹색 옷을 입었다. 길쭉한 팔 다리에, 달 없는 어둠이 그의 전신을 감싸내니, 마치 한 마리 거대한 거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만들고 있었다.

  쿵! 쿵!  콰쾅!

“문을 열어! 이 무슨 짓이냐!”

이제 외문 주변에 몰려든 자들은 민초들 뿐이 아니다.

살육전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는 무인들도 잔뜩 달려와 육중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위쪽에 있는 녹의인을 보며 검을 빼어 드는 무인들. 

담 벼락으로 뛰어 오르려는 자들이 삼엄한 기세를 일으켰다.

“킬킬킬. 나가지 못해. 나갈 수 없어.”

기이한 움직임으로 대문에 매달린다. 

정말 그 자체로 한 마리 독충(毒蟲)인 듯 기묘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가 아래를 내려보더니 다시한번 음산한 괴소를 내뱉고서, 긴 팔을 확 휘둘렀다.

푸스스스스.

녹색의 가루가 뿌려진다.

안개처럼 내려앉는 분말, 무인들이 먼저 반응하며 황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독(毒)!!”

“이런 비겁한!!”

연신 들려오는 경호성이다.

하지만 경호성과는 무관하게 쓰러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토악질을 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끝내 땅을 뒹구는 이들, 내력도 무엇도 없는 민초들이었다.

“이 무슨......!”

땅바닥에 누워 경련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한 거지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녹마산(綠魔散)! 천독문!”

그 이름.

문 쪽으로 다가서던 무인들이 모두 다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사천당가가 독가(毒家)의 제왕이라지만, 천독문 역시 독술(毒術)의 위력에 있어서는 꽤나 큰 명성을 지닌 곳이다. 정심함은 당가보다 못할지언정, 그 악랄함만큼은 사천당가에 조금도 못지않았던 것이다.

“쿨럭.”

“커억!”

픽 픽 쓰러지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무인이 아닌 자들은 버텨낼 수 없다. 당장 죽지는 않을지 몰라도, 이대로 방치하면 당연히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 사태는 악화일로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다 죽일 작정이로군.”

숭무련.

조신량이 석대붕을 쳐다보며 한 마디 한 마디를 내 씹었다. 

장내의 중심에서는 살육전이.

바깥으로 나가려는 자들에겐 맹독이.

그것을 바라보는 석대붕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떠올라 있다. 

이 상황을 기뻐하기라도 하는 느낌.

그 안에서 아비규환으로 죽어가라는 뜻일 게다. 보통 인간의 발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 늙은이. 제 정신이 아니야.”

석대붕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더 보고 있기가 힘들다.

주름진 얼굴, 이미 한 마리 괴물이나 다름없다. 도의를 져 버린 늙은 마물이 거기에 있었다.

“움직여야 하겠다.”

뒤쪽으로 발하는 명령. 

숭무련 흠검단 단원 열 명이 제각각 검자루에 손을 올린다.

순식간에 번져 나오는 기도. 조신량이 명령을 발했다.

“먼저 적사검을 손에 넣는다.”  

  적사검을 두고 싸우는 자들.

눈길을 주었다가 성혈교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성혈교의 교인들, 미동도 하고 있지 않는 사도(師徒)가 보였다.

먼저 나서는 것이 이 쪽.

성혈교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리라.

“가자.”

조신량이 검을 뽑아들었다.  

발을 내딛는 숭무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성혈교도 나서기 시작한다.

사도의 손짓, 평복을 입은 교도들이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목표는 적사검.

적사검을 향하여. 

횃불 받은 석대붕의 얼굴에, 그 미소가 더욱 더 짙어지고 있었다.

“무르익어 가는군.” 

중얼거리는 석대붕.

그가 이 지옥같은 광경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손 총관.”

“예.”

“이제 절정이야. 강 도장을 풀어 놔.”

“.........예.”

대답하는 손총관의 목소리가 떨려 나오는 것 같다.

모두를 죽이려고 하는 것. 

이 잔치를 피의 축제로 만들려는 것.  

석대붕의 눈에는 이제, 상식과 이지를 넘어선 푸른 광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성혈교와 숭무련이 막 손을 쓰려 할 때다.

바깥쪽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또 한 집단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크억!”

담장 위쪽으로 오르려다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무인들.

“위에도 있다!”

“이놈들!!”

독충처럼 움직이는 녹의인은 대문 위의 하나 뿐이 아니다.

기이한 신법이다.

담장을 타고 올라오는 자들의 숫자는 이십 명이 넘는다.

어찌할 것인가.

벗어날 방도가 없어 보였다.

“올라가지 마시오!”

누군가의 외침이다.

앞으로 나서는 자들.  하나 둘이 아니다.

거적데기에 누더기.

쓰러져 있는 민초들을 끌어내고, 경동하는 무인들을 한 쪽으로 유도한다. 

수많은 생명들에 닥친 위기, 개방이 나선 것이다.

“사람들을 구해!”

개방도들 가운데.  

그들을 이끄는 자.

장현걸과 줄곧 함께 움직이던 후구당 부당주 남진중이다.

보기에는 헐렁해 보여도, 개방은 구대 문파에 버금가는 일방, 협의의 문파인 바. 

생명을 살리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그렇게 마음대로 둘 수는 없지. 킬킬킬.”

그러나, 천독문 독인들은 그조차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처음 대문에 나타났던 녹의인을 필두로 담장을 타고서 하나씩 땅 위에 내려선다.

꿈틀 꿈틀 움직이는 모습이 혐오스럽다.

달려드는 녹의인들의 소매에서 불길함이 절로 느껴지는 가루뭉치가 뿌려져 나왔다.

“모두 숨을 참아! 뒤로 물러나라!”

개방도들의 외침에 따라 무인들이 뒷걸음을 쳤다.

좁혀드는 자들.

물러서기만 하다가는 다시 중앙의 격전장이다. 

남진중이 취팔선보를 펼치면서 선두에 선 녹의인에게 짓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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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 너무도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밑에도 많이 많이 해 주십시오.

정말, 큰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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