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없이 날카로운 장력이다.
틈을 보아 백야참으로 반격을 가하려던 청풍.
일순간, 코 속으로 들어오는 비릿한 냄새에 검격의 속도를 늦추고 금강호보를 조절했다.
확 올라오는 뜨거운 느낌이 있다.
독기(毒氣)다.
중독이었다.
독술이 먹혀들었다는 것을 감지한 독주요마다.
그가 한층 더 거센 기세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반혈독인가.
뻗어내는 청풍의 검을 피하고 방향을 전환하면서, 또 한번 독 안개를 뿜어냈다. 화끈거리는 작열감이 느껴졌다.
굳은 표정의 청풍. 그의 동작이 다소 느려지자, 독주요마가 짐짓 뒤로 물러나며, 상황을 살피는 여유를 보였다.
“이제 끝이야!”
일갈을 발하고는 다시금 몸을 날려 왔다.
처음에 펼친 시충독(尸蟲毒)에도 반응이 있었고, 이제 반혈독까지 끼얹어 놓았으니, 더 이상 제대로 된 반격은 힘들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쒜엑!
언제나 전진하던 청풍이다.
금강호보가 멈추고. 힘이 빠지기라도 한 듯, 청풍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지척까지 이른 장력.
절체절명의 위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파아아아!
독주요마의 공세가 청풍의 몸을 강타하기 직전, 청풍의 왼발이 후방을 향해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
장력을 비껴낸다.
발을 딛음과 동시에 상체 전체가 절묘하게 후퇴한다. 한 마리 교룡이 꿈틀거리는 듯, 역동성과 유연함을 한 몸에 갖춘 움직임이었다.
“이 놈.......!”
피해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놀란 독주요마다.
땅을 짚고, 몸을 회전시키며 사나운 일격을 날려 왔다.
스스스스스.
청풍의 발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횡방향이다.
독주요마의 일격을 또 다시 무위로 돌아가게 만드는 일보!
풍운용보다.
금강호보가 공격에 치중한 보법이라면, 이것은 방어와 회피에 주안점을 둔 보법이라 할 수 있다.
바람과 구름을 누비는 신묘한 용이라, 상대의 장풍(掌風)과 독무(毒霧)를 완전하게 피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캬합!”
분노와 놀라움이 극에 달한 독주요마다.
그가 괴성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팔을 휘둘렀다.
마구잡이로 뻗어내는 장력.
맞추어서 충격을 주려는 장법이 아니다.
처음부터 격중 시킬 의도는 없었느니, 노림수는 오직 독술(毒術)일 뿐.
소매에서 뭉클 뭉클 솟아 나오는 독 안개. 거기에 더하여 괴이하게 생긴 벌레들까지 던져대고 있었다.
“위험!! 피하시오!”
뒤 쪽에서부터 누군가의 경호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워낙에 마구잡이로 흘러나오는 독술이다 보니, 피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퍼져 나오는 독물(毒物)들이 순식간에 청풍의 전신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멈칫.
탁해진 공기 속에 움직임을 멈춘 청풍의 그림자가 보였다.
진한 독무 한 가운데, 흔들리는 청풍의 몸이 있다.
독주요마의 얼굴에 회심의 웃음이 돌아왔다.
“킬킬킬. 네 놈은 죽었어.”
다시금 예의 괴소(怪笑)를 뱉어내는 독주요마다.
득의의 표정을 만면에 떠올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눈빛에 청풍을 따라 몰려왔던 무림인들이 당황한 기색을 띄었다.
그러나.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독 안개 속 그림자는 쓰러지지 않았다.
넘어지는가. 아니다.
한 순간.
꼿꼿이 몸을 세우고서, 기나긴 숨을 뿜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우우우.”
낭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무림인들의 얼굴에 기대의 감정이 어렸다.
“......!!”
득의양양하던 독주요마의 얼굴이 점차 웃음기를 잃어갈 때.
걷혀가는 독무 안에 두 발을 굳건하게 버티고 선 청풍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 주먹을 쥐고서, 눈을 감은 채 운기조식을 하듯 잔잔한 숨을 내쉬는 청풍.
팔목을 타고 올라갔던 반점이 사라져가고, 얼굴에 떠올랐던 검은 기운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이........!”
해독(解毒).
목신운형(木身雲形)의 진기였다.
목기(木氣)는 자고로 만물을 생(生)하는 공능을 지닌다.
몸에 들어온 나쁜 기운을 걸러내고, 힘을 키워내는 생명의 기운이다. 자하진기의 도도한 내력이 목신운형의 운기법을 타고서 전신을 휘돌고 있으니, 어떤 외부의 기운도 범접하기 힘들다. 만독(萬毒)이 불침(不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설마, 이런 애송이가!”
독주요마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무공 그 자체보다는 독술의 음험함을 장기로 내세우는 이가 독주요마다.
헌데 그것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여기에 있다.
경악과 난감함이 앞설 수밖에.
후욱.
청풍이 마지막 짧은 숨을 토해냈다.
죽립 밑에서 뜨여지는 눈.
강렬한 기운이 그 안에서 뻗어 나왔다.
“문을 열어라.”
수려한 턱 선이 움직이고, 그 안에 명령과도 같은 강한 의지가 발해졌다.
그것을 받은 독주요마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작 뒷걸음을 치고 만다.
멈추는 발걸음.
청풍의 기세에 압도당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수치스러움 느꼈는지, 독주요마의 눈에 당황과 분노가 아로새겨졌다.
“이, 이 놈을 쳐라! 모두 달려들어!”
수신호를 보내며 큰 외침을 발했다.
이쪽을 돌아보고 방향을 바꾸는 천독문의 녹의인들이다.
십여 개의 신형이 기이한 신법을 펼치면서 화난 벌 떼처럼 날아들었다. 빠르게 달려드는 자들, 청풍의 발이 대각선을 향해 짚어졌다.
사아아악.
절묘한 움직임. 발끝에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부드럽게 느껴진다.
풍운용보의 활용.
장력을 날려 오는 녹의인을 휘감아 돌며 완벽한 반격 위치를 선점했다.
텅!
발을 구르는 강력한 진각소리가 땅바닥을 울렸다.
쳐 내는 발경의 묘리는 호쾌한 일보에서부터.
방어와 회피의 진결을 보이면서 적의 공세를 비껴내는 것이 풍운용보라면, 나아가는 공격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금강호보다.
금강호보의 끝에 뻗어나가는 것은 백호검결, 금강탄.
치리리링 하는 경쾌한 음성이 퍼져 나오고, 빛살처럼 뻗어나간 검날이 녹의인의 등허리를 훑어냈다.
촤아악!
공중에 흩뿌려지는 피가 선연하게 빛났다.
단번에 죽음을 선사할 만한 치명상은 아니더라도, 더 이상 싸우지 못하게 만드는 정도로는 충분하다.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녹의인이 장력을 떨쳐내던 동작 그대로 땅을 향해 곤두박질쳐 버렸다.
쿵.
녹의인 하나가 일검에 쓰러지는 장면에 압도당한 것일까.
짓쳐들던 녹의인들의 살벌함이 확 줄어든 느낌이다. 그 놀라움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청풍의 발이 장쾌한 호보를 밟아냈다.
터엉!
멈추지 않는 검결의 시작이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면서 주저 없이 검을 내쳤다.
스가각!
이번에는 깊다.
치명상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군웅들을 향하여 유난히도 잔인하게 독수(毒手)를 전개하던 천독문 녹의인 한 명이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텅! 치리리링! 파아아아.
백호검결 연환세다.
전진하고 금강탄을 폭출하며 백야참을 전개하는 동작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단숨에 몰아치는 검격, 두 사람의 녹의인이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
쿵!
속전속결이다.
진용을 갖추기 전에 부셔버린다.
내리 깔리는 독무(毒霧)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자욱한 그 한가운데를 향하여 돌파를 감행하는 것이다.
콰악!
찔러내고 다시 빼내는 것에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독 안개를 겁 없이 흩어 놓으며, 검을 내친다. 그 주변에 끌고서 흘러가는 탁한 독기(毒氣)가 한 줄기 한 줄기 마치 그의 뒤를 따르는 바람처럼 보이고 있었다.
“막아!”
개방의 남진중을 여유롭게 다루던 괴수의 모습은 이미 여기에 없었다.
일곱에 이르는 녹의인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청풍이다.
독공마저 통하지 않는 상대.
워낙에 진한 독기가 사방을 태우고 있는지라, 죽립 곳곳, 입고 있는 옷 곳곳에 구멍이 뚫려가는 데에도, 청풍의 쇄도는 멈추지를 않는다.
천독문 녹의인들을 모조리 동원하려는 요량, 청풍 일인을 향하여 남아있던 모든 녹의인들이 땅을 박차고 짓쳐 들었다.
“하압!”
청풍의 입에서 강한 기합성이 울려 나왔다.
땅을 박차고, 검을 내리 꽂는다.
강력한 일격이다.
달려들던 녹의인 하나가 등판을 꿰뚫리며 땅바닥에 쳐 박혔다.
쒜엑. 쒜에엑! 사아아악!
사방에서 쏟아지는 장력이나, 청풍의 신형은 자유자재다.
예전같았으면 오직 금강호보를 사용하여 무리하게 전진만을 했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공격 보법, 호보.
방어 보법, 용보다.
그 이름 그대로 바람과 구름을 노니는 한 마리 용이라, 공수의 조화가 한 몸 안에 깃든다. 보법 하나가 더 들어왔을 뿐인데도, 난공불락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촤아악!
여러 명에 둘러싸였지만, 그래도 그의 목표는 앞 쪽이다.
목신운형의 운기술에 용보를 구사하는 안목으로 대번에 뚫고 나갈 틈을 찾아낸다. 검을 전개하고, 강하게 밟는 일보에 청풍의 몸이 외원 문을 향하여 쏘아져 나갔다.
텅!
눈앞으로 보이는 외원 문.
독주요마의 당황한 눈빛이 보인다.
땅을 짚고 몸을 띄우며 청풍의 검을 피하는 동작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파아아아.
완전히 발동해 버린 백호무(白虎舞)의 위용은 그야말로 굉장했다. 뻗어오는 장법의 경력마저, 허공을 격해 갈라내 버릴 정도다. 청풍의 발이 더 앞으로 나아갔다.
“카앗!”
일그러진 독주요마의 얼굴이다.
예리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긴 다리를 내쳐온다. 여전히 독특한 체술, 하지만 그것도 숨어있는 독공이 받쳐줘야 제 위력이 나는 법이다. 청풍은 그렇게 흘러오는 독술에 미동도 하지 않으니, 독주요마의 신세도 결국, 독이빨을 제거당한 덩치 큰 거미에 지나지 않았다.
촤악! 촤아아아악!
청풍의 검이 정교하게 흔들리더니, 두 줄기 긴 검상을 독주요마의 몸통에 새겨 놓았다.
피를 흩뿌리며 정신없이 물러나는 독주요마, 그러나 금세 턱 하고 멈추어 버린다. 그의 등 뒤엔 어느 새 외원으로 통하는 대문이 닿아 있었던 것이다.
“크윽!”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
독주요마의 손이 커다란 대문을 박차고, 그의 몸이 한 마리 상처 입은 거미 되어 벽을 타 올라갔다.
그것을 본 청풍이 땅을 높이 박차며 독주요마의 전신을 노려갔다.
“이 죽일 놈!”
무고한 민초들에게까지 독물을 살포하는 자.
누가 죽일 놈일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제 정신이 아닌 듯, 충혈 된 눈으로 팔을 휘두르는 독주요마 모습.
청풍의 신형이 풍운용보의 흐름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들며, 독주요마의 측면을 향해 날아 들었다.
콰득! 콰직!
발악적인 독주요마의 출수를 완전하게 깨부시고, 그의 몸을 몸통 째로 꿰뚫어버리는 검격에 섬찟한 파열음이 흘러나왔다.
“커억.”
옆구리를 관통하여 단단한 대문까지 박혀버린 검날이다.
독주요마를 몰아쳐, 외원 문에다 박아 놓은 청풍의 신위, 독주요마의 입에서 진득한 핏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어디서........”
쿨럭.
고개를 꺾는 독주요마다. 그의 입에서 한숨 같은 한 마디가 남겨졌다.
“이런 놈이.......나타난........”
그대로 늘어지는 신체다.
독주요마의 몸과 대문에 꽂혀있는 장검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그 손 그대로 오른 쪽 허리를 훑는다.
치리링! 터엉!
청풍의 오른 쪽 허리 춤에서 쌍검으로 들고 왔던 청강장검 한 자루가 번쩍 튀어 나왔다.
미세한 틈을 따라, 대문 한 가운데를 뚫어버리는 일격, 콰지직 하는 요란한 소리가 바깥쪽에서 넘어왔다. 외원문의 빗장을 부셔버린 것이다.
삐꺽! 끼이이이이.
독주요마를 찍어 죽이고 나갈 문을 뚫어 놓는 기세, 놀라움 그 자체다.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돌파하여, 그 직접 한 말을 지켜 내고야 만다.
몸을 돌리는 청풍이다.
죽립 밑으로 뿜어지는 눈빛에, 지켜보던 무림인들 그리고 달려들다 멈춰선 녹의인들까지, 그 모두가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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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새로운 화산질풍검이 여러분을 찾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