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 방도들께서는 쓰러진 사람들을 수습해 주시오.”
낭랑한 목소리.
묘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특별함이 느껴진다.
굉장한 무위를 보여주었고, 말투 또한 명령조이지만, 무력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이 압도당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하는 말, 그 내용 때문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와 같은 아수라장에서.
사려 깊은 마음이 여기에 있다.
생명을 측은하게 여긴다는 두개의 단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두 개.
인의(人義)다.
그리고, 협(俠)이다.
탐욕과 살상이 지배하는 이 장내에, 뚝 떨어진 듯 나타난 청풍의 의지.
검은 하늘에 비치는 한 줄기 서광과도 같다.
저벅. 저벅.
청풍의 발소리는 천독문 녹의인들을 옭아매는 발소리다.
조심스럽게 독무를 헤쳐내면서 사람들을 수습하려 하는 개방도들, 그것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녹의인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었다.
무공보다 먼저 표출되는 마음의 힘이다.
독기를 물리치기 위해 무리하게 운용한 목신운형으로 내상을 입었고, 완전히 연성하지 못한 풍운용보를 펼쳐내느라 근골에 무리가 와 있었지만, 청풍은 그런 것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내색하지 않을 뿐이 아니었다. 종전보다 더 강한 기세를 내 뿜고 있다.
최대한 강해 보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살려 보내기 위해서.
또한 더 나아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강해 보이려는, 강해지려는 의지. 거기에 정진하여 강해진 무공이 함께한다.
강자의 의미.
청풍은 이미 실제로 강자(强者)다.
청룡검과 적사검을 둘러싼 쟁탈전에, 가장 강한 한 축으로 뛰어 오른 것이었다.
“저놈은. 무엇이냐.”
석대붕의 얼굴에는 강한 불쾌감이 깃들어 있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던 와중이었다.
헌데, 그것을 망친 자가 있다.
석대붕의 입에서 나직하고 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손 총관.”
“예.”
“저 놈을 죽여.”
“.........”
“저 놈을 죽이고, 나가려는 놈들도 다 없애.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알......겠습니다.”
손 총관의 눈에 찰라의 망설임이 깃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 눈빛은 냉정함으로 바뀌어진다.
총관은 장주의 충실한 개일 수밖에 없다.
다 죽어가다 석대붕에게 거두어져, 여기까지 살아 온 손진덕으로서는 주인의 폭주를 막을 능력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파팍!
손 총관, 손진덕이 땅을 박찼다.
손진덕이 몸을 날리니, 그의 뒤 쪽으로부터 석가장 그 자체에서 키워낸 무인들이 열 명이나 따라 붙었다.
하나같이 기쾌한 신법.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의 옆으로 복잡하게 돌아가는 싸움들이 눈길을 끌었다.
쉬잉! 파파팡!
이제 숭무련과 성혈교의 격전장으로 변해버린 장내다.
적사검을 두고 벌어지는 두 집단의 싸움.
고수들의 겨룸인 만큼, 그 누구도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흉험함을 보인다. 무섭게 돌아가는 전세, 적사검의 향방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상태였다.
스각! 콰직!
무차별로 살수를 전개하고 있는 강도장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맹렬한 기세.
통제가 불가능한 무공이다.
도망칠 사람은 다 도망쳤고, 죽을 사람은 다 죽었다.
남아서 날아드는 것은 성혈교 오 사도와 흠검단 부단주 조신량 뿐.
손진덕은 석가장 무인들을 이끌고, 그들마저 지나쳐 버렸다.
촤악!
녹의인들을 하나 둘 쓰러뜨리며, 개방도들의 움직임을 보호하는 청풍이 거기에 있었다.
몰려들어 빠져나가려는 군웅들이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독무(毒霧)에 운신이 힘들다.
뚫어 놓은 외원이 무색해지는 시점.
빠르게 달려오던 손진덕이 외원 문을 가리켰다.
“문을 막아라!”
손 총관의 손짓에 석가장 무인들이 뚫려있는 문 쪽으로 짓쳐 들었다. 자욱하게 깔려있는 독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천독문은 아니더라도, 독(毒)에 관한한은 두려움이 없는 자들이었다.
텅!
녹의인들을 몰아치던 청풍이 방향을 바꾸었다.
열어 놓은 길이 다시 막혀서야 곤란했다.
쐐액!
청풍의 검이 백야참 검결을 뿜어냈다.
천독문 독인들을 상대하다가, 새로운 강적들이 나타났음에도 하등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양, 주저없이 검을 내쳐온다. 기민한 대응과 흔들리지 않는 심성만큼은 이미 절정 고수의 수준을 상회하고 있었다.
쩌엉!
강력한 충돌음이다.
석가장 무인들의 병기(兵器)는 허리춤에서 뽑아내는 한 자루 단봉(短棒)이었다.
짤막한 단봉이나, 어떤 강철로 만들어졌는지 그 강도와 반탄력이 굉장했다.
청풍의 검격을 막아내는 일 초.
얽히는 신형 뒤로 석가장 무인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청풍의 주위를 둘러쌌다.
쩡! 쩌정! 쩌저정!
순식간에 산개하여 합공을 펼쳐오는 수법이 예사롭지 않았다.
보통 익숙해 보이지 않는다.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맞물려 쏟아지는 단봉들에 청풍의 검이 빛살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하압!”
금강탄과 백야참의 구별이 없어지고, 백호무가 발동된다. 더욱 속도를 더해가는 검결, 낭랑한 기합성에 청풍의 청강장검이 백호검과 같은 백광(白光)을 머금었다.
쩌어어엉!
단봉 두 자루가 한꺼번에 하늘로 튕겨 올라갔다.
난무하던 공격에 생긴 틈.
청풍의 검이 그대로 뻗어지며 한 무인의 어깨를 관통한다. 빼내며 거두는 검, 좁은 공간 사이로, 단봉들이 세 자루나 허점을 노리고 짓쳐 들었다.
파아아아. 터텅!
청풍의 몸이 금강탄을 쳐내던 역방향으로 급격한 선회를 보여 주었다.
세 줄기 공격을 단번에 무위로 만드는 동작, 그야말로 바람 같은 신법이었다.
쩌정!
다시 한번 몰아쳐 오는 공격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청풍은 절묘하게 피해낸다.
전과 같았으면 손해를 입어도 단단히 입었을 싸움. 하지만, 물러나고 있음에도 전세를 결코 불리하지 않다. 어느 때라도 반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팽팽한 공격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불가해할 정도로 진화한 무공이었다.
터엉.
금강호보.
힘을 얻어 뻗어나가는 백호무다.
그 전부터. 이 정도까지 진화하기 전부터.
청풍은 백호검결만으로도 강했었다.
금강탄. 백야참.
청풍보다 훨씬 강한 고수에게까지도 경각심을 일으킬만한 일격들이다.
그런 것을 언제든 뻗어낼 수 있었던 청풍.
그럼에도 그는 여러 싸움에서 고전을 했었다.
지금도 예전과 같았다면 이 정도까지 싸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해답은 간단하다.
금강호보. 백호검결이 모두 다 공격 일변도의 공부였기 때문이다.
금강호보는 물러남이 없는 보법이다.
물러나는 동작를 취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호보가 가진 공격성을 반 이상 포기해야 한다.
공격이 칠할. 방어가 삼할.
호보의 특질이란 이야기다.
그것은 결국, 호보의 무도 자체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뜻하는 바다. 어느 쪽으로든 치우쳐버린 무공은 그 위력이 강하더라도 반드시 한계가 있기 마련, 청풍이 가진 한계는 곧, 백호검, 그 무공의 한계 그대로의 것들이었다.
푸욱! 촤아악!
청풍의 검이 석가장 무인 하나의 다리를 꿰뚫었다.
뿜어지는 핏줄기, 또 한명을 전투불능으로 만들며 절묘하게 비껴선다.
옆으로 움직이며 몸을 숙이고, 등을 젖혀 단봉들을 피해냈다.
회피와 방어다.
하지만, 금강호보만으로 싸울 때와는 달리 그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데에도 공격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방어태세에서라도 금강호보가 나아갈 준비가 완전하게 갖우어져 있었다.
목신운형.
그리고 풍운용보.
두 가지가 더해져서 그렇다.
목신운형이나 풍운용보나.
아직 완성에 이르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아니 완성은커녕, 이제 초입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비약적인 위력을 보이는 것.
부족하던 한 조각이 맞추어진 까닭이다.
금강호보가 앞을 담당한다면 풍운용보는 뒤를 담당하는 보법이니.
공격 삼할에 방어 칠할.
공격 칠할의 금강호보와는 완전한 짝을 이룬다.
금강탄이 쳐내는 기술이라면 목신운형은 제 자리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기예.
아직 완벽하지는 않아도, 치명적이었던 허점이 어느 정도나마 채워졌다는 뜻이다.
백호검결, 백호무가 지녔던 강점들을 몇 배 더 살려낼 수 있게 되었다는 말.
그것이야말로 청풍이 제 스스로도 놀랄 만큼 강해져 있는 진실한 이유였다.
“이 놈!”
석가장 무인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에 손진덕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허리춤으로부터 단봉 하나를 꺼내 드는 손진덕이다.
단봉의 색깔은 적철(赤鐵)의 붉은 색, 품고 있는 힘도 차원이 다르다.
단숨에 파고들어 마주쳐오는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쩌저저정!
찰라의 순간.
네 번이나 얽힌 검격에 청풍의 검결이 처음으로 큰 흔들림을 보였다.
강한 상대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자였다.
텅!
금강호보의 탄법, 착지는 풍운용보로.
쩌정! 쩌엉! 쩌정!
청풍의 검격이 더 빨라졌다.
계속되는 격전으로 온 몸에 무리가 오고 있으나 멈출 수 없다.
이 자가 마지막 상대라면 모를까.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
깨부수고 무너뜨려, 다음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하압!”
청풍의 입에서 다시 한번 기합성이 발해졌다.
장쾌한 기세.
마주해 오는 손진덕의 무공은 확실히 대단하다.
물러나지 않는 고강함.
하지만, 물러나지 않아도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나가가는 청풍의 검격이 워낙에나 뛰어난 기상을 담고 있었기 때문. 그것은 이미 기술 차원의 문제라 볼수 없다. 담고 있는 심력, 마음의 무게가 달랐던 까닭이었다.
파아아아. 쩌정! 쩌어엉!
정신없이 물러나는 손진덕이다.
청풍의 우위.
무공이 딸리는 것도 아닌 듯한데, 손진덕은 묘하게도 맥을 추지 못했다. 기세 싸움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 청풍의 검세가 장중함을 더해갔다.
치링.
위, 아래, 뻗어냈던 검을 자연스레 검집 안으로 되돌리는 청풍이다.
금강탄 착검술.
연환 되어 돌아가는 흐름의 하나다.
목신운형의 체술에 금강호보의 진각이 도도하게 이어졌다.
터엉!
청풍의 신형이 쭉 뻗어나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듯, 발검부터 나아간다.
치리리링! 큐웅!
금강탄.
감추어졌던 청강장검이 강맹한 기운을 품고서 충천하는 기세로 뽑혀 나왔다.
찢어발기는 파공음에 호승심이라도 일어난 것인가.
손진덕이 이를 악물며 몸을 굳히더니 시위에 걸린 화살을 내 쏘듯, 내력을 모았다.
지척에 이르러 벼락같이 내쳐오는 단봉, 이 일격에 승부를 짓겠다는 듯, 단봉에 실린 기력이 엄청났다.
꽈아앙!
힘과 힘의 정면 대결이다.
폭음에 가까운 충돌음이 터져 나오고, 경력의 여파가 줄기줄기 흩어져 나갔다.
쿨럭.
잠잠해지는 충돌의 여파.
청풍의 입에서 까맣게 죽은피가 쏟아져 나온다.
더 큰 손해를 본 것일까.
그렇게 보기엔 핏물을 뱉어낸 청풍의 얼굴이 너무도 태연하다. 태연한 정도가 아니라, 응어리져 있던 탁기를 토해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놈.......”
뒷걸음 쳐, 코피를 흘려내는 손진덕이다.
탄식처럼 내 뱉는 말.
그가 경악과 의문을 담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피.........내상까지 입은 상태로 싸웠나. 이 만큼을?”
청풍의 상태를 알아본 그다.
내상을 입었다는 것.
그럴 수밖에 없다.
목신운형을 익혔다지만, 기껏 며칠일 뿐이다.
그 동안 재능 자체를 진화시키면서 뛰어난 오성을 지니게 되었을지라도, 목신운형같은 비기를 며칠 만에 대성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독주요마의 독기를 걸러내면서, 그리고 풍운용보를 실전에 처음 써 보면서, 입었던 내상이었다.
마치 그 어떤 것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것처럼.
외원 문을 뚫어놓고, 천독문 독인들을 물리치기까지 꾹 눌러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것을 이제야 표출시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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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