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156)

  

“이런 놈이 대체 어디서......!”

손진덕의 한 마디는 독주요마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응혈을 뱉어내고, 다가오는 청풍.

진중한 발걸음에 강한 힘이 실려있다.

내상을 입고 싸웠더라도, 순식간에 다시 회복하고 있는 느낌. 손진덕의 얼굴에 질린 표정이 깃들었다.

“전원 공격하라! 이 놈만큼은 반드시, 반드시 죽여!”

경각심이 최고조에 이른 외침이었다.

청풍.

주인인 석대붕의 계획에 가장 위협적인 자로 결론 내린 것. 

손진덕이 먼저 달려들고, 석가장 무인들이 함께 몸을 날려 온다.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공격이다.

죽립 및, 청풍의 눈이 번쩍 빛나며 금강호보의 일보를 강하게 밟아 나갔다.

청풍이 석가장 무인들과 얽혀들고 있을 때.

성혈교 오 사도와 숭무련 조신량은 청룡검을 휘두르는 강도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지(理智)를 완전히 상실한 눈빛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을 향해 달려드는 강도장이다. 

강도장의 신형이 오 사도를 향해 날아 들었다.

우우우웅.

성혈교 오 사도가 한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내리찍는 수도(手刀).

찢어발겨지는 공기가 무서운 살기를 머금었다. 

콰아아아. 

의식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강도장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동물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찍듯이 눌러오는 기운에 맞서 청룡검을 휘두르고, 뒤를 향해 몸을 튕겨낸다. 놀라운 반응속도다. 움푹 패이는 땅거죽에 바닥에 끌리는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촤라락, 촤라라락.

미친 듯이 달려드는 강도장이다.

사납게 휘두르는 청룡검.

오 사도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나아가며 팔을 휘둘렀다. 맹렬한 경풍이 일어난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강도장의 몸이 삼장이나 튕겨 나갔다.

“과연.......!”

조신량의 얼굴에 감탄의 빛이 머물렀다. 

사도의 힘은 확실히 무지막지하다.

얽이고 설키는 상황, 장내에 뛰어난 고수가 많다고 한들, 사도의 힘은 그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면이 있다. 

청룡검을 휘두르는 강도장을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능력. 당장이라도 청룡검을 빼앗아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넘겨줄 수야 없지!”

조신량이 외치며 사도를 향해 짓쳐 들었다.

하늘을 선회하는 한 마리 매처럼 자유로운 기세다. 강도장을 도와주려는 의도는 물론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똑 같은 바, 사도의 공격을 방해하는 그의 검이 날카로운 경력을 쏟아냈다.

쩌엉!

맨손과 명검(名劍)이 부딪쳤는데에도 금속성의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귀찮다는 듯 가볍게 베어내는 수도(手刀)일 뿐이다. 그런데도 강철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강도를 보이고 있었다.

쩌정!

놀라운 신기(神技)였다. 금종조, 철보삼 공력을 익히면 온 몸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하였지만, 이것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절정 검객인 조신량의 검격을 가볍게 받아내는 수공(手功), 천하에 찾아보기 힘든 기예(技藝)였다.

촤아아앙!

오 사도가 뿜어내는 막강한 진력을 막아내며 하늘로 솟구친 조신량이다.

그의 검에서 경력을 털어내는 커다란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역시 대단하시군!”

짐짓 여유로운 척 입을 열었으나, 검을 잡은 손에는 강한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무력의 격차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몇 수만으로도 수준의 차이를 알 수 있을 만큼, 오 사도의 무공은 엄청났던 것이다.

우우웅.

사도의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목표는 뜻밖에도 조신량이 아니라, 강도장이다. 

넘어졌던 몸을 일으키는 강도장.

사도의 의도는 자명하다.

조신량과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것.

조신량의 입에서 커다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사정을 봐 주겠다는 것인가!”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땅을 박차며 사도의 뒤를 따라붙는 조신량이다.

성혈교와 숭무련. 

같은 팔황의 권속.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여덟 세력이 뭉쳤으니 어느 정도 갈등이 있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수뇌부끼리의 충돌은 금기시 되어 있다.  

성혈교 오 사도가 조신량을 곧바로 죽이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터.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팔황의 고수들이란 애초부터 제어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들.

성혈교 사도들 정도나 되면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예리하게 베어 들어가는 조신량의 검격에, 더 이상은 봐 줄 수 없다는 듯, 오사도의 발이 딱 멈추었다.

우우우웅.

뻗어내는 수도.

깃든 힘이 지금까지와는 또 달랐다. 조신량의 안색이 급변하며, 검결을 짚어내는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쩌어어! 

조신량의 검이 활처럼 휘어졌다.

부러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두 사람 사이에 메꾸어진 공력이 터져나갈 곳을 찾아 줄기줄기 뻗어나가고, 힘을 감당하지 못한 그의 신형이 크게 흔들렸다.

“이야야얍!” 

힘을 다하여 뿜어내는 기합성이다.

내력과 내력의 교차.

조신량의 몸이 뒤 쪽으로 튕겨 나오며 일순간에 일곱 차례나 회전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힘의 열세 앞에서 그 여파를 흩어내는 기지(奇智)가 돋보였다.

“계속 할텐가.”

처음으로.

이 석가장에서 사도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이어지는 눈빛.

계속 하면....... 

죽이겠다.

눈으로 들리는 목소리다.

무시무시한 살기.

그러나 그 엄청난 기운를 받아내는 조신량은 그저 당당하기만 했다.

정면으로 맞이하는 눈빛이다. 

검을 고쳐 잡으며 검집을 풀러 던져낸다. 경쾌하던 말투 대신 진중한 목소리를 발했다.

“무(武)를 숭상하기에, 나는 숭무련이며, 검(劍)을 흠모하기에 나는 또한 흠검단이다.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아. 덤벼라. 피의 사도(師徒)!!”

대단한 기도다.

무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더불어 싸울 수밖에 없다.

강도장으로 향해있던 발길이 돌려지고, 조신량을 향한 전면에 사도의 공격 의지가 자리했다.

검을 들어 사도를 겨누는 조신량의 의도.

그것은 어쩌면, 임무를 위한 시간 끌기인지도 모른다.

청룡검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사도와 싸울 수 있는 흠검단 단주가 오기까지 기다리기 위한 책략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한들, 이 순간 조신량의 기개는 실로 굉장했다.

진정한 무인의 모습이다.

이에 성혈교 사도 역시 진심으로 싸울 마음을 품었는지, 전율스런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촤라라라.

쇠사슬 소리를 끌며 움직이는 강도장.

이지를 상실했다지만, 제 정신이었을 때의 본능이 아직 남아있기는 한 것인지.

이런 싸움에는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을 감지한 모양이다.

강도장의 발길이 돌려지고, 다른 희생자를 찾아 몸을 날린다. 

그런 강도장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성혈교와 숭무련의 두 사람. 

시작되는 강렬한 싸움이 마침내 맹렬한 기운을 퍼뜨렸다.

쩌정! 파삭!

석가장 무인들의 한 가운데서 홀로 신위를 발하고 있는 청풍이다.

손진덕의 무공이 있고, 그것을 보조하는 다른 석가장 무인이 있지만, 청풍은 난공불락의 무위를 보이면서 땅을 누빈다.

계속되는 싸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 터.

하지만 청풍의 신형은 더욱 빨라지는 것 같다.

호보와 용보를 전환하는 기법이 능숙해지고, 공격과 방어를 연계하는 흐름이 더욱 세련되어 지고 있었다.

퀴융!

몸을 낮추고 금강호보.

강한 진각음이 없는 데도, 나아가는 검격은 강맹하기만 하다. 감히 받아내지 못하는 석가장 무인을 뒤로 물리고는 몸을 휘돌려 손진덕의 단봉을 튕겨냈다.

파아아. 

점점 능숙해진다.

실전을 또 하나의 수련처럼.

놀라운 습득속도, 이제는 그야말로 천재(天才)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재능, 그리고 거기에 더해 확대되고 있는 무재(武才)가 비로소 그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스가각!

청풍의 검이 석가장 무인 한 명의 가슴을 훑어냈다.

핏줄기를 내뿜으며 쓰러지는 그를 타 넘고는 용보를 전개하며 검격의 전개 반경을 확보했다. 그 다음은 반격. 공격 경로를 확인하며 하나 하나 공격을 차단하고, 허점을 만들어 나갔다. 훌륭한 전개다, 상승 경지를 넘보는 검도(劍道)였다.

텅! 쩌정!

또 하나 단봉을 쳐 냈다.

물러나 튕겨 나가는 무인 하나. 

금세 그 자리를 메우며 달려드는 석가장 무인이 있다. 

청풍이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손진덕과 석가장 무인들의 공격들도 더욱 더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싸움.

석가장 무인들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청풍을 핍박하던 손진덕이 두 눈에 기광을 번뜩였다. 

어떤 노림수가 있는 것인가. 

“챠압!”

손진덕의 기합성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쇄도하는 적색의 단봉이다.

측면에서 들어오는 다른 무인의 공격을 비껴내고, 몸을 휘돌리며 강하게 검을 내쳤다. 

쩌어어어어엉!

부딪치는 순간이다.

좋은 것을 알았다는 기색.

손진덕의 얼굴의 회심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검에 부딪쳐!”

재빠르게 명령을 발하는 손진덕이다.

무슨 소리인가.

달려드는 석가장 무인들.

청풍이 그 뜻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어지는 맹공(猛攻).

청풍의 안색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차창! 차차창!!

병장기의 충돌을 유도한다. 그것도 거세게.

검날이 상하고 있다. 

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금마저 가버렸다. 손진덕의 적단봉(赤短棒)과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부터 잠재해 있던 균열이었다.

‘실수!’

실수다.

단단한 철봉과 이렇게나 많이 마주쳤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실수였다.

신검 백호검.

절대로 상하지 않는 신병이기에 익숙해져서 그렇다. 저잣거리의 대장간에서 산 청강장검인 다음에야, 쓰다보면 부서지고, 깨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쩌정! 째애앵!

마침내.

한 번 더 달려드는 손진덕의 일격에 검날이 결국 반 토막 나고 말았다. 

무공이 강해지고 지력이 상승해 있을지라도 사람인 이상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병장기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 빈틈 중에서도 치명적인 빈틈이었다.

파아아! 쐐애액!

반 밖에 안 남은 검이다.

졸지에 단병(短兵)을 휘두르게된 청풍.

이 또한 그에겐 익숙치 않다.

항상 장검을 사용했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짧아진 병기는 차라리 아니 들고 있으니만 못할 만큼, 혼란스러운 감각을 선사하고 있었다.

쐐액.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단봉이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위기감. 이대로는 위험하다. 검이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화악!

몸을 낮추고 옆으로 선회하는 상체에 종이 한 장 차이의 일격이 몇 번이나 스치고 지나갔다. 태을미리장을 펼쳐야 할까. 하지만, 호보와 용보를 밟으며 백호검결을 풀어내다가 새롭게 화산무공을 전개하려하니, 그 전환이 여의치가 않았다. 

아주 잠깐.

아주 잠깐의 여유만 있으면 될 터. 

하지만, 손진덕과 석가장 무인들을 이 기회에 끝장을 보겠다는 기세로, 아주 작은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텅! 쐐애액.

풍운용보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어렵사리 공격을 비껴내며 수차례의 위기를 모면했다. 급전직하, 압도적인 공세에서 한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수세로 몰려버린 이 때.

바로 그 때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