쐐액! 파팡!
한 줄기 파공음과 격타음.
석가장 무인 하나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빠르게 나타나 장력을 발출하는 자.
뜻밖의 도움이다.
마른하늘에 단비와 같이,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조력자였다.
“저쪽에서 날뛰는 놈을 맡으시오. 이 개 같은 자식들은 이 쪽이 맡겠소!”
거친 입담.
처음 보는 얼굴이다.
찢어진 누더기에, 입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상처들이 이곳저곳에 보이고 있었다.
“네, 네놈은!!”
거지의 얼굴을 먼저 알아본 것은 손진덕, 손총관이었다.
“어떻게 빠져 나왔지? 살검로(殺劍路)는 확실히 막아 놓았는데!”
거지, 개방방도.
고봉산.
손총관을 향해 이글이글, 불같은 눈빛을 뿜어내는 고봉산이다. 그가 분노에 찬 외침을 터 뜨렸다.
“뭐가 어째? 확실히 막아? 이 음흉한 개 자식들! 역시 의도한 바였어!”
살검로.
그렇다.
그들은 순순히 놔 준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잡아 놓고서 곧바로 풀어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석가장주의 수작.
무슨 의도였건 간에, 그들은 속았고, 큰 위험을 겪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고봉산은 살검로라는 지하 통로를 뚫으면서 악전고투를 치러 왔던 것이 틀림없었다.
“놓아준다 해 놓고, 까마득한 지하 통로 내내 살수를 날려 오다니! 삼일 낮 밤을 헤맨 것을 생각하면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갈며 달려드는 고봉산이다.
커다란 울화가 묻어나는 출수.
위맹한 기세로 차내는 팔선각(八仙脚)에 석가장 무인들의 진용이 크게 흐트러졌다.
파팡! 퍼억!
“뭘 구경만 하고 있나! 와서 같이 싸워!”
고봉산의 외침에 개방 방도 몇 명이 이 쪽을 향하여 몸을 날려 왔다.
고봉산에 이어 그들까지 손을 쓰기 시작하니 더욱 더 숨통이 트인다.
석가장 무인들이 강한 만큼 개방 방도들이 당장 우세를 점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발할 수 있는 운신의 폭 만큼은 확실히 넓어진 것이다. 둘러싸여 홀로 싸울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파아아.....!
여유를 찾아가는 청풍이다.
용보로 적들의 공격을 흩어대고, 손진덕의 공세를 넓게 비껴냈다.
뒤로 물러선 청풍.
크게 둘러보며 장내의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았다.
‘외원........!’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황급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수십 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들쳐 업고서 외원 문을 향해 달리는 광경이 역동적으로 비쳐들었다.
‘아직도.......!’
뛰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적들은 집요했다.
석가장 무인들 몇 명과, 천독문 잔당들이 모여들어 그들의 탈출을 방해하고 있다. 부상자들을 챙기려다보니, 이쪽도 마음껏 달리지는 못하는지라, 당장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을 듯 싶었다.
‘저것은........!’
고개를 돌려 본 곳.
안 그래도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하는 군웅들에게 닥쳐오고 있는 또 하나의 위험이 있었다.
사도와 조신량의 상승비무가 벌어지고 있는 중앙으로부터, 튕겨 나오듯 뛰쳐들고 있는 자.
강도장이다.
청룡검을 휘두르는 강도장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촤아악!
“커억!”
“피해!”
반응이 느린 무인들이 벌써부터 쓰러지고 있는 중이었다.
위험천만이었다. 외원 문을 뚫어 놓았음에도 자꾸만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이 보시오! 저 쪽은 걱정하지 마시오! 한 명이 더 있소!”
청풍을 향한 고봉산의 외침이다.
이 석가장 무인들과의 싸움에 정신을 집중하라는 이야기인가.
손진덕의 단봉을 다시 한번 피해낸 청풍.
그리고.
그는 보았다.
고봉산이 말하는 한 명이 누구인지.
사람들을 헤치면서 강도장에게 날아드는 암향표 신법.
매화검수 매한옥이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쩌정!
이십 사수 매화검법을 전개하며, 강도장이 휘두르는 청룡검을 가로막았다.
휘어치는 청룡검을 막아내고 변초를 가미하면서 경쾌하게 물러난다.
빠르다.
그리고 강했다.
매화검수의 명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청룡검에 맞서는 기세가 대단했다.
이미 여러 차례 싸움을 겪고 왔는지, 고봉산과 마찬가지로 몸 곳곳에 경미한 상처들을 입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매화검법은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화산파 속가 출신 최고의 무재(武才)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였다.
쩌정!
강도장의 청룡검을 절묘하게 차단하면서 위험지역의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 매한옥이다.
하지만, 청풍은 그것을 보면서, 기이한 느낌에 휩싸인다.
‘매 사형........’
사형이라 부르기에도 어색한 사람이었다. 한 산에서 수련했던 시절이 있었음에도 참으로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남자.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으니 분명 안심해야할 상황인데도, 도통 불안감이 사라지질 않았다.
‘청룡검.......!’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느낌.
그대로 두면 안 된다.
강도장을 막아야 한다는 것 만큼은 틀림이 없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청룡검.
매한옥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었다.
파팍!
청풍의 움직임이 급해졌다.
용보를 구사하면서 주변을 살피고, 땅에 떨어져 있는 장검 한 자루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를 본 손진덕이 맹렬한 기세로 따라붙었다.
차아앙!
발 끝으로 차 올린 장검이 맑은 검명을 토해냈다.
검자루를 잡아 능숙하게 휘돌리며 뒤따르는 손진덕의 일격을 막아내고, 금강호보를 밟았다.
나아가는 금강탄.
손진덕이 눈을 빛내며 단봉을 마주쳐 왔다.
다시 한번 검을 부러뜨리겠다는 기세다. 그러나 청풍은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았다.
파아아아아.
부딪치기 직전이다.
용보로 동작을 전환하여 예리하게 단봉을 비껴냈다.
다음은 호보.
손진덕의 사각으로 침투하여 백야참을 발출한다. 횡으로 휘두르는 검날에 손진덕이 급박한 후퇴를 감행했다.
텅!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짝 들어가는 청풍이다. 검날을 곧게 눕히고, 정면을 향하여 깊게 찔러 넣었다.
슈가각!
손진덕의 어깨에서 긴 핏줄기가 솟았다.
제법 깊다.
피하지 못했으면 어깨가 통째로 날아갔을 강수다. 상처를 감싸 쥐며 물러나는 손진덕의 얼굴에 다시 한번 질린 표정이 깃들었다.
“이 쪽을 부탁하겠소!”
청풍은 더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도장 쪽을 향하여 몸을 날린다.
뭐라고 외치는 고봉산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무시했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이 쪽보다는 강도장 쪽이 훨씬 더 중요했던 까닭이었다.
쩡! 쩌정!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모습들.
얽히고 돌아서는 매한옥과 강도장이 보였다.
촤르르륵, 채챙!
이지를 상실하여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강도장이다.
내력의 폭주도 한계에 달했는지. 아니면 사도에게 몇 번 당한 공격들에 예상 밖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인지.
동작이 굼뜨다.
처음 나타났을 때 보다 살벌함이 훨씬 떨어진 상태였다. 매화검수 매한옥의 화산 비기들에 맞서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하고 있었다.
팅! 투두둑!
매화검 일격에 강도장의 몸을 둘러친 쇠사슬이 다섯 줄기나 끊어져 나가면서 큰 흔들림을 보였다. 비쳐지는 핏물에 끊기지 않는 공격이다. 이십 사수 매화검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신검의 예리함을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었다.
“챠압!”
기합성을 발하는 매한옥이다.
풍부한 경험이 엿보이는 암향표 신법을 타고서 내쳐가는 검 끝이 조그만 꽃 송이를 만들었다.
스각! 스가각!
섬찟한 절단음과 함께 흩뿌려지는 세 개의 조그만 물체가 있었다.
손가락들.
청룡검을 버티고 있던 세 개의 손가락이 하늘을 난다. 세밀함의 극치였다.
치칭. 카각!
손가락을 잘라낸 것은 그야말로 결정적인 일격이었다. 손목을 휘돌려 매화검 검날로 청룡검의 검자루를 얽어맨다.
확 떨쳐내는 동작.
마침내 청룡검이 강도장의 손에서 떨어져 나와 허공을 향해 높이 높이 떠올랐다.
터엉!
지척에 이른 청풍.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매한옥의 모습이 두 눈에 새겨지듯 비쳐든다. 느릿 느릿하게 느껴지는 시간, 매한옥의 손이 쭉 뻗어나가 청룡검의 검자루를 감싸 쥐었다.
“안 돼!!”
속절없는 외침이었다.
청룡검을 꽉 잡은 채 땅으로 내려오는 매한옥이다.
달려온 청풍.
그의 발이 멈추고, 두 눈에 허탈함이 깃든다.
바로 이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를 우려했던 것이다.
매한옥이 청룡검을 잡는 것.
청풍은 알고 있다.
사방신검의 폐해를.
청룡검을 잡은 이가 바뀌었다?
그것은 곧, 또 다른 위험을 뜻하는 바다.
어찌해야 하는가.
답이 안 나온다. 달려들어서 빼앗아야 할까.
어떻게든 매한옥의 손에서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청풍이 막 앞으로 나설 때.
먼저 반응을 보이고 미친 듯 달려드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촤르륵! 촤르르르륵!
다름 아닌 강도장이다.
생명줄을 강탈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무서운 기세로 짓쳐든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에 두 눈에는 온통 핏발이 서 있었다.
스윽.
강도장이 달려드는 쪽으로.
매한옥이 상체를 돌렸다.
우우우웅! 쐐애애액!
청룡검이 휘둘러졌다.
아래에서 위 쪽, 사선으로 뻗어낸 검격이다.
조각조각 하늘로 떠오르는 쇳조각.
강도장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던 쇠사슬이 부서져 허공을 수놓았다.
콰드득!
근육이 파열되고, 내장이 터져나가는 소리다.
무자비하게 내리친 일격.
강도장의 오른 쪽 반신이 피범벅이 되었다.
투둑. 투두둑.
그제서야 땅으로 떨어지는 쇠사슬 조각들이다. 무릎을 꺾으며 무너지는 강도장의 얼굴, 두 눈에 깃들었던 광폭한 생기(生氣)가 급격히 흐려지고 있었다.
“이것이.......청룡검인가........”
나직하게 흘러나오는 매한옥의 목소리다.
필요 이상의 잔혹한 출수를 보였음에도,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가늘게 몸을 떠는 그의 두 눈에서 기이한 광망이 번뜩였다.
‘이런........!’
역시나 그렇다.
청룡검도 결국 백호검과 같다.
금기(金氣)가 아니라 목기(木氣)라는 점이 다를 뿐.
매한옥의 눈에 흐르는 것은 절제되지 않은 목기(木氣)다. 통제 불가능한 기(氣)는 순식간에 그의 정신을 침범하게 될 터. 이대로 둘 수는 없다. 강제로라도 검을 빼앗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넌 또 무엇이냐.”
대뜸 뱉어내는 말, 앞으로 나선 청풍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같은 화산의 제자인 만큼, 혹시나 청룡검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역시나.......아니었다.
매한옥의 말투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최소한의 품위와 예의마저 사라진 어조, 침투해가는 청룡기(靑龍氣)가 점점 더 파탄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터벅.
“그 검을 손에서 놓으십시오. 위험합니다.”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전혀 통하지 않는 말이란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웃기는 소리. 가지고 싶다면 덤벼라.”
예상한 그대로의 대답이다.
결국, 결론은 무력 싸움인 것을.
“그렇다면.”
청풍은 망설이지 않고 검을 겨누었다.
“어쩔 수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