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156)

  

텅! 

달려가던 청풍의 방향이 확 꺾였다.

청룡검과 싸우기 위한 도구.

적사검이 해답이다.

얼마나 대단한 보검(寶劍)일지는 모르지만, 더불어 부딪쳐볼만은 할 것이다. 틀림없이 버텨낼 수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사아아악!

땅에 스치듯 몸을 낮추었다.

손을 뻗어 떨어진 검 한 자루를 더 집어들고, 그 속도 그대로 성혈교와 숭무련의 격전지를 향해 뛰어들었다.

퍼억!

질풍의 첫 희생자는 성혈교 무인이었다.

주저없이 뿌려낸 금강탄,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무인 하나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성혈교는 청풍과 화산파에 있어 주적(主敵)에 다름이 아니다. 사정을 봐 줄 필요가 없다. 청풍은 나아가는 신형을 멈추지 않았다.

파아아아!

옆으로 휘돌면서 밀집된 성혈교 무인들을 향해 백야참을 전개했다.

두 명을 더 베고 전진한 청풍이다.

측면에서부터 나서는 한 명의 검사가 있었다.

숭무련 검사. 청풍은 그대로 옆을 돌며 검을 회수했다. 싸울 의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의외의 표정을 짓는 검사를 뒤로하고, 달리는 속도를 더 올렸다.

가로막는 자들. 

성혈교 무인은 베고, 숭무련 무인들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촤아악!

굉장한 기세였다. 

성혈교나 숭무련이나 양쪽 모두 놀랐다.

한 줄기 바람처럼 달려가는 모습.

격전의 중앙, 막 적사검을 손에 넣은 성혈교 무인이 급속도로 가까워져 갔다.

“검을 노린다! 막아!”

그제서야 청풍의 목적을 알아챈 무인들이었다.

숭무련과는 철저하게 충돌을 피하고 있으니, 숭무련 일당 쯤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적사검을 든 무인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파하는 청풍의 앞으로, 성혈교 무인들이 겹겹의 벽을 쳐 왔다.

텅!

청풍의 발이 땅을 박차고, 그의 신형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가장 앞에 있는 성혈교 무인이 내쳐오는 일장을 가볍게 피해내며, 그의 어깨를 향해 강력한 일보를 내리찍었다.

콰직! 

사람의 육신을 발판으로 나아가는 금강호보였다.

무지막지한 진각에 뼈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시금 박차오른 청풍이 호쾌한 금강탄을 뿜어냈다.

퀴융! 푸쉬쉬쉭!

단호한 검격이다.

흩뿌려지는 핏물을 헤치고, 청풍의 몸이 공중을 날아 다섯 명의 성혈교 무인 한 가운데로 떨어져 내렸다.

텅! 스가가가각! 

땅에 내려섬과 동시에 백야참의 광영이 긴 호선을 그렸다.

커다란 반원을 그리는 일참이다.

가슴이 갈라지고 팔이 잘려나가는 성혈교 무인들.

청풍의 신형이 그들 가운데를 밀치고, 둘러친 인간의 벽을 꿰뚫었다.

파아아아.

이제는 하나다.

중간에 적사검을 쥔 자.

삽시간에 사람들을 돌파해 온 청풍의 기세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터엉.

청풍의 발밑에서 돌가루와 먼지가 빠르게 비산했다.

단숨에 짓쳐드는 청풍.

적사검을 쥔 자가 당황한 듯 거친 동작으로 적사검을 휘둘러 왔다.

위이이잉!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대단하다.

일렁이며 빛을 발하는 검신(劍神)이 놀랍도록 화려했다.

치리링!

청풍의 검이 적사검에 깊숙이 얽혀들었다.

검날이 손상받는 느낌이 손 끝에 저릿 저릿 전해진다. 굉장한 보검(寶劍)이다. 위력적인 병기였다.

치칭!

적사검은 명검이었으나, 그것을 쥔 성혈교 무인은 검사(劍士)의 기술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검을 잡는 품세만으로도 알수 있다.

손에 맞지 않는 병기는 이미 병기라 할 수 없는 법. 싸움에 있어서 방해물이 될 뿐이다. 

흔들리는 죽립 밑으로 청풍의 눈빛이 강렬하게 뻗어 나왔다.

텅. 슈각!

순식간에 찾아낸 허점이다.

청풍의 검이 날카롭게 휘둘러져 상대의 팔꿈치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윽!”

늘어지는 팔을 감싸 쥐며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하나 치명적인 실수였다. 청풍의 금강호보는 전진하는 무공의 극치, 물러나는 상대에게 더욱 강했던 것이다.

퀴융!

청풍의 검이 적사검을 쥔 팔뚝을 꿰뚫어 버리고 말았다.

오른팔이 거의 잘려져 나갈 만큼 커다란 상처다. 힘을 잃고 늘어지는 손끝에서 적사검의 떨어져 내렸다.

쒜에에에엑!

쇄도하는 청풍이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른 신법.

땅바닥에 박히는 적사검의 검자루를 쥐어 들며, 그대로 위쪽을 향해 치받아 올렸다.

싸아아악!

바람을 가르는 감촉이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이것이었다.

이것이 명검, 신검을 다루는 느낌이다. 무슨 무공이든 마음 놓고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아아. 터어엉!

청풍의 신형이 원을 그리며, 왔던 방향으로 다시금 튕겨졌다.

되돌아 간다.

성혈교 무인들. 

거기에 더해, 보내줄 수 없다는 듯 이번에는 숭무련 검사들마저 청풍을 가로막아 왔다.

퀴융! 쩌저정!

질주하는 적사검이다.

검을 휘둘러 오는 숭무련 검사들.

그들의 검과 청풍의 적사검이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울리는 가운데, 전환되는 검세가 백야참의 강력한 일격을 뿜어냈다.

쩌정! 쩌억!

부서진다.

검날이 반 토막으로 부러져 나가고, 비산하는 금속 조각이 달빛에 빛난다.

적사검의 위력.

오직 청룡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몰랐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 이 적사검의 날카로움 역시 백호검의 그것처럼 경이로운 수준이었던 것이다.

파아아아!

숭무련 검사들을 뛰어 넘는 그의 앞에 성혈교 무인 하나가 몸을 날려왔다.

겁도 없이 휘둘러 오는 일권을 비껴내고 내리 찍는 일격에 주워서 쓰고 있었던 검을 던지듯 박아 넣았다.

가슴을 가르고 등까지 빠져 나온 검.

청풍은 회수하지 않았다.

쌍검을 쓰려 해도, 오른손과 왼손의 느낌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적사검과 함께 쓰기에는 주워들었던 장검이 지나치게 무뎠던 것이었다. 

퍼억!

비틀거리는 성혈교 무인을 차 내고, 땅을 박찼다.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범의 사나움과 용의 신출귀몰함. 

거기에 사자의 이빨까지 달았다.

치고 들어와 순식간에 적사검을 얻은 것처럼, 빠져나가는 것도 순간이다.

난마로 얽혀있던 무인들을 질풍처럼 휘저어 놓고 땅을 박차는 모습에 장쾌함이 가득했다.

*         *        *    

구화산. 지장촌.

석가장의 참사는 한 때 청홍무적검이란 칭호로 불리웠던 질풍검, 질풍대협의 행보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던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검을 얻고 성혈교와의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때.

석가장 참사는 대협의 강호행에 있어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던 것으로 이야기 된다.

그러나 정작 석가장 참사가 일어났던 배경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온갖 의견이 분분했고, 어떠한 결론도 난 바가 없다.

석가장 참사의 주역인 석가장주 석대붕. 

그 전까지 그저 뛰어난 보검 수집상이자, 숨겨진 자이되 또한 숨겨지지 않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절정고수라는 정도가 강호에서 보여졌던 석가장주의 모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날의 일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때.

정확한 실상은 어땠는가.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해답을 제시하기엔 어려움이 앞선다.

살펴보면 볼수록, 석가장주 석대붕이란 인간 자체가 워낙에 특이한 자였기 때문이다.

냉혹한 상술을 구사한다고 알려진 자. 스스로 검법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면서, 보검에 대해 기이한 집착을 보였고, 그 수집벽을 유지하기 위해 천독문이라는 사이한 방파와 일찍부터 손을 잡고 있었던 남자다.

한창 활동하던 시절에는 뛰어난 무인이라는 평가도 들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석가장에 틀어박혀 이십 년 이상을 잠잠히 지냈던 것을 보자면, 왜 하필이면 스스로의 육순을 자축하는 잔치에서 그런 참사를 일으켰던 것인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조사하던 바.

결국, 실상을 아는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은 역시나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듣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화산에 찾아가.........

.......중략........

한백무림서 초안

한백의 일기 중에서.

  

“참으로 이상하게 돌아간다. 그것이 인생인 것을. 후후후. 그래.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비틀린 웃음.

자신에게 쇄도하는 매한옥을 보며, 석대붕은 스스로의 목소리에 진한 회한을 담았다.

뒤로 물러나는 석대붕.

그가 허리춤으로부터 투박한 몽둥이 하나를 꺼내 들며, 쏟아지는 청룡검의 검격에 맞서 나갔다.

쩌엉! 웅웅웅웅!

부딪쳐 흘러나오는 울림이 굉장했다.

청룡검을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끄덕도 하지 않는 놀라운 강도(剛度)다. 굳이 말하자면 곤(棍)의 형태라 할까.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매끈하지 못한 검정색 표면 안으로부터 은은한 녹광(綠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꿍! 쩌어어엉!

늙고 허약해 보이는 팔뚝이다.

그러나 젊고 강인한 팔로 휘두르는 청룡검을 잘도 막아낸다.

한발 한발 물러나고는 있지만, 힘의 열세 때문에 물러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크합!”

매한옥의 입에서 거친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강맹하게 내리쳐오는 검격을 여유롭게 비껴내는 석대붕. 

재차 뻗어오는 청룡검이나 그것마저도 가볍게 튕겨냈다.

따아앙! 

석대붕이 뒤로 한 발 넓게 뛰면서 거리를 벌려 놓았다.

청룡검의 날카로운 검날에 망설임 없이 부딪치는 몽둥이, 한 자루 묵곤(墨棍)을 들어 올리며 느릿 느릿 입을 열었다.  

“염사곤(艶僿棍)이다. 고운 것을 갈아 없앤다는 불길한 이름이지. 하지만, 어떤가. 그 발군의 자태를 지닌 청룡검에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쓸데........없는 말........듣고 싶지 않다.........사저. 사저를........내 놓아라!”

“후후후. 고작 그런 것. 너에겐 들리지 않나. 네 파멸을 부르는 목소리가.”

“끝을........모든 것을........”

“그래.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이다. 나가서 사람들을 죽여. 이 잔치를 마저 해야지.”

매한옥.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있기 힘든 모습이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렁이는 석대붕의 눈빛에서도 같은 광기(狂氣)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죽인다........아니야.........갈! 현혹하는 말 따위, 그만하라!”

고개를 흔드는 매한옥이 일갈을 내질렀다.

청룡검을 뻗어오는 검격에 이십사수매화검결이 담긴다. 

얼굴을 굳히면서 염사곤을 올려지는 석대붕.  

그의 입에서 두 마디, 중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흥이 깨지는군. 죽여야겠어.” 

석대붕의 두 눈에 잔인한 빛이 어리는가 싶더니, 펼치는 무공이 일순간에 변화했다.

가볍게 후려치던 무공이 아니라, 목숨을 빼앗기 위한 살공이다. 음험한 살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꽈광!

염사곤을 직선으로 내쳐오는 일격에 청룡검의 검신이 확 뒤로 밀렸다. 마공(魔功)에 가까운 일수다. 상대의 맥을 파열시키고 내력을 끊어놓으려는 의도가 진하게 담겨 있었다.

쿨럭.

정신없이 뒷걸음친 매한옥이 기어코 피를 토했다.

청풍과 싸울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렇게나 강맹하게 뛰어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일격 일격을 힘들어하는 약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비틀 거리는 신체.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광기를 제어하려는 이성과, 폭주하는 목기(木氣)가 싸우고 있는 모양이다. 제대로 된 무공을 펼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강호로 나가야지요. 

감기에 걸렸는데, 생각보다 독합니다. 그렇다 해도, 쉴 수가 없네요.

그렇게나 오랫동안 해 왔던 수정작업 주말 안에 끝낼 생각입이니다.

그에 따라 다음주 초반, 월요일이나 화요일 쯤, 수정본이 나가겠지요. 

앞부분 내용은 큰 수정이 없었지만, 대사나 몇 몇 부분을 다듬어 두었고, 악양에 이르러서는 상당 부분 변화가 있을 겁니다. 훨씬 더 읽기 수월한 글이 될 테니, 다시 읽어주실 분들은 다시 읽어주셔도 좋겠습니다.^^ 

더불어, 다음주 안에 이벤트 part-3 결과 발표가 있을 것이고, 이벤트 part-4 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벤트 part-4의 내용은 짐작하시겠죠.

수정본과 지금 글과의 차이점,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감상 형식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상품은, 화산질풍검 출판본이고요.^^

건강 조심하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