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156)

  

많은 것을 생각하고 석가장에 왔다.

성혈교. 숭무련. 개방. 그리고 석가장. 

각 파의 힘의 균형.

숭무련으로 성혈교를 견제하고, 개방의 도움을 받는다. 

막연한 계획이었지만, 노림수는 충분했고, 파고들어갈 틈도 확실하게 짜 놓았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어그러졌다.

남은 것은 무력 뿐.

어찌 보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너무나도 단순 명쾌한 결론이었을까.

책략.

필요하다. 

그렇다 해도, 며칠 만에 급조한 계책으로는 해결하기에는 이 석가장에 얽혀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복잡다난했다.

그런 경우.

해답은 무공이다.

모든 제약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무공.

성혈교 사도가 그러했고, 지금 검법을 펼치고 있는 숭무련 흠검단주가 그러했다.

그렇다면.

청풍이 고심했던 계획들은 결국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었나.

그렇지 않다.

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여러 상황을 생각하고 고민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정작 뜻밖의 상황이 생겼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단호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강력한 결의와 뛰어난 실행력.

그것은 무공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올바로 바라보는 지혜가 밑받침 되어줘야만 한다.

그렇게 적사검을 얻었다.

이제는 청룡검을 얻어야 할 때. 

지금이 기회다.

숭무련 흠검단주가 석대붕을 향해 뛰어들고, 사방에 차오르는 독무로 인하여 모두의 움직임이 멎어 있는 바로 지금.

터엉!

청풍이 발이 호보를 밟았다.

매한옥을 향하여. 

피아를 가리지 않고 휘둘러지는 청룡검을 노리면서.

쩌어엉! 

청룡검에 부딪치는 적사검이다.

할 수 있다.

부러지지 않는다.

적사검은 강하다.

청룡검의 막강함에도 부서지지 않았다.

쩡! 쩌정!

재차 마주치는 두 자루 명검들이다.

마음껏 펼쳐내는 청풍의 무공에 적사검의 검력이 매한옥의 청룡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빼앗을 수 있다.

뜻대로 되어가는 것일까.

아니다. 

옆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력한 기파에 청풍은 또 다시 깨닫는다.

역시나 모든 것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음을.

우우웅.

옆에서 짓쳐드는 막대한 경력.

또한 청풍은 스스로 깨닫는다. 이제는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음을.

예상했다는 듯 먼저 몸이 반응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용보를 밟고 시선을 돌려, 새로운 위협에 대비했다.

콰아아아아!

이 곳에 있는 마지막 강자.

이런 무공을 발할 수 있는 자는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

사도다.

청룡검을 노리는 것인가. 적사검을 노리는 것인가. 아니면 두 검을 모두 노리는 것인가. 청풍과 매한옥을 가리지 않고 무한정 짓쳐오는 경력에 청풍의 발이 풍운용보를 밟았다.

파아아아. 

세상을 쪼개버릴 듯 찍어오는 사도의 일격이다. 청석 바닥이 산산 조각나고, 붉은 색 운무가 미친 듯 휘말려 올라간다. 적사검을 휘둘러 백야참을 전개하는 청풍. 충격의 여파를 흩어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였다.

“크으으으으.”

순식간에 자세를 가다듬으며 두 번째 공격에 대비하던 청풍은, 매한옥이 발하는 기이한 신음성을 듣고 얼굴을 굳혔다.

매한옥.

탁해진 두 눈. 완전히 제 정신을 잃었다.

청풍을 공격할지 사도를 공격할지, 그것마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매사형!”

행여나 정신이 돌아올까, 사형이라 불러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통하지 않는다.

도리어 주의를 끈 것에 영향을 받은 듯, 청풍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맹렬한 기세로 몸을 날려왔다.

“큿!”

청풍의 몸이 뒤를 향하여 급격히 꺾여졌다.

상체를 스쳐 지나가는 경풍.

허리를 뒤로 젖힌 그대로, 발목의 축을 바꾸어 온 몸을 회전시켰다.

절묘하게 빠져나오는 동작이다. 몸을 돌리는 찰라의 시간동안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사도가 옆에 있다. 

매한옥과 부딪치지 않고, 사도와 싸우는 방법.

청풍의 눈이 번쩍 빛나며 그의 발이 매한옥의 옆으로 돌아갔다.

텅!

그대로 매한옥의 옆을 지나쳤다.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는 청풍이다.

청풍이 달려간 방향은 다름 아닌 사도의 뒤 쪽. 넓게 선회하여 사도의 배후로 돌아갔다.

쐐애액! 

매한옥.

제 정신이 아님에도 용케 펼쳐지는 암향표가 거센 파공음을 울렸다.

하지만 청풍은 이미 사도의 뒤 쪽에 있다.

매한옥이 청풍을 쫓으려면 먼저 사도와 맞닥뜨려야만 하는 것. 

단순하기 짝이 없는 수법이나, 사도에 대한 매한옥의 공격을 유도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사도가 매한옥이 짓쳐드는 기세를 피해줄 리가 없었으니, 둘이서 부딪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쩌정!

굉장한 격돌음.

엄청나다. 

그 청룡검을 맨손으로 내리치는 데에도 사도의 손을 잘려 나가지 않았다.

제 아무리 내력이 고강해도 그럴 수 있는가.

말도 안 된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상승의 경계를 넘어선 자들의 능력이었다.

콰아아아. 쩌정!

사도의 오른쪽 수도(手刀)가 청룡검을 압도하며 뻗어 나갔다.

수준이 다르다. 적사검 없이는 청룡검과 마주칠 수조차 없었던 청풍. 그로서는 감히 상대하기 어려운 자였다.

그러나 청풍은 주저하지 않고 땅을 박찼다.

어떻게든 부딪쳐야 할 자다.

사도뿐이 아니라, 흠검단주도. 석대붕도.

결국은 뚫고 나가야 하는 상대들인 바, 어차피 싸워야 할 것이라면 바로 지금이 그 때였다.

큐웅!

적사검의 검신은 백호검의 그것보다 넓다. 묵직하게 공기를 가르는 느낌. 사도의 몸이 반 바퀴 회전했다.

퓨아아아.

비껴 쳐 오는 수도(手刀)에 적사검의 경력이 격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어긋나는 궤도. 대단하다. 사도의 손이 멀쩡한 이유를 그제서야 깨닫는다. 살갗에 직접 부딪치는 것이 아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공력이 집약되어 그 손을 둘러치고 있다. 신검(神劍)의 검날로도 상하게 할 수 없는 막대한 내력의 방패였다.

위이잉! 파아앗!

청풍의 적사검에 이어, 매한옥도 청룡검을 휘두른다. 사도의 몸이 둥실 떠오르듯, 청룡검의 일격을 피해냈다. 

기회다.

청풍의 적사검이 백야참의 넓은 호선을 그려냈다. 공중에 거꾸로 떠오른 채, 수도를 휘둘러 백야참 경력을 흩어내는 사도다. 곧이어 쳐내오는 매한옥의 청룡검에 사도가 처음으로 왼손을 뻗어냈다. 오른손만을 쓰다가 두 손을 모두 휘두르는 움직임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쩡! 꽈앙!

연환되는 공격에 사도의 몸이 땅을 박차고, 속도를 올린다.

적사검과 청룡검의 쇄도.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국은 매한옥과 합공을 가하는 모양새다. 적청(赤靑)의 검격을 홀로 막아내는 사도의 무위가 눈부셨다.

사아악! 위잉! 

사도의 무력이 막강하다지만, 그것을 몰아치는 두 신검의 위용도 무척이나 뛰어났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저돌성으로 사도의 전면을 위협하는 청룡검이다.

거기에, 매한옥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사도의 허점를 노리는 적사검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절묘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싸움 속에, 두 사람의 동작을 한 눈에 담으며 무공을 펼치는 청풍이다. 

그저 몰아치는 것보다 배는 어려운 일.

힘의 흐름을 파악하는 감각이 상승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위이이잉! 쩌엉!

달려들어 청룡검을 뿌려대는 매한옥을 보며, 청풍은 일순간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청룡검을 맞이하는 사도의 동작. 청룡검과 정면으로 부딪치면서도 그 손은 손상 없이 멀쩡했지만, 신체 다른 부위로는 청룡검을 받아내지 않는다.

청룡검이 가슴으로 날아들라치면 손을 휘둘러 막아내지만, 미처 방어가 가지 않는 곳으로 공격이 들어가면 몸을 휘돌려 피해내고 있다.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그것은 결국, 온 몸이 그 수도처럼 금강불괴는 아니라는 뜻이다. 손 이외의 다른 곳에는 저 엄청난 내력의 방패가 없다. 사도도 결국은 사람이다. 맞추기만 하면 이길 수 있는 것이었다.

텅! 콰아아아.

삼인의 신형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가운데.

적사검을 꽂아 넣을 기회를 어떻게든 만들어보려던 청풍은 또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청석바닥을 가르며, 내려치는 수도. 그 막강한 참격(斬擊)의 순간, 청풍은 자하진기의 예민한 감각에 사도의 손을 둘러친 방패가 사라짐을 알아챘다.

공격이 나아가는 그 시점.

방패가 없어진다. 

아니, 방패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내력의 방패가 무기로 변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 한 곳에 집중된 공력을 넓게 확대시켜 내리치는 일격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공략점이 존재한다. 공격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 때를 노리면 되는 것이다.

우우웅! 콰아아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쪽에서 사도를 살펴보고 있듯, 저 쪽에서도 이쪽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어느 쪽이 먼저인가.

결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일격을 내리치고 앞으로 나오는 사도.

난마로 청룡검을 휘두르는 매한옥의 전면에 짓쳐들더니, 왼손을 횡으로 크게 휘둘러왔다.

위이이이. 꽈광!

한 발 늦었다.

튕겨나가는 매한옥.

손으로 땅을 짚으며 동물적으로 몸을 되돌렸지만 곧이어 한 쪽 머리를 감싸 쥔다. 제 정신이 돌아오려는 듯, 고통스러워 하는 신음소리가 울려 나온다. 곧바로 공격을 재개해도 모자를 이 때에, 멈추어버린 매한옥. 설상가상이었다.

텅! 쒜에엑!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적사검을 뻗어내고, 백호무를 펼치던 청풍이 일순간 몸을 깊게 숙이며 사도의 측면 아래쪽으로 파고들었다.

땅에 닿을 듯, 지면의 돌조각을 두 눈으로 스쳐 보내면서, 백야참을 휩쓸었다.   

파아아아.

공중으로 부드럽게 떠오르는 사도의 신체.

피하는 것으로 그칠 리가 없다.

공중으로 뛰어 날아오르며 아래를 향해 수도를 내리쳐 온다. 그대로 찍어 없앨 기세, 그러나 청풍은 피하지 않았다. 굳건하게 발을 밟고, 허리를 뒤로 젖히고는, 위를 향해 금강탄을 내 쏘았다.

퀴융! 꽈아아앙!

갈라진다.

격류로 쏟아지는 폭포수를 중간부터 갈라내는 듯. 사도의 수도가 발하는 막대한 공력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촤악! 촤아악!

옷가지가 마구 찢겨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옷가지 뿐이 아니라 살갗도 찢어지고 있다. 쓰라리게 솟아나는 핏줄기들. 땅을 차 올려 뒤로 한 바퀴 돌고, 위쪽에 떠 있는 사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쳐 오른다.

땅을 박차는 그의 발은 끝까지 당겨진 활 시위가 되고, 하늘로 치솟는 그의 몸과 적사검은 한 줄기 강철 화살이 되었다.

터엉! 퀴유우웅!

아래에서 올라오는 적사검이다.

그토록 무표정하던 사도의 얼굴이 다급한 표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사자의 포효처럼.

대지를 박차는 범처럼.

까아앙!

순간에 내력의 방패를 만들어낸 사도, 그 손과 부딪치는 적사검이 요란한 떨림을 발했다. 

빗나갔다?

아니다. 충돌의 순간. 바로 그 순간, 발동시킨 백호무의 진결이 있다.

손목에서 발해진 작은 회전.

사도의 방어를 완벽하게 예측한 청풍이다. 마주치는 그 때, 비틀어낸 적사검이 사도의 팔을 타 넘었다.

푸하하하학!

넓게 퍼져 올라가는 핏물이다.

인간같지 않은 무공을 보여주던 사도도, 결국은 붉은 피를 지닌 사람이련지.

어깨에서부터 한 쪽 팔이 날아간다. 

사도의 머리 위까지 솟구쳐 올라 발 아래로 사도를 내려보는 청풍이다. 팔 하나를 잘라낸 놀라운 일격, 그러나 그것으로 끝일까. 

그럴 리가 없다.

사도가 위 쪽으로 고개를 든다. 

청풍의 눈과 마주치는 사도의 눈이 번뜩이는 살기를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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