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엉!
하늘로 솟구친 청풍.
온 몸에 새로운 힘이 들어오고 있음을 느낀다.
‘청룡기(靑龍氣).......!’
내상을 가라앉히고, 전신의 힘을 증폭시키는 목기(木氣)다.
싸우는 와중에 들이마셨던 살심산(殺心散)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탁해졌던 내기가 깨끗하게 정화되고 있었다.
텅!
땅에 내려서는 청풍.
세 명 고수의 한 가운데다.
뒤로는 사도가.
양 쪽 앞으로는 흠검단주와 석대붕이.
막강한 강자들로 이루어진 삼각형.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이었다.
“클클클. 또 이렇게 한 놈이 더 청룡검을 쥐는구나.”
탁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여는 자는 다름 아닌 석대붕이었다.
힘의 균형.
소강상태의 한 꼭지점에서 청풍을 부추킨다. 유혹하듯 세치 혀를 움직이는 그의 눈에 푸른 색 광기가 묻어 나왔다.
“청룡검을 얻은 느낌이 어떤가. 파멸로 치닫는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나겠지. 두 검을 다 취했나? 그렇다면 어서 휘둘러보아라. 모두 다 죽여 버리는 것이다.”
청풍.
두 검을 모두 얻은 자.
죽립을 눌러쓰고 좌수에 청룡검, 우수에 적사검을 든 채, 그대로 서 있다.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숨막히게 만드는 긴장감이 사위를 짓누를 때.
달려온 자의 외침이 그 긴장감을 더욱 더 고조시켰다.
“마음을 다스리시오! 검에 휩쓸리면 안 되오!”
장현걸, 그리고 그 옆에 따라오는 이는 연선하다.
죽립이 그 쪽으로 돌아가 두 사람을 바라보니, 석대붕이 얼굴을 찌푸리며 신경질 적으로 입을 열었다.
“갈! 저 따위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 그 검의 힘을 취해! 그리고 이 죽음의 향연을 마저 끝내거라!”
뒤 쪽은 이미 숭무련과 성혈교의 싸움으로 피가 내를 이룰 정도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석대붕의 눈빛. 석대붕의 표정. 석대붕의 이야기.
독을 뿌려 다른 사람들을 중독 시키고, 보검을 풀어 제 정신을 잃게 만들고 있지만, 이제 보니 석대붕 그 자신이야말로 가장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어서!”
홀린 듯 목소리를 높이는 석대붕이다.
죽립.
죽립을 쓴 청풍의 고개가 들렸다.
“어찌하여.”
낭랑한 목소리.
연선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런 일을 벌인 것이오.”
똑바로 노려보는 눈빛이다.
또박 또박 흐트러지지 않는 말투에 석대붕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네.......네 놈은, 그 검을 쥐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인가!”
“물론.”
일렁이는 붉은 휘장 사이로, 죽립 밑, 어두운 그림자에 수려한 턱선이 내비치고 있다.
완연히 당황하고 있는 석대붕.
그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발악적으로 물어왔다.
“네, 네 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정체를 묻는다.
청풍.
그는 누구인가.
치솟는 호연지기가 있어 적사검을 땅에 박아 넣었다.
쿵.
“본디 백호검의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청룡검주를 칭하겠소.”
적사검에서 뗀 오른손.
죽립을 잡아 내린다.
드러나는 얼굴.
지켜보는 연선하가 눈을 치뜨며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화산파 청풍. 청풍이 내 이름이오.”
치이잉.
죽립을 땅에 떨구고 땅에 꽂은 적사검을 다시금 빼어 들었다.
길게 울리는 검음(劍音).
맑기만 한 두 눈이다.
청룡검에 잠식당하는 눈빛이 아닌 바.
석대붕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크게 일그러졌다.
“어.......어째서......”
만사가 어긋났다는 표정이다.
일순간 핏발이 서는 두 눈.
갈라질 듯 탁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는 안 돼!”
꽝!
몸을 날려온다. 염사곤을 휘두르면서.
광기에 휩싸여 무공을 전개하는 모습, 마치 청룡검을 쥐고 있던 매한옥의 그것과 같았다.
쩌어엉!
염사곤의 일격을 튕겨내는 청룡검이다.
손아귀에 느껴지는 힘.
미친 듯이 밀고 들어오지만 침투해오는 기운은 음유하기 짝이 없다. 살기가 충만한 무공이었다.
텅! 큐우우웅.
금강탄을 전개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적사검의 포효가 대단하다.
염사곤의 음험한 일격을 물리치며 석대붕의 전신으로 쇄도했다. 한 마리 독사(毒蛇)처럼 꿈틀, 몸을 비틀면서 적사검을 피해내는 석대붕이다. 왼손, 청룡검이 백야참의 경력을 담고 그의 측면을 노려갔다.
쩌정!
쌍검으로 이어지는 연환검이다.
손에 익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 백야참을 연마할 때 어땠던가.
두 개의 장검으로 여섯 개의 검집을 통제하는 훈련을 했었다. 쌍검은 쌍검대로 익숙하다는 말이었다.
쩡! 째쟁!
청풍의 쌍검이 발하는 위용도 굉장하기는 했지만, 석대붕의 무공 역시 만만치 않았다.
염사곤을 회수하여 방어하고, 반격을 가해 오는 속도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석대붕은 상승의 고수라 할 수 있다.
사도의 팔을 끊어낼 때처럼, 모험을 하지 않고서는 이기기 힘들 수준에 이른 자였다.
화아악!
얽혀 돌아가는 청풍과 석대붕.
그 둘의 싸움이 대단하다지만, 이 장내에는 그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삼엄한 기파를 뿌리며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성혈교 사도다.
결국 최종적으로 노리는 것은 청룡검과 적사검일 터.
그가 노리는 것은 당연히 청풍이다.
석대붕과 공방을 주고 받고 있는 청풍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파라라라락! 피이이잉!
청풍의 배후로 접근하는 사도를 막아선 것은 놀랍게도, 장포를 휘날리고 있는 흠검단주였다.
강의검을 휘둘려 사도의 참격을 받아내는 흠검단주.
“무슨 짓인가!”
분노를 발하는 사도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검격의 사정거리를 확보한다.
사도와 거리를 둔 그가 기회를 살피더니 청풍을 향해 질문을 던져 왔다.
“젊은이! 백호검주였던 것이 사실인가!”
여기서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는 것일까.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이런 마당에 물어온다면 이유가 있기는 있을 게다.
달려드는 석대붕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소.”
청풍의 대답을 듣는 흠검단주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사도와 대치하는 그가 말한다.
그의 말. 그야말로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좋아. 이 쪽은 내가 막아주마. 마음껏 싸워봐라.”
마음껏 싸워라.
사도를 막아준다는 것.
같은 편이 되어 준다는 이야기다. 놀랍고도 놀라운 제안이었다.
콰콰콰콰.
사도의 일격을 흘러낸 흠검단주가 강의검을 여유롭게 휘돌렸다.
“그 철부지 녀석. 남자 보는 눈 만큼은 나쁘지 않았어.”
중얼거리는 흠검단주.
흠검단주가 청풍을 도와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숭무련, 흠검단주가 말하는 철부지란 누구인가.
들었으면 단숨에 알았을 텐데.
허나, 청풍은 석대붕의 염사곤을 물리치느라 그의 중얼거림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다. 흠검단주의 저편에 감추어진 서영령과의 인연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콰광! 채챙! 채채채챙!
청풍 대 석대붕.
흠검단주 대 오 사도.
숭무련 대 성혈교.
그토록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던 전황이 결국 세 개의 싸움으로 압축되었다.
이제는 끝을 보아야 할 때다.
흠검단주가 사도를 물러나게 만들고는 두 눈에 강한 힘을 담았다.
“성혈교 사도. 이쯤에서 그만하는 것이 어떻겠나.”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미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흠검단주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기세였다.
쿵!
그가 갑작스레 몸을 날리더니, 전력을 다해 사도를 몰아쳤다.
뒤로, 뒤로.
하나 남은 팔, 치명상을 다스리기 위해 쏟아 부었던 내력이 고갈되던 까닭인지, 사도는 흠검단주의 검격을 도통 맞받지 못하고 연신 후퇴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충분히 거리를 벌어 놓았다고 생각한 흠검단주.
그가 장내를 향해 거대한 노호성을 내질렀다.
“갈! 모두, 제정신을 차려라!”
엄청난 내공이다.
장내의 공기가 미친 듯이 요동칠 정도였다.
하나 둘. 손을 멈추고 머뭇 머뭇 물러나는 숭무련 검사들.
그나마 내력이 고강한 숭무련 검사들에게서는 즉각 반응이 온다. 이 미쳐 돌아가는 싸움을 멈출 요량. 흠검단주는 여기에서 모든 것을 그칠 의도인 것 같았다.
쐐액! 콰콰쾅!
흠검단주의 의지는 그렇다 한들, 성혈교는 싸움을 포기할 의사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숫제 그마저도 살심산에 몸을 맡겨 버린 듯, 살수를 전개하는 손속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다시금 달려드는 사도.
완전히 멈추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대, 대단하군!”
한편, 어느 쪽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두 사람이 있다.
장현걸과 연선하다.
몸을 날려 쌍검을 전개하는 청풍.
석대붕의 염사곤에 맞서 물러나지 않는 청풍의 무공에 장현걸의 입에서 순수한 감탄이 발해졌다.
“.......!!”
장현걸이 그럴진데, 연선하는 어떨까.
그녀는 아예 말을 이어가질 못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무용은 더욱 더 놀랍다.
두 개의 신기(神器)를 종횡으로 휘두르면서 처음 보는 무공들을 펼쳐내고 있는 청풍이다. 놀라운 변신, 그녀에게 도움을 받던 청년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쩌어엉! 파아아아.
위기의 순간에서 염사곤을 피해내는 것은 역시나 풍운용보였다.
생사를 가르는 혈전 속에 완전히 몸에 붙어가는 보법이었다. 금강호보, 쏟아내는 백호검결이 장쾌한 검격을 풀어 놓았다.
쩡! 쩡! 쩌정!
적사검과 청룡검이 연이어 뻗어 나갔다.
요동치는 염사곤.
석대붕의 눈에 어린 광기가 더욱 더 짙어진다.
일격 일격이 갈수록 거칠어졌다.
꽈아아아앙!
비껴낸 염사곤의 경력이 땅을 치며 폭음을 울렸다.
돌가루가 치솟고, 먼지 구름이 일어난다.
“카하합!”
급기야 터져 나오는 석대붕의 괴성이다.
이 느낌.
알고 있다.
청풍의 눈이 번쩍 빛났다.
‘설마!’
충돌을 거듭할 수록, 파탄을 드러내는 석대붕의 무공이다.
위력은 갈수록 강해져 가는 것 같지만, 그것을 전개하는 정신은 계속하여 망가져 가는 듯 하다. 고통을 느끼는 듯 좁혀진 미간(眉間). 확실히 알았다. 석대붕의 상태.
청룡검을 휘두르던 매한옥과 비슷한 정도가 아니다. 완전히 똑 같은 모습이었다.
쩌정!
“크윽!”
뒤로 물러나는 석대붕, 이지가 사라져 가는 듯한 눈빛이다.
예감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이다.
광기어린 사태를 만들어가던 석대붕의 모습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와 청풍의 머리 속을 아로새겼다.
석가장.
이런 참극을 만들었다는 것은 곧, 석가장의 미래를 송두리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고한 촌민들까지 끌어들여 목숨을 빼앗았고, 수많은 강호인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누가 보아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강호 공적, 마두(魔頭)들이나 행할 일.
생(生)과 가업을 끝내버릴 마음을 품지 않고서야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없는 것이다.
“청룡검. 당신도 잡았었군.”
청풍의 입에서 나직한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