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검을 잡았다는 말.
석대붕도 그 광기에 휩쓸렸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한 마디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석대붕.
피이잉.
그저 내쳐오는 염사곤에 강력한 파공음만이 들려온다.
쩌엉!
청룡검으로 받아내는 일격이다.
터져 나오는 충격파.
틀림없다.
청풍은 그 염사곤의 일격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석대붕의 분노를 감지할 수 있었다.
꽈아앙!
굉장한 위력이다.
끌어 오르는 광기가 그대로 뻗어내는 내력이 된 양, 맞받는 청룡검을 타고 오르는 진기가 엄청났다.
턱! 파아아아.
한 발짝 물러나며 빠르게 몸을 휘돌렸다.
‘공격, 그리고 방어.’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난적을 물리칠 때, 그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힘을 비껴내고 묘수로 제압하는 것.
그리고.
힘에는 힘으로 똑같이 맞서는 것이다.
‘이번에는.’
석대붕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도에겐 첫 번째.
방심을 유도하고 기회를 틈타, 절묘한 일격을 날렸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하아압!”
청풍의 입에서 웅혼한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터어어엉!
휘돌린 몸, 회전력을 보태어 땅을 박찬다.
앞으로 나아가는 용보다.
두 번째 선택.
힘에는 힘으로.
석대붕과 같은 자, 비껴내고 기회를 노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속 기세를 올리도록 놔두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이었으니.
청풍의 적사검이 날아드는 염사곤에 마주쳐 강맹한 탄검(彈劍)을 발출했다.
퀴유웅! 쩌어어!
있는 힘껏 달려 온 몸을 딱딱한 벽면에 부딪친 느낌이라고 할까.
염사곤에서 전해오는 반탄력이 실로 막대했다.
덜컥 숨이 막히도록 만드는 위력.
하지만, 청풍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왼발을 뻗어 대지를 밀어냈다.
백호검을 한 자루를 들고서 무작정 앞으로만 나아가던 때처럼.
전진하는 호보에 왼손이 움직였다.
구름을 타고 노는 청룡의 문양, 청룡검의 검신이 은은한 잔영을 남겼다.
쩌정!
내쳐오는 염사곤을 완전하게 차단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뛰쳐드니, 이제 두 사람은 박투라도 벌일 만큼 가까워진 상태다.
초 근접전.
무시무시한 충돌이었다.
검 한 자루의 길이가 채 못 되는 그 거리 안에서 일격에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공격들이 열 번이나 오고 갔다.
피핏! 파라락!
종인 한 장 차이.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비껴냈다.
그대로 맞았으면 머리가 날아갔을 일격.
날카롭게 후려치는 공기에 엷은 자상(刺傷)까지 입은 청풍이 일순간 두 눈에 강렬한 빛을 떠 올렸다.
터어엉!
몸을 숙이고 안 쪽을 향해 뛰쳐 들었다.
염사곤이 축 끼쳐든다.
꿰뚫어버릴 듯 찔러 들어오는 일격.
길게 세워 찍어내는 청룡검이 염사곤의 쇄도를 정면으로 분쇄했다.
쩌어어엉!
손목이 확 꺾일 만큼 강력한 공격이다.
기회는 지금 뿐.
청풍은 온 몸의 힘을 나아가는 호보에 집중시키고, 뻗어가는 예리한 검격에 초점을 맞추었다.
터엉! 파아아아아.
힘을 힘으로 받아나간다 마음 먹은 후, 비로소 내보내는 회심의 일격이다.
백호검결을 제대로 구현한 백야참에 비껴오는 염사곤의 움직임이 다급했다.
쩌저정!
뒤로, 뒤로.
석대붕의 몸이 정신없이 밀려났다.
광기에 휩싸여 달려들던 중, 처음으로 후퇴를 감행한다.
전진하는 청풍의 위력.
그렇게나 굉장하고, 그렇게나 뛰어났던 것이다.
꽈아앙!
석대붕.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만만치 않은 반격이 날아와 풍운용보로 비껴냈다.
땅바닥에 울리는 폭음.
청풍은 비산하는 흙먼지를 뚫고서 다시금 적사검을 몰아쳤다.
공수의 조화가 대단하다.
제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는 듯, 거칠었던 석대붕의 무공도 차차 안정되고 있었으나, 점해진 우위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얻은 것을 지킬 수 있는 무공, 청풍의 무(武)는 확실히 상승 영역에 접어들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쿵! 촤아아악.
마침내.
금강탄의 경력을 미처 흩어내지 못한 석대붕의 몸이 땅을 스치고 미끄러졌다.
타탁.
두개의 보검을 겨누고 다가드는 청풍.
횃불에 비치는 적광과 청광이 아름답게 일렁인다.
침묵과 정적이 지배하는 순간.
주저앉은 듯, 한 손으로 땅을 짚고 웅크린 석대붕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크아아아!”
강력한 내력을 내 뿜는다.
손과 발이 땅을 박차고, 이 장내의 어떤 싸움에서 본 것보다도 무시무시한 돌진이 석대붕의 전신에서 이루어졌다.
콰앙! 쒜에에에엑!
이것마저도 정면으로 받을 수 있을까.
‘간다.’
청풍은 결심했다.
물러나지 않는다.
모든 것의 근원. 석대붕. 부수어 무너뜨릴 때였다.
꾸우웅!
나아가는 청풍의 발에 찌릿찌릿한 내력이 깃들었다.
대지를 파헤치듯 밟아지는 호보.
산중 대왕의 힘이다.
겁집에 집어넣듯 안 쪽으로 수렴한 적사검이 일격 필살의 파괴력을 축적했다.
“하아압!”
낭랑하게 터져 나오는 일갈이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일검.
금강탄이 무서운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꽈아아아앙!
염사곤과 적사검이 부딪치며 벼락같은 충격을 발했다.
정점과 정점에서 얽혀지는 힘의 줄기들.
주변의 먼지가 치솟고, 충돌의 여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꿍. 콰아아아아.
먼저 질주를 재개한 것은 염사곤이었다.
아직은 석대붕의 내공이 더 우위에 있다는 사실.
청풍의 심장을 꿰뚫어 버릴 기세로 튕겨져 왔다.
파아아아.
미처 적사검을 회수하지도 못한 그 때.
청룡검이 움직인 것은 그 때였다.
우릉. 우르르릉.
우뢰가 발하는 음성.
쏟아진다.
일섬으로 자아내는 무적의 방벽이.
번쩍!
섬광 같은 일검이 사선을 그어 내리치고 있었다.
카가가각!
염사곤의 경력이 흩어졌다.
적사검과 청룡검.
두 검의 연환세.
청룡검이 염사곤을 막고, 적사검은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순간에 이루어지는 환검, 적사검이 백호무의 용맹무쌍한 검격을 토해냈다.
퀴융! 화아아악!
동귀어진.
함께 죽겠다는 듯.
석대붕은 피하지 않았다.
자존심의 대결이라도 되는 양, 염사곤을 휘둘러 백호무의 검결 안으로 뛰어들었다.
꽝! 쩌저정! 꽈광!
두 사람 사이에 엄청난 힘의 역장이 만들어졌다.
죽음을 개의치 않는 석대붕의 저력.
적사검이 밀린다.
청룡검이 흔들렸다.
그리고.
촤아아악! 뻐어어억!
육신이 갈라지는 긴 소리와 육신을 격타하는 작렬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텅! 터텅!
“크윽.”
청풍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입에서 한 움큼 뿜어 나오는 핏줄기가 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엄중하기 짝이 없는 내상이다.
지금 공격을 받는다면 십중팔구 즉사였다.
“안 돼!”
외마디 경호성이다.
쓰러진 매한옥을 살피고 있던 연선하.
그녀가 몸을 날리고, 장현걸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황급히 청풍과 석대붕 사이를 가로막는 두 남녀.
허나, 석대붕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아니, 바로 달려들 수가 없었다.
주륵. 뚝. 뚝. 뚝.
방울져 쏟아지는 핏물.
옷가지에 번져나가는 붉은 핏물이 어두운 불빛에 비쳐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검은 색으로 느껴졌다.
천천히.
제 정신을 차리는지.
비틀 비틀 뒤로 물러나는 석대붕의 두 눈에 돋아 있던 핏발이 사라져 갔다.
터얼썩.
비척 비척 뒷걸음친 뒤에는 공교롭게도 호화롭게 꾸며진 석대붕의 태사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저 앉은 석대붕. 그 서슬에도 핏물이 튄다.
가슴에서 옆구리까지 길게 갈라낸 상처.
다시 없는 치명상이었다.
“큭큭큭.”
웃는다.
아직도 광기가 남아있는 것일까.
사위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청풍을 향하여 두 눈을 고정시켰다.
“이깟 놈 하나 때문에........”
힘이 없어도 무섭게 일어나는 살기가 퍼져 나갔다.
이에.
연선하와 장현걸이 청풍의 앞에서 내력을 돋구었다.
어떤 수작도 못 부리게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큭큭큭.”
다시 한번 뱉어지는 웃음소리.
석대붕의 두 눈이 장현걸과 연선하에 머물렀다.
새삼스럽다는 듯.
그가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궁금한가. 이 모든 것이?”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이 상황을 넘기지 않겠다는 듯 하다.
마지막까지 이곳을 지배하는 자는 자신이라 말하는 느낌이었다.
“궁금하겠지. 궁금할 수밖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석대붕의 말처럼, 모두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대저,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야. 큭큭큭.”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랴.
이 참상을.
무엇이 즐거운지 계속하여 웃음을 흘려내는 석대붕이다.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는 것에 스스로 기꺼워 하는 모습이었다.
쿵. 쩔그렁.
“염사곤을 보아라.”
갑작스레 들어서 발치로 던지는 염사곤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명.
어떤 것에도 미련이 없다는 기색으로 자신의 병기까지 놓아 버린다.
“사람의 무기 중 가장 원초적인 무기가 곧 몽둥이다. 곤(棍), 곤을 말함이지.”
아련한 음성이었다.
놀라운 변화다.
석대붕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
“거기에 검(劍)은 무엇인가.”
석대붕이 피 묻은 손가락을 들어 청풍이 들고 있는 두 개의 검을 가리켰다.
두 눈에 일렁이는 기광.
계속하여 입을 열었다.
“검은 만병지왕이다. 몽둥이에 살인의 미학을 담은 최종적인 예술품이야.”
검.
보검.
애착이다.
열병이다.
집착이었다.
“나는 평생에 걸쳐 이름난 보검을 모았다. 인간 병기의 가장 아름다움 결정체들을 내 것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강호인들이라면 모두가 탐내는 물건들, 탐욕에 눈이 먼 자들 사이에서 나는 승자였고, 그 욕망을 입장하여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자였다.”
탐욕.
그것의 다른 이름은 또한 광기라 부를 수 있을 터.
그의 눈에 서서히 오르는 것은 그렇게 쇠잔한 욕망들의 찌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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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무판이 참으로 느리군요.
이렇게 느린 와중에도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는 정말 대단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늘로 두달 동안의 커리큘럼이 하나 끝났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매우매우 힘든 턴이 될 것 같네요. 떨어진다면 다음 두 주가 고비일 것 같습니다.
수정본은 사실, 타 싸이트에 올리긴 했는데, 고무판에는 아직 못 올렸네요.
해명을 드리자면.....
수정본을 올리다 보면 분량 조절 문제로, 댓글 수십개가 달린 몇몇 글들을 지워야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곧, 소중히 써 주셨던 댓글들이 잔뜩 날아간다는 말이지요.
거기다가 각 화의 숫자나 장 나누기 등, 여러 부분을 고쳐야 하다 보니, 막상 올리려면 이 연재란 몇 십 화에 달하는 부분들을 새로 정리해야 하는 큰 작업이 되어 버리더군요. 헌데, 요 며칠간 글 하나 올리는 데에도 몇 분씩 걸릴 정도로 서버가 불안정해서, 엄두가 안 났습니다.
따라서 리뉴얼 하고 서버가 안정된다는 다음 주 월요일 쯤, 전체적인 수정본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네요.
출판도 눈 앞에 둔 마당, 더욱 열심히 해야 하는 이 때, 이번 12월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바쁜 때가 될 것 같습니다. 연말정산, 힘드실 이 2004 마지막에, 불초 한백림도 온 힘을 다하여 이 한 몸 불사를 것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