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56)

  

파! 파파파! 파아아!

거듭되는 도약이다.

부서지고 부서지니, 폭발과 먼지가 가득하다.

위쪽으로 뚫고 올라 자취를 감추는 청풍.

빠져나갈 수 있을까.

흙먼지로 무너지는 벽면에 다시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면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지나가는 시간.

어둠 속 홀로 남은 흠검단주의 얼굴에 다시 한번 미소가 감돌았다.

쿠르르르르.

'과연. 이대로 죽는군.'

흠검단주.

처음부터.

그는 스스로 살아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청풍을 살리려 이런 짓을 벌였을 때, 이미 죽음을 예정되어 있던 바다.

다 무너져가는 잔해 밑에 깔리는 것.

쓰러지는 청풍에게 달려들지 않았었더라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었으리라.

'그나저나 신량.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청풍에게 강의검을 부탁했지만, 넘겨받을 사람이 이미 죽었다면 말짱 헛것이다. 

괜찮았을 것이다.

조신량은 악운에 강한 녀석이니까.

'흠검단은 문제없어. 다만........'

흠검단주의 뇌리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기어 다니던 어릴 적부터 보았던 아이.

딸처럼 생각했던, 이제는 한 명의 여인이 된 아이의 얼굴이었다.

'그 녀석.......아니다. 제 남자를 살려 주었으니, 더 이상 이 숙부에게 뭐라 못하겠지. 대 사형. 사형께 얻은 은혜. 나는 갚았소이다.'  

흠검단주의 다리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무너진다.

쏟아지는 돌덩이. 매캐한 화약 냄새가 아직도 묻어 있다.

쿵! 쿵! 콰과과광!

부서지고 쏟아지는 소리.

폭음에 가까운 소리다.

굉음이 귓전을 울리고, 모든 것이 무너져 명멸하는 순간.

스스로의 죽음에 이 곳보다 어울리는 곳은 없을 듯 하다.

흠검단주의 눈이 위 쪽으로 올려져,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은 하늘을 향했다.

그때였다.

꽈아앙!

부서지고 있다.

흠검단주가 받치고 있던 바로 위의 돌덩이가 터지듯 깨져 버렸다.

빛이 비쳐들었다.

확 끼쳐 드는 바깥의 공기.

갈라지는 하늘 사이로.

손 하나.

"잡으십시오!"

외치는 목소리.

하늘을 가르고 내 뻗는 손에, 흠검단주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깃들었다.

땅 밑에서 위로.

다시 땅 위에서 아래로.

과할 정도로 운기를 하여, 내력을 모았던 것은 바로 그것을 위해서다. 

올라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땅을 부수고 내려와 흠검단주를 구해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어서!"

재촉하는 청풍이다.

오른손을 내밀고, 왼손으로는 청룡검을 휘둘러, 쏟아지고 무너지는 파편들을 밀어내고 있다. 

내려온 청풍의 손에 흠검단주의 손이 올라갔다.

꽈악!

생명으로 이어지는 두 손이다.

단숨에 끌어 올리는 청풍.   

그의 발이 내력이 고갈된 흠검단주의 두 다리를 대신하여, 무너지는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 올랐다.

파아아.

강하게 찌르는 햇살에 흠검단주가 두 눈을 찌푸렸다.  

저녁 무렵인 듯, 어스름한 노을이 져 있었으나, 워낙에 오랜 시간동안 어둠 속에 있어, 일순 두 눈이 적응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내력이 온전했더라면, 그 정도 햇빛에 고통을 느낄 리 없겠지만, 흠검단주로서도 지금만큼은 탈진 상태였으니, 보통 사람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터턱.

내려서 착지한 청풍이다.

부서지고 박살난 대지 위에.

불타고 박살난 건물의 잔해가 담장이라도 되는 듯 사방을 둘러치고 있었다.

뚫고 올라왔음에도, 넘어서 올라가야할 기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한 층 더.  

청풍과 흠검단주가 있었던 곳은 무너진 땅 밑, 지하 통로 속이었던 것이다.

"또 넘어가야겠군."

내공이 고갈되어 있어도, 무리없이 몸을 움직이는 흠검단주다.

반경 오장도 안 되는 공간.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키는 그가 청풍을 돌아보았다.

"운이 좋았다는 것. 알고 있겠지?"

"예."

곧바로 대답하는 청풍에 흠검단주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았다는 말.

요행을 말함이다.

아래로 뚫고 내려가면서 조금이라도 잘못했더라면.

이렇게 살아, 다시 하늘을 볼 수는 없었으리라.

"용케 뚫고 내려올 생각을 했어."

"당연히 내려 갔어야지요."

"하하하."

무엇이 통쾌한지.

웃음을 터뜨리는 흠검단주의 얼굴에는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면서, 곳곳에 박혀있는 암기들을 떨구어 내는 모습. 며칠 밤 낮을 초인적인 힘으로 지새운 사람이라고는 도통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것, 돌려 드리겠습니다."

청풍이 허리춤의 강의검을 풀어 흠검단주에게 내밀었다.

강의검.

검집만 보아도 보검(寶劍)임을 알 수 있는 강의검이다.

누구라도 탐낼 수 있는 물건.

하지만.

청풍의 얼굴에는 조금의 사심도, 그 어떤 욕심도 떠올라 있지 않다.

순수한 표정으로 강의검을 건내는 청풍.

검을 건내고.

신뢰를 받는다.

그 얼굴을 바라보는 흠검단주가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것은 자네가 챙기게."

놀랍다.

내미는 강의검을 거절하는 흠검단주.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강의검은 흠검단주의 상징이야. 나는 그것을 이미 아래로 넘겼다. 허니. 돌려받을 수 없어."

고지식함인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키는 확고함이다. 

흠검단주란 남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청풍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다면. 반드시 부단주에게 전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해."

강의검을 되돌려 허리춤에 묶어 넣었다.

잠시의 침묵.  

청풍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양,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헌데........"

궁금함을 넘기기 힘들어하는 청풍의 눈빛.

무엇을 말하는지, 단숨에 알아채는 흠검단주다.

그가 고개를 갸웃 하면서 말을 받았다. 

"왜 구해 주었냐 이 말인가?"

"예."

흠검단주의 눈에 웃음기가 깃들었다.

"피차 생명의 은인이니, 숨길 것도 없겠지."

우러러 나오는 기운이 느껴진다.

짧은 시간.

이 토록 짧은 시간 만에 내공을 일으키고 진기를 유도하여 축기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놀라운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그토록 고갈된 내력을 조금이나마 키워내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아니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이름은 갈염이다. 숭무련 흠검단의 단주를 맡고 있어."

흠검단의 단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숭무련. 

흠검단주가 천천히 다음 말을 풀어 놓았다.

"나의 대사형은 숭무련의 제일 호법을 칭하는 분이다. 세간에는 숭무련이라 알려져 있지 않아. 산서신협, 서자강. 그 사람이야말로 내 평생의 은인이자, 존경하는 대사형이다."

산서신협 서자강.

청풍은 머리 속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용케도 기억하고 있는 대화. 화산 매화정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영매. 영매의 아버님.'

"대사형에겐 딸이 하나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조카딸처럼 여기고 있는 아이다. 후후. 아마도 숭무련 남자들은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래도 못 알아듣는다면 바보다.

서영령.

흠검단주는 서영령을 아낀다. 

서영령을 이야기하는 그 음성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서영령과 흠검단주 사이의 친분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처럼 귀여운 아이에게도 어느 새, 좋아하는 남자가 생긴 모양이더군. 어떤 놈인지 보고 싶었다. 내가 여기까지 직접 온 것도 그 때문이지. 보고 나니 쓸 만 하더구나. 죽도록 놔 두어서야, 그 녀석이 크게 슬퍼하겠구나 생각했다."

".........."

그랬다. 분명.

조신량은 이야기했었다.     

'단주님께서 만나고 싶어 하셨다.'라고.

결국은 그런 인연이었나.

세상만사 어느 한 곳 맞닿아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녀는.......아니, 영매는........"

서영령을 떠올리는 청풍이다.

그가 그 두 눈에 진실함을 담고서, 흠검단주의 형형한 두 눈을 직시했다.

"영매는.......잘 지냅니까."

"영매라........후후. 그래. 잘 지내지. 대사형에게 혼이 좀 났지만 말이다."

"잘 지낸다........다행이군요."

청풍의 두 눈에 흐르는 아련한 기운을 흠검단주는 놓치지 않았다.

엷게 짓고 있던 미소를 지운 흠검단주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직한 목소리를 발했다.

"두 사람 다 마찬가지로군. 하지만........제대로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야."

"예?"

"지금쯤이면 깨닫고 있었을텐데. 자네는 구파의 제자. 그 녀석은 숭무련의 딸. 우리는 분명히 가는 길이 다르다."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

청풍은 비로소 확실하게 느낀다.

다른 길.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저, 가르침이 다르다거나,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는 뜻 정도가 아니었다.

그동안 많은 것을 듣고 본 청풍이다. 

숭무련은 악을 추구하는 사도(邪道)는 분명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도(正道)라 부르기엔 분명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 뿐이 아니다.

숭무련은 성혈교와도 관계가 깊다. 팔황이라 했던가. 이번 석가장의 일로 인하여 둘 사이가 틀어진다 하더라도, 두 집단 사이의 유대는 어지간해서 깨지기 어려운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어지간한 각오 없이는 쉽지 않을거야. 난 어찌되든 개의치 않지만, 주변을 둘러싼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이다. 뭐,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간단한 방법이라면........"

"숭무련으로 들어와라."

흠검단주.

너무나 단호하게, 또한 너무나 자신있게 하는 말이기에, 순간적으로 강렬한 유혹을 느껴 버렸다.

구구절절 다른 설명을 더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

무서운 제안이다. 대단한 화술도, 매혹적인 조건도, 그 아무것도 없지만, 가슴에 와 닿도록 만드는 한 마디였다.

"안 될 말입니다."

그토록 엄청난 제안이건만, 청풍은 이내, 흠검단주 이상으로 단호한 어조를 발하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숭무련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화산문도의 이름을 버리겠다는 말과 같다.

안 될 말이었다.

사문. 아무리 냉혹하고 어려운 사문일지언정, 그 자신이 화산파임을 부정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 자신보다도 사부님의 존재가 그것을 막고 있다.

화산을 사랑하고, 그 어느 것에도 서운해 하지 않았던 안타까운 사부님의 마음을, 청풍은 결코 져버릴 수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명쾌하군. 그것도 좋겠지."

흠검단주는 청풍의 거부 의사에 대해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묻어나오는 것이라고는 청풍이란 인재에 대해 보여주는 다소의 아쉬움이 전부였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성격.

흠검단주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헌데. 얼마나 살아 남았을까." 

거칠 것 없는 성격. 단원들의 죽음에 대해서까지도 초연함을 보인다.

청풍도 궁금해 하던 것.

이 대 참사에 몇 명이나 휘말리고, 몇 명이나 살았을까다.

무엇보다도, 연선하.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앞선다. 청풍 자신도 살아났으니, 다른 사람들도 살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좋을 듯 싶었다.

"많이 죽지는 않았어야 하는데."

"죽지는 않았어야 했다.......그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

주변을 둘러보고 긴 숨을 내쉬는 흠검단주다. 

그가 일순간 얼굴이 굳으면서 침중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보다........문제가 생겼군."

"........."

청풍도 느꼈다.

흠검단주가 감지한 것.

이 땅위에 있는 것은 그들 둘 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 너머, 상당수의 무인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음이 호의(好意)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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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정말 힘드네요.-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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