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56)

  

파파파팍.

장현걸이 당도한 곳.

건물의 잔해들이 담장처럼 둘러쳐 가운데가 푹 꺼진 곳이다.

서 있는 두 사람.

아래로 무너진 두 개의 구멍이 보였다. 그 곳에서부터 빠져 나온 모양이었다.

‘저것은!!’

장현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쾌재를 불러야 할까. 

아니면 안타까움을 느껴야 할까.

덮어 씌우기로는 최고의 상대.

그러면서도 그러기엔 미안한 상대다.

장현걸을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생각하며 뒤 쪽, 개방이 진을 친 막사 쪽을 돌아 보았다.

‘여기서 일이 틀어져서는 안 된다. 강호인들이 나를 주목해서는 말짱 헛것이다. 적어도 석가장 총관만큼은 확보해야 해. 개떼처럼 달려들 문파들.......불행하게도 하나같이 쟁쟁한 문파들이다. 그 안에서 실리(實利)를 얻기는 어려워.’

장현걸은 스스로 지닌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서 이 상황에 대한 계산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일단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이 밑에 매장되어 있을 보검들을 찾는 것도 수월하다. 보검들. 개방에서 먹어야 해! 방내의 문제도 해결하고, 충분한 이득도 얻으려면.’

개방 후개로서.

정확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협의도(俠義道). 

일개 협객이라면 모르되, 공인의 자리에서 방파를 통솔할 방주를 생각하고 있다면, 협(俠)보다 실리를 앞세워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 쪽에 있소!”

장현걸이 소리쳤다.

휙휙 몸을 날려 건물의 잔해 위로 올라간다.

아래 쪽.

청풍과 흠검단주가 보이는 그곳에서.

둘러친 사람들의 눈들이 청풍의 손에 들린 두 개의 검으로 박혀들었다.

“보검!”

누군가가 외쳤다.

그렇다. 보검들이 여기에 있다.

확인하듯. 그리고 모두를 부추키듯.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 있었군! 바로 이 젊은이요!” 

장현걸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미안하게 되었다. 고생을 더 해 주어야 하겠어.’

스쳐 지나가는 생각. 

결심했다.

결국은 그에게 모든 것을 떠 넘기기로.  

“청룡검과 적사검을 손에 넣은 자! 내가 살아 나오면서 보았던 이가 바로 저 자요!”   

청풍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조금이나마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것은 한 가닥 양심의 소산이련가.

장현걸은 얼굴을 굳히는 것으로 그 미안함을 대신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나를 원수로 생각하겠지. 이번에도 죽지 않는다면.......하지만 글쎄.......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가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이오!”

선고와도 같은 외침.

넓게 넓게 퍼져 나간다. 

모두의 눈을 청풍에게로 집중시키면서.

장현걸.

단 하나의 표적으로 그를 향한 시선을 청풍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저 친구. 개방이 아니었나.”

흠검단주.

나직한 한 마디다.

언제라도 흔들림이 없다.

우스겟 소리처럼 던지는 말.

청풍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든든함에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선택해.”

“?”

“싸울까. 도망칠까.”

왼 손에 청룡검. 

오른 손에 적사검을 휘어 잡으며.   

청풍은 뒤를 돌아보았다.

“어쩔까요.”

많은 싸움을 겪었다.

어찌 되든, 두려울 것이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두 손에 신검이 있고.

등 뒤에 마음이 통하는 남자가 함께하는 것이다. 

“참고로.”

미소 짓는 흠검단주.

“내 몸은 정상이 아니야.”

치잉.

청풍이 슬쩍 움직이는 청룡검 검 끝이 땅바닥을 긁으며 맑은 소리를 울렸다.

“화산 제자는 싸울 상대를 앞에 두고 등을 보이지 않는다는 계율이 있습니다만.”

“계율이란 말이지. 깨라고 있는 법이다.” 

흠검단주가 활짝 웃었다.

번져가는 웃음.

청풍의 얼굴에도 시원한 미소가 생겨난다.

얼마 만에 이처럼 웃어보는 것일까.

언제나 어두움이 자리하던 얼굴에, 한 순간 빛을 발하는 미소(美笑)였다. 

“그럼. 도망치는 것입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냥 갈 수야 없지 않겠나.”

“?”

“인사라도 하고 와.”

흠검단주가 고갯짓으로 부서진 건물들 위 쪽에 즐비하게 늘어서는 무인들을 가리켰다.

“아까 그 놈이 좋겠군. 개방, 거지 놈.”

한 가운데.

장현걸을 말함이다.

청풍은 가슴으로 끓어오르는 호기가 무엇인지, 그 순간 깨닫는다.

세상 어디에도 거칠 것이 없는 자.

흠검단주처럼.

한 순간.

청풍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텅! 터어엉!

땅을 박차는 호보(虎步)!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백색의 범이다. 

그 앞의 바람이 부서지고, 밟아 도약하는 돌무더기가 깨져 나갔다.

텅! 치리링! 퀴유유융!

금강탄이다.

그야말로 한 줄기 질풍이 되어.

황보세가. 모산파. 

그리고 개방의 한 가운데로.

파아아아! 콰직!

찰나의 시간 속에서 방어를 펼치는 장현걸의 타구봉이 산산 조각 났다.

터져나가는 나무파편.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황보세가에 강맹한 권풍(拳風)이. 

모산파에서 기기묘묘한 섭선(葉煽)이.

파앙! 파아아아앙!

호보를 밟던 한 마리 범이 구름을 누비는 청룡이 되었다.

황보세가, 호안의 황보고의 주먹을 흘려내며 벽라진인의 선법을 쳐 낸다.

용뢰섬.

청룡검을 내 뻗으며 공격을 차단하고, 단숨에 뒤 쪽으로 몸을 날렸다.

휘리리릭. 

쿵.

땅에 착지하는 청풍.

좌중을 둘러보는 눈빛에 강인함이 자리한다.

파악! 퍼어억!

두 손을 내려. 

적사검을, 그리고 청룡검을 땅에 박아 넣었다.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 오른 손으로 감싼다.

모두의 앞에 포권을 취하는 청풍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청룡검.”

왼손.

“적사검.”

오른손.

그의 두 손이 자연스럽게 두 검자루에 올려졌다.

“화산파. 청풍이오.”

굉장한 기파다.

실제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입고 있는 내상이 얼마나 위중한지.

모든 것을 초월했다. 

가슴 속.

언제부터 있었을지 모를 웅심(雄心)을 끄집어내는 이 순간. 그는 일대 고수인 황보고 보다도 강해 보였고 일대 술법사인 벽라진인보다도 신비해 보였다.

“두 검, 검의 주인은 이미 정해졌고.”

파아아아.

두 개의 검을 뽑아낸다.

터어엉.

땅을 박차는 청풍.

그의 몸이 훨훨 뒤 쪽을 향해 튕겨져 나갔다.

“결코 넘겨줄 수 없소.”

박살난 타구봉.

그 여파에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낮추는 장현걸이 보인다.

뿜어내는 기운에 순간적으로 압도당했던 것일까.

청풍이 몸을 돌려 속도를 낼 때까지.

누구도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구파와 일방. 세가의 고수들마저도. 

텅! 

몸을 날려 흠검단주의 옆에까지 도달한 청풍이다.

그가 가벼운 어조로 한 마디를 던졌다.

“이만 가지요.”

씨익 웃는 두 남자다.

그렇다.

흠검단주의 말마따나. 

이것은 인사다.

모두에게 한 번의 포권으로 그 의지를 만천하에 보여 준 것. 

누구도 욕심을 내지 말라.

청풍의 일검에 그 한마디가 있다.

그 다음은.

도주(逃走)다.

지닌 바 힘을 두 배 세 배로 부풀리며 굉장한 기파를 드러냈지만, 세가와 구파, 그리고 수많은 강호인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힘이 모자르기에 도망치는 것.

한 두 번 해 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어떤 때와도 다르다.

그저 약하기에. 이길 수 없기에 도망치는 것 뿐이 아니니까.

청룡검, 적사검.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고, 그 말을 지킨다.

이것은 도주가 아니라 싸움이다.

그저 물러나면서 치루는 일장의 격전일 따름이었다.

  

쐐액! 쐐애애액!

“오래 달리진 못해.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오래 달리지 못한다고는 했지만, 역시나 흠검단주는 대단하다.

그 몸으로 달리는 데에도 청풍의 금강호보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놀라운 일이었다.

조금이나마 회복을 시켰다지만, 이미 그의 내공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을 터.

그러나, 버티기 힘들다 말하는 그 와중에서도 그의 목소리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묻어나고 있었다.

“바로 뒤가 산이어서 다행이다. 게다가 저녁. 잘만 하면 따돌릴 수 있겠어!”

구화산.

흠검단주의 말에 청풍도 고개를 끄덕였다.

뉘엇뉘엇 넘어가는 해가 구화산 산자락에 걸려 있는 때다.

거대한 능선. 높게 솟은 봉우리.

구화산은 커다란 대산(大山)이었으니.

산길이 요 앞이고, 우거진 숲이 멀지 않다. 이용할 지형은 충분했다.

‘산이라면. 분명 가능해.’

산 속에서의 도주. 

서영령과 얼마나 오랫동안 해 보았던 일인가.     

산. 

얼마든지 누빌 수 있다. 누구보다 자신있는 일이었다.

파파파파파.

‘확실히 떨쳐내지는 힘들다, 하지만.’

청풍의 고개가 슬쩍 돌아가며 뒤따라 붙는 자들의 신형을 확인했다.

강력하게 땅을 찍어오는 신법.

황보세가다. 

선두는 역시나 황보고. 

그러나, 앞서간 거리만큼은 확실히 유지되고 있다.

따라잡히지는 않고 있다는 것.

속도에 있어 황보세가에 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흠검단주나 청풍이나 본신의 능력을 모두 다 발휘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그것은 곧, 몸 상태만 정상이라면 이쪽이 더 빠르다는 이야기다.

신법(身法) 그 자체에 차이가 있기 때문. 

황보세가는 육중한 권력을 주 무기로 하는 곳인 만큼, 단거리의 보법에는 강할지 몰라도 원거리를 달리는 경공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황보세가의 가문비전은 천왕태보(天王太步)다.

천왕태보는 체중 이동과 힘의 발경에 특화된 타격형 보법이었다.

금강호보와는 다르다. 터져나가는 일격에 중점을 두면서도 빠르게 몸을 전신을 내 쏘는 금강호보에 비해 그 속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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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 시름 놓았습니다.

이번 주는 매일 매일 하루에 두 세 시간씩 밖에 못 잤네요.

다음주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주말이라도 충분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댓글과 추천이겠죠.^^

저도 기원드리겠습니다. 

하루 하루 힘들게 보내시는 모든 분들께, 무한한 행운이 가득하시길.

건강 하시고.

제발. 운전 조심하십시오.(망년회, 피치못할 술자리. 음주 운전만큼은 절대로.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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