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잘 되었군. 목적지가 잡혔다. 역시 거기가 좋겠어.”
“?!”
의아함을 떠올리는 청풍이다.
이에.
흠검단주가 북쪽을 가리켰다.
“구화산을 벗어나 강소(江蘇), 홍택호(洪澤湖)로 간다. 당(唐) 노인이 거기에 있으니까. 거기라면, 추격을 뿌리치기에도 좋아.”
“당 노인?”
“쇠를 다루는 장인(匠人)이다. 천하 장인, 열손가락 안에 꼽는 명인(名人)이지. 훌륭한 검집을 만들어 줄 것이다.”
가리킨 방향.
북쪽으로.
흠검단주가 다시금 땅을 박찬다.
청룡검을 얻고, 적사검을 얻어, 뚜렷한 다음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지금. 흠검단주의 방향 제시는 청풍으로서도 상당히 반가운 일이었다.
검, 그리고 검집.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구화산을 넘는 길.
작은 봉우리 두개를 끼고 돌았을 때다.
청풍이 펼치던 경공을 멈추고, 먼 곳을 내다보았다.
“있군요.”
그가 산등성이 한 쪽을 가리켰다.
“숨어 있어요. 개방, 개방 같습니다.”
인적드문 산속.
예상 못한 길목이었다.
누군가 숨어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지형이었다.
“감이 좋군.”
흠검단주가 청풍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서 그 두 눈에 이채를 발했다.
더 나아갔으면 종적이 드러났을 위치다.
흠검단주로서도 잡아내지 못한 곳. 이어지는 말에 순수한 감탄이 담겨 있었다.
“저 정도 거리. 발군의 감각이다. 추격전. 걱정 없겠어.”
옆으로 움직여 개방 의 매복 위치를 크게 휘돌았다.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두 사람.
청풍이 또 한번 몸을 낮추었다.
“저 쪽에도 있습니다. 어디에나 있군요.”
이곳 저곳, 셀 수 없이 많은 개방도들이 잠복하여 있다.
구화산 전체를 뒤지고 있는 듯, 샅샅이 움직이는 거지들부터, 한 곳에 머무르는 거지들까지, 없는 곳이 없었다.
“괜찮아. 아직은 이쪽이 유리해.”
숨어 있는 위치를 단숨에 알아채는 청풍의 능력이다.
거기에 숱한 추격전의 경험까지 더해졌으니, 누구도 그들의 움직임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드러나지만 않으면, 문제없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돌파구는 충분히 있었다.
“지금은 대낮이다. 시야가 밝고 넓어. 그 때문에 추격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긴장이 풀어질 것이다. 모든 것이 숨을 죽인 밤보다 나아. 그것을 잘 이용해야 해.”
청풍의 경험.
거기에 흠검단주의 대담함이 함께한다.
아무리 탁 트인 공간이라도, 청풍이 괜찮다고만 하면 망설이지 않고 뛰어 나갔다.
청풍을 믿고, 스스로의 직관을 믿는 과감함이다.
이동하는 시간이 훨씬 더 단축될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느낀 것인데 말이다.”
은밀함과 속도가 충분하니, 험한 산이라도 금세 넘어간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상황.
북쪽 산면(山面)의 골짜기.
그늘진 바위 위에 걸터 앉아 체력을 보충했다.
“아까부터 느낀 것인데 말이다.”
천천히 진기를 되돌리는 흠검단주.
운공 중에도 말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지, 내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데에도 태연하게 입을 열고 있었다.
“추적을 피하는 시도들이 그 녀석의 방식과 무척이나 비슷하다. 재미있는 일이야. 생각 이상으로 가까웠던 모양이다.”
그 녀석.
서영령을 이야기 함이다.
그녀가 산을 타던 방식.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 사용했던 수법들을 말함이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많은 것을 보았지요.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청풍의 목소리엔 감출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흠검단주,
얼굴 가득 미소를 떠올렸다.
“배울 점이라........그 녀석에게 말이냐. 후후후. 그래. 그러고 보면 그만한 아이도 없지.”
서영령.
흠검단주의 말에 청풍도 그처럼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사람이다.
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
“.........후우.”
두 남자는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서로의 상념에 빠져 있던 두 남자.
청풍이 먼저 말을 돌리듯,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슬슬 개방에서도 더 강한 고수들이 나설 때가 되었는데요.”
“그렇겠지. 좋은 지적이다. 황보가나 모산파에서도 힘을 더할 거다. 되도록이면 빨리 벗어나야 해.”
둘 모두,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개방, 황보세가, 모산파.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제아무리 청풍과 흠검단주의 능력으로도 쉽게 빠져나가기는 힘들다.
특히나, 세 개의 거대 집단이 연수(聯手)라도 하여, 서로에게 힘을 보탠다고 친다면, 그 때는 정말 당해낼 수 없다.
석가장 격전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도 않은 몸으로 이렇게나 쉽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세 집단 사이에 제대로 된 호응이 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호응.
호응은 커녕 서로 간에 견제가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그 틈새를 잘 노려야 한다는 것.
문제는 틈새가 있는 것이 지금 뿐이라는 사실이다.
청풍과 흠검단주가 잡히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세 집단으로서도 아귀다툼만을 벌일 수가 없게된다.
그 다음은 적극적인 연합이다.
일단 잡아 놓고 보는 것.
그 시점이 오기 전까지 완전하게 여기서 빠져 나가야만 한다.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도 무리를 해서 서두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신중하면서도 과단성 있게.
두 남자는 결국, 구화산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구화산을 내려오면 산지가 끝난다.
탁 트인 지대를 이동해야한다는 뜻이었다.
“우회하면 늦는다. 적들이 많아질 거야. 하지만 직선 경로를 따르다 보면 들킬 위험이 높다. 어떻게 하겠는가?”
난제다.
진퇴양난.
흠검단주의 물음에 청풍이 눈을 빛냈다.
“직선 경로로 가지요. 속도를 우선하겠습니다. 들키면 부딪쳐서 돌파하면 그만입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준비가 끝난 적들을 물리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났겠어.”
흠검단주는 청풍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았다.
옳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화산파에서 배웠던 기본기.
서영령이 보여주었던 도주법을 받아들인 청풍이다.
거기에.
이제는 흠검단주의 시야까지 배워나가고 있다.
순식간에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간다.
강호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공보다 필요한 것들.
일취월장, 괄목상대가 따로 없었다.
“적어도 한 번은 부딪친다. 그것을 잘 넘겨야 해.”
“알고 있습니다.”
청풍과 흠검단주는 철저하게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도, 홍택호까지 가는 직선경로를 따라 빠르게 발을 옮겼다.
파아아아아.
한 나절 경공을 펼치면 반드시 두 시진 이상을 쉬었다.
휴식은 운기행공으로.
언제라도 싸울 수 있는 기력을 남겨 놓도록 철저하게 관리한다.
최적화 된 무인의 모습이다.
흠검단주.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와중에서도 서서히 자신의 내상을 치유하면서, 진기를 회복시켜 나갔다.
청풍은 그것도 배웠다.
흠검단주의 강호행.
받아들여야 마땅한 모범이었다.
‘이런 것이었어.’
무공만을 가르쳐 주었던 을지백.
지략을 가르쳐 주었던 천태세.
흠검단주는 그 두 가지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였다.
실제적으로 쓰는 것을 그 한 몸으로 가르쳐준다.
을지백도, 천태세도 해 주지 못했던 것.
흠검단주는 또 하나의 스승이다.
청풍은 그것들을 흠검단주에게서 얻고 있는 것이었다.
“내일이나. 그 다음 날.”
홍택호가 머지 않은 곳.
안휘성의 경계였다.
청풍은 지는 해를 받으며 운기를 취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개방과 한번 만날 것 같습니다.”
“그래? 어째서지?”
“우리는 지금까지, 여섯 번, 네 명의 농민과, 한 명의 행인, 그리고 한 명의 약초꾼에게 모습을 보였습니다. 틀림없이 개방도의 귀에 들어갑니다. 행로를 계산하고, 고수들을 모아, 이 쪽을 치려면, 내일 저녁에서 그 다음날 정도. 그 정도 시간이 나올 겁니다.”
청풍의 시선은 곱게 지는 가을 해에 맞추어져 있어, 마치 혼잣말을 하는 듯 보였다.
이론과 실제를 완벽하게 짜 맞추어 가는 시기.
청풍은 스스로 말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안목을 점점 넓혀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만일. 장현걸. 그가 떠 뛰어난 자라면, 내일 저녁이 아니라, 내일 정오쯤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은 황보세가. 모산파는 감이 잘 안 와요. 여하튼, 내일이 고비입니다.”
장현걸의 능력 여부에 따라 공격 시기가 결정된다는 말.
다음 날 안휘성 끝자락의 명광(明光)을 지나던 그들은, 장현걸의 능력이 생각보다 더 뛰어남을 알게 된다.
정오가 되기 전.
아침 어스름의 쌀쌀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청풍과 흠검단주는 한 떼의 거지들을 맞닥뜨린 것이었다.
“조금 더 빠르군요. 대신, 그만큼 준비는 못했을 겁니다.”
판단이 어긋났다?
청풍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누런 잡풀들이 바람따라 일어나는 곳.
제각각 타구봉을 들고서 사방에서 좁혀오는 개방의 제자들에, 청풍은 적사검과 청룡검을 가볍게 고쳐 잡았다.
“혼자 할텐가?”
“그러지요.”
농담처럼 던지는 흠검단주의 질문.
청풍은 가볍게 받아 넘겼다.
혼자 한다.
이십이 넘는 개방도들.
하나같이 오결 제자 이상이다.
구파와 동급으로 이야기되는 일방.
일방의 정예들임에도, 청풍은 홀로 하겠다고 나선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빨리 쓰러 뜨리냐는 것. 추격이 계속되느냐가 문제지.’
힘을 보여준다.
결론은 그것 하나다.
누구도 감히 범접치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해답이었다.
이제는.
백호검처럼 빼앗기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개방.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겠소.”
청풍은 경고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개방에서 그를 찾는 것.
터어어엉!
청풍의 몸이 질풍처럼 쏘아져 나갔다.
콰직!
가장 먼저 달려든 개방도의 타구봉이 단숨에 부러져 날아갔다.
타구봉.
오결 제자 개방도가 휘두르는 타구봉은 단순한 나무 막대기일지언정, 진검(眞劍)의 강도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허나, 진검의 강도로도 안 된다.
적사검으로 펼치는 금강탄 일격.
개방 후개 장현걸의 타구봉도 박살낸 그 일격에 오결 제자의 타구봉이 부서지는 것은 그야말로 당연한 일이었다.
터엉!
한 바퀴 몸을 휘돌리며 땅을 박찬다.
백야참 반월이 또 한 자루 타구봉을 갈라놓았다.
적사검의 붉은 광영.
다시 휘돌리는 왼손에는 청룡검이 꿈틀댔다.
번쩍.
용뢰섬인가?
아니다.
또 다시 백야참이다.
청룡검이라고 방어초만을 쓰라는 법은 없다.
적사검으로도.
청룡검으로도.
양 손에서 나아가는 백야참이 돌풍처럼 개방도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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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하군요.
위험했습니다.^^
수정본 올리는 것이 자꾸 늦어져서 정말 너무도 죄송합니다.
올린다 올린다 하는데, 도통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군요.
신라의 승려에 대해, 여러가지 말씀들이 많으신데.
신라의 승려는 일단 실존인물을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교각이라고 이름도 써 놓았는데,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군요.
화산질풍검 상에서는 구화산에 대해 자세히 안 다루었지만, 실제로 구화산은 중국 불교의 4대 명산이라 불리는 유명한 산입니다.
잘 아시는 아미파로 유명한 아미산과, 보타암, 보타산이 그 4대 불산(佛山)에 들어가지요.
다만, 현재 그렇게 불교 4대 명산이라 불리고 있을 뿐, 명나라 그 시대에도 그렇게 유명했는지는 확실치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오악이 더 이름값이 있었겠지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신라승려, 지장현신은, 신라 왕족이라 이야기되는 김교각 스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마의태자를 말씀하셨는데.....마의 태자는 신라 말기의 인물이고요.
김교각 스님은 고구려의 멸망과 통일신라 성립 직후인 신라 초기의 인물이지요.
김교각 스님은 일설에 의하면 김춘추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글쎄, 정설로는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습니다.
김교각 스님은 지금 이 시대, 1400년이 지난 지금 이때까지도, 중국 불교에 이름이
높은 정도로 굉장한 분이라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보타산.
문수보살의오대산.
보현보살의 아미산.
그리고.
"지장보살의 구화산"
이라 이야기 되는데, 이 때 김교각 스님을 김지장이라 하여, 지장보살의 현신으로 모시고 있다니(아직까지도!), 그야말로 중국 4대 불교 명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빛나는 한 시대,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광개토대제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더욱 더 훌륭한 인물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중원인들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분이셨으니까요.^^
우리 민족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면, 주로 고구려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 하여, 일부러 신라의 인물을 이처럼 등장시켜 보았습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인.^^
굉장히 오래 전부터 있었지요?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가리지 않고서요.
계속하여 그런 분들이 많이 나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