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송년의 밤
긴급 공지-장소명(이름만. 위치는 그대로) 변경
고급 해산물 레스토랑 고래에서 생불고기 전문점 우미명가 로 장소 이름만 바뀜.
지하철 2호선 역삼역 6번출구 100여미터 앞. 우미명가!
파아앙! 퍼석!
개방도들의 타구봉이 무차별로 부서져 나갔다.
크게 놀란 개방도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이십 여 개방도들을 눈앞에 두고, 쌍검을 비껴 든, 청풍이다.
감히 마주칠 수 없는 두 자루 신기(神器).
개방도들이 서로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사사삭! 사사사삭!
물러났다 뛰쳐 드는 네 명의 거지.
취선보(醉仙步)다.
흔들거리는 괴이한 보법으로 눈길을 끄는 사이, 뒤 쪽에 서 있던 개방도들이 번잡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걸할 때 쓰는 쪽박을 두드리는 자.
재주를 넘으며 땅바닥을 구르는 자.
“타구진(打狗陣)이로군. 조심해라.”
뒤에서 들려온 흠검단주의 목소리에 청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이 자랑하는 전투진(戰鬪陣).
타구진법(打狗陣法)이었다.
숫자는 많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무공들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안된 진법이다. 펼치는 인원에 제한이 없었고, 어지러운 가운데 쏟아지는 공격의 위력이 대단했다.
특출난 고수 하나를 묶어 놓고, 집중적으로 몰아치는 것에 특화된 진법.
한번 말려들면 그 누구라도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발군의 진법이었다.
‘개진(開陣)이 끝나기 전에 부순다.’
텅!
기다려 온전한 타구진을 맞이하는 것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다 펼쳐지기 전에 깨야 했다.
취선보로 다가와 타구봉을 내쳐 오는 개방도들.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적사검을 크게 휘돌렸다.
위이이잉!
백야참의 반월.
개방도들은 그 누구도 거기에 맞서려 들지 않았다. 사납게 달려드는 듯 하다가 곧바로 몸들을 뺀다.
시간을 끌려는 것.
청풍은 단번에 그 의도를 알아챘다.
‘그렇게 둘 수야 없지.’
넘어가 주지 않는다.
밟아 나가는 금강호보에 내력을 더했다.
신형을 내 쏘아, 청룡검을 뿜어낸다.
청룡검으로 전개하는 금강탄.
막강한 검력이 전면의 개방도를 옭아매며, 무서운 기세로 짓쳐 나갔다.
퍼어억!
타구봉이 작살난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아가는 일격에 자하진기를 잔뜩 담았다.
몸 째로 튕겨 나가는 개방도.
하늘을 날아 땅바닥으로 구르는 서슬에, 진용을 짜 가던 개방도들의 움직임이 일 순간 흐트러지고 말았다.
‘지금!’
감각적으로 풍운용보를 전개하면서 쏟아지는 세 자루의 타구봉을 바람처럼 흘려냈다.
어떻게든 청풍의 전진을 막으려는 자들.
허나 청풍에겐 삼장 거리를 압축시키는 금강호보가 있다.
다시 짜여가는 타구진의 외곽으로 폭발적인 도약을 하여 적사검을 내뻗었다.
퍼어억!
타구봉 두 자루가 한꺼번에 부러져 나갔다.
황급히 진세를 가다듬는 개방도들이나, 청풍의 반응은 그들의 대응 속도를 훨씬 앞질러 있 었다.
터엉! 퀴유웅!
한번 보인 틈새.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전개하니, 그 어떤 타구봉도 신검(神劍)의 날카로움을 감당하지 못한다.
한 명.
단 한 명이라도.
청풍의 기세를 꺾고 방어를 할 수 있는 고수가 있었으면 싸움의 양상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본래부터 어수선하던 타구진.
결국은 엉망이 되어 버렸고, 열 자루가 넘는 타구봉이 분질러졌다.
뛰어난 검예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청풍.
기세를 잡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 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춤주춤.
개방도들이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할 때.
그 때였다.
“갈! 타구봉을 제대로 잡고, 타구진을 다시 짜라! 칠칠치 못한 것들아!”
저 앞쪽으로부터 걸걸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거지 하나.
메고 있는 마대(麻袋)에 일곱 개의 매듭이 달려 있다.
그렇다.
개방이 이렇게만 당할 리는 없다.
칠결은 곧 개방 장로의 표식.
청풍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자.
드디어 개방에서도 진정한 고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애송이! 받아라!”
큰 소리로 외치며 다짜고짜 권장을 날려 왔다.
파아앙! 파앙!
풍운 용보를 전개하는 청풍.
반 바퀴씩, 측면으로 휘돌아 서면서 두 개의 쌍검을 겨누었다.
“자파(自派)의 집법원에게도 쫓기고 있는 문제아라더니, 과연 그 기세가 흉흉한 애송이로다!”
화산의 제자임을 알고도 이렇게 나온다는 것.
개방이 무례함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지만, 확실히 두고 봐 줄 수가 없을 정도다.
구파 일방.
서로가 같은 사문처럼 왕래하며 예를 다하던 것도 옛말이 되어 버렸는가.
청풍은 스스로의 이름을 밝힐 마음조차 우러나지 않는 것을 느끼며, 곧게 뻗은 검미(劍眉)를 날카롭게 치켜 세웠다.
“강호 최대 일문 개방. 본디 이렇게 치졸했었던지요.”
“치졸? 화산파, 사문의 죄인 주제에 말이 많구나. 주제에 맞는 소리를 하라. 내 너를 잡아, 반드시 화산파로 돌려 놓고 말리라!”
치켜 세운 검미 가운데, 미간이 좁혀졌다.
그런가.
청풍이 나직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사문의 죄인이라, 장현걸, 그 자가 그러덥니까.”
“애송이! 후개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지 말라. 재물을 탐하여 사문의 보물을 훔쳐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석가장 참사에까지 관여했다고 들었다. 보검(寶劍)들을 손에 넣었다는데, 그 끝없는 탐욕이라니! 구파의 수치다.”
듣자하니, 이 개방장로는 생각이 잘못 박힌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청풍이 가진 청룡검과 적사검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구파 일방의 명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화산파의 골칫덩이 제자를 잡겠다는 모양새, 마지못해 나섰다는 느낌이 강하게 풍겨 왔다.
‘잘도 끌어들였군. 이런 분을!’
역시나 장현걸이다.
어떤 구실이 되었든, 결과는 같다.
잡혀서 개방으로 넘어가게 되면, 그가 원하는 바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리라.
여기서 청풍이 해야 할일.
청풍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나 격한 성정의 개방 장로 앞에서. 사실이 아니라 항변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장현걸.
후개의 입김이 이만큼이나 닿아 있다면, 그 오해를 이 자리에서 풀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어찌 되었든. 말이 통하지 않겠군요.”
청풍의 선택은 빨랐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싸워서 돌파할 수밖에.
겨누어져 있는 두 자루 검.
그 자세 그대로.
청풍은 자하진기를 있는대로 끌어 올렸다.
“그 자의 별호는 광풍개(狂風?)다. 타구봉을 잘 쓰지만, 진짜는 권각이다. 제대로 보고 싸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흠검단주의 충고는 진기를 모으며 출수를 준비하는 청풍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싸워야할지 가닥이 잡힌다.
봉법이 주력이 아니라면, 지금까지처럼 타구봉을 박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권각을 파훼해야하는 것. 피를 볼 각오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적사검을 뒤로 뺐다.
그 곳에 검집이라도 있듯이.
금강탄 일격을 준비하려는 의도, 이글이글 일어나는 청풍의 기세에 광풍개가 혀를 끌끌 찼다.
“결국 덤비겠다는 게냐!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다!”
광풍개가 팔선보를 펼치며 청풍의 앞으로 쇄도했다.
까마득한 후기지수에게 선공을 펼치면서도 주저함이 없다.
폭급한 성질. 왜 광풍개라 불리는지 절로 알수 있는 모습이었다.
위잉! 파아앙!
타구봉이 먼저 날아오고, 강맹한 일장이 이어졌다.
금강탄을 준비한 자세 그대로.
목신운형의 진기를 휘돌렸다.
가볍게 밟는 발.
풍운용보의 투로였다. 사각을 타고 휘돌아 들어가는 청풍의 신형이다. 금강탄을 내 쏠 차례, 하지만, 청풍은 미처 금강탄을 전개하지 못하고 청룡검을 휘둘러 용뢰섬을 전개한다.
완전한 사각으로 들어왔다 생각했음에도, 어느 새 완전하게 공격방향을 전환한 광풍개가 다음 일격을 내쳐 왔기 때문이었다.
위이이잉! 쩌어엉!
청룡검 신기(神器)와 타구봉 목봉(木棒)이 부딪쳤음에도, 째지는 금속성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광풍개의 타구봉은 잘려져 나가지 않았다.
충돌의 순간.
각도를 절묘하게 비틀면서, 청룡검의 검면(劍面)을 때렸던 까닭이다. 타구봉을 잘 쓴다고 했던가. 이것은 잘 쓰는 정도가 아니었다. 혀를 내두를만한 절기(絶技)였다.
“느려!”
광풍개가 일갈성을 터뜨렸다.
마치 그 자체로 기합성의 역할까지 하는 듯.
타구봉을 회수하고, 팔선각(八仙脚), 각법을 뻗어내는 일격에 대단한 경력이 실려 있었다.
청풍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용보를 밟고, 이어 청룡검을 휘돌린다. 적사검은 아직도 내 뻗지 않은 그대로였다.
위이잉! 파아아아아.
쏟아지는 각법의 사이로 청룡검이 승천하는 용(龍)이 되어 짓쳐나갔다.
잘라낼 기세.
광풍개가 고함과도 같은 외침을 뿜어냈다.
“악독한 놈!”
다리를 접으면서 검을 잡은 팔꿈치로 타구봉이 찔러 들어온다.
청풍의 팔이 찔러오는 타구봉을 피하면서 부드럽게 휘어졌다.
다시 한번 펼쳐지는 용뢰섬이다.
공격의 맥을 끊어내는 일섬의 검력에 광풍개의 신형이 한 발작 뒤로 물러났다.
백중지세의 싸움이었다.
칠결 개방 장로에 맞서 조금도 밀리지 않는 모습. 성장속도를 떠올리자면 놀랄 수 밖에 없는 무위였다.
“애송이가 제법이구나!”
달려들며 일장을 휘두르는 광풍개다.
또 한번 터뜨리는 일갈.
귀를 파고들어 머리를 울려왔다. 손속이 한 순간 어지러워질 정도.
그제서야 알아챈다.
정신을 흩트리는 일갈들. 그것은 일종의 음공(音功)이다. 또 하나의 무공이었다.
청룡검으로 백야참을 펼치고, 용보을 써 물러났다.
또 무엇인가 외치려고 입을 여는 광풍개.
그 순간이었다.
퀴우우웅!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사위를 울렸다.
금강탄.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적사검이었다.
호쾌하게 나아가는 검격에 막강한 진력이 담겨 있었다.
치리릭! 치링! 쩌엉!
그러나.
금강탄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너무도 오래 노출시켰던 것일까.
광풍개의 대응은 즉각적이면서도 효과적이었다.
타구봉을 두 번 비껴 치며 금강탄의 쏟아지는 경력들을 덜어내고, 아래를 향해 강한 압력을 가해 왔다.
“걸렸어!”
커다란 외침.
광풍개의 타구봉이 적사검의 검신을 밑으로 밑으로 찍어 내렸다.
콰악, 하고 땅바닥에 박히는 검날.
회심의 일격을 도리어 반격의 기회로 내주었다.
그 뿐인가.
아래를 휩쓸어 오는 팔선각이 날카롭다.
용보를 밟으며 팔선각을 뛰어넘는 청풍에, 광풍개의 왼손이 놀라운 움직임을 보였다.
콰아아아아.
용음십이수였다.
개방이 자랑하는 용력의 금나수(擒拏受).
근접거리.
피할 길이 없다.
청룡검의 검신 밑 부분을 휘감으며 들어와 청풍의 손목을 잡아냈다.
콰악!
강철처럼 조여 오는 용음수(龍吟手)다.
움직일 수가 없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청룡검을 쥔 왼손 손등에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끝이다.”
광풍개의 입에서 선고와도 같은 한 마디가 발해졌다.
타구봉에 눌린 적사검.
용음수에 갇힌 청룡검.
봉쇄해 버린 두 신검에, 승리를 확신하는 광풍개다.
그가 손에 용음수에 힘을 더하여 청룡검을 청풍의 손에서 완전히 떨구어 버리려고 했을 때.
바로 그 때였다.
청풍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