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큭큭큭.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행차하셨나?”
목소리는 괴팍스러웠으나, 달궈진 화로 앞으로 보이는 음영은 장대하기만 했다.
등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
웃통을 벗은 상태다.
허리춤에 묶어 놓은 상의.
노인이라 했음에도, 꿈틀거리는 등 근육이 대단하다. 후끈 후끈 느껴지는 열기에, 후두둑 떨어지는 땀방울이 무척이나 역동적이었다.
“바람이 불기는 불었지요. 두고두고 지켜보고 싶은 바람입니다.”
“큭큭큭.”
당 노인.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직한 웃음소리를 울렸다.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화로에서 꺼내며, 커다란 망치를 치켜드는 모습. 백만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한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능숙함이 거기에 있었다.
까앙! 까앙!
내리치는 동작이 물이 흐르듯 유연했다.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당 노인을 바라보는 흠검단주.
청풍은 그 옆에서 노 장인(匠人)이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까앙!
치이이이익!
뿌연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물건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공간이다.
탄생의 아름다움과 연련의 치열함이 함께 하는 곳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효기(驍氣) 이 자식아. 얼른 나와서 정리해라.”
“예.”
들려오는 대답.
당 노인의 부름에 뒤편으로부터 한 명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호리호리한 몸매, 꽉 짜여진 기도가 인상적이다.
이제 약관이나 되었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개의치 않은 채, 커다란 망치와 쇳덩이들을 나른다.
청풍과 흠검단주의 눈에 이채가 깃들었다.
“우리는 저 쪽으로 가자고. 저 새끼는 그대로 두면 돼.”
당 노인이 그 청년을 감추기라도 하듯,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몸을 돌리면서 그제서야 드러나는 얼굴.
오랜 세월 불길에 그슬려서인지, 그 건장한 몸보다 배는 늙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제대로 다듬지도 않은 수염과 깊이 패인 주름살에 장인 특유의 고집이 어려 있다. 허리춤 에 묶인 상의를 대충 추려 입는 모습에 외길을 걸어온 노인의 익숙함이 담겨 있었다.
“그래. 이번에 데려온 새끼는 뭐하는 새끼냐.”
술인지 물인지.
갈증이 치미는 듯, 허리춤에 걸린 호리병을 들어 꿀꺽 꿀꺽 넘기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제 멋대로 말하는 노인이다.
성큼 성큼 앞으로 걷다가, 눈을 돌려 청풍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푸우우우우!
노인이 숨이 막히는 듯,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파악 뿜어냈다.
크게 뜨여진 눈.
그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청풍의 양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새끼. 뭐야?”
미간을 좁힌 당 노인.
그의 눈에 걷잡을 수 없는 불신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흠검단주를 돌아본 그.
그가 흠검단주의 팔을 잡아끌어 옆으로 몰아넣는다.
“저 새끼. 뭐냐고!?”
“뭐냐니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흠검단주가 즐거움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어냈다.
“빨리 말해.”
쳐 죽일 기세.
흠검단주가 두 눈에 웃음기를 머금고서 손으로 청풍을 가리켰다.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고개를 슬쩍 돌린 당 노인이다.
그의 시선이 적사검을 지나, 청룡검에 머물렀다.
거기에 딱 붙잡혀 돌리지 못하는 두 눈이다.
말까지 제대로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놀란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꿀꺽.
당노인의 눈이 청룡검에서 허리춤으로 이어지고, 거기에 걸린 강의검에까지 닿았다.
풉!
“대체 저 새끼가 뭔데 그래! 왜 강의검까지 줬는데? 차석(次席)은 신량이 그 새끼 아니었어?”
“강의검은 잠시 맡긴 것이구요.”
흠검단주가 정정해 주는 말에, 당 노인이 눈썹을 더 치켜 올렸다.
“강의검을 맡겨? 외인(外人)에게?”
“믿을 만 하니까요. 신량에게 전해 달라 했습니다.”
“쓰벌. 뭔소리야.”
당 노인의 목소리엔 숫제 역정이 담겨있다시피 했다.
흠검단주가 어깨를 한번 들썩이며 흐르던 화제를 원래대로 바꾸어 놓았다.
“강의검이야 뭐 그렇다 치고.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 검. 진품(眞品)인 것은 아시겠죠?”
“알아. 이 새끼야. 그럼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청룡신검(靑龍神劍)도 못 알아볼 성 싶으냐? 게다가 다른 건 적사검(赤獅劍)이잖아! 도철이 만든 거!”
“그렇죠.”
당 노인은 흠검단주에게도 욕지거리를 할 만큼 막무가네였다.
입이 걸기로는 개방의 거지들 이상이다. 그러면서도 그 욕지거리들이 기분나쁘게 들리지 않는 것은, 흠검단주의 말투가 원래 그래서일까. 강소성, 중원 동부임에도, 저 머나먼 서쪽 촉국(蜀國) 대지의 억양이 섞여 있다.
“이 놈하고는 본래부터 드잡이질을 하는게 아니었지.”
빙글 빙글 받아 넘기는 흠검단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가 결국 흠검단주를 밀치며 청풍의 앞으로 몸을 돌렸다.
“너!”
손가락을 들어 청풍을 가리키는 모양.
“너 뭐야!”
마치 이야기 속에서나 걸어 나온 듯한 느낌이다.
불쑥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
청풍이 고개를 숙이며 스스로의 이름을 말했다.
“청풍입니다.”
당 노인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폭발할 듯한 기세.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더니 씨 뻘개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누가 이름이 알고 싶대!”
재미있는 노인이었다.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한 쪽 옆에서 어깨를 들썩이는 흠검단주가 보였다.
곤란해진 청풍.
뭐라 말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 처해본 것이 처음인 청풍으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 검! 어디서 얻었어! 어떻게 얻었지? 청룡신검은 화산(華山)에 있었을 것이고, 적사검은 석가 바보 놈이 가지고 있었을텐데!”
당 노인이 쏘아 붙이듯 질문을 던져왔다.
이번에는 그나마 명쾌한 대답이 있어서 다행일까.
청풍이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싸워서 얻었습니다.”
그대로 멈춘 당노인이다.
입을 벌린 채.
그가 손 사레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다냐? 싸워서 얻었다는 게?”
끊임없이 물어볼 기세, 흠검단주가 웃음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아아. 일일이 대답하다 보면 끝이 없을 테니. 그냥 이야기 하죠. 이 친구는 탈취당한 화산파 사방신검을 찾으러 다니는 중이고, 적사검은 그 와중에 덤으로 얻었습니다.”
“자, 잠깐.”
당 노인이 고개를 돌리며 손을 들었다.
망치를 휘두르듯, 말을 멈춘 당 노인.
그가 의아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방신검이 탈취당해? 화산파에서? 뭔 소리야?”
“모르셨습니까. 바깥 상황에도 귀를 좀 열어 두시지요.”
“바깥 상황? 이보라구. 난 강호에 나다닐 수도 없는 사람이다. 내가 강호 돌아가는 꼴을 알아서 어따 써 먹어?”
“아. 그랬지요. 여하튼, 그 와중에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데려 왔습니다. 워낙에 대단한 물건을 지니게 되었는지라, 별별 놈들이 다 얽혀 들어서요.”
“줄줄이 달고 들어오던 놈들이 그 놈들이냐? 대체 뭐하는 놈들이래?”
흥분해 있던 당 노인도 슬슬 진정된 얼굴이다.
목이 메인다는 듯, 다시 한번 호리병을 들어 물을 들이켰다.
“개방. 황보세가. 모산파. 그 정도죠.”
푸우우우우!
당 노인의 입에서 아까 그대로처럼, 입에 담고 있던 물을 온통 뿜어내고 말았다.
“뭐라! 이 미친! 그런 놈들을 왜 여기까지 끌고 들어와!”
“한 달은 버틸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라면요.”
“한 달을 버텨서 뭐하게! 그 다음에는 어쩌라구! 기폭뢰(起爆雷)와 수침정(水沈釘)이 무한정인줄 알아? 개방 하나만도 못 버텨!”
“엄살을 부리시는군요. 못 버틸 리가 있습니까. 해천창(海天槍)에 용포(龍砲)도 있으면서.”
“나가.”
청룡검이든, 적사검이든.
상관이 없다는 투다. 눈을 치 뜨는 당 노인. 그가 외쳤다.
“어떻게 마련한 곳인데 여길 뜨라고? 그렇겐 못한다. 나가!”
곧바로 축객령이다.
아까는 놀라서 날뛰었지만, 이제는 정말 분노해서 날뛰는 모습이다. 안으로 뛰어 들어가 망치라도 가져 나올 기세였다.
“나가는 것은 나가는 것이고. 그 전에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닥쳐. 듣고 싶지 않아.”
차륵.
어디서 어떻게 꺼낸 것일까.
당 노인의 오른 손에서 들리는 소리.
그곳을 바라본 청풍은 두 눈에 놀라움을 떠올렸다.
하얀색.
백색의 철구(鐵球)다. 본 적이 있는 물건. 그것도 아주 많이.
백강환이었다. 서영령이 쓰던 암기(暗器).
어렴풋한 기억 속. 그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런! 백강환(白鋼丸)을 아홉 개나 써 버렸네! 당 노대가 알면 날 죽이려 할 거야!"
고개를 흔들던 그녀의 목소리. 사소한 대화 하나 하나까지도 남아 머리 속에 떠오른다.
당 노대.
당 노인을 말함이다. 변화 무쌍한 성정을 지닌 노인. 그녀의 말투에 들어 있던 감정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쏘겠습니까? 좋은 생각이 아닐 텐데.........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나 보시죠. 구미가 당길 이야기일 겁니다.”
“시끄러.”
당 노인이 백강환을 들어 겨누었다.
서영령이 쏘아내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자세, 네 개의 백강환을 한꺼번에 걸어 겨누는 오른손에 무서운 기세가 깃들어 있었다.
“진심이군요.”
“그래. 진심이다.”
“해 보시지요.”
좁은 곳.
두 걸음이면 다가설 거리임에도 흠검단주는 태연하기만 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지. 아니면, 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일지.
부딪치는 두 사람의 눈빛.
한 순간 당 노인의 두 눈에 단호한 결심의 빛이 깃들었다.
피이잉!
회전한다.
내 쏘고 마는 백강환이다.
실제로 내 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찰나 간에 흠검단주의 눈이 굳어졌다.
그리고.
나아가는 빛줄기.
흠검단주의 몸이 환상처럼 움직이며 백강환 하나를 피해냈다.
굉장하다.
거기서 그런 몸놀림이라니.
하지만, 다음 것은 못 피한다. 처음 보는 탄법(彈法). 날아가는 백강환의 기세가 서영령이 펼치는 그것을 훨씬 넘어서 있었다.
위이이이잉! 파아아아.
몸통에라도 박혀들 그 순간.
옆에서부터 짓쳐드는 푸른색 검영(劍影)이 있었다.
다름아닌 청룡검이다.
쩌엉!
용뢰섬 일격으로 백강환을 튕겨내는 청풍.
순식간에 몸을 휘돌려 적사검으로 당 노인을 겨누니, 이어지는 출수를 완전하게 봉쇄한다.
당 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뒤를 향해 외쳤다.
“효기 이 놈아! 나와라! 이것들을 쫓아내야 하겠어!”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 줄이야.
농담을 던지고 웃는 사이, 말 몇 마디에 암기가 날고 검광이 번뜩였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
어지간한 일을 다 겪어본 청풍으로서도 이 정도로 급격한 변화에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숙부님. 꼭 이렇게........”
“닥치고, 이 놈들이나 쫓아내!”
이미 이 쪽의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는가.
그도 그럴만 하다. 공방(工房)과 이 복도는 몇 걸음 되지도 않았으니까.
호리호리한 청년.
당효기.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왔다.
“숙부님. 저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있으나, 청풍과 흠검단주를 보는 눈빛만큼은 형형하기 그지없었다.
눈을 치뜨는 당 노인.
당효기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도대체가.”
그가 당 노인의 옆에 서더니, 한 손을 내밀었다.
공중에서 무엇을 쥐기라도 하듯, 슬쩍 치켜 올리는 동작.
그 다음순간 벌어진 일에, 청풍의 눈이 큰 흔들림을 보였다.
우웅.
떠오른다.
빗나가 땅바닥에 구르던 백강환.
공중을 스르르 움직여 당효기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일.
흠검단주의 입에서 나직한 감탄성이 흘러 나왔다.
“무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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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당 노인의 경우, 큰 비중을 지닌 인물은 아니지만, 소림신권(가제)의 이야기 중에서는 꽤나 중요한 인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장강을 누비는 무한의 행보에 있어, 수상전(水上戰) 용 병기를 지원받게 되지요.
기폭뢰, 수침정, 해천창, 그리고 용포까지.
그것들이 실전에 쓰여지는 것은 먼 훗날에나 보실 수 있겠네요.^^
용포는 무당마검에 나왔던 해군기함 신룡에 탑재된 그 용포가 맞습니다.
용포 설계의 대부분을 이 당노인이 맡았었기 때문에, 이처럼 심귀도에도 지니고 있을 수 있었음을 미리 밝혀 둡니다.
하나 더.
무한이 쓰게 될 최종 기함은.
신풍(神風)이랍니다.^^
거기에 용포와 용조. 해천창이 추가로 장착되지요. 불론 당 노인의 능력이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