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효기가 그대로 손을 돌려 흠검단주를 겨누었다.
요혈 곳곳.
흠검단주를 탐색하는 당효기다.
손을 움직이지 않아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라도 노릴 수 있다.
청풍은 당효기가 내 쏠 곳을 감지하며 자하진기를 끌어 올렸다.
변화하는 공격 의지.
움직인다.
어디로 나갈 것인가.
영태혈(靈台穴), 전중혈(?中穴), 천추혈(天樞穴), 청풍은 당효기의 심력이 향하는 방향을 차례로 읽어 나갔다.
흠검단주가 몸을 피하는 것에 더해, 청풍의 검도 움직인다.
자신의 공격 의도가 청풍에게 간파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당효기.
이내 싸움은 당효기와 흠검단주의 그것이 아니라, 당효기와 청풍의 싸움으로 그 양상이 바뀌어 나갔다.
마음과 마음의 싸움.
안으로 파고드는 집중력에, 청풍의 감각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저 기운........’
내력의 흐름을 가늠하던 청풍은 백강환을 내쏘기 위해 겨누고 있는 당효기의 손에서 다른 것들과 이질적인 기운을 발견했다.
시위를 매긴 화살처럼 팽팽한 기세 가운데, 미묘하게 꿈틀거리는 힘이 있어 백강환과 당효기의 손을 감싸며 돌고 있다. 땅바닥에서 백강환을 끌어올리던 기이한 능력과 일맥 상통하는 힘이었다.
‘무형기란, 저것을 말하는 것이로군.’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결국은 진기(眞氣)로 이루는 조화라는 뜻이었다.
감당 못할 미지(未知)의 힘이 아니다. 내공으로 빗어내는 능력이라면, 상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자하진기를 더 끌어 올렸다.
어떤 방향이든 다 막아내 주겠다는 청풍의 기세.
흠검단주가 웃음을 지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나는 손놓고 있어도 되겠군. 재미있는 친구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당 노인을 향하여 던지는 흠검단주의 말에는 청풍에 대한 신뢰가 담겨있다.
시선을 움직이지 않는 당효기.
이제 청풍 한 사람의 무력을 상대하려는 그가 침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숙부님. 이것 보십시오. 제가 감당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약관의 나이, 당효기로서는 벅찰 수밖에 없다.
청풍.
헤쳐 온 길이 다르다.
이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며 도주와 패배로 점철 되었던 강호행이었지만, 그 경험의 순도는 그 누구에게 비하여서도 뒤지지 않는다.
무당의 마검. 명경의 압도적인 무공부터.
악양에서 본 천화진인의 검공, 탁무양의 기세, 파검존 육극신까지.
천하를 엿보는 자들이다.
그 뿐인가.
석가장에서 본 석대붕. 성혈교 오사도. 이 옆에 있는 흠검단주까지도.
어느 하나 쟁쟁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보고 배우며 맞서온 상대들이 그와 같다.
거기에 비하자면 당효기는 이제 겨우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이.
청풍의 기파에 눌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서야, 대장부가 아니겠죠.”
그래도, 당효기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내력을 키워 힘을 집중했음이 느껴졌을 때.
온다.
회전력이 깃든 파공성이 터져 나오며, 백강환의 백선(白線)이 맹렬한 기세로 짓쳐 들었다.
피이이이잉!
목표는 이제껏 겨누었던 것처럼 흠검단주였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청풍.
용보로 몸을 회전하고, 정교한 동작으로 청룡검을 내 뻗었다.
위이잉!
완벽한 궤도다.
나아갈 방향을 확실하게 읽은 검격 끝에 백강환이 있어, 단숨에 튕겨나갈 것만 같았다.
백강환과 청룡검이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당효기가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뻗은 상태로, 손을 치켜들었다.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그 순간.
당효기의 손을 따라 백강환이 꿈틀, 방향을 바꾸었다.
옆으로 돌아 휘어 치는 움직임이다.
그 속도로 뻗어나가면서 방향이 변화하는 모습은 신기(神技), 그 자체다.
놀라운 일수.
하지만, 청풍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그 궤도를 따라 손목을 틀어 청룡검을 휘돌렸다.
치링!
얕게 스치는 백강환.
속도가 줄어든다.
당효기가 눈을 빛내며 팔을 한껏 잡아당겼다.
청룡검에 스키고 땅에 떨어질 듯 하던 백강환이 다시 한번 꿈틀하며, 긴 호선을 그렸다.
피이이잉!
회전까지.
원을 그려 이번에는 청풍을 향해 날아들었다.
손에서 발출하고 장애물에 막혀 속도가 느려졌던 암기(暗器)다.
헌데 어찌 이렇게 다시 회전을 하며, 또한 다시 빨라질 수가 있을까.
기오막측한 암기술이다.
언제 또 꺾여 들어올지 모르는 일격, 청풍은 물러나지 않았다.
도리어 앞으로 전진한다.
백야참, 적사검으로 반원을 그리며, 날아 들어오는 넓은 범위를 한꺼번에 차단했다.
파아아아아!
검풍(劍風)으로 생겨나는 검압이 대단했다.
방향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당효기의 얼굴에 힘든 기색이 어렸다.
정신을 집중하여 손을 휘두르는 모습, 전력을 다하는 느낌이었다.
피핑! 피이이잉!
결국.
휘어져 들어온다.
꺾어 드는 움직임, 청풍의 팔꿈치를 노려왔다.
파아, 파팟.
청풍의 오른발이 뒤로 한번, 왼발이 그 옆 땅을 밟았다. 풍운용보, 목신운형의 진기가 치솟으며, 시야를 확보한다.
착검결, 적사검을 회수하며 뒤로 뻗어 나오는 백야참에 백강환의 궤도가 크게 흔들렸다.
다급하게 손을 움직여 방향을 바로잡으려는 당효기.
하지만 결국 청풍이 먼저다.
좁힐 수 없는 차이.
경험과 내력의 차이에, 청룡검은 결코 백강환을 놓칠 수가 없었다.
파삭!
용뢰섬 일격.
섬광처럼 뻗어지는 검 끝에서 백강환이 박살나 흩어졌다. 그대로 다시 움직여 흠검단주 앞으로 서는 청풍. 절도 있는 동작에 용호(龍虎)의 기상이 살아나니, 당효기의 얼굴이 크게 굳어졌다.
“졌군요.”
허탈한 목소리다.
젊은 나이, 승부라는 것은 해보기 전에 모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덤벼온 당효기이리라. 패배는 누구에게나 아픈 법, 그의 얼굴에 크나 큰 실망이 깃들었다.
“그 정도 무형기. 이제야 알겠다. 자네가 누구인지.”
잔잔하게 들려오는 흠검단주의 목소리다.
당효기가 청풍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흠검단주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가 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형기(無形氣)라........세간에서는 감응사(感應紗)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군요.”
감응사.
사물의 기운과 감응하여 그것을 조종하는 끈을 말함이다.
흠검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응사라. 들어본 적이 있다. 당문(唐門) 비기(秘技). 무형기, 염력을 달리 말하는 명칭이지. 자네가 바로 사천 당가타의 신성(新星). 그 당효기였군.”
“소문이 와전된 것뿐입니다.”
“천수마안 당천표가 그렇게도 아끼며 숨겨 놓더니, 여기에 있었어. 당가타에서 수천 리 떨어진 이 심귀도에.”
당 노인을 바라보는 흠검단주다.
당 노인의 얼굴이 망치로 병기를 연련할 때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왜 나가라고 이리도 길길이 난리를 쳤는지 이해가 갑니다. 구파와 육대세가. 아직은 당문의 신성을 내 보일 때가 아니며, 파문당했다 알려진 마장(魔匠) 당철민(唐鐵旻)이 사실은 당가와 전혀 멀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야 없는 것이니까요.”
흠검단주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당 노인, 당철민.
사천당가, 온갖 기술에 탐닉하다가, 철광(鐵鑛) 및 화약(火藥)등, 대명률에 위배되는 군수병기에도 관여하게 되면서 일찍이 마장인(魔匠人)이란 칭호를 얻었다. 비밀리에 병장기를 연련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기술이 강호의 싸움에 쓰여지니 문제라, 결국 무림에서는 마두(魔頭)로 찍히고, 관에서는 수배자가 되어 파문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 마당에 당문의 기대주인 당효기가 당철민과 함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굉장한 사건. 알려져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꽉 다문 이빨.
당 노인이 이빨 사이로 씹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알았으면 어서 꺼져.”
“볼 일을 다 봐야 나가지요.”
“젠장할! 패문갑(牌雯鉀)에 응형검(鷹炯劍)까지 가져갔으면 되었지, 또 뭘 바라는 거냐!”
“일단 들어나 보시지요. 내 말했지만, 꽤나 할 만한 일일 겁니다.”
“........”
어차피 생사를 걸고 쫓아내야만 할 정도는 아니다.
조금은 누그러진, 당 노인의 얼굴.
흠검단주가 청풍을, 청풍이 지닌 두 자루의 검을 가리켰다.
“검이라는 것은 그에 걸맞는 검집이 있어야 더욱 빛이 나는 법입니다. 게다가 저 친구, 발검(拔劍)이 일품인지라, 그만큼 튼튼한 검집이 필요하지요. 저 친구에게, 신검의 겁집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떠련지요.”
당 노인의 눈이 커졌다.
설마하니, 그런 부탁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
당 노인이 청풍을, 그의 얼굴을,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울화통을 터뜨리던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이다.
청풍의 그릇을 살피는 당 노인이었다.
감응사, 당효기가 펼치는 추혼표(追魂飄)를 파훼하던 청풍.
당 노인이 대뜸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쓰벌.”
그가 청풍에게 다가왔다.
“열흘. 열흘이다. 그 이후엔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
화산파와 철기맹의 싸움이 막바지에 이르는 동안.
가장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던 것은 탁무양의 이름이라 할 수 있었다.
악양에 혈혈단신으로 찾아와 화산 장문인에 맞서던 탁무양이다.
그 이후 이어지는 싸움에서 보여준 탁무양의 무공은 그 배포만큼이나 뛰어났다.
화산파의 장로이자 전대 매화검수 출신인 호연진인을 쓰러뜨린데 이어, 역시 화산파 장로인 심원진인까지 패퇴시켰다.
결국, 화산에서 나온 것은 거물 중에 거물인 매화신검(梅花神劍) 옥허진인이었다.
맞설 수 없는 상대임에도.
탁무양은 싸웠다.
실제 무력에 있어서는 대단한 차이가 있었겠지만, 탁무양의 진신 무공도 그야말로 대단하여, 그 싸움을 본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인상을 남긴다.
결국 패퇴하여 도주한 탁무양이었으나,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겨우 삼일, 삼일만이었다.
가슴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채, 직접 철갑기마대를 이끌고 싸움터에 나서 화산파의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 암암리에 그를 추종하는 무인들이 생겨났고, 심지어 일각에서는 그를 영웅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날 정도였다.
그러나.
그 혼자로는 화산파의 거대한 힘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다.
철기맹주 허기량은 애초부터 화산파에 맞설 그릇이 못 되었고, 부맹주 탁무양 하나에 의존한 저항력은 점차 파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서성 곳곳에 걸쳐 포진해 있던 분타들과 사업체들도 화산파의 거센 공격에 모조리 무너져 버린 상태. 철기맹은 그야말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한백무림서 무림편
강호난세사 중에서.
석가장 참사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보검들의 행방을 쫓았다.
백호검에 이어 청룡검.
비로소 사람들은 사방신검이 강호에 풀려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룡검과 적사검을 쫓는 사람들이나.
석가장 참사 밑 땅 속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보검들의 보고(寶庫)를 파헤치는 사람들이나. 누구도,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고, 시간만 하염없이 흘려보내고 있을 때다.
철기맹과 화산파의 싸움이 막바지에 이르며 이리저리 시끌시끌한 강호임에.
심귀도에 이른 청풍은 그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물러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홍택호 호심(湖心).
심귀도는 그와 같은 풍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깡........깡........깡........
이곳저곳에서 망치소리가 들려왔다.
들어 올 때에는 무인도처럼만 보였던 심귀도.
하지만 심귀도에는 당 노인과 당효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병장기의 연련을 위해 강철을 조달하는 사람들부터 식량과 물자들을 관리하는 사람들, 거기에 섬의 외곽을 지키는 사람들까지.
크지 않은 섬에 상주하고 있는 사람들만도 삼십 명이 넘었다.
어디 출신인지 짐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상당한 고수들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거하며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며칠 째 심귀도에 머무르며. 그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은 하나였다.
장인(匠人)들. 모두가 쇠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당 노인을 주축으로 하여, 수많은 병장기들이 그들의 손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심귀도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공방(工房)이라 불려도 될만한 섬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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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기함 신풍은 무당마검에 나왔던 그 신풍이 맞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우려하시는대로.
왜인들이 말하는 카미카제. 그 신풍입니다.
명군이 회수한 왜적들의 기함인 신풍은 이리 저리 하여(스토리를 다 말해버리면 곤란하겠죠?^^) 장강, 백무한의 손에 들어가게 되지요.
손에는 넣었지만, 완전히 다루지는 못합니다.
오륜왜장 중 생존자였던 수륜의 기요마사까지 찾아냈으나, 그래도 불가능했죠.
신풍의 제작에 다른 비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풍 또한 본래 이름이 신풍인 것이 아니었죠.
본래는......$%^$& 였습니다. @#$#%^에서 만들어진 전함이죠.
뭐 그랬습니다. 여기까지 하지요.
다 말씀을 드린다 해도, 신권이 나오는 시기는 빨라야 2006년이니, 어차피 기억이 가물가물 하실 테지만요.^^
저는 이만.
송년회로 가 보겠습니다.
피씨방에 들려 올렸는데, 여기서 거기까지 가려면 상당히 늦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