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금강탄입니다.”
심귀도의 장인들은 청풍과 흠검단주에게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덕분에 청풍은 그 동안 쌓여있던 피로와 내상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무공까지 재정비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연원을 도통 알 수가 없는 무공이로군. 하지만, 정말 강해. 뻗어나갈 길이 무궁무진하다.”
흠검단주의 눈은 흥미로 가득 차 있었다.
“변화가 없고 직선적인 일격. 그것은 그 자체로 발전시키는 것이 좋을 거다. 변화와 공수전환은 다른 무공으로 해. 억지로 모자란 것을 채워 넣으려면 도리어 퇴보한다. 한 기술을 연마함에 있어서는 그것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좋은 법이야.”
실전에 쓸 수 있는 중요한 기술들을 아낌없이 가르쳐 주었고, 출수하는 방식의 장점과 허점들을 하나하나 짚어 주는 흠검단주다.
기껏 며칠 사이.
청풍은 많은 것을 배우면서 스스로의 무공이 또 한발짝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다가 마침내.
크나 큰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너무 빠르다. 이래서는 안 돼.’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성장 속도다.
강해지면 좋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강해지는 것도 그 스스로 무공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만 하는 일이다.
‘무공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열흘로는 너무 적어. 무공을 정리하고,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실전 경험을 충분히 쌓았다면, 그것을 다시 제 것으로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무공 구결이라는 주춧돌 위에 짓던 집.
이미 집의 크기는 그가 지닌 주춧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나 있었다.
집을 허물고 그 밑의 반석을 다시 단단하게 다져야 할 때다.
단단한 대지가 받쳐주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위에 있는 것이 제 아무리 화려한 집이라고 해도,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까앙. 까앙. 까앙. 까앙.
대부분의 장인들은 망치질을 일정한 간격으로 해 나갔다.
매일 정오 무렵 세 시진.
해가 진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는 망치질이 없는 조용한 시간이다.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망치질을 한다면 섬 바깥까지 들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섬의 구조가 그렇지 않으며, 틀어박힌 작업장 위치가 그렇지 않았다.
모래 사장으로만 나가도 호수의 물소리와 바람소리에, 청력이 뛰어난 자가 아니라면, 망치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 방음(防音)을 신경 쓴 구조다. 하물며 배를 타고 있는 호면 위에서라면 심귀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주기적으로 들리는 망치소리.
청풍은 그 와중에서도 한 번도 끊이지 않았던 망치 소리를 알고 있었다.
당 노인.
그의 거처였다.
“직접 만질 수 없다니. 더럽게 까다롭게 구는군.”
검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검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청룡검은 다른 사람이 만져서는 안 되는 검.
넘겨주지 않고 보여주기만 하였으니, 당 노인의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보자. 길이는 이 척 일 촌 이 푼. 검병 팔 촌 삼 푼. 검 폭 삼촌 반. 일단 만들어는 보겠지만, 안 맞아도 난 책임 못 져.”
검을 본 당노인.
첫눈에 했던 말이었다.
보는 것만으로 단숨에 검의 길이와 폭을 알아내는 능력이다. 푼 단위의 미세한 차이까지. 그 솜씨는 그 눈썰미처럼 대단할 것이 틀림없었다.
“지독히도 완벽한 검이야. 어떤 미친놈이 이런 걸 만들었지? 쓰벌.”
그렇게 툴툴거리며 거처로 들어갔을 때부터였다.
망치소리가 멈추지 않은 것은.
그리고.
오늘.
그렇게나 울려오던 망치 소리가 멈추었고, 마침내 당 노인이 그의 거처에서 걸어 나왔다.
“청룡검 검집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적사검이나 내놔 봐.”
적사검. 청풍은 곧바로 적사검을 들어 당노인에게 내밀었다.
“어럽쇼? 이건 가져가서 봐도 된다는 거냐?”
“예. 그렇습니다.”
“별꼴이군. 뭐가 그리 복잡스러?”
그러면서도 당 노인은 잘 되었다는 양, 재빨리 적사검을 나꿔챘다.
쭉 훑어보는 장인(匠人)의 눈.
한 번도 쉴 시간을 갖지 않은 채 청룡검 검집을 만들고 있었으면서도, 그 두 눈에서는 조금도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리 저리 돌려본 당 노인이 일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도 신공(神工)의 칠대 기병에는 꼽히지 않는다 하더니, 과연 도 신공의 작품으로는 극상(極上)이라 볼 수가 없어. 상품(上品)정도일까. 특히나 여기 이 이음새. 이상해. 좀 더 살펴봐야 되겠어.”
무엇이 그리도 이상할까.
계속하여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당 노인이다.
그가 청풍을 돌아보며 물었다.
“들고 들어가서 좀 보겠다. 괜찮겠지?”
“예. 좋을 대로 하십시오.”
청풍은 개의치 않았다.
입이 험하고, 행동이 제멋대로이긴 하나, 달리 사심이 있을 사람이 아니다. 어차피 우연한 기회로 얻은 적사검, 며칠 가져가서 본다한들 안 될 이유가 없었다.
당 노인이 그의 거처에서 다시 나온 것은 청풍과 흠검단주가 심귀도에 이른지 열흘 하고도 이틀이 더 지난 후였다.
“들어와. 할 말이 있어.”
그토록 강철 같던 당 노인으로서도 한계에 이르렀는지, 그 얼굴에 꽤나 힘이 들었다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거기. 그 쪽 방으로.”
당 노인이 그들을 이끈 곳은 화로가 불길을 내뿜는 작업장이 아니라, 그 옆에 딸려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그 위에 두 손을 쭉 얹고서 청풍을 바라보는 당 노인이다. 그의 두 눈에 다시 한번 탐색의 빛이 감돌았다.
“효기! 가져 오거라!”
노 장인(匠人)으로서, 자신이 만든 것을 쓰는 자에게 그만한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었는지.
청풍을 바라보던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당효기를 불렀다.
잠시의 침묵이 지나가고.
당효기가 옆문으로부터 두 개의 길쭉한 가죽자루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철컹.
가운데 탁자 위에 올려놓는 하나의 가죽자루가 묵직한 소리를 낸다. 당 노인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꺼내 봐라. 이 놈아.”
청풍이 고개를 한번 숙이고 탁자위에 올려진 가죽 주머니를 들었다.
손을 넣어 잡아 보는 검집.
‘이것은.......’
강철이다?
모른다.
무슨 재질일까.
굉장한 무게, 그리고 강도(强度)다.
그 자체로도 하나의 병기(兵器)가 될 수 있을 듯한 느낌.
우웅.
마침내.
가죽 주머니 바깥으로 나오는 청룡검의 검집이다.
“굉장하군.”
흠검단주의 감탄성, 청풍은 말조차 잊었다.
청록색. 무엇으로 색을 냈는지 알 수 없다.
용(龍)의 비늘 모양이 살아 있는 듯 새겨져 있는 검집이다.
겨우 이 정도 시간 만에 이런 것을 만들어 내다니, 그야말로 신기(神技)라 할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섬세함과 역동적인 패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검집에 무슨 이름이겠냐만은, 일단 용갑(龍鉀)이라 불러 보았다. 그렇게 부르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라.”
당 노인이 그렇게 붙였다면 당연히 그렇게 불러야 한다.
검집에 이름이라?
그럴만 하다.
어떤 화려한 이름도 아깝지 않은 검집이었다. 단순히 용갑이라 부르기에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치이잉!
겁집을 들고, 청룡검을 들어 올렸다.
느낌이 온다.
용갑(龍鉀)은 청룡검의 제 짝이다. 오랜 세월, 고대의 신병(神兵)과, 당대 최고 장인의 검집이 만났으니, 아니 어울릴 수 없다. 꽂아 넣어 보지 않고서도 저절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스르르릉.
검이 들어가는 소리가 한 줄기 노래와도 같았다.
매끄럽게 들어가는 촉감에 긁히는 느낌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었다. 겁집에 꽂아 둔 채로 휘둘러도 될 것이라 생각될 만큼, 검과 검집의 일치감이 대단했다.
“어떤가.”
굳이 물을 필요가 있었을까.
청풍은 당 노인을 보며, 그 표정에 모든 것을 담았다.
그리고, 한 마디.
“최고입니다.”
“크크크.”
당 노인이 웃음을 지었다. 탁한 음성이나 기꺼움이 깃들어 있다. 진심을 보여주는 청풍, 좋은 주인에게 물건을 맡겨 흐뭇하다는 표정이었다.
“좋아. 그리고, 적사검. 헌데, 문제가 좀 생겼어.”
당효기가 탁자 위에 두 번째 가죽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철컹. 쩔그럭.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묘했다.
청풍에게 넘겨 주지 않은 채.
당효기가 직접 그 안에 손을 넣더니, 적사검을 꺼내 들었다.
검집에 꽂혀진 채, 탁자 위에 올려지는 적사검.
당 노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적사검의 제작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는다. 신공(神工) 도철께서 이름 모를 동방의 노인께 부탁을 받고 만들어졌다 전해지지. 병장기로서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
적사검은 굉장히 훌륭한 검이다.
일반적인 청강장검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보검(寶劍)이었다.
하지만, 청풍은 알고 있었다.
적사검이 뛰어난 검이긴 해도, 청룡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두 신검(神劍)이라 했던가.
허나, 적사검을 신검(神劍)이라 부르기엔 어폐가 있다. 청룡검에 부딪쳐서도 부러지지 않고 맞상대할 수 있는 정도. 그것이 적사검의 한계였던 까닭이었다. 물론 그 것으로도 무척이나 대단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병기(兵器)로서의 효용을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적사검에서는 도철의 역작들에서 보여지는 기묘한 힘들을 찾아볼 수 없다. 칠대 기병에 오르지 못했던 것도 그래서였을 거야.”
당 노인이 탁자 위에 올려진 적사검을 잡았다.
스르릉.
겁집에서 뽑혀 나오는 적사검.
청풍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적사검의 실체는 이렇다. 적사검은 검(劍)이 아니지. 적사검은 열쇠다. 남은 반토막이 가리키는 곳을 여는 열쇠. 동방(東方) 고묘(古廟)의 보고(寶庫)를 여는 열쇠란 말이다.”
반토막.
그렇다.
당 노인이 꺼낸 적사검은 반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냥 반 동강이 났다면 다소 잘못된 표현이라 할까.
검첨(劍尖)부터 검신 삼분 지 일 이상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 이것이 그 지도(地圖)다.”
가죽 주머니.
탁자 위에 올려지며 이상한 소리를 냈던 물체을 꺼내 보인다.
나머지 반으로 보이는 검신(劍身).
그리고 얇게 주조된 검은 색 철판이다.
적사검 검신 내부, 빈 공간 안에 들어 있던 철판이었다.
당 노인이 그 철판을 청풍에게 내밀었다.
중원의 북부(北部)를 표현한 듯한 그림. 섬세하게 새겨진 지형도(地形圖)가 거기에 있었다.
“이렇게 검을 훼손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어차피 적사검은 만들어질 때부터 전투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어. 물론 도 신공의 솜씨가 솜씨이니만큼, 적사검은 그 자체로만도 위력적인 명검(名劍)이었겠지. 그래도 이렇게 되는 것이 결국 그 검의 운명이었다. 인연이 있는 자, 그 검을 취할 것이 아니라 그 검이 가진 천명을 취해야 하는 법이니까.”
모처럼 정색을 하고 말을 이어나가는 당 노인이다.
손에 들린 철판을 보고, 다시 검집에 꽂은 적사검을 바라보았다.
‘이것을........’
어찌 반응을 보여야 할지 청풍으로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적사검의 검집은 청룡검의 용갑(龍鉀)처럼 훌륭해 뵈지 않는다.
길이와 폭을 맞추어, 허리에 묶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다였다.
‘이렇게 될 줄이야.’
적사검 검집이 어떻든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사검이 반토막 난 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난데없는 보고(寶庫)라니.
말하자면 보물지도, 여기서 그런 철판이 나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하는가.
‘일단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
청풍은, 그것을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괜한 심력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 노인이 준 철판을 얻어 둔 가죽 행낭에 집어넣었다.
“어찌 되었든.”
어차피 부러진 검(劍)이다.
빨리 미련을 털어버리기로 한 것.
“고맙습니다.”
감사의 한 마디와 함께, 적사검을 받아 허리에 묶었다.
실전에 다시 휘두르게 될련지는 몰라도, 어떤 식으로든 쓰임새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
두 자루 검.
청풍의 말마따나.
어찌 되었든, 이렇게 두 개의 검집을 얻었다.
한 쪽 허리에 청룡검.
다른 한 쪽 허리에, 강의검과 적사검을.
세 자루 장검을 지닌 청풍이다.
그의 두 눈이 다시금 형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심귀도 바깥으로.
강호로 나갈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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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해져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