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56)

“그래서.”

명문 정도.

거파라 불리는 곳들이 이러하다니.

청풍의 입이 열리며 내력을 담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 나를 잡기 위해, 세 분이 힘을 합치겠다는 것이오?”

개방 양화개.

황보세가 오계평.

모산파 벽라진인.

뱃전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한 쾌속정들이다.

청풍의 눈이 세 명을 훑었다.

“그런 식으로 말할 입장이 아닐텐데.”

오계평.

이를 드러내며 말한다.

그가 옆 쪽의 양화개와 벽라진인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 세 명을 상대로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일 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누굴 따라가는가 고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개방이냐. 황보세가냐. 모산파냐.

청풍의 몸은 어차피 하나였으니.

셋으로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어느 한 쪽이 데려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청풍의 눈에 담긴 분노가 거세졌다.

“누굴 따라가냐라.......” 

청풍의 말.

더 이상은 참지 않는다.

그가 청룡검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나는.”

번쩍 빛나는 안광(眼光).

“그 누구도 따라가지 않아!”

그 외침에 자하진기 웅혼한 내력이 담겼다.

터어엉! 

금강호보가 소선바닥에 작렬했다.

박찬다 싶은 순간. 공간을 압축하며 뛰어드는 그 때.

완전히 회복한 내력과 며칠 동안 정리했던 무공이 개방되었다.

주변의 공기, 기운들의 흐름이 손에 잡을 듯 느껴지는 영역.

청풍은 깨닫는다.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해 들어왔음을.

광서비웅도.

오계평이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으로 허리춤에 매달린 대도(大刀)를 꺼내든다. 굉장한 반응속도. 하지만 그 순간 청풍의 눈에는 그 흐름 하나하나가 느릿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위이이잉!

발도(拔刀)에서 일참(一斬)까지.

청풍의 몸이 아래로 숙여지며, 금강탄 발검에 탄력을 보탰다.

키잉! 치리리리링, 큐웅!

청룡검이 나아갔다.

오계평의 대도가 휘둘러오는 정면으로.

일격의 검끝.

황보가 전선(戰線)의 첨병이라는 광산비웅도, 굉장한 내력이 전해져 왔다.

‘뚫어 버린다.’

청풍의 생각이 의지가 되고, 그 의지가 그의 손 끝에서 압력을 꿰뚫는 신검(神劍)이 되었다.   

꽈아아앙!

무시무시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튕겨나가듯 휘청 밀리는 오계평이다. 

그 힘을 흩어내지 못하고 뒷걸음치는 서슬에 쾌속선 나무바닥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나갔다.

텅.

다른 어떤 것도 노리지 않았다. 

흠검단주가 충고해 주었던 그대로. 

금강탄은 전진이다. 

부수고자 하는 순수한 의지다.     

거기서 나온 금강탄. 

진정한 금강탄의 모습이다.

첫 일합은 금강탄의 압승,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계속 나아간다. 청풍의 발이 종지부를 찍겠다는 듯, 금강호보를 밟고, 백야참을 전개했다.

파아아아아! 

오계평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막을 수 없다.

방심. 방심이 불러온 결과다.

청풍의 검.

오계평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검격, 아래로 몸을 던지지 않았으면, 허리 채로 잘려나갔을 일참이었다. 

“!!” 

죽이려 한 것인가.

아니다. 바닥을 구르면 살 수 있을 만큼의 틈을 주었다.

오계평의 능력과 대응, 모든 것을 읽고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까지도. 

바닥을 굴러 손으로 땅을 치고 몸을 휘돌리는 오계평.

터어엉! 

완전히 계산된 것처럼.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다.

금강탄.

청풍의 청룡검이 더욱 더 강맹해지는 위력을 담은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져 왔다.

“크윽!” 

오계평이 급하게 대도를 치켜 올렸으나, 제대로 된 방어를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쩌정!

관통한다.

말 그대로 대도의 중단을 뚫어버린 청룡검이다.

부러지지도 않았다.

박아서 꿰뚫은 대도. 청풍이 그대로 손목을 비틀어, 청룡검에 얽힌 대도를 오계평의 손에서 빼앗아 버렸다. 

스르르릉.

청풍이 청룡검을 옆으로 떨치자, 박혀있던 대도가 밑으로 미끄러지며 쇳소리를 울렸다.

홍택호, 물소리 위로 흐르는 정적.

구멍 뚫린 오계평의 대도가 내는 소리만이 커다랗게 들리는 느낌이었다.

챙강.

광서비웅도(廣西飛熊刀).

날아드는 기세와 힘이 거대한 곰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었으나, 오계평은 광서성 온 땅에 이름났던 그 도법을 마음껏 펼쳐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한번 기세를 잡으면 끝까지 몰아친다.

예의를 갖춘 비무(比武)가 아닌 다음에야, 상대의 실력을 다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경험으로 얻은 싸움의 진리다.

진신실력을 다 내 놓으면서 싸울 수 있었으면, 이렇게 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변명일 뿐이다.

분노하는 와중에서도 상황과 대화를 살피는 청풍의 안목.

무공 이상의 힘이었다.

모든 것을 파악하고, 가장 방심하고 있는 자를 노린 결과였다. 

스윽.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계평을 그대로 둔 채.

청풍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음은 누구인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몸에서 발해지는 질문이었다.

숨을 죽이는 무인들, 누구도 나서지 못한다.

청풍의 눈이 양화개 언언을 거쳐, 벽라진인 정수심에 머물렀다.

텅.

청풍이 배를 박차고, 정수심이 타고 있는 쾌속선의 뱃 머리에 내려섰다.

포위 당한 상태임에도, 궁지에 몰린 모습이 아니었다.   

누가 누구를 몰아치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당당히 버텨 선 청풍.

그가 벽라진인 정수심을 향해 물었다.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이오.”

나직한 물음이다.

은연중에 우러나오는 압력. 

정수심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계속하여 청풍을 쫓기만 하던 그들이다. 그래서일까. 심적으로나 무력으로나 당연히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을 터. 이리도 강인한 모습이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에 달려든다 하더니, 그와 같은 형세로다. 허세를 부리지 말라!”

벽라진인이 일갈을 내뱉었다.

허세.

그럴지도 모른다.

사방천지에 적들 뿐.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청풍은 흔들리지 않았다.

강철 같은 의지, 그 무엇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었다.

“진실로 그렇게 보이시오?”

반문(反問)이다.

비쳐드는 한줄기 햇빛이 청룡검 검신을 타고 흘렀다.

말문이 막힐 수밖에.

삼합.

오계평을 삼합으로 제압했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런 것이 가능한 자는 없다.

벽라진인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강 도우(道友). 본파에서 석가장에 초청되어 갔던 이다. 그가 그곳에 간 후,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 안에 있었다면 강 도우를 보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 안의 상황, 아는 대로 말하라.”

강 도우. 강 도장.

청풍은 그 이름을 모른다. 다만, 모산파 도사들과 비슷했던 복장의 광인(狂人)을 기억할 뿐.

온 몸에 쇠사슬을 감고, 청룡검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죽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로소 그 중년 도사(道士)가 모산파 출신이었음을 깨닫는다.

짐작만이지만 확신에 가깝다.

하지만, 청풍은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청룡검의 마력에 빠져,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던 자. 

불쌍한 사람이다.

그 사문인 모산파가 청풍 자신을 핍박하고 있다 한 들, 죽은 후에까지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강 도우란 사람이 누군지 모르오. 격전 중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소. 그 중에 희생된 불행한 사람일 것이오.” 

청풍의 말.

인의(仁義)다.   

결코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는다. 

동문의 친우(親友)가 죽은 것에 대해 분노하고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제 아무리 적으로 마주쳤다 한들, 그런 것까지 무시해서는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게다.

그것이 청풍이 나아가는 길.

서서히 드러나는 대협의 풍모다.

그러나.

벽라진인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는 그렇게 쉽게 죽을 이가 아니다. 그 안에 있는 진실을 밝혀라.”

“나는 할 말을 다 했소. 그것이 용건이었다면, 모산에서는 나를 쫓을 이유가 없소.”

청풍의 어조는 단호했다.

분명, 강 도장의 일이 아니라면, 청풍을 쫓을 명분이 없다.

다시 한번 이를 악무는 벽라진인.

억지라도 쓸 수밖에. 그가 소매로부터 하나의 섭선(葉扇)을 꺼내 들었다. 

“갈수록 방자하게 나오는도다. 쫓고 안 쫓고는 모산에서 결정하는 일! 모산파는 석가장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그 모든 것을 되돌리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리라.”  

역시나 본색을 드러낸다.

그 정도까지 존중해 주었는데도.

청풍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청룡검을 벽라진인을 겨누었다.

“결국 드러내는 욕심. 진인이란 칭호가 아깝소.”

벽라진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평정심을 잃은 표정, 도사답지 않은 모습이다. 스스로 자신의 고명한 이름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는 것일까.

“오시오. 어떤 것이든 받아 주겠소.” 

청풍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낭랑했다.     

커져가는 벽라진인의 수치심.

청풍의 한 마디는 그것의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파아아아아.

체면도 잃어버린채, 먼저 출수하는 벽라진인이었다. 

모산파 절기, 좌망선법(坐忘扇法)이 펼쳐지며 강렬한 파공성을 냈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청풍의 발이 자연스럽게 풍운용보를 밟았다.

숙이고 옆으로 휘돌아 청룡검을 내 뻗는다.

위잉! 파라락!

빠른 속도. 

맥점을 끊는 공격이었다.

좌망선법의 표홀한 초식이 흐트러지며, 청풍의 정면을 노리던 경력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모산파 좌망선법.

술법만큼이나 고절한 무공이 전해져오고 있다 하였지만,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던 청풍과 마음이 흔들린 벽라진인의 차이는 그와 같았다.

파아아아아.

쏟아지는 백야참의 검력이다.

도무지 막아낼 수가 없는 일격이었다.

벽라진인이 휘두르는 섭선은 오계평의 대도와 같은 중병(重兵)이 아니었으니까.

정면으로 받아냈다가는 가볍게 잘려져 나가리라. 두꺼운 대도라도 부서져버리는 형편인데, 그와 같은 섭선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발 두발 밀려나는 벽라진인이다.

금강탄이 뻗어나가려는 시점.

승부수를 두려는가.

벽라진인이 일순간 좌망선법의 전개를 빨리했다.

파라락! 파아아아!

그래도 구파의 일익.

전력을 다하는 좌망선법의 기세는 확실히 날카로운 데가 있었다. 내력의 정심함과 초식의 정교함이 살아나는 공격이다. 청풍의 팔꿈치를 노리더니 결국 금강탄의 궤도까지 바꾸어 놓았다. 

한발 더 물러난 벽라진인이 왼쪽 소매를 흔들었다.

손으로 흘러내려 잡히는 것들.

모산파 통명신법(通明身法)을 펼치며 청룡검 검격을 피해내고는, 청풍을 향하여  왼손을 크게 휘둘렀다.

파라라라락!

흩날려 날아오는 종이들이다.

“!!”

청풍이 재빨리 청룡검을 회수하며 방어를 단단히 했다.

이것이다.

모산파의 진정한 비기(秘技), 가볍게 볼 수 없는 수법이다.

부적술(符籍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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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말씀 드렸듯, 화산질풍검에서는 술법적인 요소를 최소화시킬 생각입니다.

부적술이라고 엉뚱한 것이 튀어나오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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