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156)

  

파아아아!

양화개가 단숨에 거리를 좁혀 왔다.

타구봉도 없이 달려든다.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고서 몸을 붙일 듯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    

거리를 좁히고 근접전으로 유도하려는 속셈이었다.

터엉!

다가온다?

접근을 허용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유리한 거리를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청풍은 도리어 앞으로 전진했다.

접근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뒤로 물러난다면, 그것은 도리어 잘못된 판단이다.

공격의 거리란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법인 것이다.

근접전으로 몰아간다고, 그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짧으면 짧은 거리에서, 멀면 먼 거리에서.

때에 따른 공격을 하면 될 뿐이다.

선호하는 간격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간격에서든 같은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검사(劍士)라는 의미였다.

파아앙! 파앙!

뻗어내는 양화게의 주먹 끝에서 세찬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개방 절기, 일타(一打)의 권력으로 단단한 옥(玉)을 부순다는 파옥권이다.

사나웠다.

그리고 민첩했다.   

그렇게나 고고한 태도를 보이던 양화개였으나, 권법을 전개하기 시작하니 완전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파아아아.

권형과 투로가 이어지는 것이 전광석화와 같았다.

목신운형의 진결을 떠올리며, 용보를 밟아 양화개의 권격들을 흘려냈다.

위, 아래, 만만치 않은 압력을 견뎌내면서 한 발 더 전진한다.

권각이 그대로 닿는 거리까지.

양화개의 몸이 바람을 일으키며 견미각(犬尾脚), 강력한 일격을 내쳐왔다.

위이이잉.

회선하여 들어오는 양화개의 발등이다.

뼈를 부술 수 있는 경력이 실려 있었다. 격타당하면 그것으로 끝날 수 있을 만큼, 강맹한 위력이 느껴졌다. 만만하게 볼 공격이 아니었다.

파락!

땅에 닿을 듯 아래로 몸을 숙인 청풍이다.

곧바로 검을 내뻗으려 했으나, 양화개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견미각의 축이 되는 왼발을 가볍게 튕겨 몸을 뒤집고, 번신각(?身脚)의 일격을 날려온다. 절묘하게 이어지는 연환퇴(連環腿)였다.

파팡! 파파팡!

십여 합을 넘어갈 때 까지.

청풍은 검을 전개할 수 없었다.

이 정도 근접한 곳.

분명, 양화개의 거리다.

병장기를 상대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감각.

그 뿐인가.

청룡검이나, 강의검이나 이척이 넘는 장검이다.

검을 내치기엔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파아아아아.

좁디 좁은 쾌속선 위, 수면을 크게 뒤흔들 정도의 경풍이 퍼져 나간다.

어렵사리 피해낸 측면으로 양화개가 펼치는 번신각의 파공음이 거세게 들려왔다.

번신각에서 다시 견미각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 속도가 눈부셨다.

“!!” 

기세를 탄 양화개다.

계속 속도가 붙어가는 것일까.

꺾여 들어오는 시점이 예상보다 더 빨랐다.

읽고 있던 공격각을 상실하며, 철벽같던 방어가 무너졌다.

옆구리로 들어오는 일격.

너무 가깝다.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받아낼 수 밖에.

목신운형의 진기를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뻐억!

청풍의 전신이 크게 흔들렸다.

버텨낸다.

갈빗대 두세 개는 간단히 나갔을 일격이다.

청풍은 눌러 참았다.

견뎌 냈을 뿐 아니라, 거기서도 또 한 발 더 앞으로 전진했다.

그 정도면 결정타.

양화개, 그의 얼굴이 크게 굳었다.

나간다.

금강탄의 일격이 양화개의 앞으로 짓쳐 들었다.

충격을 반격으로. 거리의 제약에 묶여 있던 두 자루 신검이 마침내 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큐유우우우!

청룡검이 바람을 가르며 울리는 소리는 승천하는 신룡의 용음(龍吟)과도 같았다.

양화개가 미친 듯 팔선보를 전개하며 전신을 휩쓸어오는 막강한 경력을 흩어냈다.

쾌속선 뒤 쪽으로 ‘촤악’하고 갈라지는 물소리가 들릴 정도.

개방 장로의 무력은 확실히 만만치 않았다.

청룡검이 뻗어나간 틈새로 양화개의 몸이 급격하게 쏘아져 오더니, 기합성을 내지르며 파옥권의 일권을 내질러 왔다.

“합!”

이래도 멈추지 않을테냐, 묻는 듯한 공격이다.

그에 대한 청풍의 대답. 

오직 하나다.

빠아악!

청풍은 물러나지 않은 채, 청룡검을 든 왼쪽 어깨로 파옥권을 받아내 버렸다.

휘청 흔들리는가.

그래도 내 뻗는 강의검의 섬광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정심한 내공의 힘이다.

풍부한 경험의 힘이다.

파검존 육극신의 내력은 이런 수준이 아니었다.

성혈교 사도의 수공, 석대붕의 염사곤, 지금 다시 마주친다 한들 어찌 감히 맨몸으로 받아내겠는가.

상대해온 무공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백야참을 발하는 섬광이 가까워질 수록. 

양화개의 눈에 떠오른 것은 경악의 감정일 뿐이다. 다급하게 쾌속선 바닥을 향해 몸을 던지며 볼썽사납게 구르고 말았다.

터엉!

그렇게 몸을 피하는 양화개임에도.

청풍은 멈추지 않았다.

구르는 양화개의 위쪽으로 몸을 띄운 청풍이다.

아래로.

청풍의 눈에 냉랭한 빛이 실렸다.

  콰아악! 

찍어 내린다.

강의검이 양화개의 어깨를 꿰뚫고, 나무 바닥 아래까지 박혀버렸다.

육신이 꿰뚫려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양화개다.

“크악!”

무서운 일격.

양화개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청풍의 행보를 방해하는데 언제나 앞장서 왔던 개방인 바.

앞서의 황보세가와 모산파와는 도무지 똑같게 취급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쑤욱! 푸슈슛!

청풍이 강의검을 뽑아 올리자, 양화개의 어깨가 순식간에 선혈로 물들었다.

분수처럼 솟아나는 피다.

비척비척, 어깨를 부여잡고 일어나는 양화개.

청풍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급소는 피했소. 하지만, 다음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오.”

한 마디.

이것은 말하자면 경고다.

쫓지 말라.

쫓아오려면 육신이 상하는 것을 각오하라. 육신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양화개의 눈이 분노와 좌절로 물들었다.

일장의 격투로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수염이다.

누더기는 제 멋대로 구겨졌고, 철철 흘러나오는 피가 옷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유학자와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지금, 비로소 거지와 같은 몰골을 하게 된 양화개다. 그가 결국 끝까지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개방 방도들은 모두 나서서, 저 무도한 놈을 잡아라! 마두(魔頭)의 씨앗이 보이는 자다.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 돼!”

양화개의 외침을 듣는 청풍.

이제는 분노조차 일지 않는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

치링! 치리링!

청풍은 청룡검과 강의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꺼낸다.

검집에 꽂혀있는 채로.

용갑에 들어간 청룡검과 처음부터 검집과 함께 있었던 강의검 두 자루가 묵직한 파공성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달려들기 시작하는 개방 방도들 사이에서. 

청풍의 몸은 그들을 강타하는 한 줄기 질풍이 되었다.

*                *                       *

“거기에 있었던 방도가 모두 몇 명이었지?”

“양화개 언언 장로님 이하, 홍택(洪澤) 지부(支部) 육결 제자 칠 명. 오결 제자 십구 명 사결 제자 삼십 명. 총 오십 칠 명이었지요.”

“사 결 제자들은 어차피 손도 제대로 못 썼을 것이고.......”

“..........”

“그것은 그렇다 쳐. 헌데 육결 제자와 오결 제자 이십육 명이 전부 당했다는 말이지? 그것도 단 한 명에게.”

“.........”

낮아진 목소리의 장현걸.

고봉산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황보세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모산파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대략 잡아도 오십 명이 넘는단 말이야.”

장현걸이 눈을 감았다.

무엇을 헤아리는가. 

홍택호, 그 싸움을 떠올려 보기라도 하려는지.

“그 오십 명. 돌파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처음 보았을 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 정도까지 빠르게 성장하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그리도 강했던가.”

화풍개가 당했을 때도 요행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에 이어 양화개까지 일대 일로 당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또한 그것은 황보가 광서비웅도 오계평을 꺾고, 모산파 벽라진인까지 제압한 다음이었다고 했으니, 이제 더 이상 그의 실력을 요행에 머무른다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흠검단주의 모습은 없었다고 했고?”

“예.”

장현걸이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었다.

개방 장로 하나. 

그에 준하는 구파와 육대세가의 고수 두 명.

오십을 훨씬 넘는 무인들까지.

빠져 나갈래야 빠져 나갈 수 없는 숫자다.

그럼에도.

청풍은 빠져 나갔다.

바람처럼 움직이며 배들을 파괴하고 방도들을 물에 빠뜨렸다는 보고(報告).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을 뿐더러, 들은 것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소림(少林)은 어떤가. 아직도 물러날 생각을 안 하나?”

장현걸이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끙, 소리를 냈다.

이것저것 마음대로 안 풀리니, 답답할 수밖에. 

그런 만큼 고봉산도 썩 심기가 편치는 않는 모양, 그 토록 능글 맞던 표정이 온통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예. 소림 무승들. 석가장 근역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떠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지?”

“예. 그렇습니다.”

“그게 원래 소림의 모습이다.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 도무지 다룰 방법이 없어. 제일로 고약한 경우다.”

“.........”

“그 쪽은 어떻게 되었나. 사실인가? 살아 있다는 것이?”

“예. 아직 완전히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구할 이상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습니다.”

“남 부당주가 그러던가?”

“예. 후구당 전체의 중론입니다.”

“그렇다면........더 복잡해지는군. 살아있다라.........”

“그렇지요. 게다가........”

“게다가?”

“흠검단 부단주도 함께 살아 있다는 것 같습니다. 흠검단 생존자들까지도 몇 명 발견되었다 하고요.”

“그렇군. 역시나 그랬어.”

“.........”

“답은 하나겠지? 그 지하통로 어딘가로 통해 있다는 것.”

“그럴 겁니다. 손진덕은 그것을 살검로(殺劍路)라 했었지요.”

“흠검단주, 화산파 그 친구, 두 명 다 살았고. 거기에 성혈교 사도(使徒)까지 확인되었다면.......결국, 그 날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살아 나온 것이로군.”  

그렇다. 

확인된 바. 살아있다는 자는 다름 아닌 성혈교의 오사도를 말함이다. 

그 지옥같은 상황. 그러고 보면 장현걸이 이렇게 빠져 나왔는데, 성혈교 사도가 건물에 깔려 죽었다면, 그보다 이상한 일도 없으리라.

“사도의 생존 가능성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구 할 일 뿐입니다.” 

“후구당 구 할은 십 할이나 다름없지.”

“.........”

장현걸이 말을 멈추더니,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생각에 잠겨든 상태. 

그러다가 문득. 기발한 것이 떠올랐다는 듯 두 눈을 번쩍 떴다.

“그.......화산파, 그 친구가 이번에 홍택호에서 썼던 검이 강의검이라 했나?” 

“예. 맞을 겁니다. 벽라진인, 그리고 언 장로님, 두 분 모두 확인하신 바입니다.”

“강의검.........그게 아마 도철의 칠대 기병 중 하나였지?”

“예. 그렇지요. 뇌운, 호풍환우의 강의검이요.”

“흠검단주의 애병이었고?”

“예. 숭무련 생존자들 말로는 그렇다고 했었습니다.”

“좋아. 좋아.......”

장현걸이 고개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끈과 끈을 이어 맞닿게 만드는 것.

그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며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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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연재분 삭제가 있을 예정입니다. 

계약 문제상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지요. 

그 전에 빨리 빨리 이벤트를 진행해야 할 텐데.....

이벤트는 일요일,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성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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