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156)

  

“흠검단주는 심귀도로 들어간 후 나오지 않았지. 심귀도에는 마장 당철민이 있어. 숭무련과 당철민. 뭔가 친분이 있거나, 확실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뜻일 거야. 여하튼, 흠검단주는 거기에 남았고, 그 친구는 나와서 홍택호를 휘저었다. 강의검을 들고서.”

장현걸이 고봉산을 쳐다보았다.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쓰임새 있게 가다듬는 작업이다.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강의검이 그 친구의 손에 있다는 것은 세 가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심귀도에서 흠검단주가 죽고, 그 검을 그에게 남긴 경우. 흠검단주가 그 친구에게 맡긴 경우. 마지막으로 그 친구가 흠검단주에게 빼앗은 경우.”

고봉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검만한 보검이 손을 옮겨갔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그 세가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흠검단주는 죽지 않았어. 그가 죽었을 리는 만무하지 물론. 그 친구가 흠검단주에게서 빼앗았을 리도 없어. 하지만........”

짜 맞추는 것이 끝나가는가.

장현걸이 두 눈이 번뜩이며 고봉산에게 물었다.

“성혈교 사도가 살아있고, 흠검단 부단주가 살아있다면. 이제 곧, 성혈교와 숭무련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지. 이것은 어떨까. 그 친구. 흠검단주를 죽이고 강의검을 빼앗은 것이라면?”

“강의검을.......”

고봉산의 눈이 커졌다.

장현걸의 생각을 짐작했음이다. 고봉산이 동의한다는 듯,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개방도. 황보가도. 모산파도. 한번 낭패를 겪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든, 끝장을 봐야 하는 마당이지. 이대로 놔 둘 수는 없어.”

“그렇다면.......”

“숭무련에 찔러 줘. 화산파 제자가 흠검단주를 죽이고, 그의 검인 강의검을 빼앗았다고 이야기 해. 성혈교는 이쪽에서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겠지만, 그대로 더 접근이 용이하도록 정보를 개방시켜 놔.”

“하지만........흠검단주가 살아 있다면......”

“그것은 간단해. 심귀도를 봉쇄하면 되지. 길이 막혔다고 한들, 흠검단주 쪽에서 먼저 치고 나오지는 못할 거야. 심귀도에는 당철민과 다른 장인들이 있으니까. 심귀도에서 나오는 사람, 심귀도로 들어가는 사람, 그 것만 통제하면 될 것이다. 오래도 필요 없어. 길어야 몇 달이다. 그 때가서 흠검단주가 다시 나온다고 한들, 일은 모두 마무리된 후겠지.”

“예. 알겠습니다.”

“단, 심귀도, 마장 당철민에 대한 정보는 조심하게 다뤄. 다른 무림세력이야 그렇다 쳐도 관군이 끼어들면 골치가 아프니까.”

“그렇지요. 관군도 관군이고, 사천 당문도 만만치 않으니........극비(極秘)로 처리하겠습니다.”

“좋아. 알아서 잘 하겠지.”

청풍을 쫓으라.

강도가 점점 높아져 간다. 어디까지 가려는가. 

장현걸의 눈빛, 착잡함을 느끼기라도 하는지, 명령을 발하면서도 자츰자츰 가라앉고 있었다.

“헌데.......”

후구당에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듯, 손가락을 꼽으며 머리를 굴리던 고봉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심귀도에서 뛰쳐나온 그 친구 말입니다. 일부러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것을 보면, 마음 씀씀이가 상당한 것 아닙니까? 아니, 상당한 것이 아니라 대단한데요. 그 때 석가장에서의 활약도 그랬고요.” 

“지금으로서는........어쩔 수가 없다. 알고 있지. 잘 알고 있어. 게다가 그 친구, 그토록 고생하는 와중에서도 우리 방도들을 한 명도 죽이지 않았잖아.”

“.........”

“숭무련이나 성혈교의 손을 빌리려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어. 우리 제자들을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 우리가 직접 손을 쓰는 것은 곤란해. 아무리 좋지 않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다고 한들, 거기까지는 도리가 아니지.”

“그렇다면 처음부터........”

“봉산이.”

장현걸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봉산의 말을 막는다.

나직하고도 나직하여 더 이상 가라앉을 곳이 없는 목소리였다.

“지금, 개방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잖아. 그 동안 석가장 총관, 손진덕에게 알아 낸 것. 어디까지 믿을 수 있겠냐만은, 말한 그대로라면 굉장히 위험해.” 

  “........!”

“나는 나와 문파의 사활을 걸었어. 이미 내린 결정. 후회는 없다. 후회를 한다 해도 아직은 아니야. 대사(大事)를 진행함에 있어, 스스로의 방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할 때. 그 때가 무너지는 때다.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해.”

   

*              *              *

한 때 백호검주라 불렸었다지만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화산의 젊은 제자.

개방과 모산파, 그리고 황보세가까지.

고수들을 물리치며 강소성에서 산동성까지 바람 같은 질주를 보여주었던 그다. 일세의 신병인 청룡검과, 신공(神工) 도철의 강의검을 한 몸에 지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화제 거리가 될 만한 일, 그의 행보는 크게 알려지고 세간의 입에 오르내려야 마땅했던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해 가을.

그는 그렇게나 놀라운 일을 벌이고 있었음에도 무림인들의 주목을 받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였나.

쫓는 자들의 의도가 불순했던 만큼, 워낙에나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고서 추격을 했기도 하거니와, 강호의 다른 곳에서 워낙에나 놀라운 일들이 터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바지에 이르렀던 화산파와 철기맹의 싸움.

진신 실력을 보이기 시작한 화산파가 결국 백운산 철기맹 본파를 초토화시켰고, 철기맹주 허기량이 사로잡혔다. 철기맹 부맹주, 철기군 탁무양마저도 철기맹 현판을 짊어진 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에, 화산파 정예들이 끈질기게 추격을 가했지만 탁무양은 잡히지 않았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여운만은 남긴 채, 화산파와 철기맹의 싸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 때 터진 사건.

그것은 화산과 철기맹의 싸움보다 더욱 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육대세가의 두 세가, 남궁세가와 모용세가의 혼인식.

대(對) 철기맹전 신여분타의 싸움에서 굉장한 무위를 보여주었던 무당파의 흑요검주가 남궁세가와 모용세가의 혼인에 난입, 신부(新婦)였던 모용가의 여식을 납치하여 달아났던 것이다. 

온 강호가 들끓었다. 화산파와 철기맹의 싸움이야 규모는 컸었지만, 철기맹의 패배로 그 결과가 예정되다 시피했던 싸움이었고, 두 세가의 혼인식이 난장판이 된 사건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괴사(怪事)였던 까닭이었다. 

무당파 흑요검주 명경을 따라붙은 추격은 그야말로 그 규모가 엄청났다.

화산파 일개 제자를 추격하는 것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일까.

세가의 전 고수들이 투입되었고, 혼인식에 있었던 육대세가의 가주들, 사천당문 천수마안 당천표와 팽가가주 도신(刀神) 팽일강도 움직였다. 은거했던 검성(劍聖), 남궁연신까지 나섰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흑요검주 명경을 잡지 못했다. 절강일미라는 모용세가의 모용청도 되돌려 받을 수 없었다. 

대 파란을 일으킨 흑요검주의 행보다. 그리하여 모든 강호인들의 시선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을 시기. 그렇게 관심에서 벗어났던 청풍 대협이다.

청홍무적검이라 불리게 되는 그의 무위는 바로 그 시기, 바로 그 때를 기점으로 하여, 전환기를 맞았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한백무림서 초안.

한백의 일기 중에서.

“하아......! 하아.......!”

며칠이나 지났을까.

강소성 경계를 지나기는 지난 것인가.

실로 먼 거리를 왔다.

산동성으로 넘어온 것 같기는 한데, 과연 얼마나 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후우......후우.......”

자하진기를 일으키며 목신운형의 진기를 도인하고, 호흡을 골랐다.

서서히. 

안정되어 간다. 몸이 먼저 느끼는 회복력이다. 청룡검 검자루에서 흘러 들어오는 목기(木氣)가 자하진기와 호응하여 나타나는 회복력이었다.    

“후우.......”

바닥까지 써 버렸다고 생각했던 내력임에도. 생성되어 뭉치는 진기는 여전히 정순하고 깨끗했다. 

이런 능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짧은 휴식으로 기운을 회복할 수 없었다면.

아마 일찍이 추격해 오는 적들에게 잡혀가고 말았으리라.

청룡검 검자루에 붙어 있다시피한 왼손.

오른손은 언제든 강의검을 잡을 수 있도록 허리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졌던 싸움 때문이었다. 

홍택호 이후 마주쳤던 장로급 고수들만도 벌써 여섯 명이다. 

아니, 방금 전에 싸운 자 까지 합하면 일곱 명 째였다.

양화개와 싸울 때처럼, 어디하도 하나 내 줄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승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 한 군데도 다치지 않고, 승리를 거둔 것은 크게 방심하고 있던 한 명 뿐이다. 입심이 무척이나 더러웠던 왕구악(王口惡)에게는 팔꿈치를 용음십이수로 격타당해 이틀 동안 강의검을 휘두르지 못했고, 모산파 벽송(碧松) 진인에게는 기이한 환술(幻術)의 파훼법을 찾지 못하여 큰 내상을 입었었다.  

터텅!

완만하게 이어진 황막한 구릉지.

청풍의 신형이 바위와 바위를 건너뛰며 쭉쭉 뻗어 나갔다.

무작정 뛰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형을 살피면서 움직인다. 관도와 관도가 교차하는 곳, 봉화(烽火)등의 다른 신호 수단이 있을만한 곳들.

개방의 연락망은 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로 불꽃을 쏘아 올릴 때도 있었고, 색색의 연(鳶)이 날려지던 때도 있었다. 황보세가도 마찬가지, 모산파는 더 특이했다. 전혀 있을만한 곳이 아닌 곳에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경로였을 텐데도, 추격해 올 때가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 이외에도 뭔가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술법, 주문들을 그런 곳에도 사용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멀지 않아.’

오감을 넘어선 육감이다.

적들이 가까이에 있었다.

바로 전의 싸움에서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상태. 또 한번 싸움을 치러야 하는가. 구릉 저편으로 움직이고 있는 적의(敵意)가 감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북 쪽. 피하기 힘들겠어.’ 

그런 것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것.

며칠 되지 않은 일이었다.  

자하진기.

자하진기 덕분이다.

오랫동안 싸움에 쓰며 발출만을 했을 뿐, 적공(積功)의 시간을 가지지 않아 내공이 쌓일 수 없을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기이하게도 단전의 용적이 늘어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자하진기 오 단공을 확실하게 넘어선 느낌이다.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경지가 올라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두른다.’

차분히 점검할 시간이 필요했다.

청룡검도 강의검도.

이제는 두 검 모두 신체의 일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전히 익숙한 상태다. 실전 감각은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들만큼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거기에 내공마저 제 멋대로 늘어나는 중이니, 도통 스스로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자신을 완벽하게 아는 자와 모르는 자.

거기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간격이 있기 마련이다.

자칫하다가는 더 나아갈 기회를 놓친 채, 잘못된 경계에서 방황하게 될지 모른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강하니, 거기에 안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려면, 역시나 무공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한계를 정확히 알고 돌파할 시점을 찾아야 할 텐데,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못 잡고 있다. 실컷 달려오고서, 얼마나 왔는지 모르는 격이었다. 

홀로 무공을 수련할 곳이 절실했다.

적사검, 장보도에 나온 곳을 찾아가는 것도 그래서였다.

장보도. 보물.

청풍은 보물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동방의 보고(寶庫)라 했지만, 그 동쪽이라는 방위에 끌리는 바가 있기 때문이지 굳이 보물을 찾으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다.

보물보다는 장소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

보물이 있는 곳은 어떤 곳이든 폐쇄되어 있는 곳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신의 솜씨를 지닌 장인(匠人)이 만든 검에 그 지도가 감추어져 있었다면, 보통 장소가 아닐 것이 뻔했다.

누구도 접근하기 힘든 곳이리란 막연한 기대다.

무엇인가 그와 이어져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이다.

북쪽. 산동성으로. 

적사검 지도를 따라 움직이는 이유였다.

터텅!

청풍의 몸이 더 빨라졌다.

싸워야 한다면, 빨리 끝낸다.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

무공이라는 무한지로(無限之路)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미 쥐고 있는 청룡검 자루에 더해, 오른 손으로 강의검 검자루를 휘어잡았다.

파파파파팍! 

터어엉!

솟아 있는 언덕.

청풍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머리위로 높디높은 하늘, 태양이 빛나고 발밑으로 펼쳐진 대지, 사람들의 그림자가 있었다.

“위쪽이다!”

지긋지긋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누더기들.

개방의 방도들이다.

누군가의 경호성으로 청풍을 바라보는 눈들이 보였다.

쐐액! 쐐애액!

타구봉을 솟구쳐 올리는 자들 속으로.

치리링! 파아아아아!

청풍의 손에서 강의검, 백야참이 작렬했다. 잘려지고 튕겨지는 타구봉들. 사방 천지로 부서져 날아가는 나무들이 청풍의 주위를 후광처럼 장식했다.

터엉! 치리링!

땅에 착지하는 동시에, 강의검이 그 검집으로 돌아갔다. 

병장기를 상대할 때에만 검을 뽑는다. 

그 외에.

적들의 육신을 때리는 것은 검집에 넣어진 그대로의 검들이었다.

퍼억! 퍼어억!

용갑에 들어간 청룡검이 개방 방도들의 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풀려나오는 진결. 금강탄과 백야참에 이어, 자연스럽게 휘몰아치는 백호무(白虎舞)다.

춤을 추듯 움직이는 청풍의 검이었다.

  

식이 이미 초식의 범위를 벗어난 상태. 도취된 듯, 무아지경으로 발해지고 있었다.

‘역시. 안 돼.’

틀을 깨고 나아가는 것이 진정 강한 무공이다?

청풍은 도리어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몸에 녹아 발출되는 것도, 어느 정도 까지다. 끝없이 질주하여 강하게 나아가는 것 까지는 좋은데, 통제가 어렵다. 천리마를 얻었으나, 방향을 바꿀 고삐가 주어지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뻐억! 파라락!

청풍의 검이 아래를 휩쓸자, 그것에 발을 휩쓸린 개방 방도 그대로 한바퀴를 돌아 땅에 쳐 박히고 말았다. 신법을 전개할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균형감각을 망가뜨린다는 증거다. 자칫하면 죽여 버릴 수도 있는 무공. 내력을 억제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퍼억! 빠악!

순식간에.

그곳에 있던 개방 방도 이십 여명이 모두 쓰러져 땅을 뒹굴었다. 한 바탕 태풍이 휩쓸고 간 듯, 난장판으로 쓰러지는 개장도들이다. 

이 정도 숫자로는 턱도 없다.

개방에서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 이들만이 아닐 것이 틀림없다.

청풍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그래.’

아니나 다를까.

저쪽에 있는 작은 풀숲 쪽에서 달려오는 자가 있다. 

고수다.

“이 새끼! 똥 누고 오는 사이에!”

청풍의 눈이 번쩍 빛났다.

입에서 뱉어지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개방도들. 황당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저 듣기 싫을 따름이다.

청풍은 입을 열지 않은 채, 그대로 마주쳐 몸을 날렸다.

“어헛!”

헛바람을 들이키는 상대. 꽤나 젊은 모습이다.

용갑 채 휘두르는 청룡검을 피하며 빠르게 땅을 박차는 팔선보.

상당한 실력이었지만, 이제 개방 신법이라면 발소리만으로도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 나아가는 방향과 속도까지도.

위잉! 파아아아!

“헙!” 

또 다시 헛바람을 들이킨다.

움직임을 완전히 예상하고 휘둘렀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것은 재빠른 임기응변의 결과. 뒤로 뛰고 땅을 짚으며 몸을 뒤집는 반응속도가 대단했다.

매듭은 여섯 개, 육결 제자치고는 나이도 젊을뿐더러, 무공도 뛰어나다. 칠결을 매고 있는 장로들에 준하는 실력이었다.

파아아! 쩌어엉!

청룡검 용갑과 마주친 타구봉에서 묵직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타구봉.

나무가 아니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봉이다.

철살개(鐵殺?).

타구가 아니라 참구(慘狗)봉이라는 이야기,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텅! 

철살이든, 참구든. 

가릴 바 없다. 청풍은 그대로 짓쳐들어 청룡검을 휘둘렀다.   

쩌정! 쩌저정!

막을 수가 없다. 일격을 방어할 때마다, 철살개의 몸이 휘청 휘청 뒤로 튕겨졌다. 

백호무 백호출세. 상대가 강하다고 생각하니, 곧이어 뿜어지는 무공이다. 

쩌어어엉! 

정교한 초식도, 빠른 속도도 소용없다.

강철로 만들어진 타구봉이 흉하게 휘어져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위이이잉!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 이번에는 오른손. 강의검이 제어할 겨를도 없이 뻗어나갔다.

뻐어억!

옆구리로 박히는 강의검이다. 새우처럼 허리를 꺾으며 땅을 구르고, ‘우왁’ 소리와 함께 한 움큼 피를 토하고 말았다. 

터억! 촤아악!

더 튀어나가 검을 휘두르려는 몸을 억지로 멈추어 세웠다.

위험했다.

강의검이 검집 채로 휘둘러졌으니 망정이지, 검날이 나왔으면 온 몸을 반으로 갈라 버렸으리라. 

“대체.......뭐냐.”

피를 쏟고, 휘청거리면서도 일어난다. 

포기하지 않는 눈빛으로 청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승부가 났음을 알고 있음에도, 꺾이지 않는 기상이다.

무인다운 자.

그러고 보면 화풍개도 그랬다.

이리저리 귀찮게는 하지만, 악당들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곧, 죽일만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아무리 무당파 미친 자식 쪽으로 제자들이 동원되었다지만, 이런 놈을 상대하는데 기껏 오결 제자들이나 붙여 주다니.......너무하는군.”

휘어진 타구봉을 들어 올려 보더니, 아무래도 모양새가 안 나는 듯 툭 던져 버린다. 어렵사리 자세를 잡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파옥권이다.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뻔히 아는 무공들이다. 청풍은 더 이상 손속을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터벅.

그대로 몸을 돌렸다. 

철살개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개졌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으로 땅을 박차며 청풍을 향해 뛰어들었다.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몸을 옆으로 숙여 피하고는 발을 움직여 팔선보의 디딤발을 차단했다. 검은 휘두르지도 않았다. 손을 뻗어 파옥권 권형을 비집고 들어가, 어깨를 잡고 밀어제쳤다. 

철살개의 몸이 꽈당 뒤로 넘어졌다. 단순한 동작으로 보여준 완벽한 파훼다. 다시 일어나는 철살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눈빛이다. 달려드는 대신,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어왔다.

“왜, 안 죽이지?”

청풍이 철살개를 돌아 보았다.

도리어 반문하는 청풍.

그의 말에 철살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당연한 일 아니오?”

그렇다.

당연한 것 아니었나.

청풍이 살수를 자제하는 것은 달리 노림수가 있거나, 뭔가를 계산하면서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화산파의 제자가 개방의 제자들 사사로이 죽이지 않는 것. 

장문인과 핵심 장로들, 위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같은 정도를 걷고 있는 이들끼리 살상은 금물이다. 

적어도 청풍은 그렇게 배웠다. 

어떤 사람이든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설사 적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죽어 마땅한 자들이 아닌 바에는 살생이란 협을 추구하는 이로서 쉽게 행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었다.  

말문이 막힌 철살개다.

청풍은 더 이상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걸음을 빨리 했다.

신법을 펼치고, 멀어진다. 

막바지에 이른 가을 날.

모든 것이 무르익어가고, 모든 것이 깊어져가는 시기였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일을 벌인 것일까?”

“그러게. 무당파, 그것도 무신(武神) 허공 노사의 제자라는데.”

“무공만큼은 기가 막히다더군.”

인적이 없는 길로만 다니던 청풍이다.

생각을 바꿔 마을을 들리게 된 이유.

간단했다.

처음 와보는 산동성.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지도만 가지고 어떤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온 후. 

그저 정보만을 모으려고 했던 청풍이나, 다른 효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 저자거리를 지나다 보면, 무엇인가 그를 따라 붙고 있는 느낌이 사라질 때가 있었다. 항상 주시하던 눈길이 희미해지는 기분이다. 

그것이 주술이라면. 

구화산에서 모산파의 추격을 뿌리쳤던 것처럼. 주술적인 추격을 끊어낼 수 있는 열쇠가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다.

“혼인식에서 말이지. 모용세가의 가주와 남궁세가의 가주, 그리고 하북팽가 가주가 합공을 했는데에도 통하지 않았대. 그게 진짤까?”

“과장이 섞인 거겠지. 그게 어디 보통 이름이냐. 육가 가주들이라면 검왕 남궁력, 도신 팽일강, 천수사 모용도를 이야기하는 건데, 그들의 합공을 무슨 수로 물리쳐?”

“그럼 신부(新婦)를 납치해 가는 데에도 그들이 가만히 있었을라고? 지금까지도 안 잡히고 있잖아. 남궁세가와 모용세가는 물론이고, 거기에 있던 군웅들에다가 구파 일방 고수들까지 대거 추격에 들어갔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난 못 믿겠어. 도무지 말이 되어야 믿지.”

어디에서나 같은 이야기다.

얼핏 들은 무당파란 이름에.

귀를 기울여 들은 이야기는 과연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무당파, 명경에 관한 소문이다. 

절강일미라는 모용청을 납치하여 도주하고 있다는 이야기. 

과연 일을 치는 데에도 그릇이 다르다.

세가 가주들의 합공을 받아냈다?

믿기 힘든 말이지만 청풍은 믿었다. 

그럴 만 하다.

그 때 보았던 마검 명경의 무공이라면.

놀라울 것도 없다. 

천하를 바라보는 그릇이라면 그 정도는 해 줘야 한다. 

마검 명경.

자신감을 꺾으며 좌절로 다가왔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더불어 그 느낌을 자연스럽게 호승심으로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청풍의 정신은 굳세고 강인했다.

새롭게 무공의 연련을 계획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명경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촉발제다. 

만검지련자(萬劍之戀者).

을지백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만검지련자의 위치에 올라 파검존을 꺾으라는 목소리가 생생했다.

더 강해지겠다는 의지가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남궁세가에서 검성이 은거를 깨고 나왔다는 소문까지 들려.”

“강소성, 태호까지 가고 있다던데. 개방 방도들도 엄청나게 몰려들었다고 그러더군.”  

“개방뿐이던가. 엔간한 문파들은 다 동원되고 있는 모양이야.”

마을로 들어온 것은 역시나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정보들을 들으니, 여러 가지 궁금하던 것들도 해결이 된다.

철살개가 했던 말.   

개방의 인원이 부족했다는 것도 거기에 해답이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이렇게 마을을 활보하는 데에도, 즉각적인 대응이 없는 것. 

추격자들의 반응이 한 발 늦고 있다는 뜻이다. 무당파 명경이 일으킨 전대미문의 사건에 정신이 팔린 까닭이었다.

‘과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남궁세가와 모용세가의 혼인.

그것이 깨진 것에 왜 온 강호가 흔들리는가.

육대세가끼리의 결합이란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혼인을 매개로 하여, 두 세가의 견고한 연합체가 탄생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보통 일이 아니다. 육대 세가는 하나 하나가 가진 저력이 구대 문파들과 필적한다고 여겨지는 바. 그 중 두개가 합쳐진다는 것은 구파일방을 능가하는 세력이 만들어지는 것과 다름없다. 

강호의 세력 판도가 통째로 바뀔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다.

남궁세가가 있는 강서성. 

모용세가가 있는 절강성.

강남 무림의 모든 이해관계에 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거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문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며, 두 세가의 결합을 예측한 군소문파들은 이미 이합집산을 끝냈을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박살났다.

그것도 구파 일방 중 하나인 무당파 제자에게.

받아들이기에 따라 얼마든지 험악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다. 

육대세가의 결합을 못마땅해 하는 구대문파가 나선 것이라 보여질 수도 있으며, 실상이 어떻든지간에 구대문파와 육대세가의 결속은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거기에 개방........’

개방이 행보를 빨리 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이번 일.

구대문파가 나섰다고 했지만, 어디가 나섰다고 특별히 이야기 되는 문파는 없다. 심지어는 무당파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개방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중이다. 

그것은 곧. 

개방의 움직임은 구대문파의 노선과 다소 다르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산파 제자인 청풍을 쫓는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개방 방도들을 떠올렸다.

개방 방도들. 

그리고 황보세가 무인들. 

벽라진인을 패퇴시키고서 한 풀 꺾였던 모산파와 달리, 황보세가는 개방과 마찬가지로 집요한 행보를 보였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구파와 일방, 육대세가가 이루고 있던 공고한 결속은 이미 한참 전부터 어긋나고 있었다는 말이다.

무엇이 그것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강호의 모든 것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청풍 자신도 어느새 그 일부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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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군요.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연참 쉬지 않겠습니다. 

집에서 쉬는 분들이나.

나가서 재미있게 보내신 분들이나.

오늘 저녁, 좋은 시간 보내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내일 아침까지도요(글이 더 올라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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