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군 탁무양.
화산파의 압도적인 힘 앞에 지리멸렬 박살을 면치 못했던 철기맹이다.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아니, 불과 몇 달이 흘렀을 뿐이다. 사라졌던 탁무양이 철기맹 현판을 실은 강철수레를 자신의 명마 뒤에 끌고서, 강호에 재출도 한 후, 며칠 사이 다섯 기, 열기로 늘어난 새로운 철기대와 함께 철기맹의 부활을 알린 것이다.
수많은 강호인들이 그를 비웃었고, 수많은 강호인들이 그를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겨울날, 그 새로운 열기의 철기대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삼십 명의 화산 검수들을 모조리 도륙했을 때.
강호인들은 경악했고, 그들을 달리 보게 되었다.
더 놀라운 사건은 그 후에 일어났다.
자신이 부맹주로 있던 문파를 깡그리 잃어버리고도, 다시 일어나 열기의 측근만을 이끌고 거파인 화산파에 재도전하는 그의 모습이 어떤 마음들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누군가의 입에서 “영웅(英雄)”이란 말이 나오고, 확산되었다.
단신으로 무림에 맞서는 미친 발악이다? 단신으로 항거할 수 없는 힘에 대항하는 숭고한 성전(聖戰)이다?
후자에 무게를 두는 젊은 무인들이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다.
무서운 변화였다. 구하지도 않았던 병력이 모여들었고, 암암리에 지원해 주는 자금줄이 자리 잡혔다.
재건이다. 새 철기맹주 탁무양이 이끄는 철기맹은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백무림서 초안
한백의 일기 중에서.
청풍은 사신묘(四神廟)에서 겨울을 맞았다.
험산(險山)이 아님에도, 그 지역을 가득채운 고대의 숨결이 사람의 접근을 불허하는 듯, 약초꾼 하나조차 찾아 들지 않는 산속이었다.
오직 그만을 위한 장소다.
때로는 고분의 주변에서.
때로는 사신묘의 측실에서.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이 지나는 동안, 청풍은 그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눈 밭 사이 꽁꽁 얼은 개울 밑에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물고기들이 있었고, 땅을 파면 촉촉하게 움츠러든 풀뿌리들이 있었다. 도사는 육식(肉食)을 꺼리지만, 불제자(佛弟子)들처럼 금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산 생활을 오래 해온 청풍에게 먹을 것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산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아니,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고, 다른 어떤 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엄동설한에도 웃통을 벗어 던진 채, 검을 연마했으며 사람의 시신이 묻힌 고분 속에서도 곤하게 잠을 잤다.
가끔씩 잡념이 든다면 그녀, 서영령에 대한 것 뿐.
그럴 때면 청풍은 내공을 연마했다.
서영령이 주었던 목걸이와 서영령의 목에서 떨어져 나왔던 목걸이.
목에 걸었던 목걸이 두 개는 행낭 속에 집어넣고 꺼내질 않았다.
항상 그녀를 생각나게 만드는 물건.
그 대신 청풍은 사부님이 남겨 주셨던 자하진기 구결을 집어 들었다.
오로지 무공의 연련을 위해서만 허락된 시간이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읽었다.
알고 있던 부분은 더 확실히 알아갔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천태세와 상의하여 깨달아 나갔다.
청풍은 시간을 망각했다.
무공에 흠뻑 젖어든 채 그 안에 취해 있으니, 함께 있는 천태세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가끔씩 무공 성취에 대해 말을 걸어오던 천태세도 어느 때부터인가 청풍이 묻는 말에 대한 대답 외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니, 그야말로 홀로 지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열흘 씩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무공만을 파고들 때도 있었다.
몸은 말라갔으나, 두 눈엔 더욱 더 생기가 돌았고, 펼쳐내는 무공은 하루가 다르게 정련도되어 갔다.
자하진기가 육단공을 넘어서 칠단공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다.
청풍은 백호기와 청룡기도 한 진기처럼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도 돋보였던 오감은 끝 간 데를 모르고 뻗어나가 사방에 충만한 기(氣)의 흐름을 잡아낼 경지에 이르렀으며, 중단전(中丹田)이 굳건하게 자리 잡아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을 갖추게 되었다.
내공이 강해지는 만큼 초식도 탄탄해졌다.
금강탄과 백야참의 연환은 목신운형과 용뢰섬을 받아들이며 어떤 정통무공 못지않은 체계를 잡아갔다.
그 뿐이 아니다.
천태세에게 들어서 알게 된 백호무의 초식 이름들. 백호출세, 백호탐천, 백호금광을 연마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뒤이어 청룡결 삼 초식 청룡도강, 청룡승천, 청룡운해 까지도 완전하게 소화해 냈다.
청풍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가진 바 무공을 닦은 것에, 경험으로 얻은 새로운 무공을 덧붙였다.
단단한 반석을 쌓고, 고루대각을 올린 위에 육체에 담겨진 실전의 기억들을 장식한 것이다. 그가 만나고 부딪쳤던 수많은 고수들. 보고 싸워 온 모든 것이 그 장식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고 있었다.
장식일지라도, 공을 들이는 것은 똑 같았다.
올려진 건물 위에 또 한 층의 탑을 쌓았고, 반석 바깥으로 넓은 담장을 둘러쳤다.
청풍의 그것과 전혀 근원이 다른 무공일지라도 가볍게 넘어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어렴풋해 기억나지 않는 것까지 모두 다 짚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이른 곳.
청풍은 그 중에서도 심귀도에서 만났던 당효기의 무공에 주목했다.
당효기의 무공은 다른 무공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검을 휘두르고 권각을 찔러내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의 무공이었다.
손을 쓰지 않고도 강환(鋼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수법을 떠올리고, 그 때 느꼈던 기운의 흐름들을 파고들었다.
중단에서 올라가, 미간(眉間)에 머무르던 진기.
끈처럼 흘러 나왔던 기운의 변형을 떠올리며 청풍은 비로소 상단전(上丹田), 천태세가 말하던 천(天)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을 토대로 청풍은 새로운 내력의 핵(核)을 개척해 나갔다.
홀로 열어가는 혼백의 대지, 상단전이었다.
그리고.
청풍은 오래지 않아, 그곳이 전혀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작부터 상단전을 알게 모르게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하진기는 무상의 신공(神功)이라. 이미 오래전부터 중단과 상단을 일깨워 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백호검을 처음 얻을 때, 기이한 예감을 느꼈던 것.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감각.
따로 배운 바 없이도 무공의 진실한 실체들을 파헤칠 수 있었던 능력.
중단과 더불어 상단이 작용하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더 강하게 키우기 위해.
청풍은 자하진기로 돌아갔다. 자하진기의 연공으로 진기의 흐름이 뚜렷해지면,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 또 다시 과거 실전의 편린들을 떠올렸다.
끊임없는 순환이었다.
무공의 사슬을 타고 오르며.
청풍은 추운 겨울을 떠나보내고, 세상 기운이 되살아나는 봄을 맞이하게 된다.
* * *
쐐애애액!
중원 무림맹지 악양.
저잣거리, 사람들이 보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한 거지가 경공을 펼쳐 움직이고 있었다.
쏜 살처럼 달려가 악양루의 동편에 위치한 객잔으로 들어간다.
궁금함에 돌아보던 사람들.
객잔의 문에 걸린 네 글자를 보고, 이내 시선을 돌린다.
궁금하다고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타타탁!
“개방, 고봉산이다.”
“들어오십시오.”
와룡객잔(臥龍客棧).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이 크게 한정된 곳이었다.
무림인들, 그것도 구파와 일방의 고수들에게만 방을 내주는 특이한 영업방식 때문이다.
밀폐되어 있는 각 방에, 누구도 침입해 들어오기 어려운 구조.
구파 일방의 인물들이 무척이나 애용하는 곳이다. 중요한 정보를 나누기에는 그처럼 적합한 장소가 드물었던 까닭이었다.
“급보입니다!”
우당탕 문을 부셔버릴 듯, 뛰쳐 들어온 고봉산이다.
일남 일녀.
죽간과 종이뭉치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둔 탁자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급보?”
남자.
작은 글씨가 깨알같이 적혀진 종이를 읽던 그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되물었다.
“예! 급보입니다.”
숨까지 헐떡거리고 있는 고봉산이다. 그가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성혈교가 전면에 나섰습니다. 나섰을 뿐 아니라, 사도 이상의 괴물을 내 놓았지요. 그 놈입니다. 금마륜이요.”
“금마륜? 그 놈은 원래부터 암중에 움직이고 있었잖아.”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번에는.........직접 나서서 싸웠지요. 누구와 겨루었는지 아십니까? 무당파, 무신(武神) 허공(虛空) 노사입니다!”
“무엇이!”
남자.
장현걸이 홱 몸을 돌렸다.
맞은 편에 앉아 죽간을 읽고 있던 여인까지도 급히 고개를 들었다.
즉각적인 반응.
당연하다.
엄청난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다.
허공 노사.
그 이름의 의미.
무당파 최강의 고수를 뜻함이다. 온 천하 무림 고수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무적의 무인이다.
말이 다섯 손가락이지, 공공연히 천하제일고수로 이야기 되는 바.
또 있다.
지난 가을 엄청난 화제 거리를 몰고 다녔던 자, 이제는 북풍단주라 불리고 있는 마검 명경의 사부가 또한 바로 허공 노사였다.
“결과는?! 설마!”
장현걸의 안색이 돌변했다.
벌떡 일어나는 그다.
허공노사와 금마륜이 싸웠다.
금마륜의 패배가 확실하다. 그 누구라도 허공노사를 상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봉산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달려왔지 않은가.
무엇인가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지 않고서야 이렇게 난리를 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노사께서 패배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승리했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노사께서는.........그 싸움 이후, 금마륜과 함께.........실종되셨습니다.”
“그런........!”
장현걸의 얼굴.
믿을 수 없다는 빛이 가득했다.
허공노사가 누구인가.
강호의 정도(正道), 구파 무인들의 태양이다.
허공진인. 하지만 세인들은 그를 진인이 아니라 노사라 부른다.
검을 쥐는 자, 그 누구라도 무당파 무신 허공 노사의 이름을 경배할 수밖에 없었으니. 강호인 모두가 존경의 염을 담아 노사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종되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금마륜은 성혈교의 호교호법, 마졸(魔卒)들의 수호자다.
그런 마인(魔人)과 싸웠다면.
마인의 시신이 땅에 누워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나야만 하는 것이다.
둘 다 사라진다는 것.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다.
“다른 정보는?”
“성혈교에서 허공노사에 맞서기 위해 사도 두 명이 더 나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호인들이 본 것 까지는 일대 일, 경천 동지의 승부였다고 했지요. 군웅들의 얄팍한 눈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겠냐만은, 일단 보이는 것만으로는 백중세에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백중세?! 말도 안 되는!”
장현걸의 얼굴에는 숫제 분노한 기색마저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구파와 일방, 정도의 질서가 이렇게 깨어져서는 안 되는 것. 이렇게 되면 남은 것은 강호의 혼란뿐이다. 개방 하나만 해도, 이미 풍파에 흔들리고 있는 마당, 온 강호가 난세로 접어들면 개방의 위기는 더욱 더 가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길!!”
파아악!
장현걸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뭉치들을 집어 던졌다.
팔락이며 떨어지는 종이들.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지는 그 위로, 맞은 편 여인의 차분한 음성이 내려앉았다.
“앉아요. 놀라운 일이긴 해도, 그렇게 이성을 잃을만한 일은 아니에요.”
도복 위에 매화문양.
다른 누구도 아니다.
연선하였다.
서천각 매화검수의 신분으로, 개방의 후개 장현걸과 정보를 나누고 있던 중. 이와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이것이 이성을 잃을만한 일이 아니오!”
“여하튼 앉아요.”
그녀 자신의 말처럼, 연선하의 눈에도 이 엄청난 소식에 대한 놀라움이 깃들어 있었으나, 장현걸보다는 훨씬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죽간을 내려 놓고, 장현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허공에서 한참이나 눈을 마주치던 장현걸. 결국 치솟아 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모든 것이 어그러졌어.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오.”
털썩.
다시 의자에 앉은 장현걸이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될 대로 되라니. 당신답지 않군요.”
그 답지 않다.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가 그가 그녀에게 해 주었던 말과 같다.
멈칫. 아주 짧은 시간 몸을 굳힌 장현걸이다.
그가 눈 가를 꾹 꾹 누르며 옆을 향해 말했다.
“봉산. 너도 앉아라. 추태를 부렸다. 미안하게 되었어.”
“아니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십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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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벤트 참여가 무척이나 저조하네요.
생각보다 어려운 이벤트였나요? ^^
그냥 느낀 바 대로 쓰시면 되는 것인데요.
이미 참여하신 분들 중에서도, 한 명 당첨자를 찍어 놓고 있는데요....
아, 물론 최종적으로 이벤트 당첨될 분은 한 명이 아닙니다.
참여해 주시고 책 받아 가십시오.
다시 밝혀 두지만, 당첨자분들 중, 이미 사신분들께는 345권이 나오는 족족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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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바라시는 일 전부 이루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건강이야 당연히 완벽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행여 2004년 한 해, 건강 안 좋으셨던 분들께서는 2005년 건강하고 행복한 삶 가득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04년 한해.
독자여러분들이 계셨기에 충실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연참대전은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4등인가요?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전혀 들지 않네요.
매일 매일 읽어주시는 분들 계시고, 매일 매일 글 쓰면서 많은 이야기 들으니,
그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껴 주시는 분들, 읽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