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작검(朱雀劍).
사방신검(四方神劍) 중 남방검(南方劍)을 나타내는 남천(南天)의 주작신검(朱雀神劍)은 달리 봉황신도(鳳凰神刀)라고도 불리며, 사방의 신검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전해진다.
고대. 동방 대제국이 중원 땅에 들불 같은 기세를 일으키고 있을 때, 남방 일곱 별의 기운을 품고, 남천(南天)의 성화(聖火)를 태워내던 고대의 무구라 알려져 있다.
완만하게 휘어진 검인(劍刃)은 홍백의 신비로운 광채를 띄고 있다 하였으며 재질(材質)은 역시나 불명(不明)이다. 사방신검 중 하나로서 검(劍)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도(刀)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어, 주작도(朱雀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었다.
검신(劍身), 또는 도신(刀身)은 이(二) 척(尺) 오(五) 촌(寸)으로 태도(太刀)라 할 만한 위용을 자랑하며 검병, 또는 도병은 십(十) 촌(寸)에 이른다.
사방신검 중 병기(兵器)로서의 존재 목적에 가장 적합한 신검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애초부터 무구(巫具)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술가에서는 예측 못할 화기(火氣)의 천성적인 흉폭성을 경고하며 사방신검 중 최고로 위험한 무구라 평가하고 있다한다. 그런 만큼 병기로서의 살상력에 있어서도 백호신검 이상이라고까지 이야기 되고 있다.
제작자는 불명으로 인세에서 그 유래를 찾기가 힘들다.
다음은 현무검에 관한…중략…….
한백무림서 병기편(兵器篇).
제일 장 검(劍) 中에서.
청풍이 매가장에 가 있던 동안, 강호는 또 한번의 풍파를 겪고 있었다.
풍파의 핵은 바로 철기맹을 몰아치는 북풍단주 명경.
그의 압도적인 무위 앞에 수많은 거점들을 잃어버린 철기맹은 결국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성혈교로부터 지원받은 신장귀 다섯과 숨겨 두었던 진짜 주력인 흑철단 열명이 투입되었으며, 거기에 더해 철기대 갑자조 이십 오명까지 동원되었으니, 정예란 정예들은 모조리 투입하여 명경 한 사람을 노렸던 것이다.
반나절. 반나절이었다. 그들이 전멸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하원(河源)의 호변(湖邊)에서 벌어진 사십 대 일의 대 격전은 처음부터 끝 까지 일방적으로 전개 되었다 말해졌다.
그 뿐이 아니었다.
북풍단주 명경은 그 하원의 일전 이후, 전장의 무인집단인 북풍단과 합류하게 된다.
내력마라 불리는 막강한 기마들을 이끌고, 푸른 깃발을 휘날리며 질주하는 그들의 무력 앞에, 철기맹 문도들로서는 더 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었다.
맞닥뜨리는 족족 퇴각이요, 싸우는 족족 전멸이다.
신기의 병법과 예측 못한 술수들로 음지의 강호인들을 열광케 했던 철기맹주 탁무양일지라도 속수무책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궁지에 몰린 철기맹이다.
철기군 탁무양은 결국 북풍단과의 교전을 철저하게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북풍단 뿐이 아니다. 화산파나 다른 문파들과의 싸움도 완전히 중단했다. 북풍단이 오고 있다고 하면 그 지역 모든 철기맹 문도를 물렸고, 마찬가지로 화산 검수들이 몰려들면 그 쪽의 병대를 모조리 철수시켰다.
남곤산에서 정호산까지.
철기맹은 근거지도 만들지 않은 채, 이동만을 거듭했다.
일구어 놓았던 광동성 근거지들을 완전히 포기했으며, 광서성, 그리고 귀주성까지 대대적인 도주를 감행했던 것이다.
“주작검의 위치가 포착되었네. 현무검은 성혈교로 흘러 들어간 듯하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더군. 더 조사가 필요할 듯 싶네.”
매가장을 떠나와 제남의 산동지부로 돌아 온지도 열흘 째.
시끌 시끌한 강호의 풍문들 사이에서도 전심전력으로 고생을 해 준 이지정이다. 청풍이 깊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청풍의 목소리에는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감사의 염을 받는 이지정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지 않다네.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자네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꺼이 도움을 주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거든.”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진심일세.”
호감과 기대가 한데 어우러진 눈빛이다.
청풍에게 호의를 느끼는 자가 이 사람 하나였던가.
그것이야말로 청풍이 지닌 또 하나의 힘이다. 사람을 끄는 능력이었다.
“인사 치례는 그만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지.”
이지정이 잠시 말을 끊고, 몇 장의 종이들과 죽간을 꺼내 놓았다. 순식간에 사무적인 태도로 돌변하는 모습, 유능한 서천각 인재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주작검은 현재, 낭인들의 수중에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네. 강호 낭인들 중, 가장 신비롭다는 귀장낭인이 가지고 있다 하네. 그가 지닌 보도(寶刀)의 형상과, 세간에 알려진 주작검의 특징이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밝혀졌어. 여기 이것을 보게.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귀장낭인의 정보라네.”
파락. 파락.
종이 한 장을 뽑아들어 청풍에게 건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본명 파악 불가. 출신 파악 불가. 기이한 부적술을 펼친다고 하지만 제대로 확인된 바는 없음. 주작검으로 추정되는 검을 들고 다니지만 직접 휘두르는 것을 본 자는 없음. 달리 창술에 능하고, 실전적인 권법을 구사함.”
청풍이 보고 있는 종이를 미리 외워둔 것 처럼 술술 이야기하는 이지정이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듯, 종이 위에 있는 글자들을 훑어낸 청풍이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확인 불가 투성이로군요.”
“그래. 귀장낭인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거의 없지. 대신, 그 일행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바가 많아.”
또 한 장의 종이를 꺼낸다.
종이의 맨 위에 있는 두 글자. 귀도(鬼刀)였다.
“귀도. 귀장낭인, 귀호와 함께, 그들 세명의 우두머리라 여겨지는 자이네.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낭인이야. 서천각에서 뿐 아니라, 청성파(靑城派) 척무단(拓霧團)이나 개방의 후구당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하지.”
“강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낭인들이란 본디 황야를 헤매이며 개인적인 승부에 목숨을 걸거나, 돈에 무공을 팔고 다니는 무리들이다. 이합집산이 심하고, 단합된 조직을 만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바, 그런 만큼, 일개 낭인에 불과한 자를 구파 일방에서까지 주목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네. 낭인들 중에서, 그 정점을 이야기 한다면, 낭인왕(狼人王)이란 칭호를 쓴다고 하지. 많고 많은 낭인들 중에서 당대에 낭인왕이라 불리는 세 명밖에 없어. 헌데 이 귀도란 자는 그들 이상이라고까지 평가되고 있을 정도야. 뿌리 없는 낭인이라고 가볍게 볼 수가 없다는 이야기일세. 아니, 가볍게 보았다가는 큰일을 겪겠지.”
이 정도까지 이야기한다는 것은 확실히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귀도.
주작검을 얻는 데 있어, 또 하나 장벽이 될 수 있는 자다.
주작검을 얻는 것도 청룡검 때처럼 순탄치 않을 것이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귀도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조사를 지시해 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동향과 위치에 관한 정보라면 어느 지부에 가서든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네. 백매화 은매패에 대한 협조도 지시해 놓았으니, 운신하기도 훨씬 편할 거야. 다만 서천각에 공식적으로 전달한 사항인 만큼, 집법원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겠지.”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십시오.”
태연하게 대답하는 청풍이다.
신뢰 어린 눈빛을 보내는 이지정, 그가 다시 한번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괜찮겠지. 무운을 빌겠어. 출발은 바로 할 생각인가.”
“물론입니다.”
곧바로 대답한다.
새롭게 닦은 무공이 있고, 새롭게 얻은 조력자들이 있다.
또 다시 나아가는 일보. 격동의 강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안으로 뛰어드는 청풍에겐 더 이상 망설임이나 주저함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산동에서 하남.
하남에서 호광으로.
청풍의 행보는 무척이나 빨랐다.
귀도의 위치가 호남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었기에 잡혀진 행보다.
그러나 귀도 역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상황.
청풍은 주요 지부들을 거쳐 갈 때마다, 서천각을 통해 귀도의 동향을 그 때 그 때 확인해 놓아야만 했다.
그렇게 호북지역 의창(宜昌)까지 이르렀을 때다.
청풍은 의창지부 서천각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산동지부 이 사숙께 연락 받았습니다.”
깍듯이 인사하는 이, 책임감 넘치는 말투에 밝은 얼굴을 지닌 젊은 제자였다.
“귀도의 위치에 대해 알려드리라고 하셨지요. 귀도, 귀호, 귀장낭인으로 구성된 일행은 호남 북부로부터 빠른 속도로 남하 중입니다. 현재는 동정호 북면에 위치한 안항 인근을 지나고 있습니다.”
의창 서천각 안쪽의 중지.
한 쪽 벽면에는 호북과 호남을 아우르는 호광성 전체의 전도가 걸려 있었다.
젊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이 곧 귀도가 지나치고 있다는 안항이었다. 잠시 말을 멈춘 그가 탁자 위에 널려진 종이 한 장을 펴 들었다.
“귀도의 움직임은 그렇습니다만, 따로 특기할 만한 사항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청풍이 거쳐 온 화산파 지부가 네 곳이다.
그 곳 어디에서도 귀도의 위치 외에 다른 정보를 준 곳은 없었다. 뭔가 예측 못할 일이 벌어진 모양, 청풍은 잠자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북풍단주에 대해서는 들어 보셨지요?”
이제는 어디에서나 북풍단주로 불리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해서는 당연히 계속하여 듣고 있다. 현 강호 최대의 관심사가 북풍단주 명경의 무위일진데, 어찌 모를 수가 있을진가. 청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풍단과 합류하여 철기맹을 귀주성까지 몰아쳤던 그죠. 헌데 그가 북풍단을 빠져 나와 단독 행동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젊은 제자가 어디서 준비했는지, 짤막한 막대기 하나를 들고 호광성 남서부에서 북동부로 향하는 한 줄기 선을 그려냈다. 북풍단주의 이동 방향을 의미하는 듯, 제자의 설명이 계속하여 이어졌다.
“따로 떨어져 나온 북풍단주는 한 동안 성혈교 무인들에게 추격을 받았습니다만, 지금은 모두 뿌리친 상태지요. 멈추지 않고 직선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 목적지는 남궁세가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절강일미(絶江一美)를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절강일미란 모용세가의 모용청을 말함이다.
명경이 철기맹, 성혈교와 일전을 치르는 동안, 남궁세가와 모용세가는 강소성 소주에 숨어 있던 모용청을 찾아내었고, 그 즉시 모용세가 본가로 압송되었다 전해지고 있었다.
두 세가는 놀랍게도 몇 달 동안 사라졌던 모용청을 또 다시 혼인식에 세우기로 결정했으며, 그 두 번째로 행해지는 혼인 장소는 남궁세가라 알려졌다.
북풍단주와 절강일미.
명경이 남궁세가로 향한다면 그것은 분명 모용청을 되찾기 위함이라 해석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짐작되는 대목, 역시나 굉장한 남자다. 아무리 남녀 문제가 걸렸다고 한들, 전투 중에서 몸을 빼 그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 파격과 과감함은 과연 아니 놀랍다 할 수 없었다.
“절강일미와 북풍단주의 인연에 대한 것은 이제 모든 강호인이 아는 내용이지요. 아, 이야기가 옆길로 샜군요. 여하튼 보십시오. 북풍단주의 목적지가 남궁세가라 했을 때, 그 직선 경로는 이렇습니다.”
지도의 한 곳에 머물러 있던 막대기가 쭉 길게 이어지는 직선을 그렸다.
“그리고 보십시오. 귀도 일행의 남하 방향을 보면 이런 선이 나오지요.”
쭉 그어 내리는 선.
그것을 본 청풍의 눈이 번쩍 기광을 발했다.
“설마......만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귀도의 진행방향을 보면, 더욱 뚜렷해집니다. 칠일 전 이곳에서 한번 미세하게 방향을 틀었고, 삼일 전에도 이쪽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게다가 호광 전역의 낭인들이 정보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더군요. 북풍단주의 움직이는 속도를 예측하고 이동하는 양상입니다. 고로, 서천각에서는 귀도 일행의 목표가 북풍단주일 것이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상황입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귀도가 북풍단주를 찾는다.
청풍은 그 교차되는 가상의 선들을 그려보며, 또 한 번의 풍파를 직감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지정이 넘겨 준 자료에 따르면, 귀도와 그 일행들을 절대로 의뢰 없이 나서는 일이 없다고 되어 있었다. 그것도 고액의 의뢰에만 나선다 했으니, 이번 귀도의 움직임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명경과 귀도의 만남.
왠지 모를 피냄새를 느낀 청풍이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보고를 해 준 젊은 제자에게 말했다.
“일이 급하게 되었네. 좋은 정보를 줘서 정말 고마워.”
이제는 한 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청풍의 위치는 아직 호북.
북풍단주와 귀도의 움직이는 속도를 볼 때, 청풍으로서는 아무리 서둘러도, 두 사람의 만남보다 하루 내지는 이틀 정도 늦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대한 빨리 움직일 것.
청풍의 말에 되려 고개를 숙였던 젊은 제자는, 머리를 든 순간 이미 청풍이 사라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화산파 의창 지부의 건물을 나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와중에서도, 최대한 경공을 펼치는 청풍이다. 그의 몸이 바람을 가르며 해 뜨는 남쪽으로, 가장 밝고 뜨거운 남쪽 하늘 아래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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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쉬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