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156)

  

텅! 파아아!

지붕으로 올라간 세 개의 인영은 빠르게 그 위를 가로질러 옆 건물의 위 쪽으로 몸을 날렸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밑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위다! 저 쪽이야! 모두 쫓아라!”

강남제일포쾌라는 위연의 목소리다. 골목길을 가득 채우고 있던 관군들이 그의 명령에 따라 온 힘을 다하여 뛰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소란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과, 이곳저곳에서 발해지는 고함으로 흥청거리는 유흥가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신호탄을 쏴! 성벽으로 전령을 보내서 궁수들을 배치시키도록 해!”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늘로 치솟는 강전이다.

강전 끝에서 터지는 붉은 색 불꽃을 확인한 위연이 이내 땅을 박차고 담벼락 위로 몸을 날렸다. 

쐐애액!

경공을 펼치는 속도가 굉장했다.  

두 개의 지붕을 뛰어 넘으며 청풍과 귀장낭인을 시야에 잡아둔 위연이 허리에 묶여 있던 거무튀튀한 각궁(角弓) 하나를 풀어 낸다. 이어, 등 뒤의 매달린 전통으로 오른 손을 돌리더니, 강철로 된 철시(鐵矢) 하나를 빼 들었다.

“천왕시(天王矢)......! 옵니다! 조심하십시오!”

귀장낭인이 흘끗 뒤를 돌아보며 경호성을 내뱉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이 쪽을 겨누는 위연이다.

시위를 놓는 가벼운 손짓 뒤로, 바람을 가르는 강렬한 파공성이 울려 왔다.

위이이잉!

순식간에 짓쳐드는 철시다.

청풍이 지붕을 박찬 것에 이어, 귀장낭인과 귀호도 다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콰아아앙! 

그들의 발치를 스쳐가며 건물의 지붕을 꿰뚫은 철시가 무지막지한 폭음을 울렸다.

우수수 흩어지는 기와조각이 살벌하다. 

인정사정 봐 주지 않는 일격. 이것은 이미 한 발의 화살이 아니었다. 별호가 궁왕(弓王)이라더니, 위력이 축소된 화포(火砲)를 쏘아내는 것 같았다.

“이 쪽으로!”

귀장낭인이 서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동물적인 몸놀림을 보이며 담벼락을 뛰어넘는 귀호가 까마득하게 보이는 성벽 남쪽을 가리켰다. 

“아까 들어온 남벽(南壁)이 가장 낮지 않나? 서벽은 높아!”

“신호탄이 떴습니다. 고수가 더 있다는 이야기지요! 남벽은 낮은 만큼 경계도 삼엄합니다. 그럴 바엔 서벽(西壁)이 나아요!”   

“하지만 이 놈을 들고 넘기엔 무리다!”

움직이지 못하는 귀도를 간과한 계산이다.

귀장낭인이 귀호의 어깨에 매달린 귀도를 한번 돌아보고는 이를 악물고, 방향을 바꾸었다.

“할 수 없군요! 남벽으로 갑니다!”

한번 꼬인 움직임이다.

그것은 따라오는 위연에게 거리를 좁히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궁왕, 철시의 파괴력 못지않은 경공술을 보여주면서 몸을 날린다.

그의 오른손이 각궁의 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파아앙! 피이이잉!

아까보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닥쳐오는 속도도 훨씬 더 빨랐다.

청풍과 귀장낭인 사이로 무섭게 파고들더니, 귀호를 향해 날아간다. 귀도를 들쳐 메고 움직인다는 약점을 노린 것이다. 

콰콰쾅!

솟구친 귀호의 발밑에서 지붕의 한 귀퉁이가 통째로 터져나가 버렸다.

한 바퀴 돌아 담벼락 위로 내려서는 귀호다. 탄력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어깨 위의 귀도를 떠받치는 몸놀림이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이번에는 위험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대단한 묘기를 보여 주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보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직면할 것이다.

귀호의 외침을 들은 귀장낭인이 한번 뒤를 돌아보며 위연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아래쪽을 가리켰다.

“할 수 없습니다. 아래로 가요!”

땅으로 내려가자는 이야기다.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공중보다는 뭐라도 서 있을 골목길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텅! 파파팍!

담벼락 아래 건물 사이의 소로(小路)로 달려 나간다.

하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오산(誤算)이었을까.

지붕 위를 빠르게 뛰어넘는 위연에게 있어, 이 위치는 하늘에서 요격(邀擊)하기에 알맞은 형세라고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한밤 중.

대낮이라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의도했던 장애물이 충분했겠지만, 지금은 유흥가가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나와 있지 않을 새벽이다.

흥청거리는 유곽은 이미 저 뒤 쪽, 청풍과 귀도 일행이 뛰어가는 길 위에는 사람 그림자를 단 하나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파앙! 피이이이잉!

이번에도 목표는 귀호.

좁은 담벼락 사이에서 휘돌아 움직이는 그 밑에 강렬한 폭음이 뒤따랐다.   

콰아아앙!

흙먼지가 치솟고, 돌가루가 튀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 쏘는 일격이라 그 위력이 더욱 강해진 모양이다. 게다가 쫓아오는 기세까지 탔으니 말할 것도 없다. 

설상가상이라.

자꾸만 격하게 움직여서인지, 귀호의 어깨에 얹혀진 귀도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귀호의 가슴 어림에 번져가는 핏물. 귀도의 입에서부터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길!”

이래서야 속도를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이상 속도를 줄여서는 위연에게 따라잡히고 말 터.  

귀장낭인이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듯, 품속을 뒤져 한 다발의 종이뭉치를 꺼내 들었다.

‘부적(附籍)?!’ 

노란 종이에 주사로 그려진 도형들이 특이했다. 귀장낭인이 재빠르게 손을 놀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呪文)을 되 뇌였다.

쐐애애애액!

다섯 장의 부적들이 하늘을 난다.

마치 비도(飛刀)를 던지기라도 한 것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것은!”

외마디 외침을 발하는 위연이다.

그의 오른손이 이번에는 등 뒤가 아니라 허리 쪽으로 돌아갔다. 

등에 지고 있는 전통과 달리 허리춤의 전통에는 두꺼운 철시가 아니라 날렵한 목전(木箭)이 채워져 있었던 것. 순식간에 쏘아내는 다섯 발 연환사다.

짓쳐들던 부적 다섯 장을 모조리 떨구어 버렸다.

“부적술! 귀장낭인, 역시나 귀장낭인이 맞구나!”

그만한 연환사를 펼치는 것은 궁왕이란 칭호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빠르던 경공의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 옆은 귀호로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가!!”

담벼락을 박차며 외치는 위연이다.

하지만 구원(舊怨)이 담겨있는 그의 일갈에 대한 대답은 또 다시 날아오는 다섯 장의 부적들일 뿐이다.

공중에 뜬 상태 그대로 활시위를 튕기며 삼엄하게 짓쳐드는 부적들을 모두 다 막아냈다.

‘대단하군!’

귀장낭인의 부적술이나, 궁왕의 궁술이나, 하나 같이 놀라운 절기들뿐이다.

청풍이 나설 여지는 없는 것인가.

위태위태하기는 해도, 그렇다고 하여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귀호와 귀장낭인의 대응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뜻이었다.

타탓! 타타탓!

한 번씩 부적들을 던지는 귀장낭인이다.

위연을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덕분에 상당한 거리를 벌었다.

남쪽 성벽이 커다랗게 보일만큼 가까워졌을 때.

청풍과 귀호가 동시에 한 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또 뭔가가 온다!”

부적을 날리던 귀장낭인이 귀호의 외침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남쪽 성벽 좌측으로부터 백의금사(白衣金絲) 제복의 남자 한 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기도, 전형적인 무골(武骨)을 지녔다.

가슴에 새겨진 세 글자 금의위(錦衣衛). 손에는 어떤 병장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원 위사! 놈들을 막아 주시오!”

멀리서 그를 본 위연이 큰 소리로 외쳤다.

뒤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위연의 것이었다.

원 위사라 불린 백의금사 무인.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행하여 속도를 더했다. 더불어 성벽에 있던 관군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며 길목을 차단해 왔다.

‘빠르군.’

예상보다 빠르다.

관군들의 기민함이 이 정도나 되었던가 싶을 정도다.

수많은 강호인들을 상대해 보았고, 여러 방파들과 부딪쳐 본 청풍이었지만, 이렇게 발 빠른 움직임은 몇 번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무공들을 익히지 않은 관군들임에야, 확실히 의외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뛰던 것을 멈춘 귀호다. 

처음부터 서벽으로 갔어야만 했던 것일까.

한 눈에 들어오는 관병들만도 오십 명이 넘는 가운데, 그 선두로는 무공의 고수가 버티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뒤에서는 궁왕 위연이 거리를 잡고 각궁을 겨누어 온다. 

최악의 상황이다. 진퇴양난이 따로 없는 것이다. 

“귀장낭인. 귀호. 거기 들쳐 업고 있는 것은 귀도인가? 제보를 받고도 반신반의 했었는데, 이제야 잡는구나. 원 위사, 이들이 그 유명한 귀도 일파라오.” 

관군들이 들고 있는 횃불로 성벽 밑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었다.

중심에 선 청풍과 귀도 일행. 원 위사라 불린 자가 다가오더니, 그들의 앞에 버텨 섰다.

“귀도. 귀장낭인.......네 놈들이 저지른 태산 마금뢰(魔禁牢)의 일은 정말 대단했지. 백발(白髮)에 묘안(猫眼)이라, 귀호는 예상했던 대로 금뢰에 갇혀있던 육호(陸狐)였었군.”

일렁이는 불빛에 비쳐드는 음영들.

원 위사의 얼굴을 보던 귀장낭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백의 금사 제복, 금색 실로 수놓아진 문양들이 화려했다.

한 손을 들어 이마를 짚는 귀장낭인이다. 그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음성이 새어 나왔다.

“금.....의위.......?”

“그래. 금의위다. 마금뢰의 일은 동창이 맡아서 하는 일이지만, 금의위도 네 놈들에게 관심이 많았어.”

“동창........금의위........!”

혼란스러움을 품고 있는 목소리다.

고통을 느끼는 듯 머리를 감싸는 손가락, 그것을 보는 원 위사가 일순 정색을 하더니, 두 눈에 기광을 번뜩였다.

“네 놈.......이상하게 낯이 익다. 네 놈을 본 적이 있어.”

“날.......본 적이 있다고?”

원 위사가 귀장낭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그 역시 과거의 어느 곳을 찾아가는 듯, 이윽고 그의 입이 열리며 침중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북경, 어전 무도 대회. 네 놈 거기에 있었지 않았나?” 

귀장낭인의 얼굴이 크게 굳어졌다.

어전 무도 대회.

충격을 받은 듯한 귀장낭인의 귓가로, 원 위사의 말이 몰아붙이듯 더해졌다.

“내 이름은 원태다. 무도 대회 이후, 금의위에 발탁되었지. 한 번은 보았을 텐데. 기억나지 않는가?”

굳어진 얼굴에 원래 없었던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얗게 탈색된 얼굴.

혼란이 극에 달한 눈빛이다. 

 느릿느릿, 그의 입이 딱딱 끊어지는 분절음을 발했다.

“그런........기억.......은........없어.......”

청풍은 그 순간, 귀장낭인의 등 뒤로 겹치는 하나의 흐릿한 형체를 볼 수 있었다.

투명하게 비쳐드는 모습.

장수(將帥)의 형상이다. 부서진 갑옷과 찢겨진 군복, 피에 젖은 육신을 지닌 장수 한 명이 그 뒤에 떠올라 있었다.

“저것이 나오다니. 이런 때에......! 

귀호가 어울리지 않는 침음성을 울렸다. 

환상처럼 어른거리는 형체.

‘귀장(鬼將).......!’

귀장낭인.

왜 귀장낭인이란 이름을 얻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다.

귀장이란 그 이름 그대로 장수의 모습을 한 귀신을 뜻함이다. 

기이하고도 기이한 일.

하지만 이상하게도 청풍은 그런 광경을 보며 크게 놀라워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것이 진짜 귀신이든, 또는 다른 뭐든지 간에, 청풍으로서는 별다른 충격을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그보다 더 대단한 것, 그 이상의 것을 몇 번이나 겪어 본 듯한 기분이었다.

청풍은 그처럼 태연했으나,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지는 않았다.

횃불 일렁이는 까마득한 하늘.

사람의 등 뒤로 올라온 귀신 된 장수의 형상을 본 관군들이 일대 소요를 일으켰던 것이다. 

“기억이 없다니 유감이군. 사이한 술수를 쓸 것이라면 사양이야. 어찌 되었든 일단 잡혀 주어야 되겠어.”

원태라는 금의위 위사 역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단지 놀라움의 표현일 뿐 조금도 겁을 먹은 것 같지 않았다. 도리어 앞으로 한 발작 나서며, 원공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내력을 끌어 올리며 삼엄한 기운을 발하는 원태.

홀린 듯 그 앞으로 걸어 나가는 귀장낭인.

마침내 본격적인 싸움이다.

귀호가 청풍을 돌아보며 물었다.

“싸울 수 있겠나?” 

괜한 질문이다. 

괜한 질문이면서도, 얼마든지 이해가 가는 질문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청풍은 동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청풍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이 손을 빌리는 것일 뿐,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청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금의위 놈은 귀장이 나왔으니 저 녀석으로 될 것이다. 손을 쓸 생각이라면 앞의 관군들이나 치워 보아라. 아니면 당장 꺼지든지.”

관군들을 뚫는 것. 

귀호가 바라는 것은 그 정도뿐이다. 

하지만 청풍은 그 말대로 관군들에게 달려드는 대신,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궁왕은?”

청풍의 시선은 궁왕 위연에게 향해 있다.

가장 위협이 되는 적. 

귀호가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포쾌 놈의 화살은 내가 어떻게든 해 보겠다. 네 놈은 관군들이나 상대해.”

청풍의 눈이 빛났다. 

한 손이 움직여 청룡검에 닿는다. 

귀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하는 말.

“그럴 수는 없지.”

청풍의 발이 움직였다.

후방을 향하여.

그가 한 마디 말을 남겼다.

“내가 맡는 것은 이 쪽이오!”

지금이다.

진실로 그의 힘이 필요한 때.

땅을 박차는 그의 발 밑에서 강력한 진각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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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이벤트가 되어버렸군요.

연재한담 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습니다.

다섯 번째 댓글 다신 분 화산질풍검 1~3권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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