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엉!
청풍의 몸이 위연을 향하여 쏘아져 나간다.
정면으로 쳐 나가는 모습.
위연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다.
일발직격의 막강함을 직접 받아내려는 그 기세에 대책 없는 저돌성을 느낀 것이다.
"그건 막을 수 없어!"
뒤에서 들려오는 귀호의 경호성 또한 청풍의 무모함을 지적하는 듯 하다.
시위가 흔들리고 화포의 위력을 지닌 강시가 하늘을 난다.
천왕시라 했던가.
파아앙! 위이이잉!
강철 화살의 날카로운 기운이 쇄도하는 것은 공기를 뒤흔드는 파공음보다 훨씬 더 빨랐다.
피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
당장이라도 꿰뚫릴 것만 같은 긴장감.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청풍의 왼손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치리링!
용갑이 진동하는 순간이다.
반보 옆으로 몸을 열고, 청룡의 발톱이 뻗어 나간다.
희푸른 광영이 허공을 수놓는 일격에, 형과 기를 완벽하게 갖춘 금강탄이 세상을 향하여 장렬한 용음을 울렸다.
쩌어어엉!!
터져 나오는 굉음에 위연의 얼굴이 굳은 것은 찰라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정련된 강철 화살이 단번에 종이짝처럼 우그러들며 튕겨 나간 것이다.
텅!
그 뿐인가.
청풍의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뽑아든 청룡검을 뒤쪽으로 여유롭게 회수하며 땅을 박찬다. 쏠 테면 얼마든지 쏘아보라는 모습이었다.
"!!"
위연의 오른손이 재빠르게 뒤로 돌아 강철 화살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시위에 걸고 쏘기까지 단숨에 이루어진다.
진신 실력을 보여주는 듯, 똑같은 위력, 아니, 더 강해진 위력으로 날아오는 철시 두발이다. 나란히 날아오는 두 화살이 맹렬한 기세로 짓쳐 들었다.
타탓!
발끝으로 땅을 밀어내는 진격은 금강호보였지만, 몸을 움직이는 회전은 조금 달랐다.
금강호보와 풍운용보가 절묘하게 상응하는 새로운 신법이다.
목과 가슴, 두 표적으로 날아오는 철시를 사선으로 바라본다.
움직이는 좌수(左手).
비껴 들었던 청룡검의 검광이 반원형의 참격(斬擊)을 내뿜었다.
콰아아아아!
거칠고 거칠었던 백야참일진데.
그 안에 목신운형의 부드러운 변화가 깃들어 있다.
흐르고 꺾으면서 공기를 가르는 진결의 전환이 백광의 검격을 연쇄적으로 상승시키면서 그 위력을 극대화한다. 부드러움으로 차분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강력함을 배가시키는 신기(神技)였다.
쩌어엉! 쩌어어엉!
두발의 강철 화살을 한꺼번에 쳐내 버리는 청룡검이다.
무섭다.
그리고 강하다.
그렇게나 위협적이었던 궁왕의 천왕시가 일격으로 파훼되고 있는 것이었다.
"치잇!"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청풍이다.
위연이 이를 악물며 후방으로 땅을 박찼다.
파아아아.
위연의 경공은 아까부터 그랬듯, 놀라운 빠르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청풍의 금강호보가 지닌 폭발력에도 불구하고, 다소나마 거리를 벌려놓는데 성공한다.
궁왕.
궁술이라 함은 무릇 상대와의 거리가 적절해야만 그 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법, 그가 궁왕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제라도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신법이 뒷받침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궁술보다 더 뛰어나게 느껴지는 경공술이다.
거리를 재면서 뒤로 몸을 날리는 위연의 손이 허리춤을 훑었다.
연환사.
목전이다.
궁왕의 명성를 입증하는 유려한 손놀림으로 순속(瞬速)의 목전을 빠르게 쏘아왔다.
피피피피피피핑!
칠연발.
천왕칠섬이다.
한꺼번에 발사된 것처럼 동시에 날아드는 화살들. 연발이되 연발이 아니다.
그 뿐인가.
철시의 육중함을 버리고 날렵하게 만들어진 목전인 만큼 그 속도가 상상을 불허한다. 순속의 칠섬이라는 궁왕의 실력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약동하는 청룡검으로 펼쳐내는 청풍의 검술은 그 순속의 한계조차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속도의 선(先).
변화의 선(先).
그 중에서도 백미는 역시나 위력의 선(先)이다.
모든 것이 앞선다.
백야참 일격이 횡으로 나아가며 세 자루 목전을 터뜨려 버렸고, 휘돌아 내 뻗는 금강탄에 또다시 세 자루 목전이 부서져 나갔다.
한 자루 놓친 목전은 방향을 전환하는 목신운형으로 비껴냈다.
방어가 곧 공격이요, 공격이 곧 방어다.
터텅!
청풍의 발이 울리는 진각음은 마치 승리를 확인하는 결정타와 같았다.
그 어떤 절기의 접근도 불허하는 청풍의 무예에, 위연의 두 눈이 불신의 빛으로 물들었다.
물러나는 위연과 청풍의 사이에는 여전히 삼 장 거리가 있었지만, 위연은 더 이상 감히 화살을 내 쏘지 못했다.
"큭!"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진로를 바꾸며 측면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옆으로 움직이며 쏘겠다는 심산이다.
허리가 아니라 등뒤로 손을 돌린 위연이다.
목전이 아니라 철시로. 일발로 승부를 짓겠다는 듯 활을 겨누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파아아아앙!
철시가 전통에서 뽑혀 나와 시위에 걸린 것은 그야말로 찰나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부러질 것처럼 휘어진 각궁이 장쾌한 발출음을 울렸다.
본신 내력이 충만하게 담긴 화살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최선을 다해줄 수밖에.
청풍은 청룡검을 잡은 손으로부터 목신의 기운을 한껏 끌어냈다.
끌어낸 기운은 자하진기와 섞이고, 다시 중단전과 상단전을 거치면서 심(心)과 혼(魂)을 담아갔다.
움직이는 검끝은 청룡의 입김이 되고, 구름을 가르는 뇌전이 되었다.
쫘자자자작!
강철의 철시가 청룡검의 검날을 만났다.
철첨(鐵尖)으로부터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
굵은 화살이 길게 길게 잘라진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이윽고 완전히 잘라져 제멋대로 날아가는 화살 한 쪽, 청풍의 뺨을 스치며 가늘고도 가는 상처를 남겼다.
강남제일포쾌 궁왕을 제압한 대가가 그것이다.
그 작은 상처로 끝.
폭출되어 나간 청풍의 신형이 위연의 지척까지 이르러 그 목덜미에 검을 올려놓았다.
"네.......네 놈은 대체.......!"
위연의 눈은 여전히 이 상황을 믿지 못하는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목덜미에 청백색 빛을 뿜는 청룡검을 내려보며, 굳은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청풍이 말했다.
"관군을 물리는 것이 어떻겠소."
막강한 무위를 보여주었으면서도 청풍의 호흡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강의검은 꺼내지도 않았다. 청룡검 한자루로 보여주는 신기(神技). 그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목소리에 위연의 얼굴이 짙은 패배감으로 물들었다.
"관군을 물리다니. 그럴......수는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만큼은 높이 사주어야할까.
청풍의 검이 몇 치만 움직여도 위연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단숨에 목이 날아갈 수도, 고통스럽게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강호를 살아가는 남아에게 있어 패배와 굴복이란 결코 같은 것이 아닌 것. 위연은 청풍의 두 눈을 직시하며 평정심을 되찾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죽여라.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래서 강남제일포쾌인가.
발악을 하며 소란을 떨지 않는 것 또한, 승자인 청풍에 대한 예우인 것 같다. 관군이라 했지만 이런 자야말로 진정한 강호인이다. 뛰어난 무인이었다.
"곤란하게 되었군."
고저 없이 발해지는 청풍의 목소리다.
마지막 한 마디.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소."
죽음의 선고인가.
두 눈을 감는 위연이다. 후회 없이 살아온 자, 죽음이 어찌 두려울까.
평온함마저 보이는 위연의 얼굴.
청풍의 눈이 번쩍이는 정광을 발했다.
치리리링.
청룡검이 회수되는 소리였다.
용갑으로 돌아가 발톱을 감추는 신검(神劍)이다. 아무런 부상도 입히지 않았다. 심지어는 혈도조차 제압하지 않았다.
왼쪽 뺨에 흐르는 한줄기 핏물을 닦아내며 몸을 돌렸다.
세상에는 결코 죽여서는 안 되는 자가 있다.
적으로 만난다해도, 그런 자는 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청풍의 방식이다.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대협의 이상(理想)이었다.
텅.
청풍의 몸이 가볍게 움직였다.
그제서야 눈을 뜨는 위연.
자신의 목덜미를 한번 만져보고는 흔들리는 눈으로 청풍의 등을 바라본다.
"졌다. 완패야."
굴욕적이어야 마땅할 상황일진데, 그의 얼굴에는 그런 굴욕감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검을 맞대고 무공을 겨룬 자, 상대의 진심을 읽을 수 있는 까닭이다. 맞상대하고 뒤돌아선 청풍의 마음에 위연을 굴복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겨루었고, 졌다.
쫓는자와 쫓기는 자. 대명률을 수호하는 관군들과 법도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의 싸움이었지만 그런 상황을 초월한 가치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강남제일포쾌.
궁왕 위연을 단숨에 꺾어버린 청풍이다.
굳이 숨기고자 한 것은 아니었으나, 청풍의 내력과 무공은 이미 내부로 깊게 갈무리되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지.
귀호의 눈 역시도 위연의 그것과 같은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관군들 사이를 민활하게 누비면서도 자꾸만 청풍을 돌아보고 있다.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파아앙! 파팡!
귀호가 성벽 쪽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귀장낭인과 원공권 원태는 처음부터 격한 손속을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권격과 권격으로 부딪치는 박투다. 주고 받는 권각 속에서 두 무인의 성취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파앙! 파파팟!
원공권 원태의 무공은 무척이나 독특했다. 원공권이라 하면, 청풍 역시 읽어본 바가 있었다. 비인부전, 일맥으로 계승되는 무공이며, 맨손으로 십팔반 병기 어떤 것이나 상대할 수 있을만한 훌륭함을 자랑한다 하였다.
강호에서 그렇게나 유명한 무공인데, 일개 금의위 위사가 그 무공을 계승했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더욱이, 원공권 원태는 평범한 금의위의 실력을 훨씬 더 상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금의위란 본디 황실 직속의 감찰기관으로서 강호의 무인들을 대거 포용하고 있었으나, 워낙에나 그 수가 많아 옥석을 가리기가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다. 개중에 절정고수 이상의 기량을 갖춘 이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헌데 원공권 원태는 그러한 옥석 중에서도 옥(玉), 그것도 탁월한 품질의 옥이었던 모양이다. 절정고수의 경계를 넘어선 무공 성취를 내보이고 있다. 호조와 구루수, 장권과 이권을 두루 쓰는 동작 전환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그처럼 훌륭한 무공을 지니고 있음에도, 귀장낭인의 민활한 공격에는 큰 효용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자꾸만 뒤로 물러나며 충격을 받고 있는 원태다.
귀장낭인의 무공이 더 강하다는 뜻. 거의 압도적이라 할만한 차이가 거기에 있었다.
극도로 실전적인 권형을 보이고 있음에도 그 안에 유장한 진결의 흐름을 품고 있다. 도도한 내력의 정화가 발경과 추수의 묘리를 돕고 있으니, 일타 일타에 강렬한 힘이 깃들어 간다.
놀라운 무공이었다.
휘어치고 돌아서는 권각이 감탄을 금치 못할 위력을 담고 있었다.
'이 무공........'
헌데,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보자니, 또 뇌리를 자극하는 것이 있었다.
어디선가 본 느낌이다.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무엇인가를 본 적이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턱, 쐐애액!
이 임기응변. 백전으로 다져진 경험의 출수가 특히 그렇다.
몸에 배어 본능에 가까운 속도로 터져 나가는 일타. 이내, 청풍은 기억에서 잊혀지질 않는 그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무당파......?!'
정확히는 무당파가 아니다.
무당파, 북풍단주가 이끌고 있던 무인들을 말함이다.
'틀림없다. 그 때의 그 무공이야.'
첫 출전, 철기맹과 싸웠던 전투에서 보았던 광경들이 주마등처럼 그려졌다. 기마 위에서, 또는 기마 안장을 박차며 움직이던 몸놀림들, 귀장낭인과 그들 사이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파아앙!
귀장낭인과 원태의 몸이 부딪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반대쪽을 향하여 튕겨 나갔다.
숨을 몰아쉬는 귀장낭인이다.
청풍은 그의 등 뒤에 떠올라 있던 기이한 형체가 점차 사그러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 정신이 돌아오고 있는 듯, 귀장낭인이 머리를 잡으며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낸다. 그것을 본 귀호가 탁한 목소리로 외쳤다.
"제길! 벌써라니.......! 그 놈을 구해! 귀장이 흩어지면 탈진한다!"
벌써가 아니다.
원태가 잘 버틴 것이라 봐야 된다.
휘청이는 귀장낭인이다.
원공권 원태가 박투에서 입은 내상을 억지로 버텨내며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몸을 날려왔다.
터엉!
청풍이 땅을 박찬것도 그 때였다.
-------------------------------------------------------------------------
오늘 아침 연재한담을 다시 보고, 정말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저 더 노력하는 모습 보여드리는 것이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보답이겠지요.
이제 음력 2004년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해,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털어버리고(저를 포함하여), 모두가 행복한 2005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반여랑 님, 예린이 님, 죄송하지만 주소 다시 보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그 동안 경황이 없어 아무런 일도 진행할 수가 없었기에...)
저저번과 저번 이벤트 당첨자 분들로 화산질풍검 1~3권이 찾아가야 되거든요.^^
또한 저번 이벤트로 한 명을 더 드리려고 합니다만, 그 당첨자는 추후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