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156)

수십 발 화살들이 내는 소리가 벌 떼의 날개소리 같았다. 위를 올려다 본 청풍의 눈이 섬광을 뿜었다.

치리링! 파아아아아!

성벽 밑.

주홍빛 횃불을 받은 그림자가 청룡의 신검과 함께 약동했다.

동방의 고묘에서 천태세에게 사사한 청룡검의 진신비기, 청룡승천(靑龍昇天)이었다.

파파파파.

놀라운 광경이었다.

쏟아지던 화살들이 청룡검의 경력을 따라 휘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십 개 화살이 하늘로 솟구친다. 넓은 범위, 옆에 있는 귀호에게 쏟아지는 화살들까지 한꺼번에 차단하고 있다. 화산이 비산하며 그려내는 궤적이 하늘로 돌아가는 한 마리 흑룡(黑龍)과도 같았다. 

“엄청나군!”

경탄성을 발한 이는 관군들 속의 원태이거나, 아니면 각궁에 철시를 걸고 있는 위연이거나. 

누가 되었든 고개를 절로 끄덕일만한 신기(神技)다. 오직 신철만이 길길이 날뛰면서 궁수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뭐하나! 또 다시 쏴라!!”

쐐새색! 위이이이잉!

두꺼운 방패를 지니고 있더라도 불안할 것 같은 공격이었지만, 청룡검 한 자루 검이 빗어내는 조화는 열개의 방패가 아쉽지 않았다. 성벽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을 향하여 먼저 앞장서는 청풍이다.

그 순간.

쏟아지는 화살비 속에서 또 한번의 섬찟한 파공음이 들려왔으니, 그것은 위연이 내쏜 천왕시였다. 청풍 본인을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진로를 방해하는 일격, 앞으로 나가려면  짓쳐드는 철시와 하늘에서의 화살비를 동시에 막아내야만 했다.

‘간다.’ 

그대로 서서 일단 하늘에서의 화살을 막아내고 볼 것인가.

아니다.

청풍은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금강호보로 땅을 밟으며, 천왕시가 날아오는 궤도 안으로 진입해 나갔다.

“합!”

청풍의 입에서 짧은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용뢰섬 일격이 펼쳐지고, 위연의 철시가 부서졌다. 

그리고 위 쪽.

철시를 받아낸 진동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청풍은 청룡검 절초, 청룡도강을 이 땅에 재현시키며 검격을 상방으로 향했다.

파파파파!

조금은 과했던 것일까.

화살을 면밀하게 차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속되는 동작도 동작이지만 오른 쪽 어깨에 귀장낭인을 들쳐 메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맨몸으로 위연의 천왕시를 파훼할 때와는 아무래도 미묘한 차이가 있었던 까닭이다.

쐐색! 쐐새색!

뚫려진 방어를 비집고 다섯 줄기의 화살이 짓쳐들어왔다.

피할 시간은 없었다. 귀장낭인의 등판에 화살들이 꽂혀질 판이었다.

‘올라가라.’

청풍의 상단전에서 영혼의 외침이 발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깨를 슬쩍 튕겨낸 청풍의 등 뒤에서 주작검이 들어있는 목갑 전체가 위쪽으로 들어올려졌다. 절묘한 동작으로 몸을 휘돌리니, 목갑의 앞면이 움직여 귀장낭인의 위쪽을 가려 버렸다. 화살들이 박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빠바바박!

응변의 신기(神技)였다. 

청풍의 몸이 탄력을 받은 듯, 계단 위를 질주했다. 그 스스로도 화살비 쯤은 방어할 수 있는 귀호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모습으로 그 뒤를 따르니, 어느 새 성벽 위다. 둘이 가로질러 올라온 계단에는 성벽에 측면사한 화살들이 빼꼭하게 틀어박혀 있었다.

“쫓아라! 쫓아!”

위에서 아래로 화살을 쏘지 않게 된 이상, 관군들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신철의 명령은 이미 한 박자 늦어 있었다. 순식간에 성벽 위의 궁수들을 제압하고, 성벽 저편을 향해 몸을 날린다. 가장 낮다는 형양성 남벽(南壁), 청풍 정도의 고수로서는 뛰어 내려도 큰 문제가 없다. 그 쪽으로의 선택이 결국 옳았음이 판명된 것이었다.

  

  

청홍무적검 청풍 대협의 행보에서 또 하나의 큰 전환점이라고 한다면, 훗날 낭인왕이라 불리게 되는 귀도와의 만남을 꼽을 수 있겠다.

이 때 이후부터 그는 비로소 무적(無敵)이란 칭호를 받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며, 대협으로서의 면모도 확실하게 드러내게 된다. 

당시의 그를 회상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귀장낭인이라 불리던 귀협(鬼俠) 단리림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 보았을 때 이 정도라 생각하면, 그 다음엔 또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흘러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 새 태풍처럼 커져 있었습니다. 초원에서 보았던 영웅들도 대단했지만, 중원 귀환 이후에 본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들을 꼽으라면 역시나 청풍 대협을 가장 위 순위에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귀협 단리림은 술가(術家)와 무가(武家) 양 쪽을 섭렵한 천재다.

숱한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많은 일화를 만들었던 귀협일진데, 청풍 대협을 그렇게나 높게 평가했다는 것은 대협의 진가가 그때부터 이미 천하를 바라보는 경지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날개를 달기 전과 후.

비상하는 영웅의 시발점은 그처럼 인연들의 중첩 속에 이미 예고되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한백무림서 인물편 제 이장

화산파 청풍 중에서.

관군들을 적으로 둔다는 것은 상당히 성가시고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기마를 기동하여 조직적으로 추격해오는 것도 그랬지만,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마을이나 도시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청풍 혼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마을에 들리든 못 들리든 상관이 없었지만, 그들 중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귀도가 함께하고 있다. 찬바람 받는 노숙으로만 버티기엔 귀도의 상세가 도통 좋아질 기미를 안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에 한번은 들려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정신을 차린 귀장낭인은 형양에서 있었던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양, 그 때의 혼란스럽던 기억에 대해 일절 이야기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홀로 감내해야할 사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었다.

“여기서 좀 쉬어야겠어요.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졌을지.”

귀장낭인이 주작검이 들어있는 목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작검. 귀장낭인이 정신을 차렸을 때, 청풍은 다시 그에게 그 목갑을 넘겨주었었다. 그것을 받아 매며 경탄의 표정을 지었던 귀장낭인의 눈빛이 생생하다. 청풍 그 자신도 어찌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는지 놀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생각보다 뿌리치기 힘들군.”

“그러게요. 아마 지금 그들은 관군들을 교체하고 있을 겁니다. 형양성 관군이 나올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으니까요. 그래도 곧바로 보충이 될 테니, 상당히 까다롭겠어요.”

주작검 목갑에는 화살촉 다섯 개가 아직도 박혀 있는 상태였다.

성벽에서 쏟아지던 화살과 활을 쏘던 궁수들.

성을 수비하는 성 바깥으로 나갈 수는 있으되 어느 정도 이상 벗어나면 안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확실한 구역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금의위 내, 몇몇 직책들에게는 언제라도 군(軍)을 동원할 수 있는 군수권이 주어지고 있었다. 신철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 군수권이라도 정해진 성역(城域)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형양의 성역을 지나쳤다면 이제 상영이나 영흥의 군사들을 새로이 동원해 와야 했던 것이다.

청풍 일행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이 그 군사들의 교체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더 거리를 벌린다면 지금이 기회라고 할 수 있었으나, 휴식을 택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들은 지쳐 있었고, 무엇보다 귀도의 상태가 안 좋았다. 기마병들을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온종일 경공을 펼쳐왔을 뿐 아니라, 중간 중간 직접 손을 써야만 했던 경우가 있었던 까닭이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상영의 적신당에 가봐야 될 것 같은데.”    

“예. 그래야 할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예감이 안 좋네요.”

“그런가. 하긴 피 냄새가 짙어. 차라리 더 남쪽으로 신주(伸州)까지 내려가 볼까.”

“그 때까지 형님이 버텨 주는지가 문제죠.”

“그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행보의 결정은 귀호와 귀장낭인에게 그대로 맡겨 두었다.

예감이나 피 냄새 운운하며 방향을 잡고 있는데, 그것이 또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왼쪽으로 가야겠다고 하면, 오른쪽에서 관군들이 치고 들어왔고 속도를 내야겠다고 하면 관군들 측에서도 어김없이 속도를 올려왔었다. 어쩔 수 없이 부딪친 것들도 위연이나 원태와는 싸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소규모 싸움들이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청룡검을 얻고 도주하던 때, 진로를 미리미리 파악하고 따라붙던 모산파가 떠오를 정도였다.

“정남향으로 갑니다. 이쪽 역시 예감이 안 좋기는 매한가지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요.”

청풍에게 말하는 귀장낭인, 그들은 이동을 재개했다.  

지쳐 있었다지만, 그것도 잠시의 운기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 청풍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둘도 그렇다. 순식간에 기력을 되찾고 속도를 내고 있었다.

“헌데, 이렇게나 기를 쓰고 쫓아오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오?”

한참을 더 가고 있을 때다.

청풍은 문득 의문을 느끼고 귀장낭인에게 물었다. 적신당의 참사만 보고 쫓아오기에는 너무 집요하다. 어차피 낭인들이 죽은 것, 법 알기를 우습게 아는 무리가 죽었으니, 이렇게 소란을 떨기엔 너무도 작은 일일지 몰랐다. 관병들을 이렇게나 끌어들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귀장낭인은 이런 상황까지 온 것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이어지는 말에는 그 충분한 이유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관아의 수배자니까요. 그것도 보통 수배자가 아니죠. 마금뢰(魔禁牢)라는 감옥을 털었습니다. 동창이 발칵 뒤집혔죠. 현상금도 세 명을 합치면 일만 냥에 달합니다.”

마금뢰.

그 때 원공권 원태가 지나가듯 말했던 곳도 마금뢰였었다. 

마금뢰가 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러는 것인지. 귀도와 귀호, 귀장낭인에 대하여 읽었던 기록 중에 마금뢰에 관한 것은 전혀 적혀있질 않았었다. 기밀에 속하는 일, 또는 무림에서 관여하기 힘든 사안이 얽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일만냥.

이들의 현상금이 합하여 일만냥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아찔할 정도의 금액이지만 또한 어찌 보면 유명무실한 액수.

잡아서 관가에 넘긴다고 한들, 그 돈을 그대로 지급할지도 미지수였으며, 보통 강호인들로는 그들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들 이상의 무인들이라면, 이미 일만 냥 정도에 움직일 자들은 아닌 바, 그들에게 걸린 현상금 따위는 신경 쓸 부분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금의위 신철은 달랐다.

그가 이들을 잡아서 관가에 넘긴다면, 그 일만냥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공로를 공로로 챙길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말단 관인이나 일반 강호인들과는 입장이 틀린 인물이었다.

“여하튼, 이렇게 되어서 할 말이 없습니다. 인사를 못했는데, 목숨을 구해주신 것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가 뭐가 있나! 저 놈도 노리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귀호의 투박한 말이 뒤따랐지만, 귀장낭인은 그저 웃었다. 창백한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기는 은연 중 그의 전신에 깔려있는 음울함을 슬쩍 걷어가고 있었다. 

파아아아아.

청풍과 일행이 목적지인 신주의 경계에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간만에 고운 노을이 깔려가는 늦은 오후였다. 성벽이랄 것도 세워지지 않은 조그만 도시에서 그들은 은밀하고도 빠르게 적신당 건물을 향했다.

“피 냄새는 나지 않아. 그런데, 뭔가........이상하군,”

“그렇군요.”

적신당 주변은 어김없는 유곽이었다. 이런 조그만 도시에도 세상 살림살이는 똑같다는 듯, 초저녁부터 술집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상당수 보였다.  

처음 와보는 곳이라 하면서도 뒷골목 사이로 들어가 용케 뒷문을 찾아내는 귀장낭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연초(煙草) 태우는 냄새와 함께, 시끌벅적한 도박판이 그들을 반겼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어둑 어둑한 조명에, 그야말로 진정한 낭인 소굴이다.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은 각양 각색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으며, 검패(劍牌)를 던지는 도박꾼들의 숨소리가 열기를 띄는 중이었다.

“백발귀안, 귀호잖아?”  

그들을 알아보는 낭인들이 꽤나 많았다. 진득한 공기. 연초 냄새가 마음에 안 드는 듯 귀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누가 다쳤나 보지?”

다가오며 이야기하는 남자는 웃통을 벗어재낀 모습이었다.

온 몸에 꿈틀거리는 전갈문신이 무척이나 살벌했다.

“칠갈괴(七?怪). 네 놈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구면인 모양이다. 안면이 있되, 서로 안 좋은 인연이었던 듯, 서로를 향해 뿌리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천하의 귀도님을 누가 다치게 했을까. 형양 땅 낭인들이 몰살당하고, 이어 상영의 유신소도 박살이 났다는데, 혹시 그거 네놈들 짓 아냐?”

칠갈괴란 낭인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잠잠해지는 공기.

건물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도박판이 약속이라도 한 듯 멈추어졌다. 연초 태우는 연기는 점점 더 진하게 흘러 나왔고, 매캐한 공기는 더욱 더 무겁게 변해갔다. 귀호와 귀장낭인. 그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놈들.”

“크크크. 이제야 알았나? 우리는 네놈들을 기다리고 있었어.”

스릉. 스르릉.

좁은 경내에, 병장기 뽑히는 금속성이 가득 채워졌다.

마지막 질문, 귀장낭인이 물었다.

“의뢰인가?”

“물론이다. 내 성질이 아무리 개 같다고 한들, 구원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일까. 그것이야말로 낭인의 도리가 아니지.”

-------------------------------------------------------------------------

큰 집에 갔다 오자마자 올립니다.

인터넷을 못해서 몰랐는데, 그 새 600개를 돌파했군요!!

자, 이번 화 보신 분들은 댓글을 자 이 아래 글에 달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물론 여기다도 달아 주셔도 되고요.

600개 달아주셨던 분들이 한번 씩만 밑에 더 달아도 1000개는 거뜬하겠습니다.

그런식으로 4번이면 2005도 가능할 것 같네요.

이거 아무래도, 상품을 타는 것이 너무 제한되어 있어서 속도가 안 나는 모양인데, 천개 돌파하면 1~1000까지 숫자 두개를 랜덤하게 골라 상품을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2005 돌파하면 또 다시 1~2005  랜덤 선택으로 상품을 발송해 드려야 겠네요. 

이걸로 벌써 몇 질인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연휴 끝나면 바빠지겠군요.^^

이벤트 많은 참가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