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156)

흉흉함이 극에 달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

귀장낭인이 말했다.

“너무 얕보았어. 이 정도로 덤비다니.”

그것으로 시작이다.

칠갈괴가 등 뒤로부터 전갈의 독침과도 같은 한 자루 비수를 꺼내들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장내의 낭인들이 각종의 병장기를 내 뻗어 왔다. 장창과 같은 장병 외에는 휘두를 수 있는 병기들이 전부 다 있는 것 같았다. 

쐐애액! 쐐액!

파공음의 첫 목표는 가장 앞에 있던 귀장낭인이었다. 귀장낭인의 몸이 한 순간에 뒤로 꺾였다. 땅에 닿을 듯 젖혀졌다 올라오는 절묘함이 놀랍다. 쏟아지는 공격들을 단숨에 무위로 만드는 움직임이었다.

파라라락.

피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반격이었다. 품에 들어갔다 나오는 손놀림에 몇 장의 부적이 비산했다.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부적들이 좁은 공간에 비집고 들어가 낭인들의 팔 다리에 붙었다. 수인을 맺으며 외우는 주문이 그 뒤를 따른다. 부적의 주사문양이 기이하게 일그러지며 푸른 불꽃을 피워 올렸다.

화르르르! 

“크악!”

“술법이다!”

세 명의 낭인이 우당탕 쓰러지며, 불이 난 팔 다리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난장으로 변하는 장내다. 쓰러진 낭인들을 뛰어 넘으며 단창을 내질러 오는 놈, 뒤 쪽에서 기형도를 휘둘러 오는 놈, 옆에서 비수를 들이미는 놈까지, 귀장낭인 뿐 아니라 귀호와 청풍마저도 난마로 얽혀들 수밖에 없었다.

“이놈! 죽어라!”

연마된 초식도 없고 정심한 내력도 없는 공격들이었지만, 거칠고 투박한 일격들에, 살벌함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청풍의 눈에는 느리기 짝이 없는 공격들일 뿐이다.

막 청룡검을 뽑으려고 하는 순간.

본격적인 출수를 준비할 때였다.

칠갈괴의 뒤쪽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쇄도하는 것이 보였다.

‘빠르다!’

그 짧은 시간, 다른 낭인들의 속도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그 상대적인 빠르기를 차치하고서라도, 그것만으로 굉장한 신법이었다.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이미 귀호의 지척까지 이르러 있었다.  

“큿!”

귀호가 몸을 비틀며 물러나려 했으나, 한 발 늦고 말았다. 

이 미지의 습격자는 진실로 대단하다.

마지막 순간 한 단계 더 빠른 몸놀림을 보여 주며 뭔가를 꺼내드는데, 그 손속이 무척이나 예리했다. 첫 번째 출전, 철기맹과 싸울 당시, 송림에서 보았던 백검천마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이었다.

파앙!

“이 놈은!”

일격을 허용당하며 발하는 귀호의 외침에는 놀라움과 분노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허리를 꺾으며 물러서는 귀호에게 다시금 쇄도하는 그림자다. 귀장낭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냉심마유!!”

귀장낭인의 경악성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냉심마유라 불린 그림자가 오른손을 뻗더니, 그 손에 들린 짤막한 막대기를 귀호의 가슴에 꽂아 넣어 버렸다.

“크악!!”

그저 일격을 허용 당한 것치고는 귀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가 심하게 거칠었다. 엄청나게 큰 고통을 느끼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부들부들 떠는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그것을 본 귀장낭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마환필........!”

멈추어진 그림자.

귀호에게서 거두어 들이는 짤막한 막대기는 이제 보니 한 자루 철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비틀비틀 물러나는 귀호를 슬쩍 돌아보며, 귀장낭인에게 입을 열었다.

“후후후. 이제야 잡는군.”

냉심마유.

냉심이라 불리는 이유를 곧바로 알 수 있을 만큼, 한기(寒氣)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학자들이나 입는 유삼을 입었지만 길게 찢어진 두 눈은 어떤 흉포한 악적보다도 무서운 빛을 뿜고 있었다.

“비겁한........”

이를 가는 귀장낭인의 한 마디에, 냉심마유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시에 기습을 가해 왔다는 사실. 그가 두 눈에 진득한 살기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비겁하다니. 그런 말을 잘도 하는 군. 네놈들을 잡는 데 이 정도 준비는 당연한 것이다.” 

준비를 이야기한다.

그렇다.

냉심마유의 기습은 철저하게 계산된 공격이라 할 수 있었다. 낭인들을 앞에 세우고 방심 아닌 방심을 유도했다. 이 좁은 실내에 가득했던 연초연기도 그냥 있던 것이 아니었다. 미리 그의 존재를 알아채던 귀호의 후각을 차단하고, 더불어 시야를 안 좋게 만드는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이미 여러 번 귀도 일행과 부딪쳤던 자였기에 짤 수 있는 계책이었다.

“놈!!”

물러났던 귀호가 이빨을 드러내며 냉심마유를 덮쳐 왔다. 짙은 살기와 격한 분노.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담긴 사나움이 인세의 그것 같지가 않았다.

쐐애애액! 

그러나 거기에 맞서는 냉심마유의 움직임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손에 든 것. 푸른빛이 감도는 한 자루 철필(鐵筆)을 휘돌리며 귀호의 오른손을 마주쳐간다. 귀호의 힘이 어떻든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다는 기색이었다.

치이이이익.

“크아아악!”

철필.

마환필에 얻어맞은 귀호의 팔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칙칙한 연기가 올라오는 귀호의 오른팔에는 놀랍게도 옅은 황색이 감도는 하얀 털이 곤두서고 있었다. 기사(奇事)였다. 

“네 놈 같은 것이 덤벼들 때가 아니지.”

냉심마유의 목소리는 냉혹했다.

그 자신만만함, 이 마환필에는 귀호의 힘을 억제하는 기기묘묘한 공능이 깃들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비틀, 뒤로 물러나는 귀호가 급기야 어깨에 메고 있었던 귀도의 몸까지 땅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귀도 쪽으로 한발 다가가는 냉심마유. 그가 웃었다.

“그 꼴이라니. 후후후. 그 정도로 낭인왕이라.........”

냉심마유가 마환필을 치켜 들었다.

그것을 본 청풍이 손을 쓰려 했지만, 귀장낭인이 한 발 더 빨랐다.

품에서 나오는 손. 

다섯 장의 부적이 냉심마유를 향하여 날아간 것이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둘러친 부적들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냉심마유의 대응은 귀호의 공격을 받아낼 때처럼 가볍기만 했다. 출수하려던 넣었던 마환필을 회수하며 허공을 향해 흩뿌린다. 그러자, 물 찬 제비처럼 날아들던 부적들이 갑작스레 힘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 쳐 버렸다.

“아직도 모르겠나? 법술로는 안 된다니까.”

이 또한 마환필의 효용이다. 

부적술이나 여타 술법이 통하지 않는다.  

귀장낭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부적술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부적들 내 던진 것은 시간을 끌기 위해서다. 

귀장낭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

텅!

귀장낭인이 등 뒤에서 붉은 목갑을 들어올려 땅 위에 내리 찍었다. 냉심마유에게 나서려던 청풍이 멈칫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붉은 목갑.   

주작검이다. 귀장낭인이 주작검이 든 목갑 위에 손을 올리자, 와작 하고 목갑의 윗부분이 부서져 나왔다. 

그 안에서 떠오르는 것.

청풍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생각했던 것과 무척이나 다르다.

검자루부터 검병, 검날까지 모든 부분이 부적(符籍)으로 덮여 있었다. 바깥으로 드러난 부분이 한 치도 없을 만큼, 빽빽하게 붙어 있는 부적들이다. 가득 차 있는 붉은 색 주사 문양들이 꿈틀거릴 듯 기괴하게 보일 정도였다.

“오호........그걸 꺼낸다고? 법술로 힘을 모조리 봉인한 주제에?”     

“그래도 마환필보다는 강한 법구다.” 

“우습군. 반쪽짜리 무구(巫具)로 무엇을 어쩌겠다고.”

냉심마유가 더 큰 살기를 품어 올렸다.                     

귀장낭인이 부적으로 싸여 있는 주작검의 검자루를 잡아 올렸다. 

그렇다.

귀장낭인이 주작검을 들고 다닐 수 있었던 이유. 

이런 식으로 그 부작용을 억제했던 것이다. 주술, 술법. 상단전의 힘이었다. 

“귀도 형님을 보호해 주십시오.”

그가 청풍을 보며 말했다.

주작검을 들고 냉심마유를 향해 겨누는 귀장낭인이다. 부적에 싸여진 검신에서 일렁이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풍이 귀호와 귀도 쪽을 향하여 발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걷는 청풍.

냉심마유가 출현한 순간부터 숨을 죽이고 있던 낭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청풍에게 길을 비키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드러내기 시작하는 기도에 압도당한 것일까. 그제까지 귀장낭인만을 응시하던 냉심마유가 그것을 보며 눈가를 꿈틀거렸다. 이런 놈이 또 어디서 튀어 나왔냐는 눈빛이었다.

“여하튼 알 수 없는 놈들이다.”

냉심마유.

잔인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감추어 놓았던 마지막 한 수를 꺼내 들었다.

“여기서 확실히 잡으려 했는데, 역시나 낭인들만으로는 안 되겠어.”

마환필을 들어 올려 손을 딱 쳤다.

그저 한번 친 것인데, 기이한 울림을 품고 뻗어나갔다. 그러자 바로 위의 천장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지끈 하고, 한 개의 인영이 쏟아져 내렸다.     

“단심맹!”

비산하는 나무파편들 가운데로 내려온 인영은 흑의무복을 입고 있었다.

귀장낭인이 그 흑의무복의 신법을 알아보고 놀라던 순간.

냉심마유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푹 꺼지듯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주변에 둘러친 낭인들이 공격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또 한번의 노림수다.

시선을 집중시키고, 틈을 노리려는 수작.

얕은 수법이지만 냉심마유의 신법이 어우러지니 그것은 더 이상 얕은 수법이라 말할 수 없다. 실력이 있더라도 다른 수작을 부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자가 가장 위협적이고 까다로운 자였다.

귀장낭인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냉심마유의 위치를 파악하려 할 때다.

청룡검 용갑으로 낭인들의 병장기를 차단하던 청풍이 큰 소리로 외쳤다.

“왼 쪽!”

청풍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냉심마유. 귀장낭인이 두 눈을 빛내며, 주저 없이 좌측을 향해 주작검을 휘둘렀다.  

째애앵!

마환필과 부딪친 주작검에서 귀를 찢는 진동음이 터져 나왔다.

청풍 쪽을 흘끔 보는 냉심마유가 두 눈에 지독한 살기를 떠올렸다. 모처럼의 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분노를 느낀 모양이었다.

“뭐가 되었든 네놈들은 여기서 죽어!” 

냉심마유가 마환필을 빠르게 휘둘러 왔다. 

거기에 맞서는 주작검의 움직임이 절묘하다. 감각적으로 휘두르는 검이, 놀라운 방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르르륵!

주작검이 스쳐간 냉심마유의 어깨어림에서 붉은 불길이 솟아 올랐다.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귀장낭인의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주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중, 화술(火術)을 일으키는 주작검이라니, 또 새로운 공능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파라락!

하지만 냉심마유는 만만치 않았다.

불길이 솟아 오르는 것에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어깨 위로 다른 쪽 팔을 휘두른다. 순식간에 사그러드는 불길이다. 내공의 깊이가 놀라운 자였다.

꽝!

반격은 더 무서웠다.

유령 같은 신법으로 치고 들어와 마환필을 찍어 오는데, 어렵사리 피해낸 목판 바닥이 움푹 부서져 버렸다. 백전의 경험을 엿볼 수 있는 귀장낭인의 몸놀림이 아니였었다면, 즉사를 면치 못할 공격이었다.

“뒤!”

챙! 채채챙!

얽혀 드는 무기들을 여유롭게 튕겨내던 청풍이 또 한번 경호성을 울렸다.

귀장낭인의 뒤 쪽.

아까부터 기회를 노리고 있던 칠갈괴가 비수를 찔러 오고 있었다. 아슬 아슬하게 피해내는 귀장낭인의 옆으로 냉심마유의 마환필이 짓쳐 들었다. 완전히 흐트러진 자세, 주작검으로 막았으나, 미처 그 경력을 다 흩어내지 못하고 만다. 튕겨 나오는 귀장낭인이 다시 몸을 바로 잡았으나, 쿨럭, 하는 기침소리와 함께 한 움큼의 선혈을 뱉어내는 것이 보였다. 

“이 놈. 또 다시.......!”

냉심마유는 고수다.

고수이면서 체면도 상식도 아무것도 없는 자다. 칠갈괴 같은 자가 합공을 하도록 놔 두는 것도 그렇고, 그 기회를 살려 치명타를 입히는 것도 그렇다. 별호에 마(魔)가 들어 있는 것은 그래서다. 유(儒)라는 글자는 감히 쓸 자격조차 없는 마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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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는 절친한 친구 녀석들이 마침내 면허를 따고 환송회를 하는 날이었기에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보니, 댓글 수의 성장이 상당히 정체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글이 올라오지 않은 여파라 생각되네요.^^

주말에도 쉬지 않을 테니, 힘을 더 보태 주셨으면 합니다.

이 전에 댓글 다셨던 분들이 한 번씩만 더 달으셔도, 고지가 눈 앞에 보일 것 같습니다만.....^^

이미 과분한 관심 보여주셨기에 몸둘 바를 모르겠으나, 여기까지 왔으니 2005 좋은 출발로 기념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인사에 더하여

새롭게 개학하시는 분,

새로운 일 시작하시는 분,

특별한 계획 있으신 모든 분들께.

많은 행운 있으시길 바라는 댓글이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댓글이 달리는 곳은, 모두 아시겠지만, 이 글 밑에서 두번째 글-'이벤트 진행중' 이겠지요. 거기에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마구마구 달아주시면 되겠습니다. ^^

여기까지 많은 성원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좋은 주말 되시고,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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