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무림서] 화산질풍검(華山疾風劍) 제 16 장
철기맹과 성혈교.
두 개의 문파는 이제 완전한 연합으로서 달리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철혈련이라는 명칭이 바로 그것이다.
철혈련의 근거지는 귀주성이었다. 성혈교의 총단이 위치하고 있다 밝혀진 곳이 바로 귀주성, 북풍단주의 공격을 받아 도주를 감행했던 철기맹은 귀주성에 자리를 잡고 성혈교의 비호를 받으며 전열을 가다듬어 나갔다.
본래부터 철기맹을 공격하고 있었던 화산파.
그리고 허공노사의 실종 이후 전면에 나선 무당파가 그 철혈련의 상대였다. 두 개의 거파는 그 이름만으로도 철혈련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으며, 강호인들은 하나같이 철혈련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화산과 무당은 철혈련의 방벽을 무너뜨리면서 귀주성과 맞닿은 홍강(洪江)까지 진격해 갔고, 그 곳을 거점으로 삼아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상 못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그 때, 철혈련이 과연 언제까지 버티느냐를 이야기하고 있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적습은 전혀 생각지도 않던 어느 날, 칠흑 같던 야음을 틈타 철혈련 이백 여 무인들이 홍강을 향해 기습 공격을 감행해 왔던 것이다.
공격 시간은 불과 한 시진이었다.
치고 빠지는 전술로 한 순간 썰물처럼 사라진 철혈련 무인들이다. 설마하니 이런 순간 선제공격을 해 오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상자의 수도 상당했다. 무당과 화산에 고수가 많다지만, 그처럼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는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무당파와 화산파의 무인들은 커다란 분노를 느꼈지만 함부로 추격전을 벌이지는 못했다. 선제공격을 해 왔다는 것은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뜻, 어떤 매복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고 시간이 지나면서 무당과 화산은 철혈련의 기습이 견제를 위한 심리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공격해 들어 온 병력이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상대 못할 고수들이 온 것도 아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들의 판단은 틀렸다. 철혈련의 공격은 그저 가벼운 심리전이 아니었다. 미처 하루가 다 가기도 전, 철혈련은 두 번째 기습을 가해왔다.
병법을 아는 자들도 안심을 할만한 절묘한 시점에서의 공격이었다. 게다가 이번 공격의 위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적들 중에 구파 장로들의 무공을 뛰어넘는 고수까지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중에서도 특히 돋보였던 자는 양영귀(兩靈鬼)라는 양날의 기형겸(奇形鎌)을 휘두르던 한 명의 마녀(魔女)였다. 핏줄이 드러나는 창백한 얼굴 때문에 병약해 보이기까지 한 여인이었지만, 그 무공만큼은 마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화산 혈사를 일으켰던 장본인.
양영귀의 마녀다.
화산 검수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철혈련은 그 자체로 불공대천의 원수임을. 철기맹과 성혈교는 처음부터 한 무리였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러나 양영귀의 마녀는 강했다.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화산파 무인들의 더운 피가 삽시간에 온 땅을 물들였으며, 상원진인과 정원진인이 차례로 달려들었지만 그들마저도 패배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그 때 나선 것이 바로 무당 젊은 고수였다.
파문당한 북풍단주도 아니요, 이름을 날려 온 후기지수도 아니었다. 북풍단주의 파문 사건 때, 갑작스럽게 알려지기 시작한 이름, 무당 해검지의 전설을 만들게 된 일권진산 악도군이 그였다.
얼굴에 새겨진 상처, 반쪽 밖에 없는 왼쪽 귀. 강인한 권격을 발하는 일권진산이다. 그의 무력은 실로 굉장하여 오십 합에 이르는 격전으로 마녀를 패퇴시키는 데 성공한다. 상원진인과 정원진인에 이은 차륜전이었다지만, 차륜전이 아니었다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화산 장로 두 명을 덤비고도 이기지 못한 고수를 무당의 신진 고수가 물리쳤으니, 이는 무당파에 다시없을 홍복(洪福)이었겠지만 화산파에게는 다시없는 악운(惡運)이다. 깎이고 깎이던 화산의 명예가 결국 땅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한편.
두 번의 공격이 효과를 본 후, 철혈련은 그 기세를 타고 본격적인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귀주성 서쪽과 호남성 서남단 전체가 전장으로 변한 것에는 이틀이란 짧은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고, 거듭되는 격전으로 인하여 사상자가 속출했다. 백주에도 대규모의 살육전이 벌어졌으며 민초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무림맹도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귀주는 사천성에 인접해 있으니 사천 무림맹이 소집되었으며 철기맹의 도발이후 해산되었던 중원 무림맹도 재발동 되었다. 관가와 군부에서도 이 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여 관군 투입을 검토하게 된 상황, 무림 난세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북풍단주가 죽었다던데?”
“그럴 리가 있겠어?”
“단신으로 철혈련에 쳐들어 갔었다더군. 그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고.”
“소식이 끊겼다고?”
“그래. 쳐들어갔다가 되돌아올 때, 철혈련의 무인들이 대거 따라 붙었대. 추격전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이 호남성 형산 부근이라고 하지. 없어진지도 벌써 열흘을 훌쩍 넘겼다는 거야.”
“그렇다고 죽었겠어? 그 북풍단주가?”
‘죽었을 리가 없지........’
객잔 한 구석에서 식객들의 흥분한 목소리를 듣고 있던 청풍이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었다. 온 세상을 들끓게 만들고 있는 철혈련이다. 무당파와 화산파가 통째로 얽혀 들었고, 수많은 강호 방파들이 싸움에 참가했다.
온 강호가 그곳을 주목하고 있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도 철혈련의 싸움을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검을 찬 무인들은 꿀을 찾는 벌처럼 귀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청풍은 달랐다. 묘하게도 그 싸움과는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 자신이 화산파의 제자로서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격전에 관한 소문들을 먼 곳의 이야기처럼 가볍게 들어 넘기고 있었다. 한 때는 철기맹 공격대에 참가했던 적도 있었으면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것만을 쫓고 있다. 화산 제자로서의 본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문의 무인들이 목숨을 걸고 철혈련과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화산 제자라면 응당 힘을 더하러 달려가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러나 청풍은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서두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 별로 갈 마음이 없다. 철혈련이라는 이름, 거기에서는 사방신검을 얻어야 하는 만큼의 사명(使命)이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었다.
‘그것은 내 싸움이 아니다. 내 싸움은 따로 있어.’
청풍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왜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왜 그렇게 격해졌는지도 모를 대규모의 싸움은 이미 그의 천명 밖의 일이다. 청룡검과 주작검을 얻었으니, 현무검을 찾아내고 잃어버린 백호검을 되돌려 받아야 할 때였다. 사방신검을 찾는 것 또한 결국은 화산 제자로서 받은 명령일지니, 처음부터 짚어가던 길을 계속 가겠다고 결정했을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은 산동성으로 되돌아간다.’
산동성 화산 지부로 돌아가 이 사숙, 이지정에게 정보를 얻은 후 현무검이나 백호검을 쫓을 심산이었다. 만일 단영검객 송현, 송 사숙이나 이 사숙께서 철혈련과의 싸움이 먼저라 한다면 그들의 말을 따라 귀주성으로 행보를 돌릴 생각도 있었다. 그리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촤르르륵.
주렴을 걷어내고 객잔을 나서는 그의 걸음을 따라 네 개의 검이 역동적인 움직임을 발했다.
청룡검, 주작검, 강의검, 적사검까지.
지니고 있는 검이 네 개나 되어서인지 청풍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주작검은 검폭 만을 대강 맞춘 허름한 검집에 꽂아 오른 편 허리에 매달아 놓았고, 용갑에 간직된 청룡검은 왼편 허리에 비껴 맸다. 강의검과 적사검은 등 뒤로 돌려 찬 상태였다. 누가 보아도 신기해 할 모습이다. 하지만 청풍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기도가 경지에 오르면서 가히 미모(美貌)라 할 만큼 출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않는 듯 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걸음을 빨리 하여 마을을 벗어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확실히 지나치게 눈의 띄는 모양새였던 것 같다.
마을에서부터 쫓아 온 것인지, 인기척 몇 개가 따라 붙는 것이 느껴졌다.
다섯 명.
느껴지는 무력은 변변치 않았다. 아무것도 못 배운 도적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강한 놈들은 아니다. 기껏 한 동네에서나 먹어 줄 무공이었다.
“어이! 거기 앞에 가는 놈!”
뒤로부터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린 청풍의 눈에 언덕 너머로 나타나는 다섯 명의 장한들이 비쳐 들었다.
“거기 차고 있는 물건이나 좀 보자! 어디서 주워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샌님 같은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보물 같구나!”
장한 한 명이 청룡검의 용갑을 가리켰다.
겉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검집, 누가 봐도 탐낼만한 광채를 뿜고 있었다. 그만한 기물(奇物)을 지니고 다닐 정도라면, 그에 상응하는 실력이 있어야함을 모르는 것일까.
상대도 알아보지 못한 채 시비를 걸 놈들이면 이미 말은 다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놈들이었다.
“꼴에 검을 네 자루나 들었구나! 요즘 젊은 것들은 겉멋이 들어서 탈이야!”
젊은 것들을 이야기하나 그 자신도 딱히 나이가 든 것은 아니다.
남방 특유의 느릿한 어조에, 제 말마따나 겉멋인지 어울리지도 않는 수염을 기른 놈이었다.
“말이 없구나! 이 어르신의 위용에 겁이라도 집어 먹은 모양이다! 하하하하!”
침을 튀며 터뜨리는 웃음으로 진한 주향(酒香)이 풍겨져 왔다.
술 냄새가 나는 것은 이 놈 뿐이 아니다. 이제 보니 다른 놈들도 거나하게 술이 올라 있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다가 눈에 띄는 보물을 보고 무작정 쫓아 온 것이 틀림없었다.
“겁 먹은 것 맞지? 저 얼굴 좀 보라구!”
“그런가 보오. 형님, 오줌이라도 지리겄소!”
도무지 상대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이들은 청룡검이 청룡검인지, 주작검이 주작검인지조차 알아보지도 못하는 놈들이다. 드잡이질하기에는 격에 맞지 않았다. 청풍은 놈들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어딜 가려고!”
등을 돌린다고 그냥 보내줄 놈들이 아니었다. 그야 청풍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저 손을 쓰기 싫을 뿐, 다짜고짜 주먹을 내질러 오는 것을 가볍게 피해내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도망치는 것이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도망이라.’
웃음이 나올 말이었다.
남의 물건을 탐내는 자들. 이 놈들은 징계하고픈 마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하찮다. 그냥 두고 길이나 재촉할 생각이었다.
“이 놈!”
하지만 뒤를 따라 달려오며 내는 금속성이 청풍의 발목을 잡았다. 채챙! 하고 칼을 뽑아드는 소리에 청풍을 죽이고자 하는 살기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부려본 객기라면 두고 봐 줄 수 있지만, 이만한 일로 칼을 뽑는 놈들이라면 십중팔구 악인(惡人)들이다. 청풍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끼칠 놈들이라는 이야기였다.
꾸욱.
청풍의 손이 청룡검의 검자루를 쥐었다. 단숨에 물리치면 그만, 싸움이랄 것도 없다. 용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쩌정!
첫 번째 칼날이 부서져 나가는 것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 토막 난 칼날이 하늘로 솟구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청풍의 오른발이 가볍게 땅을 찼다. 도약하는 공중에서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달려드는 적들을 맞이했다. 위에서 내려치는 참격에 두 번째 칼날이 부서지고, 세 번째 칼날의 주인이 땅을 굴렀다.
나머지 둘에게는 손을 쓸 필요조차 없었다. 두 명의 칼이 부러지고 한 명이 쓰러지자 얼이 빠진 듯 달려들지 못했다.
땅으로 내려 선 청풍이 다섯 명의 장한들을 둘러보았다. 그제서야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뒷걸음치는 모습, 경우가 없을 뿐 아니라 비굴하기까지 한 놈들이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 때였다.
“뭐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맑은 목소리.
청풍은 놀랐다. 누구도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한 까닭이다. 청풍의 눈이 빠르게 사방을 훑었다.
탁 트인 전방, 아무도 없다. 양 쪽 옆으로는 끝 모를 남쪽 대지의 평야가 펼쳐져 있다. 누군가 있다면 뒤 쪽이다. 다시 한번 같은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남의 물건을 탐내며 흉포한 병기를 휘두른 자들입니다. 죽여야지, 그대로 두고 있습니까?”
청풍의 몸이 돌아갔다.
미지(未知)의 정체가 거기에 있었다.
“모질지 못하군요. 얄팍한 성정(性情)입니다. 그것은 자비(慈悲)도 무엇도 아니지요.”
나타난 것은 한 명의 청년이었다.
그의 얼굴은 특별했다. 꼭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청풍에 버금가는 미청년인데다가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불같은 안광을 지니고 있다. 오랫동안 알고 있는 사람을 보는 느낌인데, 언제 만났었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안 죽일 것입니까?”
특별한 것은 그의 얼굴뿐이 아니었다.
복장도 특이했다. 적색의 무복, 타는 듯한 붉은 빛의 옷을 입고 있었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팔을 따라 길게 매듭지어진 붉은 끈들이다. 낮게 깔리는 바람 따라 흩날리는 모습이 새들의 날개와 같았다.
“죽이지 않을 것이오.”
청풍보다 낮은 연배로 보일 뿐 아니라 걸어오는 말 또한 존대였지만, 청풍은 하대하지 못했다. 평대를 하는 데에도 기분이 이상하다. 가볍게 대할 청년이 아니었다.
“실망이군요. 무공의 성취는 뛰어난데, 심성(心性)이 그렇게 물러서야........”
청풍의 눈에 기광이 깃들었다.
이 만남, 이 느낌.
길을 가면서 얻는 인연이다. 예전에 있었던 두 번의 만남을 떠올리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타탁.
청풍의 눈치를 보던 장한들이 기회를 잡은 듯,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것을 틈타, 자리를 뜨려는 수작이었다.
청풍은 잡지 않았다. 어차피 그 정도 놈들이라면, 이 청년의 말마따나 죽이지 않고서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붙잡아 놓고 회개를 종용한대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청풍에겐 그럴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는 바, 도망가 준다면 차라리 그것으로 좋은 일이었다.
“결국 그대로 놔 주다니요. 내가 대신 손을 쓸까요?”
무서운 청년이다.
살을 에는 듯한 살기, 공손한 어투 뒤에 감당 못할 난폭함이 엿보인다. 그 살의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주작검에서 은은한 진동이 느껴졌다.
위이잉.
다시 한번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이 청년에서 느껴지는 기도는 익숙하다. 사람이되 사람 같지 않은 이 기운, 청풍이 주작검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듯 그 검자루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의미한 살생은 원치 않소.”
청풍의 말에 청년이 미소를 지었다.
비웃는 듯한 그 웃음은 어딘지 모를 섬찟함을 담고 있다. 청년이 말했다.
“그래서야 주작검을 제대로 쓰겠습니까?”
주작검을 안다.
청풍의 눈에 깃들은 빛이 더욱 더 짙어졌다.
이 말투, 이 어조.
‘이 자는........’
청풍은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을지백과 천태세.
이 청년은 그들과 같다.
불같은 기운, 살기가 강한 자.
주작검을 가르치기 위해 온 자다. 그들과 동류이지만, 그들 누구보다도 위험하게 느껴지는 청년이었다..
“후후후. 내가 누군지 알아 챈 얼굴이군요. 나는 남강홍(南絳紅)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아직도 당신은 힘이 부족하지요. 당신에게 남천(南天)의 강함을 보여주기 위하여 내가 왔습니다.”
같은 일의 반복이다.
백호검의 무공과 청룡검의 무공.
이제는 주작검의 무공이다.
새로운 길, 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