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156)

 “오랜만에 뵙습니다.”

 “후후후. 그렇구나. 이전에는 어떤 녀석일까 궁금해서 찾아갔었는데, 이제는 그때의 미적지근했던 젊은이가 오히려 나를 찾는다라........재미있다, 재미있어. 그래서 세상은 알기 어려운 게지. 무불통지(無不通知)이나 또한 만난통지(萬難通知)라는 것이다.”

 만통자는 전혀 변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십년 전에도, 십년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다. 세월이 새겨진 채, 그대로 못 박힌 얼굴이었다.

 “그래, 홍검을 얻었군. 주작(朱雀)은 병오(丙午)의 화신(火神)으로 초풍신(招風神)이라고도 하지. 한 여름에 왕하는 흉장(兇將)으로 양의 극치다. 구설과 형전의 신으로, 지득하면 명성와 지위을 얻으며. 실하면 화재와 재병(災病)에 시달린다. 주작은 또한 재주와 기술의 신이다. 많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빼앗길 수 있다. 운명은 천명이며 인사일지니, 정진, 오직 정진뿐이 지득을 위한 길이리라.”

 내용은 다르지만 어투는 같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만통자다. 흉사는 피하고, 바른 길을 가라는 충고다.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지복을 바라는 그의 말에 청풍은 엷은 미소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보는 만통자가 마주 웃음을 지었다.

 “좋은 얼굴이다. 그 때 보았던 젊은이가 아니야. 그래,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일부러 나를 찾은 것은 아닐테고, 달리 원하는 것이 있을텐데?”

 오랜 강호 경험으로 다져진 안목이었다. 대번에 청풍의 의도를 알아챈다. 만통자의 질문에 청풍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사실은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복자(卜者)를 불렀으면 당연히 그런 이유겠나. 무엇을 원하지?”

 화통하게 말하는 만통자다. 청풍이 말을 이었다.

 “찾고자 하는 사람과 찾고자 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혹시 그런 것을 아는 것도 가능한지요?”

 “아주 못할 일은 아니지. 헌데, 화산 서천각으로는 안 된다던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허, 그것 참. 그렇다고 나를 부른다라. 이런 일은 또 처음이로구만!”

 만통자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구파가 점복을 원한다면 대사(大事)의 길일(吉日)이나 풍수(豊水) 감여(堪輿), 인연(因緣)과 운세를 묻기 위한 것이 전부다.

 헌데 청풍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구파의 제자가 사람과 물건을 찾기 위해 점복에 의지한다는 것은 만통자에게도 색다른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그래, 찾는 사람이 누구인가?”

 “흠검단주입니다. 숭무련의 무인이지요.”

 산반을 꺼내던 만통자의 얼굴이 딱 굳었다. 기분 좋아 보이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가 되물었다.

 “누구라고?” 

 “숭무련의 흠검단주 갈염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만통자가 산반을 툭 내려놓았다.

 숭무련의 이름을 듣자 태도가 달라진다. 혼쾌히 말했던 것과는 달리 마지못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숭무련에 대하여 묻는다........나는 세상을 관망하는 사람일 뿐이다. 거기에 개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하지만 할 수 없군. 일단 물어 온 것이니 답해줄 수밖에.” 

 만통자는 답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흠검단주, 그 이름만 듣고도 어디에 있나 위치를 짚어낼 수 있는 모양이었다.

 눈을 감고서 알 수 없는 진언(眞言)을 외운다. 그 모습에서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름만으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미 그것은 단순한 점복(占卜)이라 볼 수 없었다. 검에서 불을 뿜어 올리고 부적으로 조화를 부리는 것처럼, 세상의 이치를 훌쩍 뛰어넘은 무엇이었다. 놀라운 능력, 만통자가 한 순간 진언을 딱 멈추더니 산반을 툭 튕기며 점괘를 늘어놓았다.

 “물이 있다. 물이 있다. 수(水)가 겹치고 겹쳐 대강(大江)이다. 토(土)가 이어진다. 중원을 질러 질러 흐르는 큰 강이니 장강(長江)이다.” 

 만통자가 다음 괘를 본다. 잠시 멈칫 하고는 말을 이었다.

 “곁에는 승(僧)이 있다. 승려는 승려이되 거꾸로 섰다. 운명이 강장하여 천명을 벗어난다. 장강의 물을 뒤엎고, 수류의 길목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자네가 찾는 이는 그와 같이 있어.”    

 누구를 말함인가. 

 청풍의 눈에 의아함이 깃드는 것을 바라 본 만통자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자네는 그와 이미 스치는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장강에 그런 자라면 단 하나 밖에 없지. 생각해 보면 알 텐데.”

 꿰뚫어 보는 시선이다. 만통자의 손가락과 눈은 청풍을 향하고 있지만 그 들이 머물러 있는 것은 청풍의 과거다. 청풍은 마치 그 시선에 전염된 것처럼 예전에 있었던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장강! 백무한!!’

 뇌리를 스치는 이름이다.

 집법원 검사들에게 쫓기고 있던 당시, 소림 절기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크나 큰 도움을 주었던 남자. 집법원의 절정고수들을 한 순간에 물리치던 막강한 무공과 천하에 이르던 기세가 떠올랐다. 

 “그렇다면........흠검단주는 백무한과 함께 있는 것입니까?”

 “그럴 것이다. 승(僧)은 지금 금(金)을 구하고 있지. 무기를 모으고 병란(兵亂)을 준비한다. 장인(匠人)이 또한 있어, 세 사람의 인연이 얽혀 있는 상태다.”

 장인. 

 당 노인이다. 청풍은 잃어버렸던 조각이 맞추어 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도 단숨에.

 백무한은 비검맹에 원한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비검맹과의 일전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그와 이야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게다. 

 그러면서 사람을 모으고 병기를 모은다. 그 와중에 심귀도의 당철민을 알게 되었고, 그의 기술을 얻기로 했다. 천의(天意)를 품고 있는 백무한의 사람됨을 보았을 때, 당 노인의 성정 상 백무한에게 힘을 빌려주기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밀리에 심귀도로 향하는 백무한. 

 당 노인을 설득하고, 그가 지닌 막대한 병기술을 지원 받는다. 흠검단주는 자연스럽게 당 노인과 함께 하고, 백무한의 진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 모든 것은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은밀한 밤을 틈타, 심귀도의 안개를 방패 삼고 하나 둘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당철민은 백무한의 거점에서 새롭게 장인으로서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을 것이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그림이었다. 청풍은 흠검단주의 행방불명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장강........그렇다면, 백호검과 현무검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청풍은 주저하지 않고 백호검과 현무검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러나 만통자의 대답.

 굳어진 표정처럼 밝지 못했다.

 “백호검은 장강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천기(天璣)를 발설하는 자, 그 생이 결코 순탄치 못하다. 백호검과 현무검을 찾는 것 부터는 인력(人力)에 의존하도록 하라. 만일, 그 다음에도 손이 닿지 않는다면, 그 때 가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만통자의 점술은 분명, 저잣거리에서 펴 놓고 하는 단순한 점술이 아니다.

 백호검과 현무검에 관한 진실도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그것이 천리(天理)인 것을. 청풍은 흠검단주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 만큼이라면 만통자를 만난 성과로 충분하고도 남은 것이다.

 *                 *                  *

 연선하는 장현걸의 말을 듣자마자 청풍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장현걸은 연선하의 얼굴만 보고도 대번에 그 사실을 눈치 챌 수가 있었다.

 “그래, 여전하군.”

 장현걸의 말투는 비틀려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명백한 질투다. 연선하는 그런 그의 목소리에서 도리어 왠지 모를 측은함을 느꼈다.

 ‘약한 사람.......’

 연선하의 눈빛을 마주한 장현걸이 얼굴을 굳혔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친다. 장현걸이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마시오.”

 장현걸이 받고 있는 압박은 범인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개방의 후계자로 일찍이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후개의 신분이 무색하게도 운신조차 힘이 드는 마당이다. 무엇을 꾸미려 해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것에서 오는 상실감과 무력감은 연선하로서도 상상하기 힘든 것이리라.

 “동정 따위는 받고 싶지 않아. 아니면 아닌 것이지. 당신은 나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군.” 

 장현걸은 웃으며 말했다.

 쓴 웃음이었다. 연선하는 마주 웃어줄 수 없었다. 동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호감은 가지고 있으나 연정은 결코 아닌 것이다.    

 “저번에......”

 연선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함께 일을 하는 이 상황에서 사적인 감정이 끼어 든 것은 실로 유감이라 아니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당장 이 관계를 깨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의 연계는 화산과 개방의 연계라, 연선하의 생각만으로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그렇다면 뭐라도 말을 해야 한다. 분명하게. 적어도 이 어색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조치만큼은 취해 놓아야 했다. 

 “당신이 했던 말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어요.”

 청풍에 관한 이야기다. 

 장현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심지어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연선하의 말이 이어졌다.

 “청풍, 풍 사제에게 가진 감정은 당신이 말한 것처럼 평범한 것은 아니에요. 매화검수로서 동료나 사제에게 가지는 것과는 확실히 틀렸죠.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감정이라 볼 수도 없어요. 나는 그의 어린 시절을 보았고, 그의 천성과 재능을 아꼈을 뿐이지요. 사부를 잃고 아무데도 의지할 것 없던 아이라 힘이 되어주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아끼는 마음이 커졌죠. 그런 것은 그 아이가 아무리 크고, 강해져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일 것이에요.”

 연선하는 잠시 말을 끊었다. 장현걸의 얼굴은 여전하다. 연선하는 말투를 가볍게 바꾸며 되물었다.

 “어때요? 대답이 좀 되었나요?”

 장현걸은 잠시 동안 연선하의 시선을 피했다. 마음에 혼란을 느끼는 모습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그가 침중한 어조로 답했다. 

 “대답은 되었소. 충분하오.”

 장현걸은 깨달았다. 

 연선하와 청풍의 결속은 역시나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것이 비록 일방적인 것일지라도, 아니 일방적인 것이기에 더더욱 끼어들기 어렵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깨부수거나. 

 장현걸은 마음속에 솟구치는 어두움을 감춘 채 입을 열었다. 화제는 여전히 청풍으로 같았지만, 더 이상 사적인 감정이 섞여 있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바꾸지. 그래, 청풍에 대해 알아 본 것은 어떻소?”

 “.........강해졌더군요. 서천각의 힘을 빌려 쓰고 있었어요.”

 장현걸은 감정을 억눌러 놓았지만, 연선하는 온전히 그녀의 마음을 갈무리하지 못했다. 청풍의 성장을 말하는 그녀의 어조에는 뿌듯함이 깃들어 있었다.

 “서천각이라........그에게 그런 권한이 있었던가.” 

 “원로원, 화산 도문의 영향력이겠죠. 단영검객 송 사숙과 지운검객 이 사숙이 그를 지원해 주고 있어요.” 

 장현걸이 또 다시 청풍에 해를 끼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연선하는 그녀가 알아낸 것을 숨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장현걸의 성정이 악하지 않을 것이라 믿기도 했거니와, 현재 장현걸에게는 청풍을 해코지할만한 힘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기껏 오결 제자를 동원할 수 있는 수준에, 자신을 보호하기에도 벅찬 장현걸로서는 청풍을 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걸출한 개방 인재들을 한꺼번에 동원할 수 있었던 작년과는 사정이 완전하게 달랐던 것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주작검을 찾을 수 있었던 것에는 역시 그런 이유가 있었군. 게다가 강해졌다니.......얼마나 강해졌지?”

 “그것은 아직 알 수 없어요. 직접 본 것이 아니니까요. 적어도 저번 석가장에서보다는 성장했겠죠.”  

 석가장.  

 연선하는 모른다. 석가장이 무너진 잔해 위에서 장현걸이 청풍에게 어떤 수모를 당했었는지.

 타구봉을 송두리째 박살 당하고, 뭍 군웅들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다. 이미 그 때부터 장현걸을 앞지르던 무위, 개방과 모산, 황보세가 세 거파의 추격을 뿌리치던 무공인데, 그보다 더 강해졌다면 그 성취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화산 본산에서는 어떻소?”

 “장문인께서 품은 뜻.......을 묻는 것인가요?”

 “그렇소. 집법원에서 그를 쫓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본산에서 그에 대한 입장은 어떤지 알고 싶소.”

 “그것을 묻는 것은 개인적인 이유에선가요, 아니면 문파끼리의 공적인 사안 때문인가요?”

 “못 당하겠군. 둘 다라고 해 두지.”

 연선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진의를 파악하기라도 하는 듯, 장현걸의 눈을 깊게 들여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또는 읽히는 것이 과연 진실이기는 할까.  

 “글쎄요. 장문인께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실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직 집법원이 움직이고 있는 기미는 보이지를 않으니, 본격적인 행동에는 들어가지 않은 것이겠지요. 게다가 지금은 철혈련과의 싸움만으로도 처리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요. 귀주성 관군들과 그 지역 문파들, 소집된 무림맹이나 상계(商界)의 인사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지요. 아마 무슨 결정을 내리시든 지금은 아닐 것이에요. 싸움이 막바지에 이르는 때거나, 아니면 이 일이 모두 끝난 후가 되겠지요.”

 ‘그럴까.......’

 장현걸은 연선하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았다.

 화산파 장문인 천화진인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 못 된다. 어느 누구든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겠지만, 천화진인은 어느 누구 정도로 볼 사람이 아니다. 그가 지금까지 쌓은 업적, 그리고 강호사를 처리하는 방식이 그것을 보여준다. 하늘의 검(劍)을 품었다는 천검진인의 이름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

 ‘차라리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모르되, 그 놈에 대한 관심을 이미 가지고 있다면......’

 천화진인은 일찍부터 결정을 내리고 있었을 인물이었다. 

 청풍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도 모르는 새 결론을 보았으리라. 그것을 읽어야 했다. 화산파와 관련된 장현걸의 지금 입장도 그 결론에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집법원을 보내는 등, 그 놈에 대하여 포용하기보다는 배척하는 입장을 취해왔었지. 하지만........’

 화산 장문인은 청풍을 탐탁치 않게 보았었다.

 개방과 황보세가, 모산파가 뒤를 쫓고 있었는데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그러한 점을 시사한다. 아무리 화산이 철기맹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해도, 청풍에 관한 사안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나름대로 떠들썩했던 추격전이다. 그럼에도 수수방관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청풍이란 제자에 대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검에 대해서만큼은 예외다. 그것이 문제지.’  

 청풍이란 제자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사방신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매한옥과 연선하를 보냈다는 것, 서천각이 사방신검의 소재를 파악하려 했다는 점 등이 그것을 말해준다. 청풍은 버려도 검은 못 버린다는 것이 장문인이 지닌 의도의 핵심인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상황이 또 달랐다.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을 수 있어. 그렇다면 내 입장이 곤란해진다.’

 장현걸이 우려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청풍은 버리기에 너무나 커 버렸다.

 무공도 인물됨도 만만치 않은 고수다. 

 먹기엔 어렵고, 버리기엔 아깝다는 것. 계륵(鷄肋)이라는 말이 이보다 어울릴 수는 없는 남자였다.

 이 시점.

 바로 이 시점에서 만약 화산파 장문인이 청풍을 포용하기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장현걸에 있어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장현걸은 청풍을 핍박한 전적이 있으며, 그에게서 사방신검을 빼앗으려 했던 과거도 있다.자파인 청풍과 타파인 장현걸의 비중을 비교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과히 좋지 않다. 화산파 장문인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허울뿐인 후개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개방을 고려한다면, 장현걸을 내치는 것도 순간일 수 있는 것이다.

 어렵사리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장현걸.

 화산파와의 연계에서조차 배척당한다면 장현걸은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더욱이 화산파 장문인은 그 지닌바 성정으로 볼 때, 청풍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얼마든지 장현걸을 공격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장현걸이 청풍을 곤란케 했던 것을 핑계 삼아 본보기로 박살 당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확실히 그렇겠소.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겠지.”

 머릿속의 생각은 날개 돋친 듯 진행되었으나, 장현걸은 그저 동의하는 대답만 남겼다. 그가 우려하고 있는 사태를 말해 보았자 연선하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좀 전에.......당신이 그에 대해 했던 말은 잘 들었소. 당신 마음은 이해하겠어.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이해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소. 다만, 불편해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장현걸은 대화를 오래 끌지 않았다.

 더 이상 말해 보았자 감정 이야기만 두드러진다. 

 그 뿐이 아니다.

 장현걸은 위기를 느꼈다. 청풍에 관한 이야기. 화산파 장문인의 입장에 대한 사안이다. 장현걸 자신은 이제 천화진인이 재는 저울대 위에 올려 진다. 장현걸의 반대편엔 청풍이, 그리하여 천화진인은 장현걸과 청풍의 경중을 비교하게 되리라. 아니, 어쩌면 이미 저울대 위에서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놈의 역량을 봐야 해.’

 장현걸의 처지를 천화진인이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변수가 될 것이며, 화산파 입장에서 본 청풍의 효용성도 변수가 될 것이다.  

 장현걸은 그 저울이 제 멋대로 기우는 것을 두고 봐 줄 수가 없었다. 먼저 움직여야 했다. 연선하와의 대화, 이름만큼은 화산파와의 회합인 자리를 벗어나, 고봉산을 불렀다.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해야겠다.”

 상대방의 무게를 알아야 이쪽도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 첫마디에 고봉산이 눈썹을 치떴다.

 “예?”

 “이번에는 확실히 하겠어. 성급하게 나서지 않는다. 차근차근, 실력부터 본다.”

 치떴던 눈썹 밑, 고봉산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장현걸은 다시 청풍에게 손을 뻗으려 한다. 신중을 기한다 했지만 이전까지의 일이 있으니 걱정이 앞서는 것도 당연하다. 장현걸도 바보는 아니었으니 그 사실은 스스로도 알고 있는 바, 명령을 내리는 그의 얼굴에도 긴장된 빛이 감돌았다.

 “놈의 행적을 숭무련으로 흘려라. 흠검단주의 일이 해결되지 않은 만큼, 숭무련에서는 바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움직이고 있을지도 몰라. 거기에 힘을 더해 줘.”

 “그러면........”

 “십중팔구는 부딪친다. 부딪치지 않아도 관계없어. 만일 그 놈이 숭무련의 무인들을 같은 편으로 만든다면 그것도 하나의 능력이다. 이번에는 힘을 재 두는 것이야. 굳이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

 “한 가지 더 있다.”

 “성혈교......말씀이십니까.”

 고봉산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윗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지금 장현걸에게 있어 최대의 행운을 꼽는다면, 역시나 고봉산의 존재일 것이다.

 “잘 아는 군. 성혈교에는 지금 여유가 없다. 그 놈을 쫓겠다는 생각 따윈 할 수도 없겠지. 무당과 화산을 상대하는 데에도 벅찰 테니까. 헌데 이상한 것은 일곱 명이나 되는 사도들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혈교는 이 싸움을 끝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

 “허면........첫 번째 철기맹 발호와 같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바로 그거야. 성혈교는 성급했어. 철기맹이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싸움을 시작했던 것과 똑 같지.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덤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

 고봉산은 눈을 크게 떴다.

 성혈교가 이 싸움을 벌인 목적. 

 가장 근본적인 일이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일이다. 본래부터 사교(邪敎)란 그 행태를 이해하기 어려운 법,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음에도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장현걸은 그것을 파고드는 것이다. 모두가 생각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있었다.

 “철혈련의 준동은 애초부터 더 큰 음모가 깔려 있었던 일인지도 몰라. 성혈교는 전력을 내 놓지 않고 있어. 진짜 주력들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중일 수 있다는 이야기지. 개방이 총력전을 벌일 수 있었다면 성혈교의 진의를 파악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야. 어쩌면 개방을 무력화 시키는 것 역시 그 커다란 흐름의 일부인지도 모르지.”

 장현걸의 이야기에는 공상에 가까운 비약이 있다. 그러나 고봉산은 그 안에서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현걸. 적어도 그 능력에 있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성혈교는 사도들을 내 놓지 않았어. 마지막 한 수로 아껴둔 것 일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아예 사도들이 나서지 않기로 했다면, 성혈교의 힘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겠지. 게다가 성혈교 오 사도는 그 놈에 대한 원한도 있으니까.”

 장현걸이 팔 한쪽을 손으로 그었다. 

 오 사도의 팔 하나. 석가장에서 청풍이 베어냈던 일을 뜻함이었다.  

 “성혈교의 진의가 무엇이든, 오 사도만큼은 틀림없이 움직인다. 청풍, 그 놈이 오 사도를 어디까지 상대하는지 확인해야겠어. 오 사도도 그 동안 놀지는 않았을 테니, 직접 볼 수 있다면 좋은 구경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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