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156)

 재회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갈대 바람이 불어오는 강변, 선착장이 먼 곳에 보이는 장소다. 일순간 청풍은 온 몸을 엄습하는 강렬한 기파를 느끼고 매한옥을 불러 세우며 몸을 돌렸다.

 이 느낌.

 ‘고수다!’ 

 청풍은 내력을 한껏 끌어 올렸다.

 선자불래(善者不來) 래자불선(來者不善)이라, 이렇게 한적한 곳으로 고수가 찾아온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적(敵)이다.

 갈대가 절로 갈라질 것만 같은 기운(氣運).

 이런 기파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무인(武人)이 아니다. 매한옥도 금새 얼굴을 굳히며 내력을 일으킨다. 강한 자들, 하나 둘이 아니었다.

 ‘이들은.......!’

 마침내 갈대 숲을 헤치고 낮은 언덕을 너머 온다.

 청풍은 그들을 단숨에 알아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눈에 익은 복장이다. 

 석가장에서 보았던 자들.

 흠검단이었다.

 ‘숭무련.......!’

 자연히 숭무련의 이름을 떠올린다. 

 또한 숭무련을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이르게 되는 한 여인의 이름이 있다.

 서영령.  

 항상 머리 속에 있었던 그녀다. 

 그리고 청풍은 보았다.

 흠검단 검사들 뒤쪽으로부터 흘러오는 강바람을 따라 나타나는 한 여인을.

 이름을 떠올리자 거짓말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서영령, 그녀다.

 그녀가 거기에 있었다.

 “령......매.......!”

 신음성처럼 입가에 맴도는 이름이었지만,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올 뿐이다.

 “오랜만이군.” 

 말을 잇지 못하는 청풍의 귓전으로 한 줄기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것은 아니다.

 조신량의 목소리였다.

 “.......”

 간만이라 말하고 있지만 조신량의 얼굴에서는 반가움의 감정을 조금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당연할 일이랄까.

 그들은 청풍을 추궁하기 위해 왔고, 그 추궁한 결과에 따라 청풍을 죽이기 위하여 여기에 있다.  오랜만이라 말한 것은 그야말로 표면적인 의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왜 찾아 왔는지는 알고 있겠지.”

 조신량의 말은 차분한 가운데 날카로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청풍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오직 서영령에 집중되어 있는 시선. 

 청풍의 정신은 그녀 이외의 어떤 것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왜.......’

 들끊는 마음이었다.

 왜 찾아 왔느냐, 어떻게 여기에 왔느냐는 도리어 청풍이 물어야 할 질문 같았다.

 “말없이 싸우겠다는 생각이냐.”

 청풍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나오지 않자, 조신량이 미간을 좁히며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대답이 없는 것을 임전(臨戰)의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다짜고짜 검을 들고 다가오니 이쪽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청풍의 옆에 있던 매한옥이 걸어 나오며 마주 검을 잡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안하무인이로군. 실례라 생각지 않나?”

 그렇다.

 청풍은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조신량의 앞으로 걸어 나오는데, 삼엄한 검기(劍氣)가 절로 일어난다. 매화옥검 매한옥의 진면목이었다.

 “이 쪽으로 치자면 그다지 예의를 갖출 상황이 아니지. 구면(舊面)인 것 같은데. 어디서 보았던가?” 

 조신량의 어투는 무척이나 도발적이었다.

 본 적은 있지만 누군지는 기억에 없다는 말이다.

 무인이란 검의 깊이로 기억되는 법, 보고서 기억조차 못한다고 한다면 다분히 모욕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매한옥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고수다. 무공에서뿐이 아니라, 말을 받는 것에 있어서도 충분히 강했다. 

 “구면이었다니, 나는 전혀 모르겠다.”

 조신량의 눈에 기광이 번쩍였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다. 조신량은 비로소 매한옥이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 나이에 이 기도.

 게다가 전혀 물러나지 않는 배포까지 갖추었다. 청풍에 가려서 눈에 띄지 않을 뿐, 흔히 볼 수 있는 무인(武人)이 아니었다.

 ‘매화검수.......!?’

 조신량은 자연스럽게 매화검수를 떠올렸다. 

 도포라면 화산, 화산에 이런 젊은이라면 당연히 매화검수다.

 그러나 조신량은 곧바로 매한옥의 검이 매화검이 아님을 발견했다. 그뿐이 아니다. 그의 도포에서는 매화검수라면 지니고 있기 마련인 매화문양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의아함은 잠시였다. 

 조신량은 매한옥을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 내었고, 이어 다시 한번 자극적인 언사를 더했다. 

 “사람을 잘못 보았나? 석가장에서 날뛰던 것을 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었겠지.”

 그래도 매한옥은 경동하지 않았다. 도리어 엷은 미소까지 띄우고 있다.

 다른 사람이라는 것.

 어떤 의미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청룡검을 잡고 광인(狂人)이 되어 좌충우돌 하던 매한옥과 지금의 매한옥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과거의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 그 때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그였다.

 “말 장난은 그만하고 용건을 말하라. 우리는 발길이 급해.”

 흔들림 없는 가운데 과감함이 있다.

 숭무련 무인들 십여 명에 둘러 싸이고도 전혀 위축됨이 없는 매한옥이다. 조신량의 얼굴이 굳어지고, 무인들 사이에 분노의 감정이 일어났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모르는군.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야.”

 스르릉.

 조신량의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온다. 매한옥도 왼손으로 수결을 취하며 검자루에 힘을 더했다. 발검 직전의 이십사수매화검법 기수식이었다.

 일촉즉발.

 터지기 직전, 화약의 불을 끈 것은 놀랍게도 서영령이었다.

 우수가 깃든 목소리, 언제나 당차던 그녀가 발하는 가녀린 목소리는 달아오른 불길을 끄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풍랑........”  

 그 자리에 멈추어 선 서영령이다. 

 그녀가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목걸이를 걸지 않았군요.”

 하얗디 하얀 목선을 따라 옷깃에 머무는 손가락이다. 그녀가 청풍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령매........ 그것은........”

 어릴 적부터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목걸이.

 동방 고묘에서 수련에 집중하기 위해 벗어 둔 목걸이다. 목걸이를 보면 그녀 생각이 났으니까. 마음에 커다란 연정(戀情)의 심마(心魔)를 불러오던 목걸이였으니까.

 “풍랑과 나를 이어주는 끈으로 생각했었지요. 제 것은 언제인지 모르게 잃어버렸지만, 풍랑도 그것을 버렸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령매의 목걸이는 내게.......’

 서영령의 목걸이.

 육극신에게서 도주할 때, 줄이 끊어져 챙겨 두었던 그것이다. 

 두 개의 부옥을 한 줄에 엮어, 동방 고묘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언제나 목에 걸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청풍은 그것을 품 속에 지니고 있다 말할 기회가 없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이어지는 그녀의 말이 너무도 빨랐던 까닭이다. 

 “서로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이라면 어쩔 수가 없지요. 갈 숙부를 해쳤기 때문에 목걸이를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서영령은 오해를 하고 있다. 아니, 오해라기 보다는 확신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청풍이 먼저 목걸이를 버릴 사람이 아니라 믿고 있는 것이다. 흠검단주를 해쳤다거나, 서영령과의 연을 끊기로 마음 먹지 않고서야 그것을 버렸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령매, 그런 것이 아니야.”  

 이 순간 품에서 목걸이를 꺼내어 든다면 모든 오해가 풀릴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풍은 그러지 못했다. 검과 검이 서로를 부르는 이 심각한 시점에서 그런 식으로 가볍게 일을 해결하기에는 청풍의 성정이 너무도 진중했던 까닭이다.

 상황과 해결의 괴리에서 오는 망설임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망설임이 결국 참도(斬刀)의 무서움을 부르고 말았다.

 참도회주. 

 그가 나섬으로 인하여, 청풍은 결국 목걸이를 꺼낼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았다. 

 “어떤 놈일까 했는데 실망이다. 그 당당하지 못한 태도로 보아하건데, 갈 아우에게 해를 입힌 놈이 틀림없으리라.”

 오해의 중첩이었다.

 청풍이 당황한 것은 서영령 때문이지, 떳떳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참도회주란 인물이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사람의 성정은 자신이 쓰는 병기(兵器)를 닮는다 했던가.

 참도(斬刀)는 곧 단칼에 베어내는 도(刀)를 말한다. 참도회주의 성정은 그가 지닌 신공(神工) 도철의 명도(名刀) 흑철도(黑鐵刀)의 성질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지 않소.”

 청풍의 말이 소용 없음도 그와 같았다. 참도회주는 청풍의 해명 따위는 듣지 않았다. 

 거센 기파를 쏟아내며 나서는 한 걸음에 천근의 압력이 실려 있었다.

 “숭무련 참도회주가 나다. 갈 아우는 나에게 형제와 같은 이!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비굴함은 죄악이야! 흠검이여, 돼 먹지 못한 놈에게 당했구나!”

 호통을 치는 목소리에서 무시무시한 진신 내공이 전해져 왔다.

 갈대 숲 저편에서부터 느껴졌던 막강한 무력은 바로 이 노인의 힘이다.

 “통탄할 일이로다! 아우의 검은 네 놈의 시체에서 회수하마!”

 무지막지한 기세를 온 몸으로 받을 때다. 

 갑작스레 뇌리를 울리는 진동, 청풍의 의식 저편에서 한 줄기 강렬한 의지가 울려왔다.

 ‘오해가 있으면 어떤가! 이 정도 상대 결코 만나보기 쉽지 않다! 힘을 겨룬 후에 오해를 풀어도 늦지 않아!’

 청풍의 양손이 저절로 청룡검과 주작검에 닿았다.

 이상하게 들끓는 호승심이다. 함산마두를 베어갈 때 들렸던 목소리와 같은 느낌,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다. 신검 출수, 청풍의 몸에서 막강한 기파가 솟구쳤다.

 파아아아!

 누구도 제지할 수 없었다.

 조신량이 나서며 참도회주를 말리려 했으나, 그의 기세는 넘치는 홍수와도 같았고, 그의 흑철도는 산이라도 쪼개버릴 것처럼 사나울 뿐이었다. 

 조신량마저 베어버릴 기세.

 그러나.

 그 막을 수 없을 듯한 힘을 눈앞에 두고도 청풍은 물러나지 않았다.

 치링! 치리리리링!

 그 흔한 기합성조차 터뜨리지 않는다.

 말없이 두 손을 움직여 두 개의 검자루를 뽑아낸다. 

 청룡과 주작, 두 개의 빛줄기가 현신(現身)했다.

 쩌어어엉!

 교차되며 뻗어나가는 이(二) 검(劍)의 연환검이다.

 흑철도의 막대한 경력이 두 신검(神劍)의 빛살에 가로막히며 무지막지한 충돌음을 울렸다.

 쏴아아아아!

 이어지는 충격파.

 주변의 갈대가 둥글게 허리를 꺾으며 사방으로 쓰러졌다.

 격이 다른 싸움이란 이것을 말함인가.

 두 사람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하늘로 치솟은 참도회주가 왼손을 움직여 흑철도의 도병(刀柄)을 감아쥐는 것이 보였다.

 양수도(兩手刀).

 떨어지며 내리찍는 강맹한 도격(刀擊)이었다. 

 꽈아아아앙!

 이런 도격을 정면으로 받는 것은 아무리 내공에 자신이 있더라도 함부로 시도할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청풍은 피하지 않는다. 

 참도회주의 도법(刀法)은 상대가 물러나면 물러날수록 기세를 타는 무공이다. 이런 경우, 돌아서 가려 하다가는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되는 법이다.

 똑같이 싸워준다. 

 저쪽에서 공격일변도로 나온다면, 이쪽에도 그것에 뒤지지 않는 검날이 있기 때문이었다.

 퀴유웅!

 청룡검 왼손을 뻗어내고, 아래로 끌어내린 주작검을 바깥으로 돌렸다.

 나아가는 청룡검은 금강탄.

 바람을 가르고 뻗어나가는 호쾌함에 흑철도의 무거움이 부딪쳐 왔다.

 쩌어엉!

 금강탄이 빗나가며 갈 곳 없는 경력을 흩뿌렸다.

 참도회주 뒤편의 갈대가 짓이겨져 비산했다. 

 경황 중에 내친 것이라지만 금강탄을 이처럼 가볍게 튕겨내는 무공은 육극신 이외에 여지껏 만나보지 못했다. 

 ‘강자(强者).......!’

 상대의 강함에 감탄할 여유 따윈 없었다.

 흑철도는 이미 머리를 쪼갤 기세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죽음.

 죽음의 각오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남강홍의 가르침, 바깥으로 돌렸던 주작검이 적홍(赤紅)의 날개를 드러냈다.

 파라라락!

 사선으로 올려 치는 주작검이다.

 염화인, 홍염(紅焰)의 일격이 강렬한 빛을 발했다.

 카각! 쩌어어어엉!

 방어라는 말이 무색했다.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다. 처음부터 도격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참도회주의 목을 날려버리려는 데 흑철도가 성가셔서 부딪치게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우우우웅! 채앵!

 힘으로 흑철도를 밀어내는 광경은 그 자리에 있는 숭무련 무인들에게 있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오른 발을 앞으로 튕기고 흑철도를 비껴낸다. 그대로 반원을 그리는 주작검의 검끝이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참도회주의 목덜미를 스쳐 갔다. 

 “이 놈!”

 참도회주의 입에서 종전과 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다.

 그 호통은 기합성이면서 또한 놀라움의 표현일 것이다. 주작검에서 나오는 것은 폭발적인 살초다. 참도(斬刀)의 흑철(黑鐵) 역시 살기(殺氣)로 말하자면 둘째가 서러울 살병(殺兵)이었으나, 단 한 수로 보여준 주작검의 살기는 흑철도의 그것을 능히 능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도회주의 도격이 더더욱 강한 분노를 드러내며 청풍을 향해 짓쳐 들었다.

 쩡! 쩌저정!

 거듭되는 살초다.

 일격이면 끝날 싸움.

 참도회주의 무공은 이제 살의 그 자체로 충만해 있었고, 그것을 막아내는 청풍은 신이 들린 듯한 속도와 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럴 수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검과 도다.

 조신량의 입에서 믿을 수 없다는 침음성이 흘러 나왔다.

 청풍을 자신의 몫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다. 

 참도회주와 대등한 싸움을 펼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성혈교 오 사도의 팔을 잘라냈을 때만 해도 요행이라 생각했었다. 아니, 그것은 요행이 맞다. 그 시점에서 성혈교 오 사도는 틀림없이 청풍보다 강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 함은 달리 있지 않다. 바로 여기에, 청풍이 보여주는 무위가 바로 그와 같다. 시간과 경험, 모든 것을 초월하며 뻗어나가는 무공이었다.

 촤아악! 피슉!

 삼십 합을 넘어가는 공방이다.

 그 끝에서 들려오는 한 줄기 이질적인 음성.

 핏물이 튀어 교차되는 경력에 휘말리니, 붉은 안개와도 같은 피보라가 일어난다.

 움직이는 흑철도.

 서영령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쩌엉!

 피가 뿜어 나오고 있는 것은 청풍의 가슴이다. 백포 도복에 혈화(血花)가 피고 있다. 그렇지만 청풍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흑철도를 막아낸다. 출혈이 꽤 심한데도,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퀴유웅! 파라라락!

 염화인을 익히면서 얻은 인내(忍耐)다.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은 홍백의 검날에 참도회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회심의 일격을 가했는데도 도리어 더 빠르게 짓쳐오니 제아무리 참도회주라도 질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기세에 눌린다는 것은 곧 그만한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 청풍은 참도회주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터엉! 쐐애애액!

 청풍의 발이 금강호보의 진각을 밟고 그의 몸이 화천작보의 구결을 따라 공간을 찢어낸다.

 무시무시한 빠르기였다.

 화천작보의 속도를 받은 주작검이 비할 데 없는 쾌검을 선보였다. 

 사선에서 횡으로, 다시 횡에서 직선으로.

 좁디 좁은 공간, 다급하게 따라 붙는 흑철도가 위태위태했다. 심력(心力)의 우위를 점하여 몰아치는 광폭한 화마(火魔)의 울부짖음이었다.

 쩌어엉! 촤아아악!

 먼저의 것과 똑같은 소리였다.

 살이 갈라지고 피가 튀는 소리.

 참도회주가 뒤로 튕겨 나오며 자세를 바로 잡는 것이 보인다. 청풍의 상처와 비슷한 위치, 비슷한 깊이의 검상(劍傷)이었다.

 찌이익. 

 상대의 부상으로 시간을 번 청풍이다.

 재빨리 앞섬을 찢어내고 옷깃을 말아 상처 부위를 동여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동작이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변했어......!’

 청풍을 보는 서영령.

 그녀는 청풍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격전을 거쳐 온 것일까.

 드러난 상체, 전에 없던 흉터가 수두룩했다. 찢기고 짓이겨진 흔적 위로 최근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검흔(劍痕)들까지 남아있었다.

 주작검을 비껴드는 청풍은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그와 너무나도 달랐다.

 살벌한 검격에 망설임 없는 살초(殺招).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웅지(雄志)가 전해지고 있다.

예전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고, 어딘지 모르게 감싸 줘야 할 것 같던 청년은 이제 거기에 없다. 청풍은 청풍이되, 그녀가 만났던 청풍이 아니었다.

 스릉.

 참도회주는 상처를 수습하지 않았다. 

 가슴을 한번 내려다보고 흑철도를 비껴 쥔다.

 그가 씹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무공만큼은 확실히 대단하구나. 아우가 당한 것도 이해가 된다.”

 참도회주를 바라보는 청풍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살풀이라도 하듯 한 바탕 검을 나누었다.

 이제는 족했다. 더 이상 살초를 나눌 이유가 없다. 들끓던 살기도, 하늘을 찌를 듯한 호승심도 거짓말처럼 가라앉아 버렸다.

 “그만 두는 것이 좋겠소.”

 청풍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말 뿐이 아니다. 주작검과 청룡검을 각자의 검집으로 회수해 버렸다. 그것을 본 참도회주의 눈썹이 꿈틀대며 한 껏 위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그것이 무슨 짓이냐!”

 싸움의 와중에 무슨 망발이냐는 의미다. 참도회주를 쳐다보던 청풍, 청풍의 행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곧바로 몸을 돌려 참도회주를 등진다. 참도회주의 입에서 커다란 호통이 터져 나왔다.

 “이 놈! 싸움 중에 감히 등을 돌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얼굴이다. 그러나 달려들지는 않는다. 

 그것이 바로 상승고수가 지닌 자세다.

 무기를 회수하고 등을 돌린 상대에게 어찌 달려들 수 있을까.

 참도회주는 성질이 급하고 융통성이 없는 자였지만, 무인으로서의 긍지만큼은 넘치도록 갖춘 남자였다. 싸울 의지가 없는 자의 등을 치는 것은 그에게 있어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정 싸우고 싶다면 기다리시오. 오해는 풀고 봐야겠소.” 

 “건방진!!”

 청풍은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손을 쓰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 까닭이다. 

 확신......

 확신이라기보다는 믿는다는 것에 가깝다.

 참도회주는 강자다. 그리고 강직하다. 

 그 강직함이 지나쳐 압력으로 비쳐 나올 뿐, 결코 악인이 아니었다.

 악인인가, 아닌가.

 마주치는 병장기, 부딪치는 무공에는 그 주인의 성정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살벌하게 살초를 주고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방의 특성이었을 뿐, 그것이 서로의 마음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직접 느껴지는 성정이다.

 매한옥이 풍부한 강호 경험을 통해 민초들의 마음을 본다면 청풍은 피부에 전해지는 느낌으로 고수들의 심중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강직함도 강직함이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었다.

 이 사람과는 더 싸울 수 없다. 참도회주에게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흠검단주의 그림자가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도회주는 흠검단주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비슷하다.

 무공을 섞으면서 느껴버린 흠검단주의 향취.

 그 때문에서라도 더 이상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생사를 갈라야 할 적은 더더욱 아니었다.

 “조신량이라 했었지. 당신에게 내 먼저 분명히 말하겠소.”

 청풍이 발을 움직이는 곳은 조신량의 앞을 향해서였다.

 청풍이 등 뒤로 질끈 매어 놓았던 끈 하나를 풀어내며 말했다.

 “나는 그 분을 해하지 않았소. 내 목숨과 이 검을 걸고 맹세하오.”

 투둑.

 풀어낸 끈으로 검이 지닌 영기(靈氣)가 함께 흐르는 듯 하다. 호풍환우, 구름과 바람이 새겨진 검집을 잡아 앞으로 내밀었다. 강의검, 흠검단주가 맡겼던 강의검이었다.

 “그 분이 당신에게 전해 달라고 했던 물건이오. 건내 주는 것이 늦어져서 미안하오.”    

 청풍의 손 위에 올려진 강의검을 바라보는 조신량의 두 눈에서 의심의 빛이 차올랐다. 이런 식으로 강의검을 건네 줄 것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당연했다.

 “이것은 또 무슨 수작이냐.”

 깊어진 오해가 한 순간에 풀릴 리 만무했다. 강의검으로 손을 뻗지 않는 조신량, 급기야는 두 눈에 분노의 기색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려는 것이냐? 그 정도로 얄팍한 심산이라니! 대체 우리를 무엇으로 보는 것인가!”

 어렵다.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또 있다.

 잠자코 있던 매한옥이 끼어들면서 분위기는 다시금 싸늘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이쪽이 아니라 그 쪽이다! 다짜고짜 몰아붙이는 그 행태, 수치스러운 줄 알아라!”

 한 발 앞으로 나서는 그의 전신에서 화산 매화의 서늘함이 일어나니, 마주 받는 조신량의 기세도 난폭하기 짝이 없다. 조신량이 진득한 살기를 발하며 입을 대답했다.

 “아까부터 거슬리는군! 해 볼 텐가?”

 “하! 얼마든지.” 

 숭무련 일파, 흠검단 부단주 조신량. 

 매화검수였으되, 매화검수의 자격을 박탈당한 매한옥.

 어느 쪽이 위인가. 

 무공의 깊이나 뿜어내는 기파나 조신량이 위에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석가장에서도 조신량은 매한옥을 한참이나 앞서 있었고, 매한옥이 크게 변했다지만 조신량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 차이는 쉽게 좁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덤벼라. 어설픈 화산검수!”

 매한옥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얼마든지 싸우겠다고 말하고 실제로도 검을 뽑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싸움에 임한자,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화산 계율 제 칠계. 그는 어디까지나 화산파다. 화산파 정신의 표본이었다.

 “그만 두시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것을 정리한 것은 결국 청풍이었다.

 콰악! 하는 소리와 함께 강의검을 휘돌려 검집 채로 땅에 박아 놓았다. 가볍게 찍어 넣는 듯 하는데 단숨에 반에 가까운 길이 박혀 버린다. 청풍이 호통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분에게 은혜를 입었고, 그분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소! 내가 그 분을 해쳤다는 것은 당치 않아!”

 좌중을 한 번 둘러 본 청풍이다.

 전신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사방을 압도한다. 불어오는 갈대바람까지 숨을 죽일 정도였다.

 “당신은 강의검을 받아 가시오! 나는 당신에게 강의검을 전달하기로 약속했소. 만일 당신이 그것을 거부한다면 무력으로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게 만들 것이오.”

 청풍의 오른 손이 조신량을 가리켰다. 

 뭉클 뭉클 일어나는 것은 참고 참았던 분노였다.

 왜 그렇게 밖에 안 되는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소중한 인연을 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그것을 함부로 말한다. 참아 줄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버리고 말았다.

 청풍의 시선이 이번에는 참도회주를 향했다.

 “그리고 노 선배, 나는 노 선배와 싸우고 싶지 않소! 노 선배에게선 갈 선배, 그 분의 그림자가 느껴지기 때문이오! 하지만 그래도 싸우겠다면 덤비시오. 난 물러나지도, 도망치지도 않겠소!”

끓어오르는 불길이 담긴 눈빛이었다.

 서영령과의 만남으로 당황스러워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 어느 곳에 그런 힘이 숨어 있었는지 모른다. 타오르는 압력으로 느껴지는 힘이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소. 나는 이 장강에 한 사람과 하나의 물건을 찾으러 왔소. 그 사람이 곧 당신들이 찾는 그 분이지.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은 못하지만, 나는 그 분이 여기 있을 것이라 믿고 있소. 함께 하겠다면 따라 와도 좋소! 그러나 더 큰 오해를 하겠다면 어쩔 수 없겠지.” 

 청풍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전의 그답지 않은, 또한 지금의 그에게 있어 너무도 어울리는 목소리를 더했다.

 “막으려면 막으시오. 모두 쓰러뜨리고라도 난 내 길을 가겠어.”

 그 누구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참도회주만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흑철도를 비껴 내릴 뿐이다.

 모두를 자극하는 말임에도 덤벼들지 못한다.

 청풍에게는 명분이 있고, 그에 더하여 명분을 가능케 하는 무공이 있었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고 그가 가는 길은 오로지 올곧게 뻗어 있을 따름이다.

 청풍에게는 상대로 하여금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정도(正道)였다.

 정도를 걷는 자에게 함께하는 무상(無上)의 바람이다. 숭무련 무인들에게는 그런 그를 막을 능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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