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벅, 저벅.
청풍과 매한옥이 걸어가는 발 밑으로 강변의 자갈밭이 묵직한 울림을 울렸다.
자리를 뜨는 데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참도회주도, 조신량까지도 잠자코 있는 때에 다른 숭무련 무인들이 움직일 리 만무했다.
강변의 갈대를 따라 멀어지는 뒷모습.
오직 한 명만이 혼란을 느끼는 모습으로 발을 옮긴다.
서영령. 그녀의 얼굴에 당황이, 그녀의 얼굴에 슬픔이 깃들었다.
단호하여 망설임이 없는 청풍의 발걸음임에,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청풍임에.
그녀의 두 눈에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이르러 결단을 내린다.
‘따라 가겠어.’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눈물 대신 앞으로 나아간다.
흐르는 바람에 움직이는 갈대들 사이로 청풍의 발자욱을 쫓아 걸음을 빨리 했다.
조신량과 참도회주는 먼저 떠나는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혼란을 느끼는 것은 그녀 혼자만이 아닌 까닭이다.
참도회주가 고개를 돌려 강바람 저 멀리 가고 있는 서영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조신량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가야겠지.”
강의검.
땅에 박힌 강의검만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조신량이다. 그가 한참 만에 마음을 정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야지요.”
조신량이 강의검으로 다가갔다.
호쾌한 외침을 발하던 청풍의 잔영이 그 앞에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강의검으로 손을 뻗어 잡아 뽑는데, 마치 청풍에게서 직접 전해 받는 것처럼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파아앙!
내력을 더하며 강하게 앞으로 튕겨내자, 땅에 박히면서 묻었던 흙과 갈대줄기들이 단번에 흩어져 날아갔다. 청풍뿐 아니라 그 전에 그것을 휘둘렀던 흠검단주의 그림자마저 털어내 버리는 듯 했다.
“두 명은 본련으로 돌아가라. 이곳 상황을 보고해. 두 명은 장강의 상황에 대해 조사하라. 놈이 찾는다는 백호검에 관한 정보와, 단주님에 대한 정보를 알아 봐.”
조신량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발한 네 명의 무인들이 서둘러 몸을 날린다. 신속하게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나머지는 놈을 쫓는다. 놈의 말이 거짓이라면 그 때는 쳐야겠지. 하지만 그 전까지는 경동하지 말라. 알았나.”
“예!”
흠검단 검수들의 대답은 일사분란했다. 강의검을 든 자, 단주와 같다.
조신량.
강의검의 무게가 새삼스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 *
“일 났습니다.”
고봉산이 뛰어 들어올 때는 언제나 심상치 않은 소식을 가지고 온다. 고봉산은 들어오자마자 중원 동부 전역이 그려진 지도부터 펼쳐 깔았다.
“마안(馬鞍)입니다. 장강 한 복판에서 비검맹과 수로맹이 정면으로 부딪쳤답니다. 사상자가 일백을 넘는 격전이었다고 하더군요.”
“마안? 안휘의 그 마안 말인가?”
“제가 지금 여기 가리키고 있잖습니까. 그 마안입니다.”
장현걸의 얼굴에 황당하다는 빛이 떠올랐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둘 다 미쳤군.”
“예. 미쳤지요. 비검맹이나 수로맹이나.”
“안휘의 마안이면 남경(南京)과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거기서 싸움을 벌여.”
“말씀하셨잖습니까. 미쳤다고.”
벌떡 일어난 장현걸이다.
고봉산의 옆으로 성큼 성큼 다가와 지도를 들여다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안휘의 마안이라면 황제가 기거하는 남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당금의 황제, 영락제가 몽고 친정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때, 남경의 지척에서 싸움을 벌이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관군의 동향은 어때? 군함이 나서면 순식간에 당도할 거리일 텐데?”
“그게 이상합니다. 관군의 대응이 무척이나 늦었어요. 군함의 움직임이 있기는 했지만, 당도했을 때 이미 싸움은 모두 끝난 후였습니다.”
장현걸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그럴 리가 없어. 남경 수군(水軍)이 그렇게 허술했나?”
“그러니까 말입니다. 싸움이 벌어진 곳이 몇 개의 섬들로 이어지는 외진 수역(水域)이었다 하기는 합니다만.......”
“그 다음 수군의 대응은?”
“그것이 가장 이상합니다. 적극적으로 조사에 들어가지 않고 있어요.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둘 다 미친 것이 아니로군. 만만치 않아. 역시.”
“다른 수작을 부렸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래. 관군은 비검맹과 수로맹. 둘 사이의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으려는 모양이야.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어. 헌데 대체 누가 관군을 구워삶았지?”
“모르지요. 지금으로서는.”
고봉산의 목소리엔 허탈함이 섞여 있었다.
모른다는 말.
후구당에서 정보에 관해 이토록 무력한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불과 일 이년 전만 해도, 그 정도 사안은 며칠 안에 알아낼 수 있었으리라. 개방의 분열, 개방 전력의 약화가 피부로 전해져 왔다.
“비검맹인가........수로맹인가........”
수군의 움직임, 그것도 수도를 방위하는 수군이라면 그 기동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터, 후구당이 느리다고 평가했다면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무엇인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비검맹이든 수로맹이든 수군의 기동을 늦출만한 수작을 부린 것이리라.
“딱히.......꼽자면 비검맹일까요.”
“비검맹........그것은 후구당의 의견인가?”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후구당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결론을 내린 것이 없습니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라........그렇군. 후구당도 이제는 냄새 맡는 코가 예전 같지 않아.”
“........”
“어느 쪽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굳이 가려야 한다면, 더 준비를 많이 한 쪽이라 봐야 하겠지.”
관군의 개입이 없어야 운신이 편한 쪽이 해답이다.
하지만 비검맹이나 수로맹이나 관군 입장에서 보면 하나 같이 눈에 가시나 다름없다. 어느 쪽이나 장강 위에 없는 것이 더 좋을 것이었다.
거기까지 이른 장현걸이 다시 한번 지도를 내려다 보았다.
몽고친정에서 돌아온 군주, 영락제.
아수라장을 헤쳐 온 철혈의 황제다. 그가 거하는 남경이 두 눈에 박혀 들었다.
“영락제........어쩌면.......둘 다 아닐 수도 있겠군.”
“예?”
“둘이 아니라 셋이다.”
“셋 이라고 한다면........”
“비검맹, 수로맹, 그리고 황궁이다.”
“황궁.......”
“수군은 일부러 안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어. 폐하의 명에 따라.”
“아.......!”
“비검맹과 수로맹이 부딪치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민심이 동요하겠지만, 그 싸움이 끝나고 나면 둘 중 하나만 남게 될 것이야. 어느 쪽이든 큰 타격을 입은 후겠지. 내가 사냥꾼이라면 기세 등등한 호랑이 두 마리보다 상처 입은 호랑이 하나를 택할 것이다. 관군은 둘이 한판 제대로 붙는 것을 오히려 반가워할지도 몰라.”
확실히 그렇다.
관군 측에 서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물론 너무 앞서나간 것일 수도 있다. 싸움이 한창인 때라면 모르되, 싸움이 벌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수군의 동원 여부까지 결정한다면 지나치게 빠른 결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검맹이나 수로맹의 뒷 공작이 먼저 떠올랐었다.
‘그래. 게다가 황궁에는 그가 있었지.’
장현걸은 ‘그’를 떠올렸다. 그라면 가능하다. 어떤 빠른 결단이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싸움의 결과는 어땠지?”
결론이 안 나는 고민은 뒤로 미뤄둔다. 비검맹이든 수로맹이든 마안 같은 곳에서 싸움을 벌였다면, 그야말로 생사를 결(結)하겠다는 뜻일 테다. 어느 한 쪽이 지워지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싸움이었다.
“싸움의 결과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수로맹의 우세였던 것 같지만 그것도 추측일 뿐이지요.”
“수로맹의 우세? 비검맹이 아니라?”
“예. 수로맹의 전선(戰船) 두 척이 대파 되었지만, 죽은 사람의 숫자로 본다면 비검맹의 무인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군요.”
“잠깐. 수로맹의 배가 무너지고, 비검맹의 무인들이 죽었다? 반대로 되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맞습니다. 그것이 또 이상한 일이지요.”
“수로맹........수로맹에 백무한 말고 또 누가 있었지?”
“사람이야 많지요. 하지만 적어도 알려진 사람 중에서 딱히 고수라 불릴 자들은 몇 명 안 됩니다.”
“역시나 그렇지? 그런데, 비검맹과 싸웠고, 우세를 점했다니.......그들을 너무나 간과하고 있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군.”
“........”
“이제 와서 장강 수로맹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여력이 안 되겠지. 그래도 애를 좀 써봐. 장강 수채들이 비검맹의 지배 하에 들어간 이후로 너무 신경을 못 썼어.”
장강에 대한 정보가 극도로 부족하다.
수로맹.
비검맹에게 싸움을 걸 정도로 커 버린 것이 언제였던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장강 수역(水域)이란 강호의 일부면서도, 중원 무림과는 또 다른 세상 같기만 했다.
“장강에 관한 것은 이미 조사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철혈련 사안에 관한 인력을 조금씩 빼오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미 대사(大事)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에도 아무래도 인력 수급이 어렵습니다. 여기에도 풍 장로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풍 장로? 자세히 말해봐.”
“장강에 눈을 돌린 것 자체를 신경 쓰는 눈치입니다. 낌새가 이상해요. 장강으로 빼 온 오결 제자 중 두 명이 손(孫) 장로의 명에 따라 사천으로 급파되었거든요.”
“손가정 장로? 풍 장로의 최측근이로군. 너무나 노골적인데........”
“예. 이제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투입니다.”
“풍 장로가 나선다. 이렇게까지.......혹시 비검맹과 수로맹의 싸움에 걸리는 것이 있나?”
“모르지요.”
“모른다는 말을 남발하지 마. 후구당에는 코만 있는 것이 아니잖나.”
“.........죄송합니다.”
“풍 장로. 비검맹..........그러고 보면 접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
“접점이란........팔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옳게 보았다. 비검맹, 그리고 단심맹. 둘 사이에 연관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 단심맹.......단심맹이 일으켰던 일은 태반이 관이나 황실과 관련되어 있었어. 태반이 아니라 거의 전부라 보아도 무방할 거야. 봉산이, 자네 이야기처럼 비검맹이 정답일수도 있겠어. 관군의 움직임을 늦춘 것은 말야.”
“단심맹도 장강에 개입하고 있다 보는 거군요.”
“뭔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야 틀림없겠지. 풍 장로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어디까지 일지가 문제인가요.”
“그래. 얼마나 깊게 관여해 있는지는 모르지만 풍 장로가 나서기 시작했다면 더욱 더 일 처리에 신중을 기해야 할 거야.”
“그것은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단심맹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암행 북중랑장 조홍 말이군요.”
“그런 건 잘도 눈치 챈다. 코 대신에 눈치로 먹고 살아도 되겠어.”
“원래 개들이 눈치가 빠르죠.”
간만에 하는 농담이었지만, 둘 다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유를 부리는 것은 버릇이지만 이제는 그 버릇도 서로에게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시끄럽고........어떻게 되었나?”
“빡빡도 하십니다. 여하튼, 그 친구 알아보니까 벌인 일이 상당하더군요.”
“상당하다?”
“접선책까지 마련해서 한꺼번에 보고 드릴려고 했었는데요.”
“어쨌거나 나온 말이니 계속 해.”
“그 친구 북풍단주와 깊이 연관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가 맞군.”
“예. 맞습니다. 북경에서부터 몽고까지 북풍단주와 오랫동안 함께 지냈답니다.”
“전쟁........인가?”
“그렇습니다. 그 친구, 몇 년을 전장에서 보내고, 폐하의 친정 때 폐하의 눈에 들어 암행 북중랑장이란 직책을 하사 받았다 했습니다. 광록훈황실직속암행북중랑장(光祿勳皇室直屬暗行北中郞將)이 그 친구 정식 직책명이라 하더군요. 황실 내에서도 기밀 사항에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그 긴 명칭을 잘도 외웠군.”
“한참 걸렸습니다. 고생 좀 했지요.”
“그래 고생했겠어.”
장현걸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봉산이 말한 고생은 이름을 외는 것에 있었겠지만, 장현걸이 말한 고생의 의미는 그것이 아니었다. 황실 기밀 사항이라면 후구당이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더라도 빼오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었을 텐데 그것을 열악한 상황에서도 용케 알아왔다. 후구당의 힘.
사방이 암흑으로 둘러싸인 지경에서 단 하나의 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황실직속이라 지닌 바 권한이 대단합니다. 병권(兵權)까지 가지고 있던 것 같더군요. 게다가 금의위 동창까지 인맥도 굉장합니다. 금의위 대도독 위금화에 동창 삼대 대주 전원과 친분이 있어요. 숨겨진 실력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금의위 대도독에, 동창이라........골치 아프군. 접촉이 어렵겠어.”
“예. 쉽지가 않습니다. 시도는 해 보고 있지만요.”
고봉산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황실과 개방.
개방으로서는 건들기가 가장 난감한 곳이 바로 황실이라 할 수 있다. 뭔가 가까워야 접근하기도 용이할 텐데, 귀족들과 거지란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기 힘든 법이다. 그런 그곳에서도 실력자라면 후구당만의 힘으로는 접촉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가 없군. 직접 나서야 되겠어.”
“예? 직접 말입니까?”
“그래. 조금 더 빨리 보고하지 그랬나. 그 정도 인물이면 어지간한 일로 경동하지 않아. 직접 만나야 하지. 예(醴)를 갖춰서.”
장현걸이 직접 나서는 것은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위험부담이 작지 않다. 더군다나 황실, 관부라면 단심맹의 주요 영역이다. 타초경사(打草愕蛇)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직접 하시는 쪽으로........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줘. 풍 장로의 이목을 속이는 방향으로 가야겠지. 어차피 들통 나겠지만 말이야.”
개방의 눈을 피해서 일을 도모하는 것의 의미는 후개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개방의 힘.
그 힘의 대부분이 풍 장로에게 있으니, 결국 개방 안에서 개방과 싸워야 되는 상황이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장강에 관한 보고가.......하나 더 있습니다.”
마지막 보고를 이야기하는 고봉산이다.
그 망설이는 듯한 기색, 장현걸은 그 이유를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그 놈에 관한 것이로군?”
청풍이다.
청풍에 관한 것이 아니고서야 넉살 좋은 고봉산이 그런 식으로 나올 리 없었다.
“예.”
“말해 봐.”
“그 친구, 이동 속도가 너무 빨라서 현재 동원할 수 있는 개방의 전력으로는 도저히 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 하신 대로 서천각 정보를 뒤졌지요.”
“서천각 정보를? 그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쓰라 했잖아.”
“말씀 드린 대로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설마 흔적을 남기거나 한 것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천류여협의 시선만 조심하면 나머지는 문제없죠. 게다가 화산 녀석들도 어차피 같은 식구라 생각하기 때문에 별반 경계를 하지 않더군요.”
“그래도 조심해. 특히나 서천각 명령 문서는 대외기밀문서야. 우리가 열람했다는 것을 알아채면 곤란해.”
“사람이 모자랄 뿐이지, 능력이 모자란 것은 아닙니다. 걱정 끄십시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개방의 정보는 그처럼 사람 수에 의해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개방의 특기는 잠입과 염탐, 첩보의 영역까지 닿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찾은 것이 있나?”
“예. 알아냈죠. 놈의 목적지를요.”
“목적지?‘
“목적지가.......놀랍게도 장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장강? 왜지?”
“그 이유는 서천각 문서에도 적혀있지 않더군요.”
“그 정도는 어떻게든 알아 봤어야지.”
“서천각 문서를 엿본 것만으로도 무리수였다는 걸 잘 아시면서 되게 빡빡하게 구십니다.”
“시끄러. 보고나 계속 해.”
“아이고 거참, 내 팔자도 무지하게 더럽소. 여하튼.......! 장강 화현 부근에는 화산 지부 하나가 있지요. 그 친구의 첫 번째 목적지가 바로 그곳인 것 같았습니다. 때문에 그곳을 목표로 잡아 숭무련과 성혈교에 미리 정보를 흘렸지요. 그게 벌써 며칠 전엔데.......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게 단가?”
“물론 아니지요.”
“뜸 들이지 말고 말해.”
“그 친구 말입니다........장강에 도착하자마자 수로맹에 대해 묻고 다녔답니다.”
“수로맹? 그것은 또 왜?”
“그것은.......또 모르지요. 문제는 수로맹에 대해 대놓고 물어보고 다녔다는 겁니다.”
“타는 불에 기름을 부었군.”
“예. 어쨌든 그 때문에 비검맹이 나섰다고 합니다. 함산철검이 이끄는 함산검대와 부딪쳤다고 하더군요.”
“함산철검? 함산마두를 말하는 것인가?”
“그 함산마두 맞습니다. 어떻게 그런 놈들까지 기억하십니까. 그 기억력에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같잖은 소리는 그만하고. 결과는? 아니, 안 봐도 뻔하군.”
“예. 일방적인 싸움이었다고 했지요. 헌데.......”
“헌데?”
“조력자가 있었답니다.”
“조력자?”
조력자라니. 그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우연히 만난 것이라면 모르되, 특별한 조력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홀로 움직이던 사람은 본래 동료들과 움직이기 힘든 법이다. 장현걸이 보았던 청풍은 홀로 강호를 걷는 자였지, 여럿과 함께 나누는 자가 아니었다. 조력자라는 말에 당혹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조력자의 정체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필이면 그 싸움이 벌어졌던 배에, 쓸 만한 무인(武人)들이 한 명도 타고 있질 않아서 도무지가 제대로 된 정황을 알아볼 수가 없었지요. 어떤 무공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 말만 들어보면 상당한 고수인 것 같은데 민초들의 눈을 믿을 수가 있어야죠.”
“그야 그랬겠지.”
“무공 말고 특이한 것이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죠. 그 친구와 서로 아는 눈치였답니다. 원래부터 친분이 있어 보였대요.”
“친분관계, 조력자라........그거 작지 않은 변수(變數)인데.”
“예. 그래서 그것에 대한 조사도 따로 시작했습니다.”
“잘 했어. 혼자와 둘은 다른 점이 많아. 그 놈, 서천각에서도 지원을 받는 모양이던데, 그 것에 대해서도 마저 알아두도록 해. 중요한 것은 화산 장문인과의 관계야. 그 놈에 대하여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즉각 보고하는 것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