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156)

*                              *                             *

 “상처는 어때?”

 “예?”

 무호로 향하는 길이다.

 갑작스런 매한옥의 질문, 청풍은 일순 알아듣지 못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참도회주라는 노인장에게 당한 상처 말이다.”

 “아.......괜찮습니다.”

 “괜찮다라........항상 그런 식이었나?”

 “예?”

 “상처는 제대로 치료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말이지. 옷을 풀어 봐라. 상처를 봐야겠다.”

 “아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못 말릴 놈이군. 도상(刀傷)은, 특히나 그 작자의 기형도 같은 병기는 근육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파내기 때문에 깨끗한 검상(劍傷)과는 다르다. 그대로 두면 안 돼.”

 사려 깊은 말이었다. 

 어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통 익숙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걱정 어린 말을 해 주는 것이 얼마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 두면 나아질 겁니다. 깊이 베이지 않았으니까요.”  

 청풍은 다시 한번 사양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매한옥은 그만두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청풍을 붙잡아 세웠다.

 “오용 사현을 제대로 지키는 법이 없구나. 정 그렇다면 이거라도 써라. 무인은 언제나 자신의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법이다.”

 매한옥이 주섬주섬 자신의 품을 뒤져 조그만 약 봉지 하나를 꺼냈다. 곱게 접힌 종이, 비상시에 쓰기 위한 약이었다. 

 “금창약(金瘡藥)이다. 지혈산(止血散)과 진통분(鎭痛粉)이 함께 들어 있으니 쓰기가 좋을 것이다.”

 내밀어진 손.

 금창약 봉지에는 매한옥의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청풍은 그것을 받아 들며, 사형제로서의 교감을 함께 얻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가볍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지만,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동문 사형제끼리 지닐 수 있는 정(情), 그 무게가 얹혀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이동하여 선박들이 모여 있는 포구(浦口)에 이르렀다.

 장강 물결이 크게 굽이치는 곳, 강물 저편으로는 몇 개의 섬이 군도(群島)를 이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잠시 기다려라. 배를 알아보마.”

 “아닙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움직이는 것이 더 빨라. 상처나 돌보고 있으라구.”

 제지할 틈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매한옥이다. 청풍은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 긴장을 풀고 가슴을 동여맨 옷가지를 풀어냈다.

 “흐읍.” 

 살점이 엉켜 떨어지는 고약한 아픔에 절로 숨이 들이켜졌다. 매한옥의 말마따나 피부와 근육이 제멋대로 패여 있는 상처다. 그가 준 금창약을 뿌리고 잠시 기다리니, 순식간에 고통이 진정되고 시원한 느낌이 찾아왔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귀한 약임을 절로 알 수가 있었다. 

 “후우.......”

 내력을 휘돌려 싸움으로 남아있던 탁기를 흩어냈다. 찢어진 옷은 버리고, 행낭을 뒤져 낡은 도포를 다시 꺼내 입었다. 

 그렇게 몸을 추스르고 나니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다시 강이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구름에서 얼굴을 내민 태양이 양광으로 청풍의 전신을 비추고 있었다.

 찌르는 듯한 태양 빛에 눈이 부셔 고개를 돌린 청풍이다.

 그가 온 길과, 그가 갈 길.

 관도를 따라 움직이던 그의 눈이 일순간 크게 뜨여졌다.

 ‘령매.......!’

 청풍과 매한옥이 가던 방향이다.

 저 멀리로 서영령의 뒷모습이 보였다.

 언제 앞질렀나.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매한옥이 사라지고 청풍이 숲으로 들어갔던 사이, 두 사람을 지나쳐버린 모양이었다. 

 ‘따라오고 있었구나!’

 누군가 따라온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것이 설마 서영령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오해로 거리가 벌어진 두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거리가 벌어졌다고 생각했던 것은 청풍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청풍과 매한옥이 보이지 않으니 다급하게 경공을 펼친다. 시야에서 사라진 그들을 따라잡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령매.......’

 마음을 뒤흔드는 광경이었다.

 두 사람은 멀어졌으되, 마음은 아직도 지척에 있었나 보다.

 그녀를 부르기 위해 한 발 나섰을 때.

 그 때였다.

 언덕 아래쪽으로부터 들려온 매한옥의 외침이 그녀를 부를 기회를 앗아갔다.

 “내려 와! 일이 터졌어. 벌써 시작한 모양이다!”

 내력이 담긴 고함 소리다.

 저만치 달려가던 서영령이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멀고 먼 거리, 돌아본다. 청풍과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또.......!’

 가라앉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긋남이다.

 다시 하나 더해지는 오해였다.

 청풍은 상처 때문에 숲으로, 매한옥은 배를 알아보기 위해 포구로 내려갔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피하기 위해, 그녀가 쫓아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에 숨었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자리에 못 박히듯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그런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이제 와서 그녀를 부를 수는 없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는 편이 옳을까. 청풍은 그녀를 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중첩되는 오해를 풀고 달랠 자신이 없었다.

 청풍의 눈이 다시 서영령에서 매한옥으로 돌아갔다.

 “수로맹과 비검맹의 싸움이야! 서둘러!” 

 소리치며 강 저편을 가리킨다.

 매한옥의 손가락 끝을 따라 그의 눈이 강 저편에 닿았다.

 무리지은 섬, 군도(群島) 사이로 방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점들이 보이고 있었다. 교차되는 점들과 화광(火光), 수상전(水上戰)이었다.

 청풍은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잘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녀와의 동행은 무리다. 흠검단주를 만나고 난 후라면 모르되, 지금은 안 된다. 아니, 흠검단주를 만나게 되더라도 그녀와 함께 이 장강을 가로지를 수는 없었다.

 ‘육극신.......!’

 그녀를 잃을 뻔 했던 곳, 그녀와 헤어졌던 곳이 바로 이곳, 장강이다.

 또한 그 중심에는 육극신이 있다.

 육극신에게 덤비면서 그녀가 다쳤고, 육극신에게서 도망치면서 그녀를 보내주어야만 했다. 

아직 모자랐다.

 그녀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청풍은 육극신을 만날 준비 또한 아직 되지 않았다. 그런 지금, 그녀와 동행하면서 또 다시 그녀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흠검단, 참도회주와 함께 있는 것이 안전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수로맹과 비검맹의 싸움에 휘말릴 것은 자명한 일. 격한 싸움을 치루어야 할 마당에 그녀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절대로 안 될 일인 것이다.

 텅!

 그래서 청풍은 그녀를 외면했다.

 언덕을 박차고 매한옥에게로 몸을 날린다. 그를 따라 움직이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청풍은 애써 돌아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이 장강의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만날 생각이었다.

 만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 때는........그 때는 더 이상 오해 따위 만들지 않으리라. 

 “사공들이 움직이려 들지를 않아! 배를 통째로 빌려야 할 판이다!”

 청풍은 매한옥을 따라 달렸다. 

 포구에 이르러 배를 구했다. 매한옥은 빌린다 했지만 누구도 빌려 주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척을 제 값 주고 샀다. 흥정을 할 시간이나 여유 따위는 없었다.

 배를 띄우며 마지막으로 서영령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흠검단과 합류하면 좋을 것이라 느끼면서도 그와 모순 되는 묘한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청풍은 생각을 접었다. 거기까지인게다. 그걸로 좋은 것이다.  

 “갈 사람이 없으니 안 되겠다. 우리끼리라도 가야겠어!” 

 뱃사공도 없이 강 위로 나왔다.

 누구도 수로맹과 비검맹의 싸움에 끼어들려 하지 않아서였다. 노 젓는 기술도, 경험도 없었던 두 사람이다. 순전히 내력과 힘만으로 강심(江心)을 향해 나아갔다. 

 쏴아아아아.

 힘을 다해 노를 젓고 있지만 군도까지의 거리는 도무지 줄어드는 것 같지가 않았다.

 맑은 날씨. 

 두 눈에 확실히 보인다고 가까운 것이 절대로 아닌 까닭이다. 언뜻 느끼기로는 금방 이를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더욱이 물길도 모르고, 강의 흐름도 제대로 못 읽는 두 사람에게 그것은 실제 거리보다 더 먼 거리였을 따름이다.

 반나절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겨우 섬들 사이로 들어설 수 있었다. 경공으로 달린다면 순식간에 이르렀을 거리였을 텐데, 그 정도로 이렇게 애를 먹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장강, 수상(水上)이라는 공간이 무림의 대지와 얼마나 다른지 온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저 쪽이야.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기운을 더하기 위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반나절.

 그들은 너무 늦었다.

 침몰 되었든, 아니면 철수하였든.

 싸움을 벌이고 있던 전선(戰船)들이 한 척도 남아있지 않았다. 싸움이 이미 끝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미치겠군........!”

 매한옥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수로맹도 비검맹도 없었다. 떠다니는 것은 살벌하게 조각난 나무 파편들과 그 나무파편에 걸쳐진 시체들뿐이었다.  

 촤아아악, 투둑! 투두둑!

 물결따라 출렁이는 싸움의 잔해들이 두 사람이 탄 소선(小船)의 선체(船體)를 두드렸다. 용케 가라앉지 않은 시체들이 곳곳에 보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졌던지, 수역 전체가 붉게 변해있는 것만 같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청풍은 그 와중에도 구조(救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부터 살피고 있었다. 그의 눈이 사방을 훑어가고 그의 오감이 살아 있는 사람의 생기(生氣)를 탐색했다.

 “싸움이 끝난 직후라면 모르되, 지금은 아마도 산 사람이 드물 것이야.”  

 매한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수상전에서 물에 빠졌다가 철수하는 배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드물게 살아 있는 자들이 있었을지라도 지금이라면 기운이 다해 죽었을 것이거나, 여력을 다해 가까운 섬 쪽으로 헤엄쳐 갔을 것이다. 여태 살아 있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소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파편들 사이를 움직였지만, 딱히 얻을 것은 없었다. 수상전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이야기를 들을 생존자도 없는 까닭이었다. 차라리, 가장 가까운 섬으로 배를 움직여 그 섬으로 대피한 생존자들을 찾는 것이 빠를 수도 있었다.

 “잠깐. 저기, 숨이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숨이 붙어 있어?’

 청풍은 곧바로 배의 방향을 바꾸어 한 편에 있는 커다란 나무파편을 향해 다가갔다. 문짝 두개 크기는 족히 될만한 파편에 죽은 듯 걸쳐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명 쪽에 배를 대고 끌어 올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약한 신음소리가 뒤따른다. 매한옥의 두 눈에 기광이 깃들었다.

 ‘이런 것을 듣는단 말인가. 이 강 위에서.......’

 쏴아아아아.

 장강이 달리 대강(大江)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불어오는 바람과 출렁이는 물소리는 바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그런 곳 한가운데에서 사람의 숨소리를 골라낸다? 

 살아 움직이는 자, 생기(生氣)로 분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이 남자처럼 정신을 잃고 있는 자임에야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숙 말씀이 옳아. 이 녀석은 진짜다.’

 청풍의 능력은 발군이다.

 매화검수와 달리 화산의 매화향을 전혀 흘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 기대를 거는 것도 당연하다. 화산의 품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인재였다.

 “무인(武人)이로군. 내가고수(內家高手)야.”   

 “심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끌어 올린 남자는 제대로 다듬어진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큰 키, 정신을 차리지 못함에도 사나움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회색 무복에 새겨진 붉은 색 이빨 무늬가 무척이나 특이했다.  

 “이 문양, 수로맹이다. 잘 건졌어.”

 매한옥이 남자의 무복 왼편에 수놓아진 문양을 가리켰다.

 상어(沙魚)였다.

 상어 한 마리가 붉은 색 수실로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다. 비검맹에서는 이런 문양을 쓰지 않는다. 게다가 한 쪽 어깨에는 수로맹을 뜻하는 수(水) 자(字)도 박혀 있었다.   

 “내공이 정심해요. 정종(正宗) 무공입니다. 이런 자가 이 지경에 이르다니.......”

 “싸움이 격했다는 증거겠지. 헌데 정종무공이라고?”

 “맥을 보십시오. 지금은 불안정하지만, 내력이 상당합니다.”

 청풍의 말에 매한옥이 남자의 손목을 잡아들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걸린 시간은 촌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가 두 눈에 이채를 떠올렸다.

 “그간.......수로맹을 과소평가 했었다 보다. 이 정도 내력이면 무시 못해. 절정고수(絶頂高手)라 불려도 손색이 없겠어.”

 청풍의 생각도 그와 같았다. 이어지는 매한옥의 의견 또한 청풍의 생각 그대로였다.

 “이 남자를 이렇게 만들 정도면 대체 어떤 고수일지 궁금하군. 비검맹의 저력이 놀라워.”

 “예. 비검맹은 강하지요.”

 비검맹의 실체를 직접 경험해 본 청풍이다. 매한옥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였다.

 “심맥은 용케 다치지 않았지만, 전신 경혈이 극도로 탁해져 있어. 음공(陰功)이다. 혈맥을 침투해서 많은 곳에 손상을 주었어. 이대로 두면 위험해.”

 매한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풍은 남자의 명문혈에 손부터 올렸다.

 직접 내력을 움직이려는 의도였다. 매한옥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지금 무슨 짓을!”

 “일단 운기를 돕겠습니다. 사형은 외상을 봐 주십시오.”

 “운기를 돕겠다고? 내력이 다르면 위험해!”

 “괜찮습니다.”

 진기의 상충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가.

 그렇다.

 청풍은 진기의 상충을 생각하지 않았다. 

 자하진기는 신공(神功)이다. 오행 상극인 금기와 목기까지도 섞을 수 있었는데, 다른 내공 구결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또한 서영령의 건곤일기공을 도인해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진기의 움직임에도 대처하는 방법을 안다. 정 상충이 될 것 같으면 압도적인 진력으로 눌러버리면 그만이었다.

 우우웅.

 청풍은 과감히 자하진기를 주입했다. 역시나 저항이 온다. 하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내력이 크게 줄어들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내력이 내상을 치유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훌륭한 내공심법이었다.

 제 주인이 정신을 놓고 있는 데에도 살아 움직이며 내상을 돌보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청풍의 내력이 자신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기 위하여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저항을 멈추고 그 힘을 최대한 받아들인다. 수로맹의 무인이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내공심법을 지니고 있을지 궁금함이 솟구쳤다.

 “후우우우.”

 내력을 더해 스스로의 치유력을 거들고, 기혈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 탁기를 걷어냈다. 한참 동안의 운공, 매한옥은 청풍의 운기를 또 한번의 감탄으로 지켜보았다.

 ‘육합구소신공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공도 다르다는 뜻이겠지. 화산에 묶어두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매한옥은 고개를 저었다. 

 청풍의 무공은 한눈에 보기에도 화산파 무공과 그 궤를 달리한다. 화산무공의 정점을 엿보던 매화검수로 지니는 안목이었다. 그의 눈에 청풍은 마음만 먹으면 화산파를 얼마든지 뛰쳐나갈 수 있는 인물로 보였다. 

 오용 육현을 이야기했을 때 당혹스러워하던 표정을 떠올렸다. 그것은 어쩌면 이미 화산에서 벗어나 버린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 떠난다 하면 붙잡기엔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비약이다. 아직은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된다한들, 나에겐 붙잡을 힘이 없어.’

 매한옥은 더해지는 혼란을 진정시켰다.

 그 때의 일, 오래된 과거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청풍이 화산을 떠날 이유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며칠 동안 지켜본 청풍의 성정에 비추어 보아서도 그렇다.

 게다가 매한옥은 청풍이 제 갈 길을 어디로 간다 해도 제지할 생각이 없었다. 되도록이면 화산의 테두리 안에서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의 바램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일 뿐,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거기까지 뿐이다. 청풍에게 화산의 미래를 걸고 있는 송 사숙이나 이 사숙에게는 미안한 일이겠지만, 매한옥은 청풍을 억지로 잡아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풍이 매한옥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인과 관계가 어떻게 되었든 상관없다. 그는 매한옥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사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선택이란 결과가 어떻게 되든 거들어야 할 따름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매한옥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말이다. 

 쏴아아아.

 매한옥은 상념을 그만두고 노를 저으며 주변의 생존자를 더 찾아보았다. 남자의 외상을 살펴달라 했지만, 남자에게는 특별한 외상이 없다. 청풍이 내상만 잘 진정시킨다면 생명에 지장은 없을 상황이었다. 매한옥으로서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없어. 돌아가야 하는가.’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감각을 최대한 열었으나 감지되는 것은 없다. 청풍만큼은 아니라도 그 역시 민감한 오감을 지닌 고수, 찾지 못한다는 것은 곧 살아 있는 자가 없다는 뜻이리라.

 ‘그래도 수확이 없지는 않아. 정보를 얻지 못하면 어쩌랴. 사람 하나를 살렸으니 된 것이지.’ 

 청풍은 틀림없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육력이나 오용 육현보다 먼저 배우지만, 화산검수가 되어가면서 점차 잃어버리게 되는 지상(至上)의 가치. 

 매한옥도 배운다. 청풍에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 아직은 서먹하고 어색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형제의 모습이다. 늦게 얻은 사제, 매한옥은 그의 힘이 되어주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혀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