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156)

 *                         *                         *

 장강의 한 복판.

 장강을 산에 비유하자면, 그곳은 그야말로 숲이 우거진 중턱이라 할 수 있었다.

 곤륜에서 시작된 줄기가 천하를 질러 질러 중원으로 넘어 든다.

 만혼군도(滿魂群島)는 바로 그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섬 하나 하나가 장강 어민들의 혼(魂)이 깃들어 있는 곳 같다. 어스름한 안개 빛이 명멸을 반복하는 곳이었다.

 꽈과광!

 만혼군도의 모도(母島)인 만혼도의 지척이었다.

 수로맹 제 일 전함(戰艦) 아라한(阿羅漢)으로부터 발사된 해천창(海天槍)이 혈검존의 기함(旗艦) 혈해(血海)의 선체를 꿰뚫으며 무지막지한 폭음을 울렸다.

 “침몰하지 않는군. 안 되겠어.” 

 장강의 미꾸라지, 이제는 자칭이 아니라 장강 전체가 인정한 장강주유.

 강청천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해천창은?”

 “세 발 남았습니다!”

 해천창 뿐인가. 용포의 포탄은 아예 동이 났다.

 눈앞의 상대인 비검맹 전함 혈해. 혈해의 붉은 선체는 그 동안의 교전으로 엉망진창인 상태였지만 도무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빠져나갈 길을 완전히 막고 있는 붉은 거함.......돌파할 길이 막막했다. 

 “뒤 쪽에서 올라옵니다. 포위당했어요!”

 “알고 있다! 다시 백병전이야! 백경무투대(白鯨武鬪隊)는 교전을 피하고 물러나라!”

 장강주유 강청천의 외침이 사위를 울리고 뻗어 나갔다.

 후퇴 명령.

 벌써 몇 번째 후퇴 명령인가.

 수로맹 최강을 자부하던 백경무투대도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도무지 방도가 보이질 않는다. 물러나고 또 물러나 물러날 곳이 없을 때까지 퇴각하고 있었다. 사선(死線)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수비는 선창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집중시킨다. 아래로 내려가게 만들지 마!”

 남아있는 백경무투대 투인(鬪人)인들은 이제 겨우 오십 여명에 불과했다.

 전함의 선미를 장악하면서 몰려오는 비검맹 무인들의 숫자는 그들의 두 배를 너끈히 넘어서고 있었다.

 “방어를 굳혀라! 선수(船首)는 주지 않는다. 버텨!”

 버틴다. 

 공격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가장 강하다는 백경무투대가 이럴진 데,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비목어, 비목단도대(飛目短刀隊)는 박살 나서 와해 된지 삼 일이나 지났다.

 전투력에 있어 백경대에 필적하던 적사환도대(赤沙環刀隊)마저도 붉은 상어의 실종과 함께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제기랄......!” 

 상황을 살피는 강청천의 시선이 선미를 타고 올라온 육중한 남자에게 머물렀다.

 육중한 남자.

 강청천은 그 남자를 잘 알고 있다.

 푸르게 번들거리는 피부, 독공(毒功)의 증거다. 살집 있는 몸 전체에서 진득한 기운이 스물스물 흘러 나오고 있었다. 

 “독사검마(毒死劍魔)다! 물러나!”

 강청천의 다급한 외침이 다시 한번 사위를 울렸다.

 독사검마. 

 비검맹 핵심전력 칠검마 중 하나다.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길을 내 주는 일이 있더라도 병기를 마주치지 마!”

 강청천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이제는 끝이다.

 고수의 부족, 독사검마를 상대할 자가 없는 까닭이었다.

 처음부터 수로맹에는 칠검마 수준의 무공을 지닌 자가 드물었다.

 그 몇 명 안 되는 고수들도 지금은 각자가 다른 비검맹 고수들을 맞이하여 생사결의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서 고수라고 한다면 강청천 밖에 없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사(謀士)인 그로서는 칠검마중 하나인 독사검마의 무공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저벅 저벅.

 독사검마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모두가 물러나고 있었다.

 같은 비검맹의 무인들도 그의 곁에 다가가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강청천아. 강청천아. 미꾸라지라고 그렇게 잘도 피해 다녔건만 결국 여기서 죽는구나.’

 어쩔 수 없다.

 죽기 싫은 것은 싫은 것이고, 나서야 하는 것은 나서야 하는 것이다.

 수로맹 부활이라는 깃발 아래 여기까지 왔고,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의 천명에 책임을 져야 한다. 

 강청천이 선수에서 내려와 백경무투대의 선봉에 섰다.  

 “고래 놈의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었군.”

 그렇게 앞으로 나서고 보니 언제나 선봉 중에 선봉이었던 흰 고래 장백경이 떠오른다. 

 백경무투대의 대장 장백경은 지금 수로맹주인 백무한 곁을 지키면서 비검맹의 절정고수들과 손속을 나누고 있다. 사지의 끝에서 가장 죽음과 가까이 있는 느낌. 그것이 바로 선봉의 자리가 지니는 의미였다.

 “네 놈이 그 미꾸라지였나.”

 독사검마의 목소리는 맑았다. 주변에 퍼뜨리고 있는 독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이 몸을 기억해주신다니 영광이군. 이왕이면 장강주유라 불러 주시지 그러시나? 사해의 동도들은 미꾸라지의 이름을 잊어버린 지 오래라고.”

 강청천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청풍이 집법원의 추격을 피하다가 백무한과 함께 만났던 그 때 그대로다. 화산파 집법원 고수들의 검 앞에서도 제 할 말을 다하던 성정이 어디로 갈 것인가.

 여유까지 보이는 강청천의 태도에 독사검마의 입이 살기 어린 미소를 그려냈다.

 “그 세치 혀를 한 줌 핏물로 녹여 주마. 언제까지 붙어 있을지 시간을 재보는 것도 좋을 게다.” 

비검맹 무인들 중 가장 살기가 강한 자라 한다면 역시나 사검존(死劍尊) 회의사신(灰衣死神)이겠지만 이 독사검마의 살기도 회의사신의 그것과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강청천의 눈이 미미하게 떨렸다.

 ‘도저히 안 되겠어. 칠검마가 이렇게 강할 줄이야.’

 어떻게든 상대해 보려 했으나, 가까이 서고 보니 몇 합이나 버틸지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 수를 생각해야 한다. 

 끝에서 끝까지 보류해 두었던 계책. 오로지 한 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계책이었다.

 ‘이 배가 여기까지 몰리다니, 천운이 다 한 게다.’

 아라한에 붙은 제 일 전함의 칭호.

 제 일 전함이라는 것은 곧 수로맹 최대 전력을 의미한다.

 장강 최고의 조선기술과 중원 정점의 병기술이 함께 한다는 뜻이다.

 그 중 이 배에 최강의 수병기(水兵器)를 더해준 자.

 ‘이렇게 된 이상 그 분만이라도 피신시켜야 돼.’

 그가 여기에 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전함이라 생각했기에 이곳으로 모셨으나,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어떻게든 그 분만이라도 살려내야 했다.

 이 수로의 싸움과는 조금도 상관이 없었던 사람.

 의기천추(義氣千秋).

 오로지 협기만을 내세워 수로맹을 도와준 사람이었다.

 “당 노사(老士)! 들리시오?”

 내력을 실은 강청천의 목소리가 갑판을 타고 계단 아래쪽을 향하여 내려갔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청천을 알고 있었다. 그 분이 듣고 있음을.

 “차선책은 없소. 삼책(三策)이오. 세 번째! 지금 당장 실행해 주십시오!”  

 강청천의 말이 끝났다. 

 검을 내치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온 독사검마다. 그의 검집에서 성명병기인 기형독검(奇形毒劍), 진사(疹死)가 풀려나왔다.  

 “당 노사라........밑에 있는 놈이 그 놈인가 보군. 엉뚱한 무기(武器)들을 제공한 놈.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

 “물론 안 되지.” 

 독사검마는 다시 한번 웃었다. 진심으로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독사검마가 강청천의 뒤쪽, 아래의 선창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시선을 주었다.

 “안 될게 있나. 내려가서 보면 되겠지.”

 “그게 쉬울까? 공근 주유는 문무겸전이었어.”

 강청천은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 발작 물러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버텨 섰다. 

 길이 뚫리는 것은 기정사실이라도 시간만큼은 확실히 끈다.  

 당철민. 그가 세 번째 계책으로 이 곳을 빠져나갈 시간은 반드시 벌어줘야 하는 것이다. 

 ‘호흡을!’

 독사검마가 갑판을 박차고 거리를 좁혀 왔다. 검보다 먼저 흉악한 기운이 콧속을 파고들고 있다.

 독이었다. 강청천이 흡기(吸氣)를 멈추고, 다급히 몸을 기울였다.

 쐐애액!

 일 검 일격이 무서운 기세를 품고 있었다.

 악랄한 사공(邪功)임이 분명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검법. 반 보 뒤로 물러나며 일 검을 더 피했다.

 ‘역시 그렇다. 이기지 못해.’

 피하는 것으로도 버거웠다. 한발 박차고 달려드는 독사검마의 움직임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공격을 해 보려 했지만, 온 몸에서 뿜어 나오는 독기(毒氣)가 어느 정도 이상의 접근을 근본부터 차단하고 있었다.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단 한번 반격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촤아악! 콰쾅!

 일합에서 이합으로. 이합에서 삼 합으로.

 몇 합 지나지 않아 강청천은 깨달았다. 독사검마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독기(毒氣)도, 검법(劍法)도 적당히 펼치고 있다. 강청천을 노리개처럼 가볍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위험하다. 이래서는 두목도 죽겠어.’

 강청천보다 몇 단계 위에 있는 무공이다.

 칠검마의 무위, 생각했던 것을 훨씬 넘어선다. 칠검마가 셋 이상 모이면 백무한으로도 버거울 터, 칠검마의 무위에 대한 추측이 경험으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흡!’

 뛰어 올라 일검을 피한 강청천이다. 쉴 새 없이 내쳐오는 검격에 점차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안 돼. 끝이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백경무투대의 투인들도 마찬가지다. 독사검마가 이끌고 온 비검맹 무인들에 맞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계단을 사수하고 있는 몇몇 백경무투대 대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원들이 힘을 잃고 있었다.

 후퇴 명령도 소용없었다. 후퇴라 해 봤자, 그들 뒤에는 출렁이는 강물밖에 없다. 강물로 뛰어든다 해도, 비검맹의 함선이 둘러쳐져 있을 뿐이다. 강물 백리를 잠수하여 건넌다는 흰 고래라면 모를까, 백경무투대 대원들이 모두 흰 고래인 것은 아닌 까닭이었다.

 쐐애애액! 촤아악!

 절망적인 싸움의 종지부를 찍기라도 하듯. 

 피하고 또 피하던 강청천의 어깨에서 결국 한 줌의 핏물이 솟구치고 말았다.

 치명상이었다.

 상처는 깊지 않아도 독사검마의 검에는 생명을 앗아가는 독(毒)이 깃들어 있다. 즉사(卽死)에 이를 극독(劇毒)은 아닐지라도 내력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죽음에 이를만한 맹독(猛毒)이었다.   

 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진데, 독을 제어할 여유가 어디에 있을까.

 순식간에 정신이 흐려지고 다리가 풀린다. 갑판에 넘어진 그의 머리 위에서 독사검마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문무겸전이 이 정돈가? 웃기는 놈이로군. 이제 그 혓바닥이나 받아보자.”

 기울어진 강청천의 시야에 독사검마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래. 그 정도지. 허무하다. 허무하구나.’

 허탈감에 이어, 분노가 치민다. 

 수로맹의 군사로서 비검맹에 죽게 된다면, 적어도 그 상대는 비검맹주나 육극신이길 바랬었다. 칠검마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었다. 장강신추라면 모르되 장강주유의 자존심이라면 결코 충분하지 못했다.

 “아쉽군.”

 흔들리는 강청천의 입에서 마음 그대로의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

 독사검마가 강청천의 얼굴에 기형검, 진사를 들이대며 물었다.

 “무엇이 아쉽다는 말이지?”

 “네 놈 따위에게 죽는 것이 아쉽다는 말이다.”

 “헛소리를 하는군. 미꾸라지에게 도철의 진사검 정도면 사치야.” 

 진사는 신공(神工) 도철이 만든 또 하나의 기병이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독사검마를 올려보는 강청천이 기울어진 미소를 흘렸다.

 “도철의 칠대기병에도 들지 못하는 주제에 거들먹거리지 말아라.......게다가 그 검에 독이나 쳐 바르다니, 만든 자의 이름을 더럽힐 뿐이다.”

 스걱.

 강청천의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입에서 뺨으로 길게 이어지는 검상이다.

 독사검마가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이런. 겨냥이 빗나갔군. 이번엔 실수가 없을 거다. 확실히 그 혀를 잘라주지.”

 강청천의 얼굴에서 진한 핏물이 철철 쏟아져 내렸다. 

 깊게 벤 상처다. 그가 입은 백의가 온통 선홍색으로 물들어간다. 독사검마의 검이 서서히 움직여 그의 입을 겨누었다.

 “거기까지 해라. 그 놈 말은 조금도 틀린 것이 없어.” 

 늙은 목소리였다.

 얼굴의 반이 베어졌음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강청천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끼이익.

 사수하고 있던 계단 밑으로 닫혀졌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걸어 나오는 자. 

 건장한 상체를 지닌 노인이다. 심귀도의 마장(魔匠) 당철민, 중원 제일을 논하는 장인(匠人)의 정점이 거기에 있었다.

 “진사는 독검(毒劍) 따위로 쓸 검이 아니다. 병기라 함은 그래. 만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 주인 자격이 없는 법이지.” 

 백경무투대 대원들 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비검맹 무인들까지도 일순 달려들지를 못한다. 

 무공과는 관계없는 위엄이다. 인생 일로를 투철하게 걸어온 사람의 기도였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하는군. 노인장의 혓바닥도 잘라줘야겠어.” 

 “그럴 수 있을까.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자신 있게 말하는 당철민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강청천의 얼굴에는 절망이 깃들고 있었다.

 당철민은 고수다. 

 그러나, 당철민으로서도 독사검마를 이기지는 못한다. 당철민의 무위는 기껏해야 강청천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신기(神技)의 암기술과 특별한 기병(奇兵)들이 있다고 해도, 지닌바 무공 차이는 아무리 해도 극복하기가 힘들다. 

 그뿐인가. 이 곳에는 독사검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갑판 전체를 장악한 비검맹 무인들을 생각하면 당철민이 이 곳에 나선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대체 왜........!’

 당철민은 세 번째 계책에 따라 도망갔어야만 했다. 강청천 자신이 죽는 것이야 관계 없어도, 당철민까지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는 저승에서 백무한을 볼 면목이 없다. 한 줄기 의기(義氣) 지키기 위하여 죽어간 다른 수많은 장강 사나이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는 까닭이었다.

 당철민이 섰다.

 그리고 독사검마의 몸이 움직였다.

 강청천은 그 싸움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때였다.

 “그만 나와라. 손을 쓰기로 했으면.” 

 당철민의 목소리.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갑판의 한 가운데가 들썩 흔들리고 이어, 강렬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쾅!

 갑판이 갈라지고 나뭇조각들이 치솟아 올라온다. 

 독사검마와 당철민의 사이에서, 바닥을 뚫고 하늘로 솟구친 하나의 그림자가 있었다.

 터텅.

 떨어지는 나무 파편들이 장식이라도 되는 양, 그 그림자의 강림 앞에 흩날리고 있다. 갑판을 뚫고 올라온 그가 호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 검이 손에 붙기 전까지는 결코 손을 쓰지 않으려 했건만........이 책임은 당 노인이 지시오.” 

 강인한 등. 

 온 세상을 떠받칠 것 같은 기세다.

 선이 굵은 얼굴에, 강철이라도 뚫어버릴 눈빛을 지녔다. 

 그 남자를 본 독사검마의 얼굴이 크게 굳었다.

 “당신은........설마........!”

 “호오........알아볼 수 있나? 내 얼굴을?”

 웃음 짓는 남자다. 

 그가 천천히 오른손을 움직여 허리춤에 걸린 검자루를 잡았다. 

 “비검맹 칠검마 정도면 새 검의 첫 상대로 나쁘지 않지. 어떻소, 당 노인. 성왕(聖王)을 뽑아도 될까?”

 “마음대로 해. 상대가 도 신공(神工)의 진사검이면 그만한 자격은 충분하겠지.” 

 “저것이 진사였소? 그렇다면 더더욱 좋군.”

 스르르릉.

 그의 허리에서 황백의 광채가 풀려 나왔다.

 화려한 장식만큼이나 시린 백광(白光)이다.

 흠검(欽劍)이란 곧, 검을 흠모하는 자. 마침내 진정 흠모할만한 검을 얻었다.

 마장(魔匠) 당철민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일생일대의 역작(力作)이다.

 성왕검(聖王劍)이 그 검의 이름이었다.

 “팔황의 맹약을 깰 마음은 없다. 다만, 이곳에 내가 있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숭무련과는 관계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밝힌다.

 흠검단주, 아니 이제 성왕검주가 된 갈염이다.

 사위를 압도하는 그의 기파에 독사검마가 이를 악물며 물었다.

 “방해하겠다는 것인가.”

 “딱히 방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냥 두지는 못하겠군.”

 “숭무련의 흠검! 비검맹에서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거야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고.......”

 갈염이 성왕검을 들어 독사검마를 겨누었다. 

 어떤 싸움에도 끼어들지 않은 채, 진신진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던 자.

 그의 입에서 선언과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단 마음을 정한 이상 더 이상 왈가왈부는 필요 없겠지. 덤비거라.”

 개전(開戰)을 알리는 말이었다.

 그 말에 발끈하는 독사검마. 이내, 흥분한 눈빛을 가라앉히며 진사검을 고쳐 잡는다.

 상대는 숭무련 최강 검객을 논하던 고수다. 가볍게 운기하던 독공을 최대로 끌어올리니 독사검마의 전신에서 불길한 독기가 뭉클뭉클 새어 나왔다.

 "끝까지 방해하겠다면 죽일 수밖에 없어. 비검맹에 검을 겨눈 것, 후회하게 될 것이다!"

 파아아!

 독사검마의 급격한 쇄도에 부스러져 있던 나무조각들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이어 성왕검의 화려한 검신이 진사검의 살벌한 검격과 맞부딪쳤다.

 횡으로 치고 들어오는 진사검에 수직으로 맞붙는 성왕검.

 진사검은 삼 합도 견뎌내지 못했다.

 순식간에 투로가 망가지고 호흡이 흐트러진다. 갈염이 보여주는 무위는 그처럼 막강했다. 숭무련 무공의 정수가 그의 검공 속에 녹아 있었다.

 쿵! 쿠쿵!

 연신 뒤로 물러나는 독사검마다.

 그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진사검을 휘두르는 그의 손이 점차 다급하게 변해갔다.

 '이렇게 강하다니.....!'

 비검맹 칠검마라고 한다면 오검존 이외에는 어지간해서 비할 데가 없는 고수들이라 알려져 있다. 알려지기를 그렇게 알려졌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비검맹을 장강의 패주로 끌어올린 무인들이란 말이었다.

 흠검단주 역시 숭무련 무력의 핵이라 했지만, 그 명성으로 따지자면 칠검마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수준일 게다. 독사검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서 검을 전개한 것이다. 비검맹 혈사 때부터 쌓아온 무공경과 경험이라면 심산유곡에 숨어 잘 나오지도 않는 숭무련 일개 지파의 수장 따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흠검단주는 강했다.

 독공은 애초부터 전혀 통하질 않았고, 검공에 있어서도 한 단계 위에 있었다. 검존(劍尊)의 무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사검마 정도의 고수가 두 명은 있어야지 상대할 수 있다. 칠검마 한 명으로는 필패요, 두 명으로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쩌어엉!

 위에서 내려치는 성왕검의 검격은 산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를 품고 잇었다.

 정신이 아찔해질 일격이었다. 그래도 백전의 검귀(劍鬼)인지라 진사검을 놓칠 뻔한 충격에도 반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사납게 치고 오는 독사검마의 진사검에 갈염의 눈이 번쩍 하고 빛을 발했다.

 쩡! 스가각!

 그것으로 끝이었다.

 진사검을 걷어낸 성왕검이 사선으로 흘러내렸다. 쇄골을 부수며 내려간 검이 가슴을 길게 베어낸다. 승부를 가르는 일격이었다.

 "크윽........!"

 억물린 신음성을 내뱉는 독사검마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내상을 입으면서 몸 속의 독기가 역류하는 현상이었다. 외상뿐이라면 어떻게 살 수 있겠지만 이렇게 되면 회생이 불가능하다. 독공을 연성한 자가 지니는 최악의 부작용이었다.

 "쿨럭!! 커억!"

 결국은 검게 죽은 핏덩이를 토해 내고 말았다.

 한쪽 무릎을 끓고 진사검으로 몸을 지탱하지만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위태하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갈염을 올려보았다.

 "어찌하여... 그렇게.......!"

 서서히 흐려지는 독사검마의 눈에는 강한 의구심이 깃들어 있었다.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비검맹이 흠검단주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정보보다 월등히 위에 있는 무공, 갈염이 그를 내려다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죽일 마음은 없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엔 네 놈이 너무 강했다."

 고개를 꺾는 독사검마.

 그의 얼굴에 비틀린 웃음이 자리잡았다. 공격다운 공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당했는데, 강했다고 말한다. 저승길 선물치고는 초라한 한마디였다.

 휘익.

 숨이 끊어지는 독사검마를 뒤로한 채, 성왕검을 비껴 들고 몸을 돌렸다.

 천하를 논할 만한 위엄이 우러나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지러운 강 위에서 그 홀로 자유로운 느낌이다. 그런 갈염을 보는 당철민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엄청난 성취로군. 밤낮으로 검에만 매달려 있더니."

 "뒷 물결이 앞 물결을 치고 나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을 뿐입니다."

 "뒷 물결이라면 그 놈을 말함인가?"

 장가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제치고 나간다.

 무림의 후기지수가 선배 고수들을 뛰어넘어 앞서 나갈 때 쓰는 말이다. 당철민이 말하는 뒷 물결, 갈염은 작년 가을을 함께했던 한 젊은이를 떠올렸다. 부단주로 키워냈던 조신량보다 이상하게도 더 끌렸던 젊은이, 한 식구가 아님에도 한 식구처럼 느껴졌던 젊은이였다.

 "그렇다고 해두죠."

 "재미있군. 어찌 보면 자네 역시 뒷 물결인데 말이다."

 "뒷 물결이라?"

 "그 검력. 숭무련주라도 따라잡겠다는 기세로 보여. 내 눈에는."

 당철민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장강 물결의 앞과 뒤.

 그것이 어디 청풍만의 이야기일까.

 갈염이 앞에 있다지만 그 역시도 가장 빠른 자가 아니다. 그 역시 다른 앞을 쫓아가는 자에 불과하다는 말이었다.

 "련주님을 따라잡든 어쩌든 그것은 일단 이곳을 벗어난 다음의 일입니다. 검존들의 무위도 무위지만, 비외사마존(比外四魔尊)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그렇다.

 여유롭게 한담을 나눌 때가 아니다.

 갈염의 시선이 비검맹과 백경무투대들의 싸움을 향하여 움직였다.

 이제는 혈로를 열어야 할 때.

 그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일어나라. 검마(劍魔)의 독 정도는 이겨내야지. 그래 가지고 중대가리 놈의 군사 노릇을 하겠나? 네 놈이 지휘를 해야 모두가 살아나갈 수 있어."

 그의 말을 듣고 힘겹게 일어나는 남자.

 다름 아닌 강청천이다. 독과 싸우느라 지칠대로 지친 얼굴이었지만, 두 눈에는 새롭게 일렁이는 투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백경무투대는 방어 대형을 풀어라! 이제는 공격이다! 선봉을 열고, 측면으로 들어가! 선미(船尾)를 탈환하고 아라한을 움직이자!"

 다 죽어가던 그 몸에서 어찌 이리도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올까.

 성왕검을 들고 나아가는 갈염의 뒤로 장강 주유의 병법이 움직인다. 오직 죽음뿐이던 이곳에 마침내 살아나갈 활로가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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