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잉!
머리 속을 울리는 공진이다.
흐트러진 손속, 풍도마존의 파풍도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마터면 목숨까지 날아갈 뻔했다.
한 순간의 실수가 생명과 직결되는 싸움이다. 기이한 느낌이 등 뒤를 잡아 끄니,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죽는다. 청룡검을 밑으로, 주작검까지 같은 검결을 발했다. 용뢰섬의 연속이다. 강력한 방어막을 쌓아놓고 뒤쪽으로 몸을 빼냈다.
'대체.......!'
빠르게 물러나며 거리를 두고, 뒤쪽을 돌아보았다.
어지러운 선착장, 엄청나게 밀려드는 비검맹 무인들과 장창을 휘두르는 수로맹 무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엇이 그렇게 그의 신경을 앗아갔는가. 답은 금방 나왔다. 그것도 무척이나 충격적인 모습으로.
'저 검은!!'
청풍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뜨여졌다.
장창을 든 수로맹 무인들 한가운데.
엄청난 기세로 그들을 돌파하는 한 명의 검사가 있었다. 희뿌연 광채가 난무한다. 검사가 휘두르는 검, 너무나도 익숙한 검이었다.
'백호검!'
놀랍고도 놀랍다.
그러나 청풍은 그 놀라움에 얼이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철장마존과 풍도마존이 눈앞에 있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무공을 뽐내면서. 한눈을 팔 때가 아니었다.
쩌어어엉!
칼날처럼 집중을 더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곳에 정신을 분산시켰으니 공격에 대한 응수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청풍의 몸이 뒤쪽으로 크게 밀려났다. 이어지는 철장마존의 철장, 청룡검에 전해지는 반탄력이 엄청났다.
"큭!"
쏟아지는 공격이다.
피하는 일보 일보가 힘들었다. 풍운룡보를 펼치고 있지만, 그의 풍운룡보는 더이상 바람과 구름을 노니는 청룡의 조화가 되지 못했다. 거센 물줄기에 승천하지 못하는 곤룡의 몸부림이었다.
'그놈......!'
쩌어어엉!
청풍의 몸이 휘청 흔들렸다.
꽉 막힌 가슴에 등 뒤로는 묵직한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상세가 심해지고 있는 것, 하지만 싸움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분이 아니었어!'
혼란을 느끼는 청풍이었다. 그의 머리 속에 바로 직전에 보았던 광혼검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을지백.
그가 아니다. 백색의 검은 백호검이 맞지만 그것을 휘두르는 자는 을지백과 다른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을지백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광혼검마가 을지백이 아니라면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을지백. 그때 을지백은 어떻게 되었던 것일까.
이상하다. 이상하고도 기이했다.
'더욱이......!'
무엇보다 가장 기이한 느낌은 따로 있었다. 광혼검마가 을지백이 아니라는 것을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다. 그냥 추측이 아니라 확신과도 같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쩌저정! 파아앙!
잡념을 가질 때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을지백, 을지백은 없지만 백호검은 저기에 있다. 당장이라도 광혼검마에게 달려가 묻고 싶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어떻게 백호검을 지니게 되었느냐고.
빠악!
"크윽!"
조급함과 의아함. 손속을 어지럽힐 뿐 아니라 치명적인 허점까지 불러오고 있었다. 철장마존의 철장이 청풍의 어깨에 작렬하며 둔탁한 소리를 울렸다.
죽음의 위기였다. 흐름을 한번 빼앗기고 나니 도무지 무공을 펼칠 여유가 없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보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모든 것이 느려져 보이던 상승의 영역은 자신만이 홀로 느린 죽음의 영역으로 바뀌어 버렸고, 내상을 입은 와중에도 충만하게 뻗어나가던 내력은 더 이상 그의 부름에 응하고 있지 못했다. 위기의 연속, 죽음의 문턱으로 한발 들여놓았다. 이대로는 죽는다. 죽을 것이란 생각이 서서히 그의 머릴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엄청나게 벌여놓았군! 굉장한 싸움이야."
낙도진이 훤하게 보이는 언덕이다.
새롭게 나타난 한 무리의 무인들이 그 밑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모래, 갈대, 온갖 물풀들이 수놓아져 있는 강변의 대지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엉켜서 쓰러지고 있었다.
함성을 지르는 무인들과 비명을 지르는 검사들이 거기에 있었다. 장강의 연장선, 강호가 바로 이곳이다. 더운 피를 연료로 생명을 불사르는 싸움이 미친 듯 타오르고 있었다.
"놀라워. 수로맹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참도회주의 목소리에는 감탄이 어려 있었다.
그 자신도 팔황에 속해 있는 자. 팔황의 저력을 잘 알고 있다. 맹주가 제아무리 소림무공을 대성했다 한들, 수로맹이라는 집단이 팔황을 이긴다는 것, 그리고 비검맹 최고수들을 모두 다 동원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수로맹은 칭찬 받을 가치가 있었다.
"저기, 그 놈입니다."
조신량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된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목을 끌어들일 싸움이다. 이곳 전체에서 가장 강하고 화려한 충돌이 빚어지는 곳, 그곳에 청풍과 두 명의 마존이 있었다.
"하나는 철장마군(鐵杖魔君)이로군요. 비검맹에 있었던가요."
"비검맹에 있었지. 다른 하나는 풍도마신(風刀魔神)이다. 비검맹에서는 무슨 마존이라 불리는 것 같더군."
엄청난 싸움이었다.
부딪치고 튕겨 나오는 기세가 이 낙도진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다.
두 자루 청홍의 빛살을 흩뿌리며 신비한 무공을 펼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그야말로 강림한 무신(武神)의 그것이었다.
"밀립니다. 저놈,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 자칫하면 죽어버리겠어."
참도회주의 말처럼, 청풍의 움직임은 이미 한계까지 이르러 있었다. 처음에는 어느 저도 버티는 듯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흐트러지고 말았다. 위태위태한 상황,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터벅.
참도회주와 조신령의 옆.
한 발 앞으로 나서는 호리호리한 인영이 있었다.
청풍을 따라 먼저 달려갔지만 어쩐 일인지 그대로 돌아왔던 서영령이었다. 조신량 일행과 합류한 후 있는 듯 없는 듯 함께해 온 그녀였다. 그녀의 생기 없던 두 눈이 복잡한 빛을 띠며 청풍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끝이군요. 승부는 이미 났습니다."
조신량의 목소리는 침중했다.
청풍과 매한옥을 추격하며 싸움의 전황을 파악하던 중, 이 철갑선단의 움직임을 포착한 것이 바로 이틀 전이다. 만혼군도의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수로맹은 틀림없이 이곳으로 온다. 조신량의 예측은 정확했다. 즉흥적이면서도 정확한 예상, 검력은 아직 부족했지만 흠검의 후예임은 확실했다.
기울어져 가는 격전을 지켜보던 두 사람이다.
밀리고 밀리던 청풍이 결국 철장마존의 철장에 가격 당하고 만다. 휘청이는 모습, 방어는 완전히 무너졌고 투로도 흐트러져 버렸다.
쩌엉! 꽈아아앙!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청룡검을 휘두르며 어떻게든 후속 공격을 차단하고 있었다.
연이어 죽을 위기를 넘겨내는데, 그 광경 하나하나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집념, 투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피를 끓게 만드는 광경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도와주고 싶게 만드는 모습, 그것이 청풍의 마력 아닌 마력일까. 달려가서 함께 손을 섞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다.
하지만 참도회주나 조신량으로서는 그렇게 끼어들 수가 없었다. 팔황으로서의 맹약도 맹약이지만 어떤 명분으로도 개입하기는 곤란하다. 갈염의 생사를 다시 한 번 들먹이기엔 두 사람으로서도 체면이라는 것이 있다. 애석하지만 무시할 수밖에 없다. 참도회주가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지을 때다.
바로 그때였다.
파파팍!
한 순간 들리는 파공성이 두 사람의 안색을 크게 변화시켰다. 두 사람의 곁에 서 있던 인영이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그 아이를 잡아!"
"이 무슨!!'
서영령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달려나갔기에 모두의 반응이 늦었다. 청풍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별반 뛰쳐나갈 기색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없다.
참도회주, 그리고 조신량이 경공을 전개하며 따라붙었다. 다른 흠검단 검사들도 그들의 뒤를 쫓는다. 달리는 자들, 다급한 경호성이 난무했다.
선두에 있는 것은 오직 한 명.
사랑하는 남자의 위기, 그 이외에는 어떤 것도 보지 못한다. 청풍에게로 질주하는 그녀, 참도회주도, 조신량도 도저히 따라잡지를 못한다. 경공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 그녀의 마음이 이 땅 장강에 또 한번의 기적을 일구어내고 있었다.
퍼어억! 스가가각!
철장이 틀어박힌 옆구리가 꺼지듯이 움푹 들어갔다. 튕겨 나오는 청풍의 등 뒤로는 풍도마존의 파풍도가 길고 긴 도흔을 입혀놓았다. 늑골이 다섯 대나 부러지고 등 근육이 두 치나 잘려나간 결정적인 상처였다.
하지만 그 상처를 입혀놓은 두 사람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몸을 낮추면서 금강호보를 전개하는 청풍. 오른손에 백호무, 왼손에 청룡결, 백호탐천과 청룡도강의 일격이 두 사람의 전신으로 쏟아진 것이다.
풍도마존의 어깨에서 피가 튀고, 철장마존의 허벅지가 길게 베어졌다. 치명상까지는 아니었지만 꽤나 깊게 들어간 상처이다.
이어지는 백호금광과 청룡운해가 막강한 경력을 내뿜었다. 마지막 공격임을 예감하기라도 하듯 혼신의 힘이 실려 있었다. 받아낼 수 있는 힘이 아니다. 풍도마존이 열 걸음이나 뒷걸음질치며 그 힘을 흩어냈고, 철장마존은 두 군데에 검상을 입었다.
"이놈.......!"
풍도마존이 이를 악물었다.
흔들리는 청풍. 더 이상은 검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다. 분노에 휩싸인 풍도마존과 철장마존이 다가올 때다. 날렵한 인영 하나가 짓쳐 들며 청풍의 앞을 가로막았다.
"풍랑! 괜찮아요?"
이 목소리.
청풍은 흐려지던 의식을 어렵사리 붙잡았다.
믿을 수 없었다.
이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니.
"괜찮다. 걱정하지 마."
괜찮을 리가 없다.
쓰러져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럼에도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럼에도 청풍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왼팔이 떨구어졌던 청룡검을 들어 올렸고, 그의 오른손이 기울어진 주작검을 바로 했다. 그의 눈이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렇게 서영령의 등 뒤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오라!"
놀라운 기파였다.
내력이 고갈되었을지라도.
육신이 엉망일지라도.
그의 심혼은 결코 죽지 않았다.
풍도마존이 다가오며 한쪽 입술을 치켜 올렸다. 비웃음이 아니라 감탄의 웃음이었다. 그 역시 한 자루 도신(刀身)에 목숨을 건 자, 절정에 오른 무인이다. 그러한 투혼에는 그 누구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다. 철장마존 역시 마찬가지, 철장을 고쳐 잡으며 청풍의 앞으로 진중한 발걸음을 옮겨왔다.
"계집은 비키거라. 비키지 않으면 함께 베겠다."
풍도마존의 거친 목소리가 그 앞을 휩쓸었다.
마존의 이름으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하지만 서영령이 비킬 리가 없었다. 그 눈빛에 담긴 확고한 의지, 풍도마존이 눈썹을 들이대며 파풍도를 치켜 올렸다.
"어쩔 수 없군. 죽어라. 이름 모를 젊은이여."
검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반격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도, 풍도마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
한 순간, 청풍의 팔이 서영령의 두 어깨를 감쌌다. 서영령을 옆으로 밀고 힘을 다해 돌려내는 몸이다. 그 자신의 몸이 베어질지라도 서영령 하나는 살리고 만다. 육신의 방벽으로 그녀를 보호하는 의지, 청풍의 몸이 내려치는 파풍도를 향해 들이밀어졌다.
쩌어어엉!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내려치는 파풍도와 새롭게 쳐 들어온 흑철도가 화려한 충돌음을 터뜨렸다.
놀라움으로 물러나는 풍도마존, 한 자루 검은색 도신이 묵직한 광채를 흩뿌리고 있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 참도회주가 입을 열었다.
"네놈의 파풍도는 지나치게 날카롭다. 이 아이까지 다치겠어."
싸움에 끼어든 명분은 간단했다.
숭무련의 일원으로서 서영령을 구하기 위해 손을 썼다는 말이다. 참도회주를 알아본 풍도마존의 얼굴이 크게 굳었다.
"참도회주!"
"그래. 내가 참도회주다. 풍도마신."
풍도마신.
비검맹에 들어가기 전 옛 이름을 부른다. 풍도마존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숭무련이 무신 짓이냐."
"무슨 짓이냐? ....건방진 놈."
참도회주의 기파가 사위를 휩쓴다. 싸움을 직감하는 두 마존, 그들의 몸에서도 강력한 기세가 무럭무럭 솟아 나왔다.
"해보자는 것인가?"
"물론이다. 풍도마신의 파풍도가 제법 쓸 만하다고 들었지. 한데 이제 보니 아주 막돼먹은 놈이로다. 그 솜씨를 한번 봐야겠어."
흑철도를 비껴 들며 풍도마존을 직시한다.
엄청난 존재감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짓쳐 드는 도격이었다.
서영령이 청풍의 몸에서 빠져나오며 그를 부축했다. 비틀거리는 청풍의 몸이다. 그녀가 청풍을 잡고 앞으로 발을 옮겼다. 봉두난발의 철장마존이 옆으로 따라붙었다.
"어이, 당신 상대는 나야."
철장마존의 앞을 가로막은 자.
조신령이었다.
조신량이 강의검을 겨누면서 한 자루 보검과 같은 기세를 일으켰다.
그가 철장마존의 전면을 차단하며 뒤를 향해 외쳤다.
"흠검단은 아가씨를 호위하라! 안전한 곳으로 모셔!"
그것을 보는 철장마존, 그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흔한 기합성조차 지르지 않는 채, 들고 있는 흑철장을 내쳐 왔다.
쩌어엉!
조신량이 강의검을 휘둘러 철장마존의 공격을 절묘하게 막아냈다.
조신량의 뒤, 흠검단 무인들이 서영령을 중심에 두고 방어 대형을 갖추어 나간다. 달리기 시작한 흠검단 무인들, 포위망을 형성해 오는 비검맹 무인들을 돌파하면서 바깥쪽 언덕을 향해 나아갔다.
파파파파! 챙! 채채챙!
흠검단의 질주는 대단했다.
굉장한 위력, 빠른 속도다. 강렬한 기세가 물씬 우러나오고 있었다.
"아가씨! 이쪽으로 가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서영령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떠올라 있었다. 정신을 잃어가는 청풍을 들쳐 업다시피 했다. 빠르게 달려가는 서영령, 흠검단 검사들과 교환하는 눈빛에 강한 유대감이 흘러나왔다.
서영령의 호위를 맡은 흠검단.
흠검단이 지금 움직이고 있는 이유가 서영령을 지키겠다는 명분뿐이었을까.
그들이 무공을 전개하며 마음을 모은 이유는 서영령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서영령의 안위를 돌보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손을 쓰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서영령도, 조신량의 명령도 아니었다. 진실한 이유는 따로 있다.
청풍.
그가 바로 그 이유다. 청풍이 보여준 투혼이 그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흠검단은 강한 무인을 숭상한다. 진정한 검사를 흠모한다.
청풍은 강했다. 또한 강한 것에 앞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편이 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러한 힘, 그 힘은 무공이 고절한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힘이다. 적들을 물리치는 능력보다 동료를 얻는 능력이 더 중요한 법이다. 무공이 강하다고 하여 친우와 동행이 많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강자일수록 고독하기 쉽다.
청풍은 그렇지 않다. 그 자신은 홀로 외롭게 싸워왔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의 곁에는 항상 그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호를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었던 것 같았던 그의 천성이 이제는 무인의 투지와 기개에 더해져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청풍의 진실된 모습이다. 그가 지니게 될 대협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청풍과 서영령은 흠검단의 호위를 받으면서 장강의 물결을 등졌다.
멀어지는 전장이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뒤를 돌아보는 청풍이다.
멀고도 먼 곳, 백무한을 쫓고 있는 백호검의 검사가 보였다.
죽음과도 같은 심정이었다. 백호검을 둔 채 도망가고 있다는 현실이 그에게 다시 한 번 커다란 내상을 입히고 있었다.
그리고 백호검보다 더 결정적인 것.
육극신이다.
일전에 보았던 육극신의 전선, 검형이 강가에 다다라 있었다. 고통으로 가득 찬 청풍의 눈이 검형의 선수에 이르렀다.
퍼얼럭!
꿈결과도 같은 광경이다.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장포를 휘날리고 있는 육극신이 있었다.
바닥난 내공, 그것이 보일 안력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도 마치 무엇에 흘리기라도 한 듯 뚜렷하게 비쳐 든다. 육극신,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전처럼 압도적인 기도, 하늘에 이른 무력의 화신이었다.
'아직 멀었어....!'
마음속에서 저절로 발해지는 목소리다. 청풍 스스로의 목소리였지만, 마치 그곳에 선 육극신이 말하는 것 같았다. 가슴을 태우는 투지가 다시금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이미 그 투지를 실현시켜줄 육체가 없었다. 힘없이 늘어지는 팔, 들끓는 내력에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풍랑, 백호검과 육극신을 생각할 때가 아니에요. 운기에 집중하고 마음에 다른 것을 두지 말아요."
익숙한 목소리.
차분한 목소리가 마술처럼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 청풍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그녀다. 오해와 오해가 중첩되어 있었지만, 그와 그녀의 마음을 연결하는 끈은 아직도 살아 있다.
그것이 인연이다. 인연의 선(線)이라는 것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나는 원(圓)과 같다. 만나서 다시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들, 그녀가 청풍을 들쳐 멘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이렇게 잡고 놓지 않으리라. 더 이상 그를 떠나지 않고, 그를 떠나 보내지 않는다.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다짐 속에서 그녀와 흠검단의 발이 땅을 가로질렀다.
장강에서 멀어지는 길.
어디론가 숨어드는 그들의 길이 그 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