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156)

  *                        *                           * 

 관군과의 일은 뜻밖의 인연으로 간단하게 마무리가 되었다지만, 그 다음에도 순탄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행적이 노출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관병들을 모조리 베어 버렸다면 모르되, 청홍무적검의 이름을 들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서 입을 막을 수도 없는 상황, 원태가 입단속을 해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마차를 구해야겠습니다.” 

 “드러날 구실이 될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동 속도가 너무 느리니까요.” 

 움직일 수 있다고는 했지만 청풍의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매한옥이 들쳐 메고 달리는 경우도 있었으나, 노상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은 다른 이동 수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말과 마차를 구하는 데에는 반나절이 소모되었다. 

 여비가 충분치 않았기에 허름한 마차밖에 못 구했지만 그래도 없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속도를 내며 달려가는 그들의 옆으로 어느새 변해가는 계절의 풍경이 비쳐 들고 있었다. 

 이동을 시작한 지 닷새 째. 

 다른 낌새는 없었다. 

 참도회주는 그것이 도리어 따분하다는 듯 불만어린 음성을 내뱉었다.  

 “추격은 없는 것인가?” 

 “글쎄요. 아직은 안심할 수 없겠지요.” 

 “안심할 수 없다라.......”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두 사람의 짧은 대화에서 반나절도 되지 않았을 때다. 마차 안에서 종일토록 공명결을 연마하던 청풍의 눈이 번뜩이는 빛을 발했다. 

 “뭔가 오는군.” 

 육체는 정상이 아니었지만 정신만은 날이 갈수록 맑아지고 있다. 난데없는 한 마디에 옆에 앉은 서영령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이야기를 좀 해주겠어? 적이 오고 있다고.” 

 흔들리는 마차다. 

 말발굽 소리가 청풍의 목소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녀가 긴장한 얼굴로 되물었다. 

 “적이요?” 

 “그래.” 

 “저 쪽, 살기(殺氣)가 느껴지고 있거든.”   

 청풍의 손이 창 밖, 한 쪽을 가리켰다.  

 그들이 달리고 있는 방향에서 대각선으로 비껴간 방향, 서쪽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아직 멀어. 하지만 곧 가까이 올 거야.”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알수 있다. 

 위협적인 무언가가 감지된다. 게다가 서쪽, 환신 월현이 악운을 이야기한 바로 그 방향이었다.  

 “숙부님! 적이 오고 있대요!” 

 서영령의 낭랑한 목소리가 말발굽 소리를 헤치고 울려 퍼졌다. 그녀의 말을 들은 참도회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뒤 쪽을 돌아 보았다. 

 “적이라고?” 

 “예!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곧 접근할 것이라는데요!” 

 매한옥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졌지만 참도회주의 표정은 달랐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얼굴이다. 연신 뒤쪽을 돌아보던 그가 한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흑철도의 도병을 감아쥐었다. 

 “확실히.......뭔가 오긴 오는군.”   

 그의 눈이 흑철도의 날카로움을 담았다. 

 서쪽 저편, 뿌옇게 흙먼지가 일어난다. 건조한 대지 위에 다가오는 말발굽소리, 마차를 끌고 있는 이쪽보다 훨씬 더 빨랐다. 

 “싸울 겁니까?” 

 “물론이다!” 

 마차의 속도도 이미 한계에 이른 상황이다. 

 싸움을 바라는 참도회주가 아닐지라도 싸움을 피해가기는 글렀다. 드러내 놓고 관도를 달린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랄까. 어차피 다른 선택도 없었지만. 

 “소저! 고삐를 좀 맡아 주시오!” 

 서영령의 움직임은 빨랐다. 

 창문을 박차고 어자석으로 넘어오는 몸놀림이 절묘했다. 그녀가 고삐를 건네어 받은 직후다. 참도회주와 매한옥의 몸이 마차 지붕 위로 솟구쳤다. 

 마차 지붕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다.  

 매한옥의 경호성이 이어졌다. 

 “빠르다! 군마(軍馬)인가!!” 

 말 그대로다. 적들의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적들의 면면(面面)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정도까지 왔을 때. 이번에는 참도회주, 참도회주의 입에서 놀라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저 놈은! 저 놈이 어떻게!”   

 달려오는 기마들은 꽤나 많았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열 기가 넘는다. 

 그러나 그 숫자는 무의미했다. 

 기마들의 가운데에 있는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에게 이른 시선, 매한옥의 안색이 급변했다. 

 “성혈교!!” 

 성혈교다. 그것도 그냥 문도가 아니었다. 

 사제의 복장, 오른 팔 소매가 헐렁했다. 

 한 팔을 잃어버린 자, 두 눈에는 무시무시한 광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성혈교 사도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대답을 해 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성혈교 사도. 

 그것도 오 사도다. 석가장의 혈전, 청풍에게 한 팔을 잃은 바로 그 자였다. 

 두두두두두. 

 놀라움에 휩싸여 있을 겨를이 없었다. 

 양쪽으로 산개하는 적들이다. 

 두 개의 열로 나뉘어 마차의 측면으로 따라붙는데 그 움직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기마전(騎馬戰)에 능숙한 놈들이었다. 

 ‘이 놈들, 설마!’ 

 매한옥의 눈이 번뜩이는 빛을 발했다. 

 이런 놈들을 본 적이 있다. 기동성을 위해 철갑을 두르지 않았다 뿐이지, 일전에 싸워본 철갑 기마병들과 똑같은 몸놀림이었다. 

 ‘철기맹.,....!’  

 거기까지다.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두두두두두! 

 적들의 쇄도가 대단히 빨랐다. 

 옆으로 접근하는 놈들, 장창과 같은 장병(長兵)들을 장비하고 있다. 그들이 말을 달리며 병장기를 아래쪽으로 겨눈다. 그 끝에 먼지를 일으키며 굴러가고 있는 마차의 바퀴가 있었다. 

 “이 놈들! 바퀴를 노려 옵니다!”  

 다급한 상황이다. 

 매한옥이 검을 뽑아들며 마차의 측면으로 몸을 날렸다. 

 콱! 

 지붕 끝을 붙잡고 한 발은 마차의 창문에 걸쳤다. 

 손을 놓는 것과 동시에 매한옥의 몸이 절묘하게 휘어졌다. 창문에 걸려있는 발을 축으로 매한옥의 몸이 회전했다. 그의 검이 바퀴를 향해 찔러오는 장창을 노렸다. 

 쉬각! 

 장창의 창봉이 토막 나며 날아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몸을 잡아 당겨 마차 측면에 딱 매달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마차 문을 박차고 달려오는 기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쒜에엑! 푸슛! 

 얕았다. 

 핏물이 하늘을 수놓았지만 상대는 기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공중에서 몸을 돌린 매한옥이다. 암향표의 신묘함으로 위치를 바꾸며 다시금 일검을 내질렀다. 

 푸욱!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기마 위에 늘어지는 놈을 발로 차 떨어뜨리고 말안장 위에 올라탔다.  . 

 “으럇!” 

 고삐를 잡아채며 기마의 방향을 꺾었다. 

 뒤따라오며 짓쳐 오는 창날이 어느 새 눈앞에 이르러 있었다. 매한옥의 검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채애앵! 

 창날을 튕겨내고 마차 쪽을 돌아보았다. 

 지붕 반대편, 참도회주는 그 위에 그대로 서있다. 

 아래 쪽을 향하여 흑철도를 휘두르는데, 거기서 쏘아내는 도압(刀壓)만으로 적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 

 역시나 대단한 무위였다. 

 ‘문제는......!’ 

 매한옥의 눈이 뒤따라오는 적들의 중심을 향했다. 

 당장 마차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성혈교 오사도였다.  

 참도회주를 바라보는 오 사도의 두 눈, 거기에서 발해지는 광망이 더욱 더 짙어졌다. 

 ‘온다......!’ 

 성혈교 오 사도의 왼손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안색이 변하는 참도회주다. 

 지붕 끝에 버텨 서는 참도회주, 흑철도를 쥔 손에 꿈틀거리는 혈관이 불거졌다. 

 파아아아! 

 달려오는 말 위에서 내리치는 수도(手刀), 일참이다. 

 아래로 휘둘러지는 사도의 손을 따라 흙먼지가 무섭게 갈라졌다. 

 다가오는 경력. 

 참도회주가 흑철도를 벼락처럼 휘둘렀다. 

 쩌어어엉!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맹렬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비산하는 경력.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마차의 뒤쪽 나무 벽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간다. 경기의 소용돌이가 믿을 수 없이 강렬했다. 

 “혈영마참! 진짜로 할 생각로구나!” 

 참도회주의 노호성이 사위를 울렸다. 

 말이 없는 오사도다. 

 그가 다시금 그 손을 하늘로 치켜 올렸다. 

 “치잇!” 

 참도회주가 다음 일격에 대비하며 흑철도를 비껴들었다. 

 요동치는 마차 위다. 아까 받은 단 한번의 충격으로 인하여, 발밑의 나무 지붕까지도 부서져 내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쏘아내는 대포에 흔들리는 조각배로 맞서는 느낌이다. 위태로운 신형에 또 한번의 혈영마참을 막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오 사도의 손에 모여드는 기력이 멀리서도 느껴질 때였다. 

 적들을 막던 매한옥의 얼굴이 크게 굳었다. 

 그가 반대편을 바라보며 커다란 경호성을 울렸다.  

 “조심!”   

 늦었다. 

 늦어 버렸다. 

 참도회주가 성혈교 오 사도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사이. 

 매한옥이 적들을 막는 반대편으로 적 기병들이 완전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들의 장창이 마차의 바퀴로 박혀든다.  

 덜컥, 크게 흔들리는 마차. 

 콰쾅! 콰지지직! 

 험악한 소리와 함께 마차 전체가 미친 듯 요동치며 한 쪽으로 기울었다.  

 “큿!” 

 설상가상이 따로 없었다. 

 균형이 무너져 버린 참도회주. 

 오 사도의 손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참도회주의 흑철도가 불안하게 허공을 갈랐다. 

 쩌어엉! 콰가각! 

 흙먼지가 폭풍우처럼 일어나고 나무 조각들이 미친 듯 비산했다.  

 “회주!” 

 매한옥의 걱정스런 외침이 요란한 관도 위를 가로 질렀다. 

 걷혀가는 흙먼지다. 

 그 사이로 끌려가다시피 다 부서진 마차가 드러난다. 

 피 흘리는 참도회주. 

 한 쪽 바퀴가 없어진 채 덜컹거리는 위에서도 용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흑철도를 비껴들어 오 사도를 겨누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사생결단을 내려는가.  

 참도회주가 일순간 고개를 돌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령아! 가라!” 

 “알겠어요!” 

 흙먼지에 휩싸였던 짧은 사이, 무슨 말이 오갔던 것일까. 그 해답은 금세 드러났다. 

 텅! 콰아아앙! 

 폭음과도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고 달리던 마차가 일순간 튕겨 나왔다. 

 이미 균형을 잃은 마차가 험악하게 튕겨 오르며 터질 듯 부서지고 있었다. 마차를 끌던 말과 마차의 연결을 끊어버린 것이다. 

 히히히힝! 콰직!  

 놀란 기마들의 울음소리가 관도 위의 난장판에 어지럽도록 얽혀 들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마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거리가 너무도 가까웠다. 부서지는 마차의 잔해에 휩쓸리며 몇 기의 기마들이 한꺼번에 관도 위를 나뒹굴었다.  

 쩌어엉! 

 충돌은 또 있었다. 

 튕겨 나오며 굴러오는 마차 위. 

 하늘로 도약한 참도회주가 오 사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며 흑철도를 내리치고 있었다. 

 막아내는 오 사도의 수도(手刀)가 흑철도에 부딪치며 금속성과 같은 충돌음을 발했다. 공중에서 몸을 돌린 참도회주, 그의 발이 오 사도가 타고 있던 기마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 찍었다. 

 뻐어억! 우지끈! 

 투레질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다리를 꺾는 기마다. 

 절묘한 한 수로 기마를 제거한 참도회주다. 

 넘어지는 기마 위로 뛰어오른 오 사도가 사제복을 휘날리며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제대로 해 봐야지! 피의 사도여!” 

 참도회주의 흑철도가 사도의 앞을 막으며 무시무시한 경기를 내뿜었다. 

 쩡! 쩌어엉! 

 “참도회주! 나를 막지 말아라!!” 

 사도의 입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는 마귀의 그것처럼 거칠기 짝이 없었다. 

 귀기 어린 두 눈이 마차가 떨어져 나간 저편을 향한다. 기마 한 필이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을 태운 기마였다. 청풍과 서영령이 그 한 필의 기마 위에 있다. 마차가 부서져 터져나가던 그 순간, 재빨리 청풍을 옮겨 태웠던 것이다. 

 청풍을 확인한 오사도의 발길이 그 쪽으로 향했다. 

 무서운 속도로 땅을 박찬다. 

 같은 방향으로 말을 달리고 있는 철기맹 무리, 기마병의 등 뒤쪽을 덮쳤다. 

 퍼어억!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오 사도가 무서운 기세로 손을 뻗어 기마병의 등 뒤를 뚫어버렸다. 

 그대로 기마병을 떨구고 말안장에 오른다. 제 편까지 죽여가면서 기마를 얻는 잔인함이다. 참도회주가 외쳤다. 

 “막아!!” 

 매한옥은 주저 없이 말고삐를 틀었다. 

 재빠르게 검을 휘돌리며 오 사도의 측면을 노렸다. 오 사도의 광망어린 눈빛이 매한옥을 향했다. 

 쩌어엉! 

 수도를 내질러 부딪친다. 

 매한옥의 검이 크게 흔들리며 튕겨 나갔다.  

 어깨까지 타고 올라오는 힘이 굉장했다. 그럼에도 매한옥은 물러나지 않은 채, 말을 달려 오 사도의 정면을 막아섰다. 

 쩌엉! 푸하학! 

 오 사도의 기세는 무지막지했다. 매한옥의 검을 막아내고도 모자라, 휘두르는 팔로 매한옥이 탄 기마의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바로 앞에서 넘어지는 기마다. 오사도의 기마가 투레질을 하며 앞발을 들어 올렸다. 

 도무지 막기가 어렵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참도회주가 따라붙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그대로 보내 줄 수야 없지!” 

 참도회주가 흑철도를 휘두르며 외쳤다. 

 팔을 휘둘러 흑철도를 막는 오 사도다. 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끝까지 막겠다는 것인가! 참도회주!!”  

 “물론이다! 성혈교 사도의 무위가 실제로는 어디까지인지 항상 궁금했었지. 이번 기회에 한번 부딪쳐 보자꾸나!”

 굳이 청풍과 서영령을 위해서가 아니다. 

 참도회주는 말하자면 싸움 그 자체를 즐기는 이였다. 오 사도의 손이 진득한 살기를 품은 채, 참도회주를 향했다. 

 꽈아아앙! 

 참도회주의 흑철도가 혈영마참의 막강한 힘과 마주했다. 

 얽히고 터져나오는 충격이 커다란 흙구름을 만들었다. 

 그것을 보는 매한옥. 

 매한옥은 지체하지 않았다. 

 암향표를 최대한으로 펼치며 바로 곁을 스쳐가는 적들의 기마를 따라 붙었다. 

 터엉! 스가각! 

 그의 몸이 하늘로 솟구치며 날카로운 검광을 흩뿌렸다. 

 기마병의 몸이 떨구어지는 것은 순간이다. 말안장에 오르며 박차를 가했다. 

 “이럇!!” 

 오 사도를 막고, 참도회주가 나서는 사이. 

 다섯 기가 넘는 기마들을 앞으로 보냈다. 

 이미 앞서 나간 기마들은 어차피 따라잡기 어렵다. 그렇다면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막을 뿐이다. 

 그가 날렵하게 말 머리를 바꾸며 달려오는 기마들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하압!” 

 그의 검이 적 기마병 사이를 누볐다. 

 여기서 추격을 끊겠다는 의지다. 청풍이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그를 위해 무공을 전개하는 그였다. 

 두두두두! 

 한편, 서영령과 청풍의 뒤로는 매한옥이 놓친 여섯 기의 기마가 빠른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두 사람을 태운 만큼 속도가 떨어지는 기마다. 

 서영령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적들이 따라 와요. 풍랑, 고삐를 잡아줄 수 있어요?” 

 “물론!!” 

 달리는 말 위에서 안장을 잡고, 몸을 일으키는 서영령이다. 

 묘기에 가까운 기마술. 

 그녀도 제 한 몸 지키기에 충분한 무공을 지닌 고수였다. 제 한 몸 뿐 아니라 청풍의 안위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피이이잉! 

 그녀의 손이 품속을 들어갔다 나오니, 섬섬옥수로부터 하이얀 빛줄기가 뻗어나갔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보는 백강환이다. 

 나선으로 회전하며 날아가는 백강의 탄환이 선두로 달려오는 기마의 머리에 박혀들었다.  

 히히히잉! 콰직! 콰드득! 

 휘청이다가 앞으로 꼬꾸라지는 기마다. 달리던 기세를 이기다 못해 부러지는 뼈에서 나는 소리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추격해 오는 적들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피이잉! 피이이잉! 

 서영령은 그토록 과격한 출수를 하면서도 조금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청풍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적들이 다급하게 말 머리를 틀며 산개했지만, 백강환의 속도는 그렇게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쪽 다리를 맞은 기마가 옆으로 휘청 넘어진다. 그 충돌에 휩쓸린 기마가 한 기 더 꼬꾸라지고 말았다.  

 이제 따라오는 기마들은 고작 세 기였다. 

 개 중 한 놈이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들고 있는 창병을 치켜 올려 힘껏 내던져왔다. 그러면서 나머지 두 기는 있는 힘껏 속도를 올려냈다. 

 날아오는 창봉을 보는 서영령이 말 안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촤라라락! 

 품 속에서 뛰쳐나온 것은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철선(鐵煽)이었다. 

 몸을 회전시키며 짤막한 철선을 휘두르는데, 묵직한 창병이 그대로 튕겨나가고 만다.   

 휘릭!  

 그녀의 몸이 한 마리 백학과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대로 짓쳐오는 두 기의 기마를 향해 뛰어 들었다.

 팡! 촤르르르륵! 

 현란함과 단아함을 동시에 갖춘 무공이었다. 

 백학선법, 숭무련의 절기가 펼쳐진다. 

 달리는 기마의 힘을 바탕으로, 창과 같은 중병이 쳐들어왔지만, 서영령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꺾어서 휘어치는 백학선이 창대를 밀어내고, 그 위를 타고 오른다. 기마병의 손목을 찍으며 음유한 경력을 풀어냈다. 기마 위의 무인이 휘청 몸을 꺾었다. 

 빠악! 

 날아오른 서영령의 몸이 우아하게 회전했다. 

 그녀의 발이 무인의 쇄골을 찍어 부수고, 이어지는 장법이 그의 몸을 말안장 밑으로 밀어내 버렸다. 

 “이럅!” 

 말고삐를 움켜쥐며 방향을 바꾸는 그녀다. 

 숭무(崇武)라는 것은 곧, 무를 숭상하는 마음. 

 그녀는 기마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듯, 주인 잃은 말을 단숨에 휘어잡으며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달려 청풍에게 짓쳐드는 적 기병을 막아섰다. 

 촤륵! 따아앙! 

 기마전에서는 단병의 힘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법. 

 그렇지만, 그녀에게 있어 병기의 장단은 전혀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찔러오는 오척 장창을 한 자 길이 철선으로 가볍게 막아낸다. 

 삼 합을 막아낸 직후. 

 그녀의 왼손이 고삐를 놓으며 소매를 옷소매를 훑었다. 

 튕겨내는 손가락. 

 백강환으로 펼쳐낸 이지선 지법이다. 적의 가슴에서 핏줄기가 솟았다. 

 “옆으로!” 

 남은 것은 하나다. 

 서영령이 소리치며 청풍의 배후를 방어했다. 백강환 두 발을 쏘아내고, 철선을 휘두른다.  

 창까지 던져버린 그 한 명의 기병. 

 두꺼운 만도(彎刀)를 꺼내들고 기세 좋게 달려오고 있었지만, 그녀의 무공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첫 두 발의 백강환 중 한 발에 어깨가 뚫리고, 짓쳐오는 철선에 균형을 잃었다. 서영령의 손에서 뿜어진 장법은 백결연화장, 일장의 내력이 휩쓸리며 땅 밑으로 떨어진다. 여섯 기병의 추격을 단숨에 차단하는 서영령이었다. 

 “대단하군, 령매.” 

 “이 정도로 대단하다뇨.” 

 서영령이 웃었다. 

 그녀 자신도 한 사람의 고수다. 

 내달리는 남녀. 

 많은 일들을 겪고 돌아 다시 함께 하는 두 사람이다. 

 예전처럼. 둘이서. 

 다시금 두 사람만의 동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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