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156)

 [한백무림서] 화산질풍검 제 21 장  사신(四神)

 질풍검. 질풍대협의 독문무공은 그 연원이 모호하다.

 그와 같은 무공을 구사하는 이가 화산파에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화산의 고유 무공인 매화삼릉검이나 태을미리장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질풍대협의 무공은 세간에 알려져 있는 화산파의 무공과 그 궤를 달리한다.

 완벽하게 정립된 투로, 백련으로 갖추어진 초식으로 볼 때 한두 세대를 통하여 만들어진 무공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찌하여 같은 무공을 익힌 이가 화산파에 존재하지 않는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대체 화산파에 어떠 고인(高人)이 있어 그와 같은 무공을 가르쳤는지. 자하신공을 전수해 주었다던 선현 진인 이외에 다른 사부가 있었는지 심각하게 고려해 볼 일이다.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전설처럼 사신검에 그 주인을 위한 무공이 담겨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는 것.

 질풍대협의 무공은 그처럼 풀 수 없는 비밀과 놀라운 신비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한백무림서 무공편.

 제삼장 화산파 中에서.

 청풍이 정신을 잃은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중앙궁 바깥에서는 여전히 격한 싸움이 벌이지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그치지 않는 병장기 소리와 폭음들이 종국으로 치닫고 있는 싸움을 잘 알려주고 있었다.

 "크윽.....!"

 청풍이 몸을 일으켰다.

 고통이 밀려왔지만 내력을 도인하며 참아냈다.

 일어난 청풍이 숨을 들이키고 손을 들어 올렸다. 현무검이 땅 위에서 떠오르며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길이는 짧았지만 그 어느 검보다 무거운 검이었다.

 우우우웅!

 전해져 흘러온다.

 검자루를 부여 잡으니 검이 간직했던 현무기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腎)인가......'

 맑고도 도도한 기운이었다.

 정대한 수기가 신장을 찾아서 그곳에 깃들고 있었다.

 신(腎)이라 함은 온몸의 정혈을 균형있게 유지하는 중요한 장기.

 온몸의 탁기를 배출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신체의 균형을 잡고, 흐르는 피를 조화롭게 해준다.

 중단전에 남아 있던 얼룩이라 했던가.

 수기(水氣)가 중단을 거쳐가며 마음의 밭을 깨끗이 씻어주고 있었다.

 상단전에 남아 있던 화기의 흔적까지도.

 "후우우우,"

 그토록 들끓었던 기운이 안정되고 있었다. 고통은 여전했지만 내력만큼은 예전의 흐름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상응하여 서로를 돕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운들.

 사신(四神)의 신기(神氣)가 모두다 갖추어 지는 순간이다.

 오랫동안 그의 내공을 묶고 있던 족쇄가 풀려 나가고 있었다.

 청풍이 발을 옮겼다.

 저절로 발동되는 공명결이다.

 주작검과 청룡검이 차례로 떠올라 청풍의 뒤를 따랐다.

 치링, 치리링, 철컥.

 주작검과 청룡검이 살아있는 듯 움직여 그의 검집 안으로 들어왔다.

 예전의 그와 같으나 또한 예전의 그가 아니다.

 네 개의 기운이 모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그처럼 달랐다. 순정한 내력이 흐르고 흘러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열어놓고 있었다.

 '북진무.....!'

 청풍은 제단 한가운데를 바라보았다.

 검고 검은 제단.

 육신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다.

 느끼고 겪었던 많은 것들 때문이다.

 진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꿈속에서 걸어온 몽로(夢路)와도 같다.

 어긋나고 어긋났던 사실들, 사신의 검에 대한 진실이 그의 머리 속을 강타했다.

 '확인해야 한다.'

 청풍은 결정했다.

 다른 그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로 느낀다.

 그래야 알 수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사신검은 어떤 물건이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그의 천명은 무엇인지.

 청풍의 몸이 움직였다.

 움직인다 싶은 순간 화천작보가 나아간다.

 비상하는 주작의 날개가 펼쳐지고, 하늘을 날 듯한 신법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중앙궁 바깥으로 이끌어 나갔다.

 중앙궁 정면의 아수라장이 두 눈에 비쳐들었다.

 어느새 끝이 난 싸움이다.

 땅에 쓰러진 두 개의 거구가 보이고, 이어 그 두 거구를 쓰러뜨린 남자가 보인다.

 장대한 태검을 땅에 박고 거기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는 남자가 그 앞에 있었다.

 "싸움은 끝났소?"

 청풍이 물었다.

 이쪽을 돌아보는 남자, 그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청풍의 변모를 단숨에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오."

 이내 입을 여는 남자의 대답은 그와 같았다.

 하나의 싸움은 끝났지만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청풍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은 곧 그 자신의 삶이자, 청풍의 삶과 같다.

 이 알 수 없는 천하에 끝이라 말할 수 있는 싸움이 얼마나 될까.

 싸움의 시작은 시간의 흐름을 가리지 않는다.

 잠시 멈추었던 청풍의 발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텅!

 흑야성 바깥으로 향하는 청풍이다.

 고고마이와 쿠루혼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바깥에서 보았던 점창 무인들의 모습이 시야 한편에 들어왔다가 멀어졌다.

 외곽 숲에 이른 청풍은 또 다른 싸움의 승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는 기마 부대가 그 숲에 있었다.

 그 기병들.

 본 적이 있는 자들이었다.

 엄청난 준마들을 이끌고 철기맹 철갑기마대를 박살내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한가운데, 한 자루 장군검을 들고 순백의 신마(神馬)를 탄 미모의 여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까지 왔었다니......!'

 푸른 깃발, 북풍단이었다.

 화안리에서 들었던 북풍마후라는 이름이 절로 떠올랐다.

 "휴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안(靑眼)의 악마(惡魔)가 온다는 것이겠죠."

 쿠루혼과 고고마이의 대화가 귓전에 맴돈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청안의 악마라는 말.

 흑야성을 돌아본 청풍이다.

 왜 몰랐을까.

 흑야성 저편, 비로소 청풍은 그의 존재를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북풍단이 여기에 있고, 북풍마후가 그 가운데 있다.

 그렇다면 북풍단주 역시 이곳에 있다는 말이다.

 압도적인 무력, 검푸른 불길과도 같은 그것이 흑야성 한편에서부터 전해지고 있었다.

 속도를 늦추었지만 그렇다고 발길을 돌리지는 않았다.

 굳이 만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안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조우(遭遇)는 없었다.

 오늘 그가 겪을 만한 인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청풍은 북풍단마저도 그냥 지나쳐 버렸다.

 "쫓을까요?"

 누군가의 질문이 들려왔다.

 북풍단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단호했다.

 "그럴 필요 없다. 그는 적(敵)이 아니야."

 북풍마후의 목소리였다. 여인의 목소리임에도 굉장한 위엄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본 청풍의 눈과 북풍마후의 눈이 부딪쳤다.

 멀어지는 시선, 청풍은 눈빛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기엔 청풍의 마음이 너무나도 복잡해져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사신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머리 속에 가득한 의문으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청풍은 빨랐다.

 어느 준마도 따르지 못할 속도였다.

 사천성을 가로질러 장강 줄기에 이르기까지.

 나는 새들도 그처럼 빠르지는 못하리라.

 청풍은 그처럼 급했고, 그처럼 목말라 있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그의 무공이 어디서 왔는지.

 그들, 그를 가르쳐 준 스승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아야만 했다.

 '장강.......!'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오직 하나, 서영령뿐이었다.

 무사히 돌아가리라 약속했었다. 여정이 길어지면 그만큼 걱정도 많이 할 것이리라.

 그래도 이것은 해결하고 가야 했다.

 장강까지 왔다.

 장강에 온 이유는 하나다. 다름 아닌 백호검이었다.

 백호검을 얻고 진실을 알게 된 후 돌아갈 작정이었다.

 '백호검....!'

 사천성 동쪽 끝자락.

 장강 줄기에 접어든 청풍이다.

 '을지 공.....!'

 백호검을 생각하면 자연히 을지백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백호검을 들고 육극신에게 달려가던 뒷모습이 그가 떠올릴 수 있는 마지막 그의 모습이었다.

 거기까지, 그 뒷모습까지다.

 도망치던 청풍은 육극신과 을지백이 싸우는 광경을 보지 못했다.

 싸웠다면 그 결과가 대체 어떠했기에 백호검이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갔을까.

 아니, 과연.....  과연 진실로 싸우기는 했을까.

 상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가.

 천태세는 과연 어떻게 그렇게 절묘한 시점에서 나타날 수 있었으며, 언젠가부터 왜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되었는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 의문이다.

 그리고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네 개의 검을 모두 얻는 것이다.

 청풍은 그 순간 그 해답을 얻게 될 것임을 알았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있는 네 개의 진기가 그렇게 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광혼검마를 찾아야 한다.'

 그를 찾는 것이 먼저였다.

 백호검은 광혼검마에게 있기 때문이다. 곱게 돌려줄 자는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 싸움을 거쳐야 할 것임은 필연이었다.

 청풍은 서둘렀다.

 마을로 찾아가 사람들에게 묻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다. 그런 불확실한 정보에 매달릴 때가 아니었다.

 곧바로 화산지부를 찾아가 물었다.

 "서천각의 업무를 보는 곳은 어디요?"

 "어인 일로 오셨는지?"

 "화산 제자로서 정보를 얻으러 왔소."

 행적이 드러난다?

 상관없다.

 행적이 드러나서 화산파가 쫓아온다 해도 청풍은 얼마든지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 따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압할 능력도 충분했다.

 "원로원 은매패요."

 서천각의 제자는 청풍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였다.

 그래도 청풍은 공대를 했다. 하지만 제자의 반응은 놀랍도록 즉각적이었고, 또한 놀랍도록 의외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은매패! 설마.,,,...!"

 "........?"

 "청홍무적검! 청풍 사형이시군요! 저는 얼마전에 운대관을 통과한 제자입니다. 말씀을 편히 해주십시요!"

 '알아본다.......?'

 청풍을 바라보는 젊은 제자는 무척이나 흥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숨에 청풍을 알아보았을 뿐 아니라 그 두 눈에는 선망이 가득했다. 흥분했지만 화산 제자로서 절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그야말로 생소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지요? 모든 지원을 다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지원을 다하라? 나에게?"

 "예, 그렇습니다. 아, 정확히는 원로원 은매패를 지닌 분께 대한 지원입니다만."

 청풍의 미간이 좁아졌다.

 원로원 은매패를 지닌 이가 또 있는가.

 모른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이 반응이 일전에 화산지부를 찾아갔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서천각 제자는 원로원 은매패를 알아보지도 못했을뿐더러 , 그런 지시는 받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때의 대접이 박대였다면, 지금의 대접은 더할 나위 없는 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가 변해도 굉장히 많이 변해 있었다.

 "광혼검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다."

 "광혼검마라면..... 비검맹의 검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젊은 제자의 두 눈이 커졌다.

 "그렇다면 그 일 때문이시군요? 드디어.......!"

 젊은 제자의 두 눈에 일렁이는 빛은 기대감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청풍은 무엇 때문에 그런 눈빛을 보이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청풍이 반문했다.

 "그 일이라니?"

 "아, 모르고 계셨나요?"

 다소 실망한 얼굴로 변한다.

 말소리가 변화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젊은 제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가 굳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집법원의 정검대 어르신 세 분께서 변을 당하셨습니다. 이 근처 장강 지류에서요. 조사 결과 광혼검마의 소행으로 드러났습니다. 본산에서 매화검수들이 나선다고 들었는데, 진척상황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극비 사항이 되어서요."

 "그랬군."

 청풍의 두 눈이 예리한 빛을 품었다.

 젊은 제자의 말은 순서가 틀렸다.

 세 명이 변을 당하고, 그 이후에 광혼검마의 이름이 나온 것이 아니다. 먼저 공격한 것이 집법원이고, 광혼검마의 반격 때문에 변을 당했다는 것이 옳다.

 집법원이 나섰다는 것은 곧 백호검을 회수하려 했다는 뜻.

 비밀리에 행해졌고, 실패했다.

 청풍은 알 수 있었다. 집법원 정검대 검사들은 강했지만 세 명 정도로는 검마의 무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게 언제지?"

 "변을 당하신 것 말씀이신가요?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한 달이라......"

 이상한 일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이 근원의 일이라면 모를까 한 달이나 되었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한 달이라면 사안을 공식화하고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집법원 정검대가 죽었는데 이처럼 조용하다?

 백호검, 사신검에 관한 임무라는 것이 원래부터 조용하게 처리되고 있기는 했지만 이것은 과한 느낌이 없지 않다. 철기맹의 도발에도 즉각적인 전면 공격을 감행했던 화산파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광혼검마는 어디에 있지?"

 "위치를 계속 확인하라는 명이 있기는 했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연사진 근처라는 것밖에는......."

 "연사진 근처라면 조금 멀군."

 청풍은 젊은 제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 제자는 아직 어리다.

 정말로 중요한 정보에는 접근하지 못할 연배였다.

 모르고 있는 것이다.

 화산파의 침묵은 겉으로 보이는 것뿐, 서천각에 광혼검마의 위치를 계속 파악하라고 했다면 화산파도 어디선가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다는 말이리라.

 '상대가 비검맹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철기맹과는 다른 까닭이다.

 철기맹도 뚜껑을 열어보니 보통 놈들이 아니었지만 비검맹은 지닌 바 세력만 놓고도 보통 놈들이 아니다. 뚜껑을 열기 전부터 이미 함부로 할 수 없는 상대라는 말이었다. 드러내 놓고 싸움을 걸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지 않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은과 원은 어떻게든 풀어서 해결을 봐야 하는 법이다.

 문파의 제자가 당했다면 복수를 해야 함이 마땅한 것이 아닌가.

 굳이 피를 보는 복수가 아니더라도 분명하게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상대하기가 껄끄럽다고 하여 은밀하게 눈치를 보고 있다면, 임무를 다하려다 죽어간 집법원 정검대의 혼령은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사문이라지만 이런 처사는 결코 올바른 일이 못 되었다.

 "좋은 정보를 얻었다. 나머지는 연사진 근처에서 해결하마."

 "아...... 광혼검마를 잡으시려는 겁니까?"

 청풍은 다시 한번 젊은 제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솔직한 두 눈에 광혼검마에 대한 맹목적인 복수심이 묻어났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사문이었다.

 같은 배움을 지녔던 자가 험난함을 당하면 함께 분노하고 함께 고민해야 되는 것이다. 아무리 대의(大義)가 중요하다 해도 제자의 목숨을 장기판의 졸로 활용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광혼검마를 잡길 바라나?"

 "예. 물론입니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에게 화산의 무서움을 보여줘야겠지."

 화산의 무서움.

 젊은 제자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지만 청풍의 마지막 한마디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가 없다.

 백호검을 찾는 것, 사신검을 회수해 오라는 사문의 임무, 화산 제자로서의 역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사문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지금, 과연 스스로 화산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연사진으로 향하는 발걸음.

 단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발길이다.

 어지럽게 부는 바람, 계절의 끝을 알리는 차가운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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