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어. 저자를....... 그렇게....... 간단히........"
옥녀화검 추영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광혼검마는 강자다.
그 스스로 상대를 해보았기에 안다.
청풍은 그러한 강자를 십여 합 만에 죽였다. 죽이기까지는 십여 합이라지만 실제로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첫 일격부터다. 특히나 마지막에 보여준 연쇄적인 검격은 말 그대로 다시 볼 수 없는 신기(神技)였다.
'청홍무적검의 이름...... 그것이 진짜였다니.'
청풍이 누구인지는 싸움을 보면서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지닌 검이 그를 뜻하고, 그가 지닌 힘이 그를 뜻한다.
상상을 초월한 무위였다. 무적이라는 이름이 그처럼 어울릴 수가 없었다.
"청풍입니다."
이름을 밝히는 청풍의 표정은 과히 밝지 않았다. 싸움을 끝낸 직후, 아직도 그 엄청난 힘의 여파가 그의 주변에 남아 있었다. 추영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청풍 사제였군......."
추영은 말을 함에 있어 곤람함을 느꼈다.
사제라고 해도 선뜻 하대가 나오지 않았다.
매화검수가 아닌데도 매화검수 이상으로 생각된 까닭이다. 화산파, 매화검수가 다른 제자들의 위에 설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다른 제자보다 뛰어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녀로서는 그 반대의 경우를 겪어 본 적이 없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풍 스스로가 깍듯한 예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곳 저곳 검상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지닌 바 그릇의 격차를 실감했다. 무공의 그릇, 마음의 그릇, 청풍은 모든 것이 그녀보다 훌륭했다.
"이 정도 부상이야......"
추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세상은 넓고 천하에는 놀라운 자들이 이처럼 많다.
추영은 일순간 철혈련과의 전쟁을 떠올렸다.
무당파와 함께했던 철혈련과의 전쟁. 무당에는 같은 연배임에도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고수들이 있었고, 놀라운 병법을 구사하던 천재들이 있었다. 매화검수가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라는 자부심은 예전에 버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렇다 해도 화산에서는 그들이 최고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아니다. 눈앞에 있는 청풍은 매화검을 들고 있지 않음에도 그녀보다 훨씬 강했다. 위축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보다, 그 검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그녀는 맡은 바 임무를 잊지 않았다.
그녀가 여기에 온 것은 광혼검마를 물리치기 위함이며, 또한 백호검을 얻기 위해서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바로 본산으로 되돌아갈 텐데..... 신검을 회수할 것이라면 함께 가는 것이 어떨까?"
그녀의 말은 결국 완곡한 권유의 뜻을 담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백호검을 넘기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임무 완수를 위하여 그녀 쪽으로 건네라는 의미였다.
"회수라 하셨습니까."
청풍은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되받았다.
청풍이 천천히 발을 움직여 광혼검마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쓰러져 있는 광혼검마의 허리춤에서 그가 지니고 있던 검집을 풀어냈다. 장식이 되어 있기는 해도 신검(神劍)의 위용에는 어울리지 않는 검집이었다.
그것을 들고 그녀를 돌아보는 청풍이다. 그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신검들의 회수는 제가 처음부터 맡은 임무입니다. 제가 끝마치겠습니다."
치리링.
청풍이 백호검을 검집 안으로 되돌렸다. 추영은 청풍의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때였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자네는 그 검들을 들고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진운이라는 매화검수였다. 그가 덧붙여 물었다.
"어차피 본산으로 갈 것이라면 함께 가는 것이 훨씬 좋을 텐데?"
그는 추영과 달랐다. 광혼검마와 검을 섞어보지 않았기에 그런지, 청풍을 대하는 태도에 그녀와 같은 조심성이 없었다.
"달리 들러야 할 곳이 있습니다."
"화산 제자에게 있어 사문의 명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정 그렇다면 검을 우리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나. 책임지고 장문인께 전해 드리지."
단도직입적인 말이었다.
내미는 손에 강압적인 어조가 묻어나고 있었다. 청풍은 그런 그를 보면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을, 무지(無知)가 초래하는 곤란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백호검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백호검을 어떻게 운반하려고 하셨습니까."
"운반이라니?"
역시나 모르고 있다. 청풍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장문인께서는 아무런 것도 알려주시지 않은 겁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신경질적으로 반문하는 매화검수다.
과거와 단절되는 순간이었다. 예전 그가 지녔던 매화검수에 대한 기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매화검이 그렇게나 빛나 보였던 어린 시절.
매화검수는 어떤 적에게도 승리할 수 있고,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계가 있고, 부족한 것이 있다,
누가 그 한계를 만들었는가.
누가 그 부족함을 부추겼는가.
장문인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백호검을 다룸으로서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장문인에 대한 의혹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이 검은 위험한 물건입니다. 누구나 다룰 수 있는 검이 아닙니다."
청풍의 대답은 가감없는 진실이었다.
그러나 매화검수 진운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그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저자도 다루었던 검이다. 위험하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납득할 수 없어."
진운의 시선이 광혼검마에 이르렀다가 청풍에게 돌아왔다.
복잡한 눈빛이다. 그것을 본 청풍은 마침내 알 수가 있었다.
진운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매화검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인간인 이상 경쟁심이 있고, 시기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청풍을 바라보는 진운의 눈이 그랬다.
청홍무적검이란 칭호를 얻은 자. 광혼검마와 같은 고수를 단숨에 쓰러뜨리는 자.
진운의 두 눈에는 청풍을 향한 질투심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요. 내가 아는 매화검수들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이렇지 않았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가."
"스스로 잘 아실 겁니다."
청풍은 진운의 들끓는 눈빛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눈이 먼 하늘과 그 하늘 아래를 훑었다. 싸움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연공사가 그 아래 있다. 흙더미로 무너진 전각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불이 붙어 있는 전각도 있었다.
오래 전, 화산파가 습격당하던 날의 전경이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속에 겹쳐졌다.
유자서.
화산의 긍지를 이야기하며 죽어가던 매화검수 유자서의 얼굴이 검은 연기 속으로 피어올랐다.
매화검수의 용맹을 증명하기 위해 나섰고, 스스로의 실책에 책임을 졌었던 하운도 떠올랐다.
모든 것을 잃은 후 큰 것을 되찾았던 매한옥도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매화검수와는 다른, 숭고하고 고결한 매화의 향기가 그들의 삶 안에 있었다.
"네 말 안에 불손함이 있다.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당장 설명하라!"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은 목소리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얼굴을 보고 있되 청풍이 보는 것은 매화검수 진운이 아니었다. 청풍은 그의 모습에서 화산파의 잘못된 현재를 보았다. 무엇이 화산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청풍의 두 눈에 슬픔이 깃들었다.
"대답조차 하지 않다니! 무공이 강하다 하여 사람을 업수히 여기는 것인가! 우리는 이 싸움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어!!"
"진운 사제, 그만 해!"
보다 못한 추영이 진운을 말렸다.
"엉뚱한 데 울분을 풀지 마! 그는 화산 제자다. 무당파가 아니야!"
그렇다.
청풍의 눈에 또 한 가지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진운의 눈에는 질투심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청풍이 진운에게서 그 모습보다 화산파 전체를 보았다면, 진운이 보고 있는 청풍도 청풍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운의 심중에는 질투심보다 더한 것이 깔려 있었다.
짙고도 어두운 패배감이 그것이다.
그런 패배감은 어제오늘에 이루어진 감정이 아니었다.
무너진 자부심, 전부터 이어온 상실감이었다.
무당파 고수들에게 바라지도 않았던 도움을 받았고, 그들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남았다. 진운은 청풍의 모습에서 무당파 고수들의 모습을 함께 떠올렸던 것이다.
"청풍 사제도 말이 심했어. 하지만 그래. 매화검수는 예전 같지 않아. 본산으로 함께 가지 않을 것이라 했지? 청풍 사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우리는 관여하지 않겠어."
자포자기한 듯 편하게 시작하자 술술 이어지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역시나 진운의 그것과 같은 패배감이 담겨 있다.
매화검수 추영.
매화검수는 더 이상 승리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밖에서 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정신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화산파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었다.
* * *
"비검맹의 광혼검마가 죽었대."
"비검맹의?"
"그래. 장강이 또 한 번 발칵 뒤집혔어."
"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해? 수로맹주 백무한이라도 다시 나타났나?"
"아니, 그가 아니야."
"그럼 누구지?"
"청홍무적검."
"청홍무적검?! 화산파의?"
"그래. 광혼검마가 다섯 합 만에 쓰러졌다는군."
"광혼검마가 다섯 합 만에 쓰러져?"
"과장이 섞였다고 해도, 엄청난 거지. 지닌 바 무공이 정말 대단하더군."
"무적이라는 이름을 달았다더니, 허명이 아니었구먼!"
장강에 머물러 있던 청홍무적검의 이름이 이제는 온 강호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암암리에 퍼져 나갔던 사신검(四神劍) 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고, 그가 가진 청검과 홍검이 사실은 그 사신검들 중 청룡검과 주작검이라는 것도 알려져 버렸다. 혹자는 그가 그 사신검 모두를 얻었다는 말을 퍼뜨리기도 했다.
온 천하가 청홍무적검이라는 강호신성(江湖新星)으로 들끓고 있을 때다.
하지만 정작 그를 키워낸 화산파와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빌미를 제공했던 비검맹은 이상하리만치의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화산파는 청홍무적검이 행해 온 어떤 일에 대해서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청홍무적검이 무슨 일을 했더라도 화산파와는 관련이 없다고 보일 정도였다.
비검맹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심지어 비검맹에서는 청풍에 대한 추격은 고사하고 연공사에 있었던 화산 제자들에 대한 추격까지도 시도하지 않았다. 주축 중의 주축을 잃은 문파로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처사였다. 강호인들의 관심이 그런 두 문파에 집중되었다.
"이번엔 그럼 화산과 비검맹이야? 또 다시 피바람이 불겠는걸!"
"또 모르지. 그런 큰 싸움을 누가 하려고 하겠어? 당장 뒤엎지 않는 것을 봐. 서로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그럴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큰일이지 않아? 게다가 청홍무적검은 저번에도 비검맹에 일을 그르쳤잖아."
"그야 그렇지. 근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주 일방적인 것도 아니었더라고. 광혼검마가 실은 화산파 집법원의 고수들을 몇 명 죽인 일이 있다더군!"
"그래? 청홍무적검이 움직인 것이 그 복수 때문이다?"
"일단은 그렇게 보여. 뒤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두 곳 다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 거야."
"글쎄, 아주 단정 지을 수도 없지 않겠어? 내일 당장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거 아냐?"
"그거야 알 수 없지. 강호인들의 머릿속을 우리가 어찌 알겠나?"
민초들의 잡담이라기엔 예리한 평가들이었다.
두 문파 모두 함부로 움직일 일이 아니라는 말.
그것은 정확한 판단이라 할 수 있었다.
두 문파가 큰 싸움을 시작해도 이상할 일이 아닌데, 그렇지 않고 있다는 말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화산파도 비검맹도 섣불리 움직이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만한 일이 터졌는데 침묵만을 고수할 리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구한 억측을 내놓았다. 개중에는 상당한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강호.
그 와중에서도 장본인인 청풍은 오직 진실을 찾는 것 하나에만 여념이 없었다.
청풍은 장강을 벗어나 인적이 없는 심산(深山)으로 들어갔다.
깊숙한 산속 어딘가였다.
골짜기들을 날듯이 뛰어넘으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이르렀다.
"이런 곳이라 해도.......'
청풍의 움직임은 빨랐다.
누구도 찾아올 수 없다. 따라오는 자도 없었다.
'그들은 올 것이다.'
아무리 인적이 드물어도 나타난다.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을지백.
백호검을 풀어내고 을지백을 기다렸다.
꿈결같은 시간이었다. 마치 한 식경이 지난 것도 같고 찰나의 시간이 흐른 것도 같다.
어느 순간에 이르렀을 때.
"오랜만이로군."
청풍은 마침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계곡 서쪽의 자갈밭이 들어오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비쳐들었다.
을지백이 걸어오고 있었다.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 처음 보았던 그대로 백포를 갖춘 채 거친 기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셨던 겁니까."
청풍의 첫마디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을지백이 되물었다.
"무엇을 말이냐."
"육극신을 막아주셨던 때 말입니다."
육극신을 막아주던 마지막 순간, 거기서 벌어졌던 일이 어떤 것이었던가.
왜 백호검은 광혼검마의 손에 들어가 있었던가.
그것을 묻는 것이었다. 또한 그 질문은 궁극적으로 을지백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과 맞닿아 있었다.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의문이라는 말이다.
"역시나 늦다. 이제까지도 깨닫지 못하다니."
을지백은 예전과 똑같았다.
만족을 모르는 성정이다. 그가 바라는 기준은 항상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있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범인(凡人)이 구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청풍은 백호검으로 펼치는 무공의 성질을 떠올렸다. 을지백의 성품이 곧 그 무공과 같다. 청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거짓은 없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실재(實在)요, 천리(天理)다. 이미 천하를 향하여 걸음을 내딛고 있는 이가 그것조차도 모르고 있나?"
"보이는 모든 것이 실재하는 것이라 한다면 을지 공은 어떻게 이런 곳에도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까?"
"네가 불렀지 않느냐?"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앞에 있는 데에도 어찌하여 아무런 기척이 없으며, 또한 어찌하여 사람으로서의 생기(生氣)가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까?"
예전부터 그랬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그것은 을지백이 그만큼 강해서였던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강해도 가까이 있다 보면 인간으로서의 생기가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을지백에게서는 그 어떠한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의문. 을지백을 똑바로 쳐다보는 두 눈에 진실을 향한 깊은 갈구가 있었다.
"좋은 눈빛이다. 반드시 알아야만 하겠는가?"
을지백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예. 이제는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청풍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고개를 내젓는 을지백이다. 그가 말했다.
"알아야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그 대답은 내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 듣도록 하라."
을지백이 고개를 돌렸다.
동쪽이다. 오른쪽, 계곡 옆의 숲이었다.
"알아도 그만, 알지 않아도 그만인 것을......"
모습보다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언제나처럼 잔잔한 목소리, 친숙함을 품고 있는 목소리였다.
"굳이 진실을 원한다고 함에야 어쩔 수 없겠지."
청관 도포의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뜻밖의 인물이다?
아니었다. 청풍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천태세.
용갑 안에서 청룡검이 은은한 진동을 발했다.
"쉬운 것을 꼬아서 말하는 그 말버릇은 여전하오, 염감."
다가오는 천태세에게 말하는 을지백이었다.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천태세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녀석도 도통 달라진 것이 없구나. 지난 세월이 얼마이거늘...."
"세월을 운운하다니 웃기는 일이오. 그나저나 어떻소. 미숙한 놈 가르치느라 고생이 심하지는 않으셨소?"
을지백의 말은 묘하게도 도발적인 어투를 품고 있었다. 천태세가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우문(愚問)이다. 어느 누구는 일보(一步)를 내딛던 때가 없었던가? 재능이 있을 뿐 아니라 선한 품성까지 갖춘 아이니라."
"선한 품성, 그것이 문제였지. 도통 늘지를 않더이다."
"문제라니 우습다. 하기사 너와 같이 폭급(暴急)한 성정으로서는 잴 수 없는 천품이겠지. 자신을 망치고 남을 망치는 흉살의 기운으로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을지백이 괜한 도발을 해온다 했다면, 천태세의 어조도 그에 못지 않았다. 천태세답지 않은 신랄한 어투다. 그의 말을 들은 을지백이 검미(瞼眉)를 치켜 올렸다.
"말조심하시오, 영감. 나이를 겉으로만 먹었소?"
을지백은 필요 이상으로 열을 내고 있었다.
앙숙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서로를 향한 감정이 묘하게도 격했다.
'설마.......'
청풍은 그 순간, 그토록 섞이지 않았던 백호기와 청룡기를 떠올렸다.
을지백과 천태세.
금기(金氣)와 목기(木氣)가 상극(相剋)이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융화되기 힘들었던 백호기와 청룡기의 성정이 그들의 대화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아직도 그런 식이라니, 강홍이 만도 못하다. 수양이 덜 되었다는 증거이니라."
"점입가경이군. 남가 녀석하고 비교를 하다니, 그놈은 수양 자체가 불가능한 놈이었소."
을지백의 얼굴에 생생한 분노가 떠올랐다.
그때였다. 갑작스런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을지 형님. 형님이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는지는 미쳐 몰랐습니다."
햇빛이 비쳐드는 곳.
홀연히 나타난 적색 무복의 젊은이가 있었다.
신법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냥 나타났다. 땅을 밟고 있지만 그림자조차 생겨 있지 않았다.
"오호라. 너까지 나왔나? 벌써 셋이나 구현이 될 정도인가?"
"셋이 아니지요. 넷 모두입니다."
남강홍의 대답이었다.
불현듯 드는 느낌이 들어 시선을 뒤쪽으로 돌린 청풍이다. 계곡 위쪽, 흐르는 물 가운데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육중한 검은색 갑주가 그 위에 보인다.
창백한 얼굴도 있다. 눈이 마주치고도 말이 없는 남자. 북진무였다.
"공명결을 줬습니다. 그 정도는 해야지요."
남강홍의 목소리에는 강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청풍을 돌아보는 을지백이다. 그의 얼굴에도 비로소 감탄 어린 표정이 떠오른다.
"실로 놀랍군. 성장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이 정도라면 우리가 어떤 이들인지는 충분히 알고도 남을 텐데....... 어찌 그것을 모를까?"
"그런 것이 아니지. 그는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지만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느릿느릿 들리는 목소리는 북진무의 그것이었다.
저음으로 깔리는 목소리에 대지의 웅혼함과 북방의 냉엄함이 함께하고 있다. 귀기(鬼氣)와 광기(狂氣)가 서려 있었던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천태세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오며 북진무의 말을 받았다.
"잔무의 말이 옳다. 그저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라. 보았던 모든 것, 느꼈을 모든 것들이 우리들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또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었겠지."
말을 멈추고 청풍을 바라본다.
말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침묵이었다.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거기에서 갈라졌다.
"역시나 그렇군요......."
청풍이 입을 열었다.
그의 세계를 무너뜨렸던 생각이 결국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억눌러 두었던 진실, 오래 전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차마 떠올릴 수 없었던 진실이 뚜렷한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천 노사, 을지 공. 네 분 모두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흑림과의 싸움.
쿠루혼의 흑창에서 잡았던 실마리였다.
다른 장수의 혼(魂)이 깃들었던 기병(奇兵)이다. 그것을 보며 느꼈던 위화감이 청풍의 질문 속에 있었다.
청풍의 시선이 사방을 돌아 움직였다.
동, 서, 남, 북.
네 방위에 그들이 서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서 있도록 약속되어진 이들이었다.
거친 기상의 을지백.
화려한 불꽃의 남강홍.
단단한 바위의 북진무.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지혜롭고 현명한 천태세만이 엷은 미소로 화답할 뿐이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네 말을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반이 틀렸다 함은.....?"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겠지만, 그것은 온전한 답이 아니다. 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만 하는 것이 있느니라."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신검의 근원, 그 실체(實體)를 말함이다."
"사신검의......."
"사신검이 어떻게 만들어진 물건인지부터 말해 주마."
천태세가 청풍의 검들을 훑어보았다.
그 시선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있다. 그의 입이 강렬한 그리움을 품었다.
"사신검을 주조한 것은 동방 용사들의 뜨거운 심장이었다. 사신검의 검신에는 그들의 붉은 피가 흐르고 있으며, 그들의 붉은 피는 승리를 위한 함성으로 불타고 있었느니라. 천하를 위한 강철같은 의지가 검을 쥐는 검자루에 함께 했다. 빛나는 검날에는 적들을 베는 날카로움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 그들 마음속에 있는 염원이 거기에 있었다는 말이다."
"염원이......"
"그렇다. 염원이다. 검들은 곧 그러한 염원의 상징이 되었다. 신검들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염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힘을 지니게 되었고, 제왕은 결국 그 검들을 통하여 그 염원을 실현시켰다. 광활한 대지를 꿈꾸었고, 마침내 그 대지를 마음껏 내달릴 수 있었다."
"......."
"사신(四神)의 신검들은 사람이 마음 깊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은 누구나 불러낼 수 있는 힘이 아니니라. 그것은 동방의 혈통만이 온전하게 얻어낼 수 있는 힘이다. 검에는 동방의 피가 담겨있고, 그 피는 언제나 그들의 혈맥을 부른다. 순혈(純血)의 혈맥(血脈)이 우선되는 것은 그래서다. 네가 검을 다룰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청풍이 사신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동방 고묘에서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다른 이들이 검을 잡고 광기에 빠져들었던 것도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동방의 혈맥으로 만들어진 신검(神劍).
중원 한족(漢族)의 피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몸에 흐르고 있는 더운 피가 곧, 신검의 힘을 열어낼 수 있는 열쇠였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어떻게 검들을 다룰 수 있었는지가 아니었다.
소망하는 바와 그 실현이 문제였다.
그 검들은 곧 사람이 염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는 물건이라고 하였다. 청풍은 그 사실에 또 다른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저는 이 검들에 어떤 소원도 빌지 않았습니다."
청풍은 사신검에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청풍에게 사신검은 어디까지나 무공을 가능케 하는 검이었을 따름이다. 그런 검에 무언가를 기원한 바는 아무것도 없었다.
천태세는 청풍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가 두 눈에 신묘한 빛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지 않다. 너는 빌었느니라. 충분히."
청풍은 부정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마음속 어딘가가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천태세가 옳다고. 청풍은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이라고.
천태세가 걸어와 그의 옆에 섰다. 처음 보았을 때처럼, 천태세의 얼굴은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또한 어딘지 낯설었다. 천태세가 흐르는 계곡, 고여 있는 물을 가리켰다.
"보여주마. 네가 무엇을 빌었는지."
계곡의 물은 거울처럼 맑았다.
비추고 비추어 마음 속까지도 드러낼 것 같다.
천태세가 손짓하며 물었다.
"보아라. 무엇이 보이는가.'
천태세의 말에 따라 물 위로 얼굴을 내민 청풍이다.
반사된 푸른 하늘 아래로 청풍의 얼굴이 수면 위에 떠올랐다.
흔들렸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거울이다.
뭔가 다른 조화가 생기려는가. 아니다. 한참을 들여다 보아도 똑같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청풍 자신의 얼굴뿐이었다. 청풍의 미간이 가볍게 좁아졌다.
"제 자신이 보입니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천태세의 대답은 그처럼 간단했다.
당연하다는 어투. 그를 돌아보는 청풍의 두 눈에 의아함이 가득 찼다.
"어찌 된 일입니까?"
"보이는 그대로다."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소망한 것, 그것이 거기에 있지 않느냐."
틀을 깨고 나오는 데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동반되는 법이다.
청풍의 눈이 다시 한 번 수면 위에 이르렀다.
"나의......"
거기에 비친 것은 청풍의 얼굴이되, 어딘지 모르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비치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자신의 얼굴에 다른 사람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닮은 사람.
변한 것은 느낌이요, 닮은 사람은 그가 보아왔던 사람이다.
청풍이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세월의 흐름이 그의 얼굴에 새겨진다면.
그리고 그 목 아래에 백포를 입고, 머리카락 위에 백관을 쓴다면.
"설마......"
황급히 고개를 돌려 서쪽의 백호, 을지백을 바라보았다.
"그럴 수가......!'
청풍은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그렇다.
을지백의 얼굴이었다.
그 자신의 모습이 그와 같았다. 을지백 안에 청풍이 있고, 청풍 안에 을지백이 있다.
청풍은 을지백에게서 스스로의 천품을 찾을 수가 있었다.
"이제야 알겠는가? 신검은 염원을 이루어주는 신물(神物)이며, 소망하는 것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다, 네가 백호검에서 원했던 것이 바로 그라는 말이니라."
명확해지는 진실이다.
을지백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청풍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강인함과 거친 기상이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혼자서도 험난한 강호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었다.
'그랬다. 나는 강하지 못했어.'
백호검을 처음 얻고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원했다.
을지백을.
망설임없이 나아갈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원했던 것이다.
"천노사께서는 다릅니다. 제 모습이 아니지 않습니까?"
을지백이 그런 존재라고 한다면 천태세는 또 어떤 존재인가.
단순히 긴 세월을 더한다고 하여 을지백이 천태세가, 청풍이 천태세가 되지는 않을 터다.
천태세가 웃으며 대답했다.
"내 모습이 네가 원했던 것과 그토록 다른가? 잘 생각해 보아라. 그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네 염원의 실재일 따름이니라."
만나던 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모른 채 비검맹으로 뛰어들었던 시절.
백호검마저 잃어버린 채, 목숨만을 건지고 돌아왔던 그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갈 길은 막막했고, 청룡검도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무지(無知)와 만용(蠻勇)의 위험함을 처음으로 실감한 것이 그때다.
청풍은 그것을 극복하길 원했다.
지혜가 필요했다. 길을 이끌어 줄 이가 필요했다.
사부가 필요했었다.
'사부님.......!'
천태세가 누굴 닮았었나.
청풍은 그의 얼굴의 다시 한 번 돌아보며,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부, 선현진인의 향기였다.
그가 그토록 다시 보길 원했던 사부의 모습이 천태세에게 함께하고 있었다.
"그 다음을 볼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를 가르치고, 그에게 진실을 보여주는 이는 다름 아닌 천태세다.
천태세가 남강홍을 가리키며 말했다.
"백호검과 청룡검을 얻었지만, 그때까지도 너에겐 부족한 것이 있었느니라. 생사의 치열함과 전장의 비정함이 그것이었다. 강홍이 너를 그 영역까지 이끌어주었지."
그렇다.
청풍은 무의식 중에 이미 알고 있었다.
백호의 웅혼함과 청룡의 신묘함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에겐 그것을 과감하게 풀어낼 만한 격렬함이 없었다. 힘이 있다면 그 힘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과단성도 갖추어야 하는 법이었다.
청풍이 원한 바다.
남강홍은 그래서 젊었다.
화려하고 독특했다.
그러면서도 청풍과 가장 닮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필요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너는 그에게 무공의 살상력을 배웠다. 망설이지 말아야 하는 과감함도 배웠지. 그것은 한편으로 너의 무공이 지녀야 할 완성형이라 할 수 있었다."
천태세의 말이 쓶어졌다.
그가 이번에는 청풍 본인을 가리켰다.
"그리하여 세 가지 기운을 얻은 너는 많은 혼란을 느꼈다. 강력한 힘을 얻었지만 그것으로도 모든 것을 이루지는 못했던 것이다. 천하로 나아가는 발걸음에는 힘이 가득했으나 너는 그 힘이 무색하게도 네가 가야 할 길을 온전히 알 수가 없었다."
천태세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 완벽하게.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일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태세는 곧 청풍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을 아는 만큼, 천태세도 청풍을 알고 있다.
천태세의 목소리는 곧 청풍의 목소리였으며 청풍이 바라던 사부의 목소리였다.
그가 느끼는 것, 그가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북진무는 네 혼란스러웠던 마음의 표상이 그대로 투영된 상대였다. 본디 제왕의 방패로서 굳건한 마음의 표상이었던 그였다만, 마도(魔道)의 사악한 주술에 의해 마기(魔氣)를 흘리는 흉장(兇將)으로 변해 있었지. 너는 그와 맞섬으로서 너 자신을 극복할 기회를 얻었고, 사신검의 진실에도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은 네 자신이 바라왔던 소망일지니, 너는 비로소 얻고자 하는 모든 것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청풍이 북진무를 돌아보았다.
강철처럼 단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인한 성정으로도 귀기(鬼氣)의 늪을 피해 가지 못했다.
마음의 투영이라 했던가.
그렇다. 북진무가 보여준 귀기는 곧, 청풍의 내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의 마음이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법. 그것을 극복하여 온전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 곧 무인으로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무도(武道)의 길, 구도(求道)의 길. 북진무의 가르침이 곧 그것과 맞닿아 있었다.
"모두가 제 마음의 다른 모습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저는 스스로 전혀 모르고 있던 무공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던 것입니까? 저는 그런 무공에 대한 어떤 기억도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이야기였다.
청풍은 남아 있던 의문을 이야기하던 바로 그 순간, 화안리에서 오극헌과 나누었던 짧은 대화를 떠올릴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