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156)

[한백무림서] 화산질풍검 제 23장 진격(進擊) 

 숭무련의 발호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비무첩에 이은 일대 일 비무가 그것이다.   

 산서 분양파(汾陽派) 분양철권 경남방이 오초 만에 패하고, 태행방 군행검(君行劍) 황려만이 십초 만에 검을 접었을 때 까지만 해도 숭무련이란 이름은 그저 주머니에서 조금 튀어나오려는 못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산서 남부 하현방의 총관 정립중이 삼 초 만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자 산서 무인들은 비로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예감했고, 시양회 절정고수 한남창(寒南槍) 평요보가 자신의 창대를 부러뜨렸을 때,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대동장 장주 통천도(通天刀) 동풍릉이 이십 초만에 무릎을 꿇었고, 급기야 산서성 최고 고수를 일컫던 오대산(五臺山) 문수성불(文殊聖佛) 청량신승(淸凉神僧)까지 무너지고 말았다. 

 경남방, 황려만, 정립중, 평요보, 동풍릉, 청량신승. 

 산서성의 강자들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질 수가 없었던 고수들이다. 

 산서 유수의 명문들, 그들을 대표하는 무인들이 이름조차 생소한 숭무련 무인들에게 일대 일 정정당당한 비무로 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산서성 전체가 지각변동과도 같은 충격을 받았다. 

 온 천하 강호인들이 산서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산서성 세력판도가 크게 변화할 것임을 기정사실과도 같았다. 

 하지만 숭무련의 움직임은 그 정도로 끝이 아니었다.  

 산서성을 벗어나서까지. 

 산서성 동쪽 경계를 넘어 하북의 진주언가에 도전장을 낸 것으로 모자라, 하북 팽가의 도신(刀神) 팽일강에게까지 비무를 신청했던 것이다.   

 대 파란이었다. 산서성을 벗어나 온 천하로 나아간다. 숭무련의 발호는 순식간에 중원 전체를 들끓게 만들고 있었다. 

 .....중략...... 

 한백무림서 무림편 

 강호난세사 중에서. 

 청풍이 숭무련에 대하여 들은 것은 화안리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객잔에서였다. 

 숭무련의 발호. 

 탁종명에게 들었던 것처럼 본격적으로 강호에 나서는 숭무련이다. 

 놀라움으로 회자되는 무련. 

 삼삼오오 모였다 하면 숭무련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다. 

 어지러운 천하. 

 또 새로운 복룡의 출세가 호사가들의 입을 더욱 더 부추키고 있었다. 

 “숭무련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강하담?” 

 “그 누구라더라. 산서신협 서자강이란 자도 실은 숭무련의 인물이라며?” 

 “산서성 최고 고수를 논한다는 그 사람인가?” 

 “맞겠지. 그 정도는 되야......” 

 “그럼 그 자가 숭무련의 련주 쯤 되려나?” 

 “글쎄.......듣기로는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던데.” 

 “뭐, 하북 팽가에 싸움을 걸었으면 지금처럼 진격하던 것도 멈출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진주 언가도 만만치 않고 말야.” 

 “육대세가 중 하나인 하북 팽가라면 확실히 넘어서기가 어렵겠지. 그래도 또 모른단 말야. 하북팽가의 상태도 말이 아니라서 말이지.”  

 “그렇기도 그래. 더욱이 산서성 청량신승까지 꺾었다고 한다면, 팽가에서도 애를 먹을 거야. 어쩌면 져 버릴 수도 있고. 만일 그렇게 되면 육대세가의 이름이 바뀌겠지.” 

 “설마 그렇게 까지야 될라구......”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청풍은 생각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온 세상이 놀라고 있었지만, 숭무련의 무력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청풍으로서는 그들이 행하는 일이 그렇게 놀랍지가 않았다.  

 분양철권, 군행검, 한남창....... 

 화산파는 섬서성에 있었고, 산서성은 섬서성의 바로 옆에 이웃해 있다. 

 그런만큼 익숙한 이름들이다. 청풍은 패배한 산서 고수들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약하지 않다. 

 하지만, 엄청난 고수들은 아니다.  

 강의검을 받아 간 조신량만 나섰더라도 이길 수 있는 무인들이었다. 

 ‘문수성불에 이르면 조금 달라질까.’ 

 아니다. 

 그렇지도 않았다. 

 문수성불의 무공이 산서최고를 논한다지만, 산서최강은 결코 그가 될 수 없었다. 

 청풍이 보건데, 문수성불의 무력은 참도회주보다도 아래였다. 

 아무리 높게 보아도 참도회주 수준, 그 이상은 아니다. 그 정도로는 산서성 최고를 말할 수가 없다. 산서성 최강자는 누가 뭐래도 다른 사람이었다. 

 ‘산서신협.......’ 

 사람들의 말처럼, 산서 최고를 논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산서신협 서자강을 떠올렸다. 

 형용하기 어려운 무공을 지닌 자다.  

 산서 최고 고수. 

 혹시나 서자강이 아니라고 한다면 거기에 들어갈 이는 산서성에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숭무련주 밖에 없을 것이었다. 

 ‘강한 것만이 아니다. 숭무련.......무엇보다.......빨라.’ 

 숭무련의 행보는 굉장히 빨랐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처음 분양철도가 비무첩을 받은 날부터 문수성불이 패배할 때까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철저하게 계획된 행보라는 말이었다. 산서를 단숨에 휘어잡기로 작정을 한 움직임이었다. 

 ‘게다가......하북성.’ 

 산서성으로 그쳤다면 모르되, 숭무련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숭무련은 산서성 바깥에도 손을 뻗었다. 하북성, 그것도 언가와 팽가에게까지.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진주언가와 하북팽가는 지금까지 숭무련이 꺾었던 문파들과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진주언가가 보유하고 있는 권법신공들은 중원 권맥(拳脈)의 정점을 달리고 있었으며, 하북팽가는 명실공히 중원 최고의 도문(刀門)으로서 육대 세가의 하나로 꼽히고 있었다. 그에 비하자면 산서성 문파들의 무공은 중원 무학의 변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주언가에는 분양철권을 아래로 보는 고수들이 이십 명은 넘을 것이며, 하북팽가에는 통천도 동풍릉 정도의 도객들이 삼십 명은 족할 것이다. 

 ‘그래도 이기겠지. 숭무련은.’ 

 청풍은 알 수 있었다. 

 숭무련은 이긴다는 것을.  

 그가 만나본 숭무련의 고수들은 하나 같이 강했다.  

 참도회주만 해도 그랬다. 그가 지닌 흑철도는 하북팽가의 도법을 마주한다 해도 충분한 날카로움을 보여 줄 것이다.  

 진주언가.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진주언가의 권법이 아무리 강해도 산서신협 서자강의 무공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서자강은 상승의 경지를 예전에 넘어선 고수다. 백호검와 청룡검을 얻은 청풍을 가볍게 제압했던 초절정의 무인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야.’ 

 산서 전체가 숭무련에게 제압된 것은 별반 대단할 것이 못 된다. 

 하북성에서 진주언가가 무너지고, 팽가가 꺾인다고 한들 둘째 문제라 넘겨 버릴 수 있었다. 

 섬서성이 문제다.  

 산서성의 동쪽이 맞닿아 있는 곳이 하북이라면, 서쪽에 맞닿아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섬서성이다. 

 숭무련이 섬서성을 표적 삼았을 때. 

 섬서성에 위치한 화산파는 그들의 제 일 목표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숭무련과 구파는 길이 다르다는 말이 그것이다. 

 서영령과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했던 수많은 일들이 바로 그러한 결말을 향하여 흐르고 있었다. 

 ‘령매......!’ 

 서영령에 생각이 이르자 마음이 급해졌다.  

 지체 된 시간이 길다. 어서 돌아가야 했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다. 

 신법의 속도를 최고로 올렸다. 

  *       *       * 

 “선녀 언니는 여기에 없어요. 급히 어디론가 가 버렸는데요?”  

 화안리에 들어가자마자 첫 번째로 들은 이야기였다.  

 안 좋은 예감은 언제나 들어 맞는 법이다.             

 청풍은 지체하지 않았다. 곧바로 꼬마 아이의 아버지, 상학을 찾았다. 

 “그녀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어디로 간지 아십니까?” 

 “그거야 나중에 듣더라도 말이지, 오랜만에 돌아왔음에도 인사조차 안 하더니,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네. 이 야박한 친구야.”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까지는 없지. 몸 건강히 돌아 왔다면 그것으로 되었네. 다들 걱정 하고 있었어. 그런 게야, 이 화안리 사람들은.” 

 “심려를 끼쳐 드려서......” 

 “되었네. 하기야 마음이 어지간히도 급했겠지. 밖에서 들리는 소문이 심상치 않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말이네 질녀는 다른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네.” 

 “다른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니........” 

 “그녀는 자네를 찾으러 갔다네, 이 친구야.” 

 “저를 말입니까?” 

 “그래. 사천성으로 간다던 사람이 어쩌자고 비검맹을 쳤나? 무사히 돌아온다고 약속까지 했다면서? 말해보게, 비검맹이 어디에 있던가?” 

 “장강에 있지요.......아!” 

 “그래, 질녀는 자네가 파검존과 싸우러 간 것으로 알아.”   

 “!!” 

 실수를 깨달은 청풍이다.  

 백호검을 얻고자 장강으로 직행한 것이 문제였다.  

 광혼검마를 꺾고, 백호검을 얻은 소문이 그렇게 빨리 퍼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문제 중 하나다. 전적으로 그의 불찰이었다.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습니까?” 

 “어디겠나. 장강으로 갔겠지.” 

 “언제 갔습니까?” 

 “이틀 되었네.” 

 고작 이틀. 

 조금만 운이 좋았어도 오면서 만날 수 있었을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 사이에 엇갈렸다. 

 오고 있던 청풍과 만나지 못했다는 것. 그가 온 길과 다른 길로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찾기가.....!’  

 다른 길로 움직였으면 찾아내기가 곤란하다. 

 아무리 이틀 차이라도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서영령은 청풍처럼, 몸을 숨기면서 이동하는데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가. 그렇게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면 제아무리 청풍이라 해도 그녀를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의 빛을 떠올리는 청풍이었다. 

 그런 그를 보던 상학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 일단은 자네가 일을 벌였다고 알려진 연공사부터 가 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연공사부터 가는 것. 

 옳은 생각이었다. 

 그녀가 찾는 사람은 결국 청풍이다. 그렇다면 그녀로서도 연공사부터 가 보는 것이 먼저였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청풍의 행적을 쫓아 거슬러 올라갈 것이 틀림없었다. 

 “연공사라니.....,.서둘러야겠군요.”    

 “그렇겠지. 아무래도 그 근처는 위험한 상태일 테니까.” 

 “예. 그런 만큼 바로 가 봐야겠습니다.” 

 “따로 잡지 않겠네. 질녀가 걱정된다면 서둘러야지.” 

 “그렇지요. 그 동안 신세 많았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신세라니 당치 않아. 장도(長道)에 무운을 빌겠어.” 

 청풍이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기가 무섭게 다시 강호로 나가는 그다. 

 서영령.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으면 되었을 것을. 

 ‘아니다. 내 잘못이야.’  

 하지만 청풍은 그녀의 탓을 할 수가 없었다.  

 장강에 갔다는 청풍 소식에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얼마나 걱정했기에 화안리를 박차고 나갔을까.   

 얼어붙은 땅. 

 대지를 가르는 청풍의 발길에 서영령을 향한 애잔한 감정이 뿌려지고 있었다.  

    

 청풍은 바람과 같았다. 

 연사암까지 직선으로 주파하여, 순식간에 연공사까지 올랐다. 

 향화객의 발걸음이 뚝 끊긴 사찰이다. 

 그러나 향화객이 없더라도 스님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불 타버린 잔해의 가운데에서는 벌써부터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불심이다. 

 재건의 의지였다. 

 언제 비검맹의 습격을 받을지 모르는데도, 절을 되살리려는 승려들의 용기가 대단했다. 부처님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아니고서야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청풍은 곧바로 산문을 넘어 본당으로 향했다. 

 목재(木材)를 나르고 망치질을 하던 승려들이 하나 둘 청풍을 알아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몇 마디가 오가는 듯싶더니, 초로의 승려 하나가 황급히 달려 나와 청풍의 앞에 섰다. 

 “은공께서 오셨습니까!” 

 “은공이라니 과분한 말씀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도 주지 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답니다. 이 쪽으로 오십시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반가움에 가득한 목소리였다.   

 청풍은 일순간 망설였다. 

 연공사 주지까지 만나는 것은 계획에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되물었다. 

 “주지 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니요?” 

 “한참이나 기다리고 계셨지요. 이제야 화산에서 기별이 오다니……! 하나 늦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은공께서 직접 오실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지요.” 

 ‘기별……?’ 

 청풍은 당황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과 부딪치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서영령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였던 것 외에 다른 뜻은 없었다. 한데 화산의 기별이라니, 도통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잘 모르겠군요. 전 이곳에 한 사람을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아, 화산에서 오신 것이 아닙니까?”  

 길 안내를 자처한 승려의 얼굴에 곤란함이 찾아들었다. 

 청풍 이상으로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머리를 스쳐 가는 느낌, 청풍이 얼굴을 굳히며 되물었다. 

 “화산에서 온 것은 맞습니다만… 뭔가 착오가 있으셨던 모양인데……. 혹시나 하여 묻겠습니다. 그때의 일 이후, 화산에서 온 사람이 저 말고는 없었습니까?” 

 “예, 그랬지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은공께서 오신 것이 처음입니다.” 

 당혹감에 이어 찾아온 것은 놀라움이었다. 

 이상했다. 

 화산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청풍이 다시 한 번 질문했다. 

 “화산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니… 비검맹의 동향도 그러합니까?” 

 “그, 그것이…….” 

 승려의 얼굴에 깃들었던 곤란함이 더욱더 짙어졌다. 청풍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서북쪽 먼 곳, 화산파가 있는 쪽을 향하여 돌아갔다. 

 ‘어째서……?’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화산파는 왜 움직이지 않았나.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으려는 것은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곤란한 처사다. 적어도 연공사에 만큼은 화산 무인들을 보내놓았어야 했다.  

 장문인의 생각을 읽기가 어려웠다. 

 연공사는 비검맹의 습격을 받은 곳이다. 일단 개입하여 비검맹의 행사를 방해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했다. 연공사를 비호하게 된 이상,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반드시 따라야만 했다는 말이다.  

 이대로 버려두면 연공사는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비검맹의 영역에서 지척인 곳, 항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곳이다. 그때 일의 분풀이로 공격당할 가능성도 상당했다.  

 “비검맹……. 주지 스님을 뵙고 이야기해야 할 일이겠군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화산파가 이렇게 나오다니 충격이라고밖에 말할 길이 없다.  

 성큼 걸음을 옮겨 승려의 뒤를 따랐다. 아예 이야기를 못 들었다면 모르되,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대웅전을 지나 연공사 주지 스님의 거처에 이르렀다. 거처는 커다란 산사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도 검박하기만 했다. 청풍을 본 주지 스님의 걱정 어린 노안(老顔)에 모처럼의 반가움이 차 올랐다.  

 “청풍입니다.” 

 “잘 오셨소. 이리 누추한 곳까지 오게 만들어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주지 스님은 무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거동이 쉽지 않은 노구(老軀)에, 불법을 향한 고행의 흔적이 가득했다. 

 불심(佛心)을 닦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관심 갖지 않았을 법한 인상이었다. 

 “사안이 사안인만큼 곧바로 여쭙겠습니다. 비검맹은 어떻게 나오고 있습니까?” 

 “그렇게 관심을 가져준다니 빈승으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이오. 실은 얼마 전, 본사 재건을 위해 산길을 올라오던 목재(木材) 마차가 습격 당한 일이 있었소. 연사암에는 행패 부리는 산적이 없으니, 비검맹 말고는 달리 짐작할 범인이 없소. 게다가 연사진을 중심으로 비검맹 무리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오는 중이오.” 

 “치졸한 짓이군요.” 

 “그렇소. 불법 정진, 본사 무승들이야 고난에 두려움이 없다지만, 어린 동자승들만큼은 그러한 풍진풍파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다오.” 

 “본격적으로 습격해 올 조짐은 있습니까?” 

 “바로 그것을 잘 모르겠어서 그렇다오. 아무래도 도발이 없지는 않으니, 조만간 습격해 오리라고 짐작만을 할 뿐이오. 빈승도 연공사 무맥(武脈)을 이어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험악한 상대는 처음이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오. 불법무한이라 하지만 부처님께서도 아무런 방도를 가르쳐 주시지 않는구려.” 

 위험이 앞에 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청풍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렇다면 직접 부딪쳐 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직접 부딪쳐 본다니, 어쩌려고 그러시오?” 

 “연사진에는 제가 가보겠습니다.” 

 “아, 그렇게 해주시겠소? 위험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늦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늦었다니 그렇지 않소. 시주는 이렇게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대협(大俠)의 풍모를 보여주는구려. 화산 매화향이 그윽하다고 듣긴 했었소만, 이제 와 느껴지는 그 향취에는 실로 감탄을 금할 길이 없소.”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하지만 청풍으로서는 그만한 칭찬을 받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매화향. 

 화산의 매화향은 어디로 간 것인가. 

 청풍이 하려는 일은 강호의 협사로서 당연히 해야만 할 일이다. 한데 화산파는 그것도 저버렸다. 

 따라야 할 도리를 따를 뿐일진대 대협 소리를 듣는다. 그런 말을 들을 일이 아닌데도 대협이라 칭하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일까. 

 화산의 잘못이다. 

 세상의 잘못이다. 

 천도(天道)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이가 드문 까닭이었다. 

 청풍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걱정 마십시오. 비검맹이 연공사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길게 말하지 않았다.  

 곧바로 포권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연공사 주지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혼자 가려는 생각이오? 무승들을 몇 명 붙여주겠소.” 

 “아닙니다. 일이 커질 뿐입니다. 제게 맡기십시오.” 

 굳은 의지, 강렬한 눈빛이다. 

 청풍이 말을 마치자 한겨울의 맑은 바람이 불어왔다. 

 청풍과 함께하는 바람, 그 바람의 정명함을 느낀 연공사 주지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인간사 범주를 벗어나 천도(天道)를 걷는 남자가 여기에 있다. 

 합장하며 몸을 숙이는 연공사 주지의 얼굴에서는 이제 세월과 배분을 초월한 공경의 염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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