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156)

 비검맹. 

 연사진에서 비검맹과 다시 부딪치게 될 경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지금까지는 화산과 비검맹이 전면전을 벌일 분위기가 아니었다만, 계속하여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그대로 덮어둘 수가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커다란 싸움으로 번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연공사에 화산이 개입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화산파 장문인의 사정이다. 

 청풍은 장문인과 같은 길을 갈 수 없다. 청풍의 길은 결국 육극신에게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육극신과 결판을 낸다는 것은 곧, 비검맹과도 결판을 짓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장강에 뛰어들었던 것이고, 망설임없이 백무한을 구해냈던 것이다. 

 지금 찾아가는 연사진도 마찬가지다.  

 화산파를 전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화산 문인이 비검맹에게 희생당했다면 그에 납득할 만한 대가를 받아내야 옳은 일이었다.  

 ‘그 대신…….’ 

 만일 화산파와 비검맹이 대대적인 싸움을 벌이게 된다면. 

 그 빌미를 제공한 청풍은 싸움의 최선봉에 서야만 한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각오는 충분했다. 청풍은 비검맹과의 싸움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그것으로 인해 흘려질 피의 무게가 무거울 뿐이었다. 

 연사진이 가까워 왔을 무렵이다. 

 청풍은 한 가지 묘안(妙案)에 생각이 닿았다. 

 ‘최선봉. 내게 집중시키면 그만이다.’ 

 비검맹의 시선을 그에게 국한시키려는 생각이다.  

 청풍이 사라져 버릴 경우, 비검맹의 눈은 필연적으로 화산파를 향할 수밖에 없다. 화산을 쳐서 청풍을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전처럼 은밀하게 움직이지 않고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 버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청풍에게 공격을 집중시킬 것이 뻔했다. 

 일을 벌인 청풍이 전면에 나서 있는데 굳이 화산파를 자극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당장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책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청풍이 행보를 뚜렷이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있었다. 

 서영령, 그녀다. 

 그녀를 찾기 위해 어렵게 수소문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녀가 청풍을 찾아오도록 만들면 된다. 

 그렇다면 싸움을 벌여서 주목받는 것이 상책이다. 청풍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내가 책임진다.’ 

 연사진의 전경이 눈앞에 비쳐든 것은 그의 생각이 완전하게 정리된 무렵이었다.  

 강변에 정박해 있는 한 척의 전선(戰船)이 보였다. 

 상당히 큰 규모, 전선의 선수에는 포효하는 범의 동상이 조각되어 있다. 

 호조(虎爪)였다. 

 광혼검마는 본디 육극신의 기함인 검형(劍馨)에 소속되어 있던 자, 검마의 칭호를 받고 애용하게 된 비검맹 쾌속함 호조(虎爪)가 그 전선의 이름이었다.  

 청풍의 발이 연사진 한복판으로 향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무인들은 하나같이 비검맹 무리들이었다. 

 청풍을 알아본 누군가의 외침. 몰려드는 무인들의 소란스러움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청풍을 향한 적의가 삽시간에 온 땅 위를 채웠다. 

 “대장님의 원수다! 이놈, 배짱도 좋구나!” 

 “제 발로 여기까지 오다니!”  

 무인들의 외침을 듣는 청풍은 한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이들은 광혼검마의 수하들이다. 

 비검맹에서 연공사 공격을 계획했다기보다는 광혼검마를 따르던 이들이 독단적으로 몰려든 모양새였다.  

 “이놈, 혼자다! 죽으러 왔구나!”  

 “쳐라! 죽여 버려!” 

 순식간에 앞을 가로막는 무인들만도 삼십을 헤아렸다. 

 달려온다. 

 오직 적들밖에 없는 곳. 그들을 맞이하는 청풍의 가슴에 묘하게 홀가분한 마음이 깃들었다. 

 치링! 

 백호검이 뛰쳐나왔다.  

 그의 싸움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온전한 그의 싸움인 것이다. 

 청풍이 자신의 의지로 제 모습을 천하에 보여주는 싸움이었다. 그의 발이 땅을 박차며 금강호보의 강렬한 진각음을 울렸다 

 터어엉! 퀴유웅! 

 한줄기 바람. 

 청풍의 몸이 나아가는 질풍으로 변했다. 

 앞으로 짓쳐 나가 백호검을 내쏘니, 그 어떤 병장기도 버텨내지 못했다. 쓰러진 무인을 타고 오른 질풍이 격하게 꺾여 내려왔다. 

 파아아아! 

 휘둘러지는 것은 백야참의 참격이었다. 

 피를 뿜고 쓰러지는 무인들, 부서지는 병장기가 바람에 휩싸여 사방으로 몰아쳤다. 

 파라라락! 쐐애애액! 

 옷자락이 미친 듯이 떨리며 파공음을 울린다.  

 막아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  

 질풍. 

 노도와 같은 질풍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쾅! 파아아아! 

 삼십에 이르는 무인들이 땅 위에 나뒹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청풍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사방으로 몰아쳤던 질풍이 이제는 직선으로 화하여 연사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적선, 호조다. 

 청풍의 신형이 주작의 날개를 달고 높이 솟은 호조의 선체를 박찼다. 

 텅! 

 선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이 한 마리의 비조와 같다. 

 호조의 갑판 위에 내려선 청풍이다. 

 비조가 변화하여 한 마리 범이 되었다. 

 병장기를 휘두르며 달려오는 무인들이 있다. 잠시 머물러 검날을 뽑아낸 질풍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쩡! 퍼어어억! 

 피가 튀었다. 일격에 한 명씩이었다. 

 너무도 강한 위력. 

 운이 없는 자는 불구가 되었고, 더 운이 없는 자는 즉사했다. 질풍의 검을 치켜든 청풍의 검격에는 이제 그 어떤 망설임도, 그 어떤 불안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싸워! 싸워라!” 

 “크악!”  

 갑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청풍의 발걸음 하나에 겁을 먹고 물러서는 무인들이 있었고, 청풍의 검격 하나에 피를 뿌리고 쓰러지는 무인들이 있었다. 

 장강을 지배하는 비검맹. 사납기로 유명했던 광혼검마의 수하들이 불어닥친 강풍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무인들이 갑판 위에 누워버리고, 서 있는 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다. 

 청풍의 신형은 전선의 선수에 이르러 있었다. 

 포효하는 범의 동상이 바로 앞에 보였다. 백호검을 손에 넣었던 광혼검마가 그 검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만들어놓은 동상인 것 같았다. 

 멈추어 선 청풍이 살아남은 적들을 돌아본다. 

 백호검을 비껴든 청풍. 하이얀 검광이 한순간 빛을 발했다. 

 쩌어엉! 

 백야참이다. 

 백호검이 반원을 그리며 선수에 세워진 범의 동상을 가로질렀다. 

 “여기까지다.”  

 치리링! 

 백광의 잔영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다. 

 검집으로 돌아오는 백호검. 

 사나운 위용을 보여주던 범 동상이 절반으로 동강나 강물 위로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돌아가서 비검맹에 전하라! 원한이 있다면 나를 찾으라고!” 

 끓어 넘치는 웅심이었다. 

 뻗어나가는 목소리. 누구라도 올 테면 오라. 청풍의 의지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 되어 비검맹 무인들의 머리 속에 새겨졌다. 

 선수 잃은 배를 벗어나 땅 위에 내려앉는 질풍. 

 질풍의 이름이 천하에 또 한 번의 파란을 몰고 오는 순간이었다. 

 질풍의 이름이 태동하는 강호. 

 연사진에서 비검맹에 싸움을 건 청풍의 소문이 강호를 질타했다. 

 풍문이 장강 물길과 대륙 관도를 타고 움직이는 동안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들, 수많은 사람들이 은밀하고도 긴급한 행동들을 취하고 있었다.  

 연사진(緣絲津). 

 인연(因緣)의 실(絲)이 얽히는 곳. 

 청풍을 향한 인연들이 한곳으로 모여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그를 찾아왔던 것은 청풍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 

 그것은 청풍과 가장 오래라면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청풍과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자. 

 발군의 재능으로 매화검수의 위치에 올랐지만, 결국 그 지위를 박탈당하고 말았던 이. 

 하운이다. 

 연사진에 찾아온 하운은 반가움이라기보다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오랜만이로군.” 

 “그렇군요.”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인연이었다. 

 서먹해진 침묵이 잠시 동안 그들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굉장한 성취다. 명불허전이야.” 

 하운의 태도는 담담하기만 했다. 

 자신을 추월하여 앞서 가는 청풍을 보는 데에도 마음의 동요가 없어 보인다. 칭찬하는 말에서도 가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과찬입니다.” 

 “과찬이라니. 연공사에서 광혼검마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 다시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는데, 용케 이렇게 만나는구나.” 

 근처에 있었다는 어투였다.  

 비검맹 무인들과 싸운 지 고작 삼 일 된 시점. 퍼져 나가는 풍문을 듣고 왔다기에는 너무나도 빠른 만남이었다. 이 근역에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후후. 별로 달갑지 않은 기색이다. 그도 그렇겠지. 내가 찾아온 이유는 네가 짐작하는 바 그대로니까.” 

 “…….” 

 하운의 눈은 맑았다. 연공사에서 만났던 매화검수들과는 전혀 다른 눈이었다. 잠시 동안 청풍을 응시하던 그가 이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널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장문인께 직접.” 

 “그랬군요.” 

 “그래. 어떻게든 데려오라는 당부셨다. 그 대가로서 매화검수로서의 복직까지 내거셨지.” 

 하운의 말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지위, 명예. 

 초탈해 버린 모습이다. 

 하운. 

 그 순간 청풍이 매한옥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비슷했다. 

 매화검수의 굴레를 벗어남으로써 더욱더 강해진 무인이 여기에 있었다. 

 “우스운 일이다. 매화검이 있거나 매화검이 없거나 결국은 화산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거늘. 검에 새겨진 매화 한 송이가 무에 그리 중요했던지…….” 

 “중요하지요. 매화검은 화산의 상징이며 제자들의 동경이니까요.” 

 “하하하. 그런 이야기를 너에게 듣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그래, 그럼 너는 아직까지도 매화검을 동경하고 있다는 말이냐?” 

 말문이 막힌 청풍이다. 

 매화검을 조금도 동경하지 않는 제자. 청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맞는 말이다. 묻겠다. 그래서 너의 길은 화산을 향해 뻗어 있기는 한 것이냐?”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청풍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과는 달랐던 사문, 제자들을 전쟁의 졸로 사용하는 문파. 

 대의보다 자파의 이익을 먼저 고려했던 명문정파 화산파. 

 어찌하여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렵사리 대답하는 청풍이다. 목소리 안에 숨길 수 없는 깊은 그늘이 깔려 있었다. 

 “사부님이 계셨던 곳입니다. 키워주고 이끌어준 은혜, 갚지 못한다면 대장부가 아니겠지요.” 

 “그런가. 하지만 그것은 달리 화산에서 마음이 떠났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청풍은 부인하지 않았다.  

 마음이 떠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척이나 실망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북쪽, 화산이 있는 머나먼 하늘을 바라보던 하운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한 가지 말하마. 나는… 네가 부러웠다.” 

 난데없는 이야기였다. 

 두서없이 시작된 이야기. 그가 말을 이었다. 

 “무엇이 부러웠는지 아느냐? 매화검수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내딛는 그 발걸음이, 그리고 결국 화산의 그늘마저 벗어나 버린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단 말이다.” 

 자유롭다? 

 아니다. 청풍은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운의 말이 무작정 틀렸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운은 어쩌면 청풍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감정이 부러움인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런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는 편이 옳겠지. 하지만 화산파, 사문은 참으로 무서운 곳이었다. 내가 매화검수 자격을 박탈당하게 됨에 따라 생겼던 공석은 채 한 달이 가지 않아 다른 평검수로 채워졌다. 내 직책은 평검수였지만 근본적으로 평검수와 어울릴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다시 매화검수를 넘보려고 해도 기약이 없었지.” 

 “다시 소요관을 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모르는 소리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난 그때 알았다. 어찌하여 외지(外地)의 속가분타들에까지도 매화검수 출신의 검객들이 상주하고 있었는지. 그들이 바로 나와 같은 경우다. 한 번의 돌이킬 수 없는 실책으로 인하여 좌천된 이들이란 말이다.” 

 화산파 인재 배치의 냉혹함이 거기에 있었다.  

 말하자면 본산에서 쫓겨나는 이들. 

 지방 분타에 틀어박힌 채, 한때 본산에서 매화검을 쥐어보았던 영광을 곱씹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지 않으면 그만 아닌지요.” 

 “말이야 그렇다. 하지만 그만큼의 압력이 들어오고 있었지. 평검수들의 무공 수련 참가도 불가한 일이며, 일단 매화검을 박탈당한 후에는 매화검수로서 맡아왔던 어떤 임무도 내려지지 않았다.” 

 “공적을 세우려 해도 세울 길이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급기야는 내가 쓰던 거처까지 박탈당했고, 장서각이나 약사당의 출입까지 제한받게 되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처사에는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지. 설 자리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거처를 박탈당한 것. 

 청풍도 겪어본 일이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감당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운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심마가 들었는지 점차 사문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더구나. 한때는 너까지도 원망했다. 그러한 반발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헛된 허영심의 발로였는지… 나는 결국 사문에서 원하는 대로 따르고 싶지가 않게 되어버렸다. 후후. 난 분타로 나가지 않았어. 그 대신 수련행을 허락받고 심산에 틀어박혀서 검의 수련에만 매달렸다.” 

 하운이 자신의 검자루를 쓰다듬었다.  

 매화검이 아니지만 매화검보다 더 날카로운 그의 벗이 바로 그 검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매화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을 때다. 너에 대한 부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때쯤부터였다. 매화검수로서 이루었던 성취가 사실은 무척이나 초라하고 빈약한 것이었음도 깨달았다. 매화검이 없어지면 매화검수로서의 힘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단 말이다. 매화검을 놓아버려도 나에겐 커다란 것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하운이 청풍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청풍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화산(華山)이다. 매화검을 온전히 버리고 나자 도리어 진정한 화산의 검로(劍路)가 나타났단 말이다.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던 사문이었지만, 내 영혼의 뿌리는 결국 화산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지. 그러면서 생각했다. 너라면 어떨까. 처음부터 매화검이 없었던 너는 어떠할 것인가. 심지어 화산의 검조차 뿌리칠 수 있는 너였다면 그 검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런 것들을 말이다.” 

 “제 검은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랬겠지. 하지만 너는 달랐어. 너에 대한 소문을 들을 때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매화향과는 전혀 다른 바람의 냄새다. 너는 그와 같았다.” 

 격동을 거쳐 평온을 찾은 마음이다. 

 하운은 모든 것을 극복했다. 

 부러웠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지금은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잔잔한 목소리, 자신을 완전하게 찾은 또 다른 모습의 매화검수가 그였다. 

 “그러던 와중에 그분들을 만났다. 단영검객 송현 사숙, 그리고 지운검객 이지정 사숙 말이다. 틀어박혀 있던 심산(深山)까지 몸소 찾아와 주신 분들이었지.” 

 청풍의 두 눈이 이채를 발했다. 

 익숙한 이름, 여기서 들을 줄이야.  

 “내가 눈을 뜬 것은 그분들 덕분이었다. 그분들은 화산의 병폐를 알고 계시면서도 화산을 진정 사랑하는 분들이셨다. 병폐를 알고, 그릇된 점이 보이면 그것을 고치는 것이 또한 진정 사문을 아끼는 마음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지. 화산의 그늘에서 벗어나 강호를 종횡하는 너를 보며 부러움을 느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내가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이었단 말이었다. 화산을 뛰쳐나갈 생각을 해서는 안 되었어.” 

 송현과 이지정. 

 조건없는 호의를 베풀었던 분들이다. 화산의 장래를 진정으로 걱정하시던 그 모습들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네게 강요할 수는 없다. 넌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다고 함은…….” 

 “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너에게선 매화향이 맡아지지 않을 뿐 아니라 화산의 험준함도 느껴지지 않아. 그냥 흘러가는 바람이 될 것인지, 화산에 머무는 구름이 될 것인지는 결국 네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저를 데려가는 것이 임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임무? 하하하. 임무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나는 이제 한 번 실수에 자격을 박탈당하는 신분이 아니다.” 

 변했다. 

 하운의 변화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대목이었다. 

 자신의 뜻을 세웠기에 더욱더 고고하다. 임무와 계율. 성공과 실패. 

 화산 매화향이란 것은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여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매화검수의 지위가 걸려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상관없다. 매화검이 있든 없든 난 화산에 이 한 몸을 바칠 것이니까. 내가 이곳에 와서 너를 만난 이유는 장문인의 명 때문이 아니다. 송현 사숙과 이지정 사숙의 부탁이셨지.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네가 누구인가 단지 그것을 말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그는 누구인가. 

 그 질문이 청풍의 뇌리를 파고들어 심장까지 이르렀다. 

 청풍은 과연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인가. 

 하운이 준 것은 하나의 화두(話頭)다. 반드시 해답을 찾아내야 할 중대한 과제였다. 

 “난 내가 할 말을 다 했다. 네가 화산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언제든 돌아오거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네 귀환을 사심없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주겠다.” 

 하운은 웃으며 떠났다. 

 진실된 마음과 함께 대답할 수 없는 이야기들만을 잔뜩 넘겨준 채로. 

 화산파의 위기, 시들지 않은 희망의 꽃이 그 뒷모습에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