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156)

 인연은 계속되었다.  

 그 어떤 인연보다 강한 인연이다. 

 하운이 떠난 다음 날. 

 청풍이 맞이한 마차가 그 인연을 담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딱딱하게 얼어붙은 겨울 대지 한 가운데다. 준마들이 이끄는 마차는 강철 철갑으로 둘러쳐진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스르릉. 

 완벽하게 맞물린 정교한 이음새 덕분일까. 

 마차의 문이 열리는 소리는 맑기만 했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뛰어 내린다.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풍랑!” 

 속에 담아 둔 말이 아무리 많아도 당장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청풍이 한달음에 내달려 서영령의 앞에 이르렀다. 

 “사천성에 간다고 그랬었잖아요! 여기가 어디에요?” 

 백주의 거리.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청풍의 품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청풍의 가슴을 부여 잡으며 조그만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친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이 백옥처럼 하얗다. 

 “령매.......!” 

 “내가 얼마나 걱정했었는지 알아요? 얼굴은 비추고 갔어야 할 것 아니에요!” 

 목소리는 앙칼졌지만, 얼굴에 떠오른 기쁨만큼은 숨기질 못하고 있었다. 

 애틋하다기보다는 당당한 연정(戀情)이었다. 청풍의 얼굴에 도리어 곤란해 하는 표정이 깃들었다. 

 “흑림이란 무리들과 싸웠어. 현무검을 얻었지.” 

 “그럼 바로 돌아왔어야지요. 대체 왜 다른 곳으로 간 거에요!” 

 “곧바로 백호검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 게 어딨어요.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이면 장강이에요, 장강은!!” 

 장강이라 하면 육극신이 생각나는 그녀였다. 

 그 어떤 누구보다도 절망적이었던 상대. 

 한번 두려움으로 각인 되어버린 대적(對敵)이다. 그녀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났잖아. 별일 없었어?” 

 “별일이 없었냐고요? 풍랑 성격에 대책 없이 비검맹으로 난입 했을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데요!”  

 “그것 말고는 없었냔 말이야.” 

 “세상에, 그보다 큰 일이 어딨어요?” 

 마음 한 구석으로 따뜻함이 밀려 온다. 청풍은 자신도 모르게 팔을 둘러 그녀를 안았다. 청풍이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서영령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했다. 잠시 동안 그렇게 그의 품에 안겨 있던 그녀가 갑자기 청풍의 가슴을 밀치고 그 품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사과한다고 쉽게 풀릴 줄 알아요?” 

 짐짓 눈을 흘겨보는 서영령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청풍도 이제는 당황하지 않았다. 익숙한 얼굴, 그것도 좋기만 했다. 청풍이 성큼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는 걱정하게 하지 않을게. 이번에는 꼭 지키겠어.” 

 “안 믿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청풍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 손에 전해지는 온기가, 거기서 전해지는 청풍의 진심이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다. 마차 안쪽으로부터 한 줄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이 놈, 보자 보자 하니 고생길이 훤하다. 계집은 처음부터 버릇을 잘 들여야 하는 것이거늘.” 

 내려서는 건장한 노인이 있었다. 

 하운이 찾아왔을 때만큼이나 놀라운 만남이다. 예상치 못했던 재회, 다듬지 않은 수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불길에 거슬려 거칠어진 피부가 새삼스러웠다. 

 “당 노사.......!” 

 “그래, 그 노사라는 호칭은 좀 났구나. 하이건 저 녀석은 버릇이 없어서 말이다.” 

 마장, 당철민. 

 그렇다.  

 당 노인이었다. 심귀도 이후로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그다. 그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가 발길을 옮겨 청풍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별래 무양 하셨습니까?” 

 “항상 그렇듯 싸움판만 전전하고 있지. 별반 다를 것 있겠나.”  

 “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엉뚱한 데 붙어서 그렇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백무한, 그 놈에게 가는 것이 아니었어.” 

 청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만통자에게 점괘를 듣고 짐작했던 그대로다. 역시나 당 노인은 백무한의 진영에 있었다. 흠검단주가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수로맹에 계신 겁니까?” 

 “그래.” 

 “령매하고는 대체 어떻게......” 

 “요 녀석 말이냐? 그게 좀 복잡하다. 네 놈이 광혼검마를 죽인 것 때문에 수로맹 측에서도 난리가 났단 말이다. 뭐라고 하더라? 청홍무적? 엊그제엔 질풍 뭐라는 소리도 들리더구먼. 연사진은 안 그래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수로맹에서도 예의 주시하던 곳이었지. 그래서 네 놈이 일을 벌인 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이 녀석이 떡 하니 연사진에 나타났지 뭐냐. 부랴부랴 접촉해서 함께 움직이게 된 거다.” 

 “수로맹 수부들이 령매를 용케 알아 봤군요.” 

 “수로맹? 뭔 소리를 하는 게냐. 내가 직접 와 있으니까 알아 봤지. 수로맹 새끼들이 뭔 재주로 요 녀석을 알아보겠나?” 

 “직접 와 계셨다니요. 무슨 이유로......?” 

 “당연히 직접 와 봐야지! 사신검을 전부 다 얻었다는데 말이다. 그걸 구경 못하고 어찌 넘어 가겠나, 이 멍청한 놈아!” 

 그렇다. 당철민이 와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다. 그렇게도 이어질 수 있다. 우연 같은 필연이었다. 

 “보여드리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요.” 

 청풍이 백호검부터 뽑으려던 순간이다. 당 노인이 손사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런 곳에서 보여 줄 셈이냐! 난 그것들을 그런 식으로 보고 싶지 않다, 이놈아!”  

 “아니, 그러면 어떻게......” 

 “일단 마차에 타라. 갈 곳이 있으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왜 또?” 

 “나를 찾으라 비검맹에 말했으니, 이곳에 있어야지요.” 

 “그럼 백년이고 천년이고 연사진에 주저앉아 있던지 멋대로 해 봐라. 비검맹은 어차피 오지도 않을 텐데 등신 같은 말을 잘도 지껄이는구나.” 

 “예? 오지 않는다니, 그것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말 그대로다. 비검맹은 안 와. 비검맹은 네 놈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까.”  

 “......?” 

 청풍은 당 노인의 말을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청풍은 광혼검마를 죽였다. 게다가 그 잔당까지 해치웠다. 

 그런데도 가만 둔다? 

 그 동안 아무런 조짐이 없었던 것을 보면 그대로 덮어 놓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오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는 터무니없이 일렀다. 

 “풍랑, 당 노대 말이 맞을 거예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풍이다. 

 서영령이 그의 팔을 잡아 끌며 말했다. 

 “비검맹은 오지 못해요.” 

 “어찌하여......?” 

 “수로맹 때문에요.” 

 “수로맹?” 

 “그래요. 수로맹. 이틀 전, 하루 밤 사이에 비검맹에서 비외사마존(比外四魔尊) 두 명이 죽었어요.”  

 “마존들이 죽어? 대체 누구에게?” 

 “수로맹의 자객에게요.” 

 청풍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비외사마존들은 강하다. 손속을 나눠 본 청풍은 그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 중 두 명이 죽었다는 것은 광혼검마가 죽은 것 이상의 사건이다. 비검맹으로서는 커다란 타격일 것임이 틀림없었다. 

 “일종의 경고였죠.” 

 “경고라니.......” 

 “수로맹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린 경고요. 수로맹의 이름이 다시 전면에 떠오른 이상, 비검맹은 풍랑을 건드릴 수 없어요. 자칫하면 수로맹과 화산파 두 곳을 상대해야 할 판이니까요. 지금으로서는 풍랑이 어지간히 큰일을 저지르지 않는 한, 비검맹이 함부로 움직이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래요. 비검맹은 안 와요. 그러니까 같이 가도 된다는 말이죠.”  

 “그래, 이 놈아. 어차피 이곳에서 멀지도 않은 곳이다. 정 싸움에 환장했다면 언제든 돌아와서 비검맹을 맞이할 수 있는 거리야.” 

 청풍은 허탈감을 느꼈다. 

 비검맹과 단신으로라도 맞설 각오를 했는데, 비검맹이 움직이지 않는다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차에 오른 청풍이다. 

 청풍은 문득,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느끼고 당 노인에게 물었다. 

 “헌데......그 수로맹의 자객이라는 고수가 누구입니까?” 

 “궁금해 할 줄 알았다. 사실 수로맹의 자객이라 했지만 엄밀히 말해 장강 수로의 인물들은 아니지. 자객이라고 해도 살수는 아니야. 잠시 도와주러 온 용병들이라고나 할까.” 

 “용병들.......이라면 여럿이란 말이군요.” 

 “그래. 하나가 아니지. 일단은 그 정도까지만 알아 둬. 비검맹에서도 그놈들이 누구냐는 것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을 거니까.” 

 당 노인은 끝까지 그들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비밀이라는 이야기다. 

 비외사마존을 죽일 정도의 고수라니, 대체 어떤 자들일까. 청풍이 슬쩍 서영령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도 그 이상은 알지 못 한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끊겨진 대화다. 

 그 와중에도 마차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식경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다. 제법 커다랗게 솟은 산기슭, 소로(小路)로 접어드는 가 싶더니 이내 속도를 줄이며 멈춘다. 당노인이 먼저 문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내려라, 이것들아. 이 쪽이다.”  

 청풍과 서영령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신법을 펼치는 당 노인이다. 

 서둘러 따라 붙고 나니, 마차도 곧바로 속도를 내 순식간에 관도 저편을 향해 사라져 버렸다. 

 사람 눈에 띄지 않으려는 행사였다. 어찌 되었든 이 곳은 비검맹의 세력권이니 백번 조심해도 과할 것이 없었다. 

 청풍과 서영령은 당 노인의 인도를 받으며 산길을 올랐다. 

 상당히 험한 산세였다. 골짜기 두개를 넘은 그들이다. 그들의 눈앞에 생소한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광산.......?” 

 “그렇다. 지금은 폐광이나 다름없지만.” 

 높이 솟은 목책 주변으로 어슬렁거리는 관병들이 보였다. 

 순찰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폐광이라 말했던 것처럼 관병들의 기강은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져 있는 상태였다. 옮기는 발에는 기운이 없고, 병장기도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별반 필요 없는 곳을 지키고 있다는 지겨움이 보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오고 있었다. 

 “저곳인가요? 그 때 말했던 그 분이 계신 곳이?” 

 서영령이 목책 옆을 따라 생겨있는 산촌(山村)을 가리켰다. 

 한 때 광산의 채굴에 힘입어 번성했던 마을은 이제 폐허나 다름없는 몰골이 되어 있었다. 몇 군데, 남아 있는 공방(工房)의 굴뚝들만이 가느다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맞다. 괴산 대장간, 문철공이 저기 있다. 솜씨 있는 놈이지.”  

 당 노인의 칭찬이다. 그렇다면 그 실력은 솜씨 있는 정도가 아닐 터다. 당대에 손꼽힐 장인임이 틀림없었다. 

 산로를 따라 마을 쪽으로 향했다. 

 낯선 사람들이 오는 데에도 관병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기야 수십 명 장정들도 아니고, 남녀 한 쌍에 노인 한명이 다 무너져가는 폐광에 무슨 볼일이 있을 진가. 몰락해 버린 산촌에 친척이라도 만나러 오는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마을에 들어오고 보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더욱 더 확연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기운 없는 촌민들, 파리 날리는 객점을 지나, 쇠락한 마을 구석진 곳 괴산(魁山)이란 간판이 걸린 대장간에 이르렀다. 

 “문가 녀석아, 내가 왔다!” 

 대장간 문을 부서뜨릴 듯 밀어내며 목소리를 높인다.  

 깡, 깡....... 

 조그맣게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  

 당 노인은 기다리지도 않은 채, 성큼 성큼 안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에 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욕지거리부터 나오지 않는 것을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조심스레 따라 들어가는 청풍과 서영령이다. 대장간답지 않게 정돈 된 집기들과 깨끗한 가구들이 확 눈에 띄었다. 마당의 화덕, 망치질 소리 사이로 차분한 음성이 귀에 감겼다. 

 “자네 왔는가?” 

 조용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였다. 

 당 노인만 보아 와서 그런지, 그처럼 차분한 목소리가 도리어 놀라울 지경이다. 정을 들고 무언가를 다듬는데, 티끌 같은 불꽃이 연이어 튀어 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게. 다 끝나가니까.” 

 말을 하는 와중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 움직이던 손을 멈추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그로부터 문철공이 몸을 일으킨 것은 한참 후였다. 그가 잘 개켜진 하얀 면포를 들어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았다. 

 “또 무슨 일인가. 해천창에 관한 일이라면 이젠 사양이야.” 

 화덕에서 나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온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들어와 그의 몸 주위에 모락모락 솟는 김을 만들었다. 

 “해천창보다 더한 일이지. 기다리게 만든 것을 후회할 걸.” 

 당 노인이 청풍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가 허리춤에 매달린 호리병을 한번 들이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가?” 

 “사신검에 대해 들어봤지?” 

 “물론 들어봤지.” 

 “보고 싶지 않나?” 

 “천하 장인으로서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것들이 지금 이곳에 있다면?” 

 당 노인의 마지막 한마디는 결정타와 같았다. 차분하던 표정이 삽시간에 무너진다. 문철공의 시선이 청풍에 이르렀다. 그의 두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설마!!” 

 땀을 닦던 면포를 툭 하고 떨어뜨린다.  

 허겁지겁. 

 허겁지겁이라는 표현이 옳다. 그의 눈이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청풍의 검들을 훑어냈다. 당 노인이 그런 문철공을 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크크크. 어떤가? 놀랄 일이지?” 

 “놀랄 일이다마다!!” 

 “크크크.”  

 “세상에……! 소협,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검들을 직접 보여줄 수는 없겠는가?”  

 “결례라니 당치 않습니다.” 

 “아, 내 정신 좀 보게. 내 이름은 문철공이라네. 소협의 이름은 어떻게 되나?”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사람, 강호와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인다. 

 망치와 풀무질에 모든 것을 바친 인생. 마음에 와 닿는 인물됨이었다. 청풍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청풍, 청풍입니다.” 

 “청풍……?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인데…….” 

 “들어보긴 뭘 들어봐. 산골에 틀어박혀서.” 

 “아니라네. 저번에 황천어옹 그 친구가 와서 이야기한 이름인 것 같단 말일세. 무슨 수로맹주를 구했다고…….” 

 “무식한 티 좀 내지 마라, 이 사람아! 이놈이 바로 그 청홍무적검란 말이다!” 

 “아! 청홍무적검……! 어쩐지 보통 검기(劍氣)가 아니라더니! 젊은 나이에 만검(萬劍)을 연마한 흔적이 어디서 나오나 했네. 그래, 청홍무적검! 분명히 들어본 이름이야.” 

 무공으로 본 것이 아니라 검을 빚는 장인으로서의 감각이었다. 

 실력있는 검객(劍客)은 곧 훌륭한 장인의 벗이다. 그의 얼굴에 청풍에 대한 호감이 절로 떠오르고 있었다. 

 “객쩍은 인사치레는 그만 하고, 어서 검이나 꺼내놔 봐. 나도 못 봤어.” 

 이야기를 중단시킨 것은 다름 아닌 당 노인이었다. 그가 손사래를 치며 청풍을 재촉했다. 

 “그러지요. 다만… 검에는…….” 

 “손대지 말라고? 아직도 그렇게 까다롭게 구나?” 

 당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곤란한 청풍이다. 그러나 그 곤혹은 오래가지 못했다. 문철공이 나서서 그의 오해를 풀어준 덕분이었다. 뜻밖의 일이었다. 

 “이 친구야, 그것은 까다롭게 구는 게 아니라네. 옛 문헌도 읽어보지 않았나? 사신검(四神劍)은 본디 신물(神物)이나, 또한 택함받지 못한 자에게는 마물(魔物)이 될 수 있다고 하지. 범인이 함부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말일세. 소협, 그렇지 않은가?” 

 “비슷합니다.” 

 “그것 보게. 손을 대진 않을 테니 걱정 말고 뽑아보게나.” 

 당 노인은 말이 없다. 

 심통이 난 표정으로 호리병을 한 번 더 들이킬 뿐이었다. 청풍이 한 번 웃음을 지으며 백호검과 청룡검의 검집에 손을 올렸다. 

 스르르릉! 

 백호검과 청룡검이 검집에서 끌려 올라왔다. 공중으로 떠오른 두 개의 검, 호리병만 입에 물고 있던 당 노인이 입 안의 것을 푸우 뿜어내고 말았다. 

 “감응사?!” 

 휘둥그레진 두 눈이다.  

 게다가 아름답기까지 한 두 신검의 자태, 말을 잇지 못하는 당 노인을 그대로 둔 채 문철공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내둘렀다. 

 “내 여기서 무형기의 조화를 보게 될 줄이야! 그러나 이 검들의 위용……! 그 정도의 검인(劍人)이 아니고서는 어울리지가 않겠지.”  

 공중에 띄워진 두 자루의 검을 보며 찬탄을 금치 못하는 문철공이었다. 

 청풍이 보여준 공명결의 신기에 놀랐던 당 노인도 이내 백호검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의 눈빛을 던졌다. 그가 곁눈질하듯 청풍에게 시선을 주면서 입을 열었다. 

 “검마들과 싸워서 어찌 빠져나왔나 했더니, 감응사까지 얻었을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대단한 검이군. 인세의 솜씨가 아니야. 다른 검들은?”  

 남은 것은 주작검과 현무검이다. 

 등에서 두 자루의 검을 꺼내어 띄워 올렸다.  

 “대단해. 천 년은 된 물건이라 들었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여기 이 세공 솜씨 좀 보게.” 

 문철공과 당 노인의 취향은 두 검에 이르러 극명하게 갈렸다. 

 문철공은 현무검에. 

 당 노인은 주작검에. 

 문철공이 현무검을 구석구석 살피면서 놀라고 있었던 반면, 당 노인은 오직 주작검의 검신에서 눈을 떼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괴물이다. 악마(惡魔)가 따로 없어.” 

 당 노인의 두 눈에는 황홀함마저 떠오르고 있었다. 육신을 베는 병기, 파멸적인 살기에 반한 모양이었다. 문철공이 그런 당 노인을 바라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 혀를 찼다. 

 “자네는 언제까지 그런 물건만 좋아할 텐가. 자네가 파천(破天)의 대검을 봤어야 했는데.”  

 “파천? 철산 혈맥이 만들었다는 그 파천?” 

 “그래.” 

 “그걸 봤나?” 

 “봤다 뿐인가? 내가 손을 좀 봐주기까지 했지.” 

 “무어라?” 

 “파천을 다루는 철산 혈맥은 그 자신이 또 한 명의 숨겨진 명장(名匠)이라네. 그 친구에게 부족한 것을 가르쳐 주었어. 파천대검은 그때도 미완성이었고, 지금도 그렇겠지만, 언젠가 그는 기어코 완성시키고 말겠지.” 

 “행운을 잡았군.” 

 “그렇다고 봐야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나, 그 정도 신기(神器)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으니까 말일세.” 

 당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의 진지한 표정이다.  

 공중에 뜬 네 개의 검을 지겹지도 않은 듯 바라보는 두 사람. 당 노인이 문철공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 그것은 그렇고 내가 왜 이것을 보여주었는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이네.” 

 문철공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당 노인이 텁수룩한 수염 아래로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 말마따나 남의 작품에 손을 대는 것은 할 만한 일이 못 되지. 그래도 해볼 만한 일이야.” 

 “지당한 말씀. 일단 시작까지 했으면 끝을 봐야 되는 것 아니겠나?” 

 “시작을 했다니. 크크크, 알아보았군.” 

 “알아볼 수밖에.” 

 청풍으로서는 영문 모를 대화였다. 

 두 장인의 이야기. 

 문철공이 청풍의 왼쪽 허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세공에 들어간 버릇 하며, 딱 자네가 만든 물건이지 않나.” 

 문철공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청룡검이 꽂혀 있던 용갑이었다. 

 검집. 

 그렇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신검에 어울리는 검집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들에 어울리는 검집을 만들 만한 화로(火爐)는 이 근역에 여기밖에 없다. 이제는 네 녀석도 알겠지? 왜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당 노인이 청풍을 돌아보았다. 

 여기까지 온 이유. 그제야 청풍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용갑과 같은 검집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백호검과 주작검, 현무검에 그 검집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곳까지 데려왔던 것이다.  

 “주작검은 내가 맡겠다. 이 척 오 촌 삼 푼, 만곡 정도가 장축에서 일 촌, 충분해. 동방 만검(彎劍)의 형태다. 문가 녀석아, 네놈이야 현무가 탐나겠지?” 

 “왜 탐나지 않겠나. 일 척 칠 촌 검신, 십 촌 검폭이면 기형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마침 딱 어울리는 쇠가 하나 있다네.” 

 “백호는 어떻게 할까?” 

 “백호도 자네가 만들어야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지 않았나? 어차피 현무 쪽은 형태가 특이한 만큼 손이 많이 갈 거야. 시간이 걸릴 걸세.” 

 “잘도 아는군. 그럼 그렇게 하자고.”  

 곧바로 팔을 걷어붙이는 당 노인이다. 

 청풍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였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 

 이렇게 또 하나의 은(恩)을 입고, 보물로 인연을 받는다. 

 검객과 장인들. 장인들과 보검들. 

 뗄 수 없는 강호의 인연들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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