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156)

 *               *               *

 군산의 싸움이 격해지고 있는 동안.

 악양의 반대편에서는 그들이 말한 모용세가와 대개방의 수좌들이 극적인 만남을 나누고 있었다.

 절강성의 패자, 천수사 모용도.

 개방 인의대협, 천품신개 풍대해.

 두 거인의 회동이었다.

 "천품신개께서는 이 사태를 어찌 된 일이라고 보시오?"

 "어찌 된 일이라니요?"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 보시냐는 말이오."

 "글쎄... 이 풍모는 모용가주께서 질문하시는 의도를 잘 모르겠소만."

 천품신개의 대답에 천수사 모용도의 청수한 얼굴이 가볍게 굳어졌다.

 절강성, 일성의 패주라 불리는 이.

 모용도가 나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하니 이런 대규모의 싸움을 개방에서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말이오?"

 "싸움의 조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았었소. 이렇게까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감히 누가 짐작할 수 있었겠소?"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는 천품신개다. 인자함으로 새겨진 주름들이 소탈한 품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모용도는 알고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보이는 것과 똑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맑은 눈, 백발의 노인이라고 하여 모두가 선인(仙人)은 아니라는 말이다.

 "개방은 예로부터 정보력에 있어 천하제일을 자랑하는 방파였지 않소? 이런 일이 벌어지기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소."

 "이해가 가지 않는다니, 그것은 또 무슨 말씀이시오?"

 "말 그대로요. 수천 관군이 움직이고, 수백 무인들이 군웅들을 습격하고 있소. 이 정도라면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을 일이 아니었소?"

 "허허허. 말씀이 과하시오, 모용가주. 말씀인즉슨, 본 개방이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도 감추었다는 것 아니오?"

 "과하다? 그렇다 생각하시오?"

 "모용가주께서 잘못 보신 게요.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리리다. 개방이 세가로부터 핍박을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보오."

 모용도의 눈이 번쩍 빛났다.

 한 시대를 접고 모든 야심을 떨쳐 버렸던 모용도였다. 패업을 꿈꾸던 그의 피가 가볍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자, 듣던 것과 다르다. 이자는 세간의 평과 같은 이가 아니야. 인의대협? 이자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인의가 아니라 야망일 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모용도는 알 수 있다.

 동류이기, 아니 동류였기 때문이다.

 같은 피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경험으로 얻었던 안목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은 야망을 품었던 심장이었다. 야심을 담았던 그의 심장이 상대의 음험함을 분명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모용세가가 핍박을 했다라... 내 말이 그렇게 들리셨다면 실망이오. 용두방주께서였다면 분명히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을 터. 내가 원하는 것은 납득할 만한 설명일 뿐이오."

 그의 말이 한 자루 검이 되어 천품신개 앞으로 던져졌다.

 모용도는 인생의 깨달음과 함께 제패의 꿈을 버린 자다. 그러나 타오르는 야심이 사그라들었다 해도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기질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절강 모용세가의 힘은 여전히 강했고, 정점에 선 자의 날카로움은 더욱더 강했다. 그의 말이 가지는 날카로움도 그와 같았을 따름이었다.

 "모용가주가 그리 말씀하시니, 이 풍모로서는 함부로 받기가 어렵소이다. 용두방주를 말씀하셨소? 용두방중의 심중이야 본래부터 넓고도 방대한 것이었소. 하지만 지금과 같은 어지러운 난세엔 넉넉한 인심만으로는 살아남기가 힘들 수밖에 없지 않겠소? 세상 모든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란 개방으로도 힘들다는 말이외다. 게다가 이번 일은 설령 미리 알았다고 해도 막을 방도가 없었던 그런 일이오. 모용가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오."

 모용도의 화검(話劍).

 날카롭게 던진 말을 가볍게 비껴간다. 풀어놓는 교묘한 화술에 모용도의 눈이 기광을 번뜩였다.

 '암중에 용두방주의 방식을 깎아 내리고 있다. 노골적인 반역, 개방을 어지럽히는 이가 있다고 하더니, 이자가 그 장본인이었군. 예상하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개방 전체는 어떨지 몰라도, 이자만큼은 틀림없이 이 사태를 예측하고 있었다.'

 "하면 천품신개께선 적들의 정체를 어찌 짐작하고 계시오? 조짐이 보였다면 그 흑막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지 않았겠소?"

 "그것이 확실치 않았기에 이번 일의 가능성을 낮게 보았던 것 아니겠소. 일이 터진 지금에 와서 겨우 윤곽을 잡았을 따름이오. 적들의 주력은 관군(官軍)으로, 호광성 위지휘사 세 명이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오. 이것이 무림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 선포인지, 아니면 그들의 독단적인 행동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소."

 "무림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라니, 그것이 무슨 말이오?"

 "당금 황제의 성정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소. 이런 식으로 무림에 칼을 겨눈 것이라 해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오."

 모용도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대화를 나누어볼수록 확실해지고 있었다.

 태연한 신색으로 말하는 천품신개, 이자는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자다.

 서서히 내력을 끌어올리며 개방 제자들의 실력을 살폈다.

 개방 정예다. 뒤에 시립한 모용십수들과 비교하면 어떨까.

 힘을 가늠해 본 모용도.

 승리와 좌절, 세상 모든 것을 겪어온 모용도. 백전의 경험들이 그에게 심상치 않은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예상은 어떻게 되오? 군산으로 공격해 들어가야 한다고 보시오?"

 "물론이오. 군산 내부의 상황이 무척이나 심각한 것으로 생각되오. 한시라도 빨리 무인들을 모아서 그 안의 군웅들을 구해내야 할 것이오."

 "군상의 정황이 그리도 험난하다면 적은 수의 무인들을 투입해 보았자 별 도리가 없지 않겠소?"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서두르는 것이 협의지도 아니겠소이까. 모용가주? 강호 동도들이 험지에 고립되었소. 응당 들어가서 도와주는 것이 같은 하늘 아래 강호인으로서의 도리일 것이오."

 모용도는 볼 수 있었다.

 천품신개의 심각한 표정 속에 감추어진 득의의 미소를.

 강호인들에 대한 애끓은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마음속은 겉모습과 전혀 다르다. 이 대화를 결정짓는 이야기, 천품신개의 말이 빠르게 이어졌다.

 "이미 이 악양에서는 군산으로 들어가는 공격대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오. 그 지휘를 모용가주께서 맡아주셨으면 좋겠소이다. 나와 같은 늙은이로서는 그럴 만한 그릇이 되지 않소. 대신 개방은 뒤를 책임지도록 하겠소. 싸움의 향방과 적들의 정보들을 확인되는 즉시 지원하도록 하겠소이다."

 '당했군. 깨끗하게.'

 모용도는 상대의 승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대화가 천품신개의 뜻대로 흘러갔다.

 모용도의 위치에서 천품신개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품신개 풍대해의 기량은 뛰어나다. 강렬한 야망뿐 아니라, 그것을 감출 수 있는 음험함을 두루 갖추었다.

 모용도의 역량이 일성의 패주를 논한다지만 그 정도 인물들이 부딪친다면, 그 승부는 결국 누가 더 준비를 했느냐에 따라 갈리기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질 수밖에 없다.

 천품신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예상했다.

 군산의 격전뿐 아니라 모용도와의 만남까지도 철저한 계획 속에서 행한 일이다.

 위험천만한 일을 수락하는 모용도다.

 그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한 기운을 품었다.

 "알았소, 군산의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최대한 서두르도록 하겠소. 개방의 무운을 기원할 따름이오."

 모용도가 몸을 돌렸다.

 짧은 대화였지만, 마치 비무를 치르기라도 한 것처럼 적지 않은 심력을 소모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악양 북문 개방 문도들의 소굴을 빠져 나왔다.

 개방 문도들이 보이지 않게 된 직후다. 모용도가 입술을 달싹이며 모용십수 네 명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그들 외에는 누구도 듣지 못할 전음입밀의 비기였다.

 "첫째! 최대한 빨리 이 악양에 있는 무인들을 파악하도록 하여라. 둘째! 이곳에 있는 구파와 접선하고. 셋째! 군산으로 향하려는 무인들을 막는다. 지금 급조한 구출대로는 소용이 없다. 의미 없는 죽음을 당할 뿐이야. 그리고......"

 모용도의 걸음이 빨라졌다.

 네 번째, 마지막 명령을 내리기까지 한 번 더 생각을 정리한다.

 열 걸음. 십 보를 더 걸어간 후 결정을 내렸다. 그가 전음을 펼쳤다.

 "넷째! 잘 들어라. 지금부터 개방은 적(敵)으로 간주한다. 그들의 정보는 단 하나도 믿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손을 쓰는 것도 망설이지 마라."

 모용도의 말.

 제아무리 놀라운 명령이라고 해도 모용도가 발했다면 절대적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첨예한 경각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몸에서도 모용도와 똑같은 전의(戰意)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청! 그 아이를 부른다면 천군만마의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소주의 북풍장은 멀어. 거기까지 갔다 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모험이다.'

 모용도는 일순간 그의 딸을 떠올렸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

 모용청.

 강호에서는 그녀를 북풍마후라 부른다.

 북풍마후의 아버지, 그것이 바로 모용도였다.

 '군력(軍力)이 개입한 전투. 북풍단만한 전력은 없겠지. 그러나 그럴 수야 없다.'

 훌륭했던 딸의 못난 아버지로서.

 그는 모용청을 부를 수가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도움을 청하기에는 너무도 이른 시점이다. 충분한 세월이 흐르지 않았던 까닭이다.

 '너와 북풍단주가 있어 들끓던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용가의 힘이 쇠락한 것은 아니다. 모용세가의 가주로서, 네 녀석 같은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면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하겠지.'

 모용도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돌아보는 곳, 악양 북문이 시야 한쪽에 들어왔다.

 야심은 접었지만, 그 자리에는 딸에게 배운 협의의 도가 채워져 있다.

 진정한 적을 단숨에 알아보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

 그것이야말로 육대세가 가주의 역량이다.

 무공 이상의 힘, 천하의 일부를 차지한 능력의 증명이었다.

 *          *           *

 "동정호... 목적지는 무림맹이었군요."

 "그래. 말했잖아. 무림맹에 가자고."

 동정호가 바라 보이는 곳.

 충천하는 화광과 미친 듯 얽혀 드는 선박들의 수상전이 그들 앞에 있었다.

 내려다보는 청풍의 눈에 전장의 격렬함이 비쳐들었다. 청풍이 연선하에게 물었다.

 "이것이 어찌 된 싸움이지요?"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연선하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청풍은 그녀의 어투에서 그녀가 이 싸움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먼저 신법을 펼치며 호변의 관도를 따라 몸을 발렸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악양을 거쳐야겠어. 저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배를 띄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배를 띄우다니?"

 "군산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서둘러, 시간이 없으니까."

 '군상으로? 저길 돌파한단 말인가?'

 연선하를 따라 달리면서 동정호의 호변을 돌아보았다.

 격한 싸움이다.

 수상전이라면 장강에서 얼마든지 격어 본 바 있지만, 지금의 동정호는 그에 못지 않은 살벌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악양의 외곽에 이른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전력으로 신법을 펼치는 연선하다.

 여유롭게 따라가던 청풍이 한쪽을 가리키며 연선하를 멈춰 세웠다.

 "사저, 저쪽을 보십시오!"

 청풍의 외침에 연선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저것은......!"

 관도 한쪽의 공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흩어진 병장기들. 핏자국이 널려 있다. 움직이는 이는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싸움이 있었군요.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것 봐. 제마곤(制魔棍)이다. 아미파(峨嵋派)야. 아미파가 이곳에 있었어."

 제마곤은 아미의 독문병기다.

 부서진 병장기들 한가운데, 몇 자루의 제마곤이 한데 모여서 땅바닥에 꽂혀 있었다. 연선하가 말을 이었다.

 "시신과 부상자들은 이미 전부 다 수습해 간 모양이다. 주인 잃은 병장기를 싸움터에 두는 것은 아미의 전통이지. 이곳에는 적들의 시신밖에 없어."

 아미파의 승려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미파의 존재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땅바닥의 깊은 족적은 아미복호권의 투로를 나타내고 있었으며, 적도들의 가슴에 새겨진 수인(手印)은 아미파 항룡모니인(降龍牟尼印)의 흔적이었다.

 "한데 이들은 무엇입니까?"

 아미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은 알겠다.

 한데 적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모르겠다. 삼십 구가 넘는 시신들, 각양각색의 무복을 입었다. 얼굴에는 하나같이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백색 가면들을 쓰고 있었다.

 "흰 가면... 잘 모르겠어. 이렇게 특징 있는 자들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아미파를 단숨에 알아본 그녀로서도 전혀 모르겠다는 기색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얼굴에 깃든 그늘도 더욱 깊어져 보였다.

 "예상했던 적들이 아닌 모양이군요."

 "그래. 예상밖이야. 아미파가 습격을 당했다는 것은 다른 문파도 같은 일을 당했을 가능성이 커. 수로뿐 아니라 육로까지. 그만큼 더 위험해졌다는 이야기지."

 연선하가 두 눈에 불안한 빛을 떠올렸다.

 말 그대로다.

 아미파만 싸웠으리란 법은 없다. 무림맹을 위해 오고 있을 문파들, 화산파 역시도 예외는 아니리라.

 그녀가 앞장서며 악양쪽을 가리켰다.

 "일단 악양에 들어가 서천각과 접촉하는 것이 급선무겠어. 군산에도 어서 가야 할 텐데. 걱정이 태산이구나."

 땅을 박차고 달리는 두사람이다.

 천년의 고도 악양.

 크나 큰 싸움의 한가운데, 중원 무림맹의 결맹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아미파가 도착했습니다."

 "누가 왔지?"

 "만불신니(萬佛神尼)께서 오셨답니다."

 "거물이 왔군. 복호승들은?"

 "여덟 명입니다. 오는 중에 열 명이나 잃었다고 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 입니다."

 "복호승들을 잃어?"

 "예. 세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악양 근역에서도 한 차례의 싸움을 거쳤다고 하며, 이에 현재 개방 문도들이 싸움터의 조사를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 당했군. 개방이 간다니.... 얻을 것이 없겠어. 다른 단서는 없나?"

 적들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물음이다. 모용도의 미간이 깊게 좁아져 있었다.

 "아미에서 적들의 물품이라 하여 하얀색 가면을 들고 왔습니다. 열 개 정도를 회수해 왔는데, 그 정체를 알기 위하여 각파 명숙들에게 하나씩 돌리고 있답니다. 이것이 그것입니다."

 모용십수가 모용도에게 한 개의 가면을 내밀었다.

 아직도 핏자국이 선연한 가면이었다.

 받아 들어 살피는 모용도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가면... 들어본 적이 있다. 내 기억이 맞다고 한다면 이것은 아마도 사패 시절의 물건일 게야. 골치 아파지겠어."

 "사패라면.. 팔황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것이다. 만불신니께 연락해. 경동하지 말라고."

 "벌써부터 군산의 싸움에 뛰어든다 난리십니다. 적들의 수괴를 찾아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적들의 수괴? 그런 것은 없어. 굳이 찾는다고 한다면 이 악양 땅이다. 지금은 고수가 한 명이라도 더 악양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시점이야."

 "하지만 만불신니께서 기어코 가고자 한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게다가 개방측에서 바람을 넣고 있는 모양인지라....."

 "그럴 줄 알았다. 교활한 수작이야. 어쩔 수 없겠지. 어떻게든 고수들을 분산시켜야 할 테니."

 모용도가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으로 생각을 정리한 그다. 그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군산은 사지(死地)다. 풍대해가 이 일을 획책한 무리들과 내통하고 있다면, 되도록 많은 고수들은 그 안으로 밀어 넣고 싶겠지. 일단 거기까지 가는 것만으로도 어려우니까."

 "하지만 버릴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맞는 말이다. 이미 여러 문파들이 군산에 당도해 있어. 그 안에서도 곤란에 처해 있으리란 것은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지. 그들을 구해내야 해."

 "결국은 군함들, 군부가 문제로군요."

 "그렇다. 군사들 개개인의 무력이야 보잘것이 없지만, 이렇게 군력으로 공격해 온다면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우리로서도 본격적으로 손을 쓰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지.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역모의 무리로 몰릴 수 있어. 아마도 그것이 풍대해가 노리는 바겠지. 애당초 군사들이 무림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첫째야."

 "관가와의 접촉은 일단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식으로는 안 돼. 놈들은 대명제국의 수군을 움직인 놈들이다. 중간에 막힐 것은 자명한 일이지. 보다 직접적인 통로가 필요해. 단번에 군부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곳."

 "황실!!"

 "그래. 황실밖에 없다. 개방이 제 역할을 해 주었다면 이런 것으로 고민하지 않았겠지. 군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반나절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것이 안 되니 우리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어."

 "어떻게 할까요. 명령만 내리십시오."

 "일단 악양 내에서부터 시작하자. 군부 관계자를 모조리 찾아봐. 황실로도 한 명 가도록 해. 황실과의 접촉이 유의치 않으면 동인회의 귀제갈 유준과 접촉해라. 지금쯤이면 아마도 남경에 와 있을 것이야. 금의위의 위도독과 직접 선이 닿아 있으니까."

 "시일이 좀 걸릴 텐 데요."

 "물론이지. 시일이 걸려도 상관없어.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이든 폐하의 뜻은 아닐 것이니까. 현 황실의 대 무림 정책은 이렇게 과격하지 않아. 그것만 확인하면 돼. 싸움이 끝난 후일지라도 그것만 확보해 두면 역모의 문책은 당하지 않을 것이야."

 "일단 싸우고 보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한 일이다. 지금 상황에서 군과의 충돌은 필연이지. 군산에도 군사들이 있을 것은 틀림없고. 그렇다면 이미 많은 무인들이 군인들과 교전을 치렀을 거야. 죽은 군사들이 한둘이 아니겠지. 무림인들이 대명제국의 관군들을 죽였다면, 그것이 역모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무림맹 전체가 반역의 무리로 낙인 찍힐 가능성도 적지 않아. 그런 식으로 몰아가서는 절대로 안 돼."

 "만일 잘못되면......"

 "구족 멸문. 우리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주모자를 찾아야 돼. 동정호에 수군을 보낼 수 있는 자, 이 정도 병력 규모를 독단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 범인은 몇 명으로 좁혀질 수 있겠지. 해야 할 일이 많아."

 시야가 다르다.

 개방을 적으로 상정했기 때문에 확실한 정보가 한정된 마당이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전황을 넓게 보면서 큰 그림을 그릴뿐 아니다, 세세한 부분에서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모용도였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적들만 상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일단 싸워야 할 상대가 대명제국의 군사들이라면, 훗날 생길 수 있는 사태까지 미연에 방지해 놓아야만 했다.

 모용도는 모용십수를 모두 다 내보냈다.

 황실과의 접촉.

 군부와의 연결.

 주모자의 탐색.

 강호인들의 경동을 막는 것까지.

 어느 하나도 가벼운 일이 아니다. 모용십수 정도의 고수들이 나서야만 하는 일이었다.

 항상 곁에 두었던 이들은 이제 없었다.

 함께 악양에 온 몇몇 가신들이 있지만 전력으로 쓰기엔 미흡한 이들이다.

 호위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모용도 자신도 스스로를 홀로 지켜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의 싸움, 실로 오랜만이다. 나도 본격적으로 움직여야겠어."

 모용십수에게 임무를 맡겼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임무들,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런 마당에 그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천수사 모용도가 나서야 하는 일.

 육대세가의 하나를 맡고 있는 모용가주가 직접 나서야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남은 것은 하나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어려운 싸움이다.

 문파 하나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을까.

 풍대해의 뒤를 캐는 일.

 그의 진의를 파악하는 일이다.

 문파 하나, 천하제일방이라 불리는 개방과 맞서는 것이 그가 선택한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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