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156)

 *          *          *

 철기맹의 발호가 있었던 시절부터.

 서천각의 일을 맡게 됨에 따라 중원 무림맹지 악양에 상주했던 연선하로서는 이곳의 지리를 완전히 꿰뚫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용린루까지 단숨에 찾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새롭게 생긴 지 일 년 남짓한 곳.

 직접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조악하게 용(龍)을 새긴 현판 때문에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곳이었다.

 촤르륵!

 주렴을 걷고 들어간 안쪽으로는 검박한 탁자와 식기들이 쭉 놓여져 있었다. 바깥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거운 침묵만이 깔려 있는 상태다.

 몇 명 있는 사람들도 이 층 객점에 머무르다 내려온 손님들인 것 같다. 내부의 전경을 쭉 둘러본 연선하가 빠른 걸음으로 하나의 탁자 앞에 이르렀다.

 "마 제독님 이시지요?"

 불안한 공기가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지는 중년 남자다. 호리호리한 체구, 검게 그을린 얼굴에 형형한 눈빛을 지녔다.

 범상치 않은 기도.

 무공은 고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내뿜는 기세만큼은 어지간히 강호 무인들 이상이다. 군부의 장수로서 수많은 군사들을 호령해 온 경험이 그 모습 속에 우러나고 있었다. 

 "어찌 나를 아는가? 처음 보는 여협인데?"

 "화산파의 연선하라 합니다. 이쪽은 제 사제인 청풍이고요."

 연선하에 이어 포권을 취하는 청풍이다.

 그녀에게 머물렀던 마영정의 시선이 청풍에게 이르렀다. 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화산파? 헌데 어인 일이지?"

 "제독께 여쭈어 보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왔지요."

 "내게? 무엇을?"

 "돌려 말씀 드리지 않겠어요. 지금 동정호에서 벌어지는 일은 군부가 주도한 일이 확실한가요?"

 "싸움 말이로군. 글쎄, 대답해 줄 말이 없어. 사실 왜 그러고 있는지 나로서도 알지 못한다네."

 "모르신다는 말씀은 중앙과도 관계가 없다는 의미겠지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닐세. 거기에 대해서는 확언하기 힘들지. 나는 휴식을 위하여 동정호에 왔을 뿐이야. 일에서는 완전히 손을 뗀 상태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네."

 "그렇군요."

 마영정의 말엔 거짓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보다 그가 보여주는 눈빛이 그의 진실됨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가지 더 여쭙겠어요. 제독께서는 혹시 이 일의 진상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궁금하지 않으신 건가요?"

 "왜 궁금하지 않겠나. 하지만 내 입장으로서는 모처럼의 휴식을 망치고 싶지 않다네. 게다가 호광성 수군은 내 관할이 아니야. 굳이 끼어들 이유가 없다네."

 연선하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별로 의욕을 보이지 않는 마영정.

 그래서는 곤란했다. 연선하가 단호한 어조로 물었다.

 "만일 지금 저 수군들이 정상적인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면요? 그래도 손을 놓고 보실 건가요?"

 "그것이 무슨 뜻이지?"

 "무림인들을 먼저 공격한 것은 수군들이라 했어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화살은 날리고 포격을 가해 왔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을 모른 채 죽어가고 있어요. 두고 볼 일이 아니지 않나요?"

 "글쎄, 내가 본 것과는 다른데."

 "예? 다르다니요?"

 "말 그대로라네. 지금 저기서 죽어가는 이들은 무림인들만이 아니지 않던가? 군함 한 척이 대파되어 침몰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죠."

 "과연 그럴까? 무림인들에게는 함포도 없고 철궁도 없다네. 그런데도 수군의 군함을 침몰시킬 수 있었단 말이다. 그래서야 되겠나? 무림인들의 힘은 그와 같이 강해, 지나쳐. 대명제국의 군사에 위협을 줄 정도로 강하지. 그토록 무서운 강호의 도당들일진대 누가 장담하겠나? 시작을 누가 했는지...... 군이 했는지, 무림이 했는지.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냐는 말일세."

 일리 있는 말이었다.

 대명률을 지키는 관병들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은 외부의 침략이 아닌지도 모른다.

 내부의 무림인들 일 수 있는 것이다.

 마영정의 이야기도 그것과 같다. 관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무림인들과 싸우는 것이 그렇게 기이한 일로 비쳐지지 않을 수 있었다.

 "증거가 있다면요?"

 "무슨 증거?"

 "관군이 제국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증거요?"

 "무단으로 수군을 운용했단 말인가?"

 "무단으로 수군을 운용했을 뿐 아니라 그 배후에 다른 무리가 있다면, 그래서 무림과 관부가 반목하도록 만든 것이라면 그래도 제독께선 수수방관하실 건가요?"

 연선하의 말을 듣는 마영정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가 되물었다.

 "디른 무리라는 것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무림과 관부 곳곳에 뿌리를 둔 채 반역을 획책하는 무리를 말함이지요."

 "반역. 지금 저 수군들의 움직임을 역모라 보는 것인가?"

 "맞아요. 그렇게 보고 있어요."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군. 자네는 지금 자네의 말을 책임질 수 있나?"

 "물론이에요."

 마영정은 들을 뒤로 기댔다. 연선하를 올려다 보는 눈에 강렬한 빛을 담았다.

 그가 문득 고개를 돌리며 한쪽을 향해 물었다.

 "권욱. 너는 이 여협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영정의 시선은 이 용린루 루주, 주인장으로 보이는 장한에게 닿아 있었다. 안쪽에서 걸어나오는 장한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화산파 천류여협이 하는 이야기라면 허언은 아니겠지요."

 연선하를 가리키며 말하는 장한이다. 그녀의 미간이 가볍게 좁혀졌다.

 '무인(武人)이었나?'

 상당한 무공이 느껴지는 남자다. 그가 연선하에게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용린루 루주인 권욱(權勖)입니다."

 "예, 화산의 연선하예요."

 용린루의 주인이 무인이었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 그자가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권욱이 마영정 옆에 와 마치 호위무사라도 되는 양, 그 옆에 시립했다. 그가 마영정에게 몸을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제독. 꼭 천류여협의 말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억하십니까? 호광성 도지휘첨사는 배진웅 그놈입니다. 그놈, 본래부터 심상치 않은 놈 아니었습니까?"

 도지휘첨사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말한다.

 일개 객점의 주인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담대한 목소리 안에 뛰어난 지모(智謨)가 있다. 큰 체구와 우락부락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성정, 범상치 않은 남자다. 권욱의 말을 들은 마영정이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배진웅, 배진웅. 골치 아프군. 왜 여기까지 와서 그 이름을 들어야 하는 것이냐."

 탄식처럼 하는 말이다. 권욱이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제독님 업(嶪) 아니셨습니까. 입버릇처럼 말하시던 전장의 업이요."

 마영정의 눈이 가볍게 흔들렸다.

 권욱의 이야기. 그가 지녔던 과거의 신분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마영정이 연선하를 돌아보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다.

 그때였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청풍이 갑작스레 입을 연 것은.

 "사저, 누가 옵니다."

 몸을 돌리는 청풍이다.

 입구 쪽을 바라보는 청풍의 전신에서 삼엄한 진기가 솟구쳐 올랐다.

 적습이었다.

 적의 살기가 다가오고 있다.

 청풍과 연선하, 마영정과 권욱의 시선이 동시에 입구의 주렴 쪽으로 향했다.

 촤륵!

 주렴이 흔들리는가.

 아니다.

 청풍의 눈동자가 빠르게 한쪽으로 움직였다.

 입구에서 벽으로, 벽에서 창문으로.

 옆이다.

 와장창!

 마영정이 앉아 있는 쪽.

 창문과 벽이 한꺼번에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튀는 나무 파편들 사이로 강맹한 권력이 짓쳐들었다.

 우지끈! 콰앙!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청풍도 연선하도 아니었다.

 권욱이다.

 마영정의 옆에 서 있던 그였다.

 기민하게 탁자를 올려 세우며 권풍의 일격을 막아냈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탁자.

 순식간에 마영정의 신형을 잡아채 뒤쪽으로 돌렸다. 수십 번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능숙한 몸놀림이었다.

 "웬 놈이냐!"

 고함을 친 것도 권욱이었다.

 땅에 흩어진 나무 파편들을 밟으며 들어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머리까지 덮어쓴 흑포가 괴이했다. 흑포로 가려진 얼굴 아래쪽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쥐새끼들이 더 있었군."

 괴인은 두 손에 은빛 수투(手套)를 끼고 있었다. 그자가 손을 들어올려 검지 손가락으로 마영정을 가리켰다.

 "마영정. 내가 필요한 것은 네놈 목숨뿐이다. 나머지에게는 흥미 없어."

 마영정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권욱이 마영정의 앞에 서며 주먹을 겨누었다. 그의 입에서 투지 어린 목소리가 발해졌다.

 "웃기는 놈이다! 제독님의 터럭 하나라도 건드리려면 나를 먼저 넘어서야 할 것이다!"

 연선하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마영정을 보호하는 모습.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모습이 아니었다.

 주종 관계와 다름이 없었다.

 군부에 몸을 담았다가 귀향하여 객잔을 차린 무인,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다. 권욱의 과거가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시체를 넘어가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파아아아!

 괴인의 몸이 빠르게 쳐들어왔다.

 대단한 신법이다. 권욱의 얼굴이 크게 굳어졌다.

 퍼엉! 빠악! 빠아악!

 권욱의 권각과 괴인의 수투가 삽시간에 세 번이나 부딪쳤다.

 일격에 한 걸음씩.

 세 걸음 뒤로 물러난 권욱이다. 단숨에 드러나는 우위, 괴인은 그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지녔다. 권욱의 얼굴에 참담한 빛이 깃들었다. 

 퍼어엉!

 죄측에서 휘어서 들어온 수투다.

 제 주인의 모습처럼 괴이한 권법이었다. 몇 수 안 보여주었을 따름이나, 투로 하나 하나에 기묘막측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사이한 무공, 정통 무공이 아니었다.

 "크윽!"

 자신만만하게 막아 섰지만 실력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권욱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물러나지 않는 기개뿐이었다.

 괴인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깔렸다.

 "고작 그 정도로 날뛰었나? 분수를 알았어야지."

 쐐액! 따아앙!

 괴인의 일격이 들어왔다.

 그리고.

 튕겨 나간다.

 "거기까지 해라."

 권욱의 목줄기를 노리던 수투를 순간의 일격으로 비껴냈다.

 호피 문양, 흑백의 검집이다.

 청풍이었다.

 호갑의 백호검을 휘돌려 허리춤에 꽂아 넣는다. 언제 손을 썼냐는 듯,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움직임이었다.

 "네놈은 또 뭐냐. 방해하지 말고 꺼져라."

 청풍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네 자루 검을 언제라도 뽑아낼 수 있는 모습으로.

 "이놈도 죽여야겠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괴인은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달려들려다가 흠칫 멈추기를 몇 차례.

 쉽사리 공격을 해오질 못한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압력을 가해오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무력이 전해진다.

 탓, 쐐애애애액!

 한 순간에 괴인의 몸이 발악적으로 짓쳐들었다. 기이한 보법, 놀라운 속도를 보여주며 측면으로 파고든다. 뒤로 돌아 마영정이라도 죽이려는 시도 같았다.

 치링! 촤아악!

 괴인의 몸이 움직이는 것도 순간이었지만, 청풍의 검은 그보다 더 빨랐다.

 질주하는 백호검에 괴인의 몸이 옆으로 튀어 올랐다.

 파하지 않았으면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을 일격이다. 뛰어오른 괴인이 몸을 회전시키며 객잔 안쪽의 탁자 위에 내려섰다. 펄럭, 하고 내려오는 흑포. 날카로운 검기에 찢겨진 흑포가 아래로 흘러내리며 감추어져 있던 머리를 드러냈다.

 '뿔?'

 머리를 덮었던 흑포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그의 맨 얼굴이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가면이다.

 그것도 머리 한가운데에 뿔이 돋아나 있는 은색가면이다.

 "이놈! 누구냐?"

 당황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였다. 청풍이 변함없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보며 물었다.

 "그것은 도리어 이쪽이 해야 할 질문이지."

 청풍이 움직인 것은 반보뿐이다.

 어느새 검을 되돌렸는지, 뛰쳐나왔던 백호검은 벌써 검집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은가면의 괴인.

 청풍을 노려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살기조차도 청풍의 앞에 이르니 범접하지 못할 기파에 연기처럼 흩어져 버리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이를 악물며 말하는 괴인이다.

 거리를 재는 듯 싶더니 탁자를 박차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도망치려는가.

 그렇지 않다. 속임수다.

 몸을 돌리며 손을 휘두르는데 그 끝에서 미세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날카로운 기운, 암기였다.

 치리리링! 퀴유우웅!

 암기가 아무리 은밀하게 다가온다 해도 청풍의 검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발검의 압력, 열 개가 넘는 암기들이 단숨에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문제는 암기가 아니었다.

 암기 따위가 소용없다는 것은 상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탁자를 박차고 땅을 스치며 쇄도한다.

 목표는 오직 마영정이다. 은가면의 괴인이 해군 제독의 지척에 이르고 있었다.

 텅! 화아악!

 백호검의 속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작보의 신속(神速)에 청풍의 검 끝이 은가면의 앞을 가로막았다.

 쩡!

 급하게 내지른 검인만큼 실린 힘이 부족했다.

 백호검이 비껴 나간다.

 괴인의 수투가 마영정의 가슴을 파고들 찰나.

 좁은 공간. 청풍의 몸이 회전한다. 그의 왼손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빠아악! 와장창!

 괴인의 몸이 뒤쪽의 탁자를 부수며 튕겨 나갔다.

 한쪽 어깨를 늘어뜨리고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감싸 쥐며 몸을 일으키는데, 그 신형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위태했다.

 투욱!

 땅으로 떨어진 물체는 반짝이는 은빛을 품고 있었다. 용갑의 검력에 가면마저 부서져 버린 것이다. 휘청거리는 괴인이 필사적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는 살기 어린 목소리를 발했다.

 "이놈! 이대로 끌날 것이라 생각지 말아라."

 두려울 것 없는 경고다.

 괴인의 몸이 탁자의 잔해를 박차고 용린루 바깥을 향해 뛰쳐나갔다. 쫓으려던 연선하였지만 생각을 바꾼 듯, 이내 발을 멈추며 이쪽으로 돌아선다.

 권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쫓지 않소?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저런 자는 잡는다고 하여 얻을 것이 없어요. 게다가 그보다 급한 일이 있습니다."

 "하, 하지만."

 "권욱, 그만 되었다."

 권욱을 만류하는 자는 마영정이었다. 그가 연선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나를 노리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 또한 이 바람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런 것 아닌가?"

 눈앞에서 살벌한 활극이 있었으면서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다. 

 무림인들 이상으로 담대한 자였다. 일군을 호령하는 대제독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마영정은 연선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권욱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배는 있겠지?"

 마영정의 얼굴을 돌아 본 권욱이다. 그개 고개를 끄덕이며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악양에 터를 잡았는데 배가 없을 리 있겠습니까."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녀는 마영정에게 배를 구하고 있다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먼저 배를 찾는다. 난데없는 괴인의 습격이 마영정의 마음을 한꺼번에 돌려놓았던 것이다.

 "동정호로 나가자. 당장."

 한번 결정한 일에 다른 사소한 이유는 중요한 것이 못 된다.

 마영정은 제독이다.

 육지에서 아무리 고민을 해도, 물 위에 나가서 직접 부딪치는 것만 못하다. 연선하의 말마따나 군함들이 미심쩍다면, 직접 그 위에 올라 상황을 알아보면 되는 일이다.

 "제독, 동정호로 나가시겠다면 저희도 함께 데려가 주시면 좋겠어요."

 "함께 싸울 생각인가?"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저희는 군산으로 가야 하지요."

 "군산으로 간다. 그러니 거기까지 데려다 달라?"

 "그런 셈입니다."

 "왜 나를 찾아왔나 했더니, 처음부터 그런 의도였던 모양이군. 저 전장을 돌파하려면 보통 뱃사공으로는 확실히 무리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군 제독의 힘을 구한다라... 여인의 배포가 이만 저만이 아니야."

 마영정이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주렴을 들추고 나오는데, 사방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 있던 점소이들.

 권욱이 그들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지시하고는 바깥으로 따라 나왔다.

 부서진 용린루의 벽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일행의 앞으로 나섰다. 그가 마영정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크지 않은 배라 제대로 된 싸움을 하기에는 무리입니다."

 "괜찮다. 빼앗으면 되니까."

 "아, 그때처럼 말이군요."

 "그래, 중산해전(中山海戰)"

 "피가 끓어 오릅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격렬한 싸움터로 가야 하는 그들인데, 마치 유람이라도 가는 듯하다.

 사공을 구해야 했다?

 사공을 구했다면 제대로 구했다. 전장의 부하와 과거의 전투를 이야기하는 대제독이니, 그 이상의 뱃사람을 어디서 구할까.

 흑연(黑煙)과 화광(火光)을 향해 걸어가는 네 사람이다.

 동정호 호변에 이르러 선착장을 찾았다. 수상의 싸움을 피하여 몰려든 선박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곳입니다."

 권욱이 그들을 이끌어 온 장소는 선박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 지역이었다.

 조악하게 지어진 커다란 목조 건물 하나가 그들 앞에 있었다.

 호면에 접해 있는 건물, 그가 가까지 다가가자 안쪽으로부터 방만한 옷차림을 지닌 세 명의 청년이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왔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별일들은 없고?"

 "별일이야 저 한가운데 있습죠. 왜 저렇게 난리랍니까."

 "그걸 알아보러 왔다."

 "정말입니까? 간만에 한바탕 치르는 건가요?"

 "한바탕 치러야지. 용아(龍牙)는?"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지요. 손님들도 함께 벌이는 모양입니다?"

 "말조심해라. 이분이 내가 모시던 그분이시다."

 "아! 이분이......"

 마영정을 가리키는 손짓.

 건들거리며 권욱과 대화하던 청년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형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대두목님을 뵙습니다."

 대두목이라니, 참으로 엉뚱한 호칭이었다.

 멀뚱대던 두 청년까지도 허둥대며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권욱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었다.

 "소싯적에 수적질을 할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놈들입니다. 말버릇 자체가 워낙 이런 놈들이니, 부디 개의치 마십시오."

 "자네, 함께 가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위험하지 않겠나?"

 "괜찮습니다. 이래 보여도 배를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지요."

 "싸움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싸움에도 이골이 난 놈들입니다. 제 분수들을 모르는 놈들이라서요. 용린단만은 못해도 어지간한 무인들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할 수 없겠지. 한데 배 이름이 용아(龍牙)라?"

 "달리 이름 짓는 재주가 없어서 말이지요. 가끔 옛 생각도 떠올릴 겸, 그렇게 붙여보았습니다. 진짜 용아 같은 전함은 아니라도 꽤나 튼튼한 녀석입니다."

 권욱의 손짓에 어쩔 줄 모르던 세 놈이 건물 쪽으로 재빠르게 달려갔다.

 건물 한쪽, 커다란 문을 열어젖히는 세 사람이다.

 아예 물 쪽으로 나와 있는 건물, 이제 보니 이 건물은 그 자체로 배를 집어 넣을 수 있는 선착장이었던 모양이다.

 "갑시다."

 소형선이라고 하기엔 크고, 중형선이라고 하기엔 작다.

 본 적 없는 배였다. 평저선의 구조를 지녔는데, 일반적인 평저선보다 훨씬 날렵하게 생겼다. 선미 쪽에는 신기하게도 중형선 이상에서나 볼 수 있는 바퀴 형의 키가 만들어져 있다. 돛대와 돛의 형태 역시도 보통과는 달랐다.

 모르긴 몰라도, 속도를 중시한 배 같았다. 전체적인 구조에서 보여지는 느낌이 그러했다.

 청년 두 명이 아래쪽에 앉아 노를 잡았고, 한 명은 돛대로 달려가 조범수 역할을 했다. 범(帆)과 노(櫓) 양쪽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마영정이 선수(船首)로 나아가 동정(洞庭) 물길을 바라보았다. 노가 움직이고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는 배, 겨울바람에 얼어 있던 살얼음이 가볍게 부서져 나가며 용아의 출진을 알렸다.

 촤아아악!

 처음 보았던 느낌 그대로다. 한번 나아가기 시작한 배는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있었다. 동정호 전장을 향하여 빠르게 전진하는데, 마치 준마를 탄 장수가 달려가는 듯 했다.

 "우측이다! 방향을 틀어라!"

 적진으로 뛰어든 것은 금방이었다.

 군함 한 척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다. 그쪽에서도 용아를 발견한 듯, 방향을 틀면서 응전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좌현을 노출시키며 비스듬한 위치로 화포의 조준각을 맞춰왔다.

 "느리군! 그대로 돌파한다!"

 상대 군함의 반응 속도가 못마땅했는지, 마영정의 목소리엔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적선이지만, 마영정은 어디까지나 수군의 제독이었다. 아무리 싸워야 할 상대일지라도 수군의 움직임이 느리다는 것은 제독에게 있어 탐탁치 않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콰앙! 콰아앙!

 빠르게 전진하는 용아.

 군함의 함포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그러나 닿지 않는다.

 몇 장이나 앞 쪽에서 솟구치는 물기둥들. 마영정의 눈이 가볍게 좁혀졌다.

 "동정 수군의 책임자가 누구였지? 포격을 가르치기는 하는 것인가?"

 "이쪽이 빨라서 그럴 겁니다, 제독! 그래도 각도는 제대로 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 거리에서 쏘는 놈들이 이상한 것이다."

 마영정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근엄하고 과묵해 보이기만 하더니 수상에 나오자 영락없는 전장 호걸의 모습이다.

 제독의 지시에 따라 군함과 군함 사이를 스쳐 나아가는데,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돛대와 노를 다루는 세 놈도 완벽하게 손발이 맞고 있었다.

 "오른쪽 상방, 포격 범위에 들어갑니다. 어떻게 할까요!"

 "좌방 선회! 돛을 최대로 펴! 속도를 낸다!"

 무모할 정도의 돌진이었다.

 포격이든 무엇이든 조금도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마영정의 명령대로 속도를 올리는 용아다. 적선의 선체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촤아아아아악!

 포말로 부서지는 물살이었다.

 방향을 틀면서 나아가는데, 적선 우현, 흑색의 포신들이 불을 뿜고 있었다. 네 발, 흩어지는 검은 연기 사링로 네 개의 포탄이 하늘을 날았다.

 "두 발은 닿지 않는다."

 마영정의 외침이다.

 짧은 순간, 그의 고개가 청풍에게 돌아갔다.

 마주치는 눈빛.

 마영정의 눈이 한마디를 발한다.

 막아라.

 청풍의 발이 움직였다. 용아의 우현, 청풍의 손에서 한줄기 백광이 뛰쳐나갔다.

 퀴융! 쐐애애애액!

 두 발의 포탄이 닿지 않는다는 것. 나머지 두 발은 위험하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청풍이 나섰다.

 발검에 이어지는 공명결.

 하늘을 날아간 백호검이 태양빛을 반사시키며 찬연한 검광을 일으킨다. 한 순간 가속하는 백호검이 날아오는 포탄들을 연이어 꿰뚫고 지나갔다.

 꽈앙! 꽈아아앙!

 포탄들이 공중에서 터진 것은 순간이었다.

 확 끼쳐 드는 폭발의 충격파가 용아의 선체를 통째로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흔들린 것도 잠시뿐, 마주 오는 군함을 스쳐 보내며 유유히 앞으로 스쳐간다. 포탄을 터트리고 공중을 선회하던 백호검이 부드럽게 날아와 청풍의 손에 잡혀 들었다.

 "어....검? 어검(御劍)이라니!"

 그것이 전설 속 어검이었는지, 아니면 절묘한 비검술(飛劍術)의 일종인지는 그녀로서도 알지 못했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청풍이 보여준 이 한 수는 다시 보기 힘든 신기(神技)임에 다름이 아니었다.

 우현 난간을 내려와 백호검을 회수하는 청풍이다.

 그는 놀란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마영정에게 발을 옮기며 물었다.

 "막을 수 있다는 것,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랬다.

 마영정이 지금까지 마음껏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다.

 포격이 오더라도 청풍이 막아줄 수 있기 때문에.

 청풍은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느낌일세. 별다른 것은 아니야."

 마영정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청풍은 잠자코 기다렸다. 마영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남왜 토발 당시, 삼매도에서 해전이 있었네. 그때 나는 한 자루 마검(魔劍)과 한 자루 신검(神劍)을 볼 수 있었지. 그들은 강호의 일문인 무당파와 남해 바다 보타암의 고수들이었어. 단신으로 군함을 상대할 수 있고, 쏟아지는 포격을 한 자루 검으로 막아낼 수 있는 자들이었네."

 '무당파!'

 청풍은 그 순간, 언제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마검의 모습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드넓은 강호 어디에나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다.

 알 수 없는 호승심이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랐다.

 "난 대명제국의 군인(軍人)이야. 사람이 혼자서, 인간의 육신으로 군부의 전함을 박살낸다? 그런 자들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무림이란 그런 곳인 모양이지. 자네도 비슷해. 자네에게서 그들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말일세."

 마영정의 목소리는 가벼움과 침중함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었다.

 청풍과 연선하를 보고 나서고 싶지 않다 하였던 것은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관가와 강호는 다르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영역이다.

 문제는 그 두 가지가 혼란스럽게 얽혀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서로 다른 영역의 사람들임에도 이렇게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군산까지만 가주시면....."

 "그래. 어서 내려줘야지. 그때부터는 우리 방식으로 싸울 것이네. 자네가 없었더라면 방금 같은 방식으로 돌진하지는 않았겠지."

 마영정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다시금 저 앞으로 군함들의 모습들이 비쳐 들고 있었다. 자들만 돌파하고 나면 끝이다. 수상의 싸움이 육지로 이어지는 곳, 겨울 군산의 아름다운 전경이 적선들의 뒤쪽으로 커다랗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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