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무림서] 화산질풍검 제 26장 결전(決戰)
군산대혈전의 결과는 참담했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죽었고, 그것보다 훨씬 많은 관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단심맹이 획책한 일대 사건이었다. 더불어 신마맹이라 불리는 무리가 관련된 혈사였다.
모든 강호인들에게 있어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참혹한 혈겁에 개방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단심맹과 연수하고 신마맹과 내통하며 강호인들의 죽음에 일조했던 개방의 행사가 밝혀진 것은 전적으로 군산에서 살아나온 개방 후개가 벌인 일이었다.
개방 후개. 장현걸.
인의대협 천품신개 풍대해 장로가 피투성이로 나타난 개방 후개와 대치했을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일대 방파에서 벌어질 수 있는 권력 다툼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개방 후개가 단심궤라 불리는 철궤를 열고 믿기 어려운 강호 비사들을 낭독하기 시작했을 때, 군웅들은 비로소 그것이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 수가 있었다. 가장 커다란 놀라움이었던 것은 풍대해가 단심맹의 주구(走狗)로서 강호인들을 속여왔다는 대목이었다. 불신과 경악으로 얼룩진 군웅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급기야 개방 후개는 풍대해의 장로 직 박탈을 공표해 버렸다. 더욱이 풍대해를 무림의 공적(公敵)이라고 선언했고, 군산대혈전의 직접적인 책임을 물었다.
풍대해의 첫 반응은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후개의 증거 수집은 철저했고, 단심궤에 담겼던 문서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짜였다. 게다가 후개는 놀랍게도 육대세가의 하나이자 절강의 패자였던 모용세가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천수사 모용도가 후개를 지원했고, 이어서 당도한 소림의 고수들이 그의 주장을 거들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하북팽가의 등장이었다.
군산대혈사에서 화산의 질풍검과 함께 무적의 무위를 보여주었던 자. 패가의 오호도가 나타났던 순간은 후개와 풍대해의 설전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백미였다. 후개의 그것과 똑같은 단심궤를 열고 팽가의 비사(秘事)를 밝힌 그가 팽가의 대적(大敵)으로 풍대해를 지목했을 때, 강호인들은 후개의 주장이 진실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결국 본색을 드러낸 풍대해가 군웅들 앞에서 쓰러졌고, 그와 동시에 개방이 쌓아 올렸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중략.......
한백무림사 무림편.
강호난세사 中에서.
군산을 떠난 청풍은 곧바로 산서로 향했다. 태원부, 무가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아는 곳.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무가보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숭무련을 찾아왔소."
"이곳은 무가보입니다.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외문(外門)에 시립해 있는 무인들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모르는 채로 왔다면 정말로 숭무련을 모른다고 생각할 만한 말투였다.
"그렇다면 산서신협께 전해주시오. 화산파, 청풍이 왔다고."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곳에서 알아보십시오."
훈련 받은 것 치고는 지나치게 자연스럽다. 청풍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서영령이라는 여인이 이곳에 있을 텐테."
"모르는 이름입니다."
"하면 이 무가보의 보주께선 어떤 분이시오?"
"보주님의 함자를 외인에게 함부로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무가보에 볼 일이 없다면 그만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이래서야 어쩔 도리가 없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청풍이 문득 담장 위쪽을 올려보았을 때다.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청풍의 얼굴에 놀라움의 표정을 만들었다.
"허어, 월담이라도 하려고?"
놀라움에 이어지는 것은 놀라움보다 훨씬 더 큰 반가움이었다. 돌아서는 청풍의 눈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비쳐든다. 청풍의 얼굴이 환해졌다.
"갈 대협!"
"대협? 대협은 무슨! 형님이라 부르거라. 하하하!"
성큼성큼 다가온다. 갈염이다.
오랜만에 보는 갈염의 얼굴은 전보다 더 호탕해 보였다. 느껴지는 무공도 전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무엇을 어떻게 지내나?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서 바빴을 뿐이지."
진주 언가와의 싸움을 승리로 장식하고, 하북팽가의 고수들을 연식 꺾어내고 있는 숭무련이다. 강호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숭무련의 행보, 그것을 가볍게 이야기하다니 과연 갈염이라 아니 말할 수 없었다.
"너무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도 탈이다. 귀중한 손님을 못 알아보고 말이야, 어서 문이나 열어라!"
시립해 있던 무인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육중한 문이 열리고 넓디넓은 무가보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래, 어쩐 일로 왔나" 숭무련에 투신이라도 하려고?"
농담처럼 던지는 말에 단단한 뼈가 감추어져 있었다. 청풍이 그를 돌아보며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저는 화산 제자입니다."
"호오.... 그럼 왜 왔지?"
"무련에 비무를 청하려고 했습니다만... 생각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갈염의 호방함에 전염이라도 된 듯, 청풍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놀랍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멈춘 갈염이 일순간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비무라? 대체 누구와?"
"누가 되었든 상관없었습니다. 령매를 데려갈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닙니다."
"잠깐. 령매를 데려간다고? 그래서 비무를? 하! 그것 정말 놀라운 발상이군. 대단해. 일리가 있어."
"그렇습니까......"
갈염이 청풍을 직시하며 말했다. 유쾌한 눈빛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누가 되었든 상관없다고 했지? 그것은 누구라도 자신 있다는 말인가?"
"아, 오늘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요."
"어찌 되었든, 누구와도 싸울 수 있다는 말이겠군?"
멈추어 선 갈염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뭉클뭉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을 그대로 받아내는 청풍이다. 그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무(武)의 증명이 곧 숭무련의 정의라 들었습니다. 자신이 있다기보다는 지닌 바 무공을 보여 드릴 뿐이겠지요."
"하! 재미있는 말이다. 못 보는 사이 말솜씨도 늘었어."
갈염의 기세가 세상을 덮을 만큼 커져가는 데에도 청풍의 기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유롭게까지 느껴지는 그 모습, 청풍의 무력에 만족했다는 듯 갈염이 자신의 기세를 거두어들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령아를 데려가기 위해 비무를 청한다. 그런데 묘하군. 그것은 비무라고 부르지 않지."
"........?"
"비무라니, 그것은 비무가 아니라 납채(納采)야. 아니지, 납채는 중매인이 와야 되는 것인데 본인이 직접 온 만큼 그렇게 보기도 어렵겠어. 차라리 비무초친(比武招親)이라 말하는 것이 옳겠군."
"비무초친...."
납채란 혼인 육례의 하나로서, 남자가 여자의 집에 서신을 통하여 혼례 의사를 묻는 절차를 뜻한다. 그렇게 본다면 청풍의 행동은 분명 비무초친에 가깝다. 비무를 통해 신부를 얻는 것, 송대의 무가(武家)들에서 행해지곤 했다던 비무초친의 일화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나와 할 이야기는 아니겠지. 만나볼 사람이 따로 있겠어."
"아, 계십니까?"
"그래, 있지. 이곳에. 하지만 대사형은 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갈염이 말하는 대사형. 그것은 다름 아닌 서영령의 아버지, 서자강을 말함이었다.
내원 문을 열고 들어가 청석 바닥을 가로질렀다. 안쪽까지 들어가자 멋진 위용을 자랑하는 한 채의 전각이 보였다.
'산서신협....!'
전각문을 열지 않아도 그의 존재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갈염도 그런 청풍의 기색을 눈치챈 듯 엷은 미소를 지었다. 갈염의 지시에 전각 앞을 지키던 무인들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다.
산서신협 서자강이 거기에 있었다.
"선서신협 서자강 대협을 뵙습니다. 화산파, 청풍입니다."
포권을 취하고 고개를 숙이는 청풍의 모습에는 정중함이 가득했다.
그때처럼 비 내리는 흙탕 위에서가 아니라, 완전하게 격식을 갖춘 모습이었다. 청풍의 복장 역시 전에 없던 성장(盛裝)으로 꾸며져 출중한 외모를 더욱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들었다. 여기까지 올 것이라 하여 믿지 않았더니, 진실로 나타났군."
"당연히 와야만 하는 일이었을 따름입니다."
"당연히 와야만 하는 일이었다?"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지만 나는 자네를 죽이려고 했었다. 그것을 잊지 않았겠지?"
"지나간 일입니다."
"지나간 일이라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어. 그러니 이곳은 말하자면 자네에게 있어 적진이다. 자네는 적진 한가운데서 대체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 것 인가."
"적진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공의 증명을 통해 반려를 찾아가길 원할 뿐입니다."
청풍의 목소리는 맑고 정대하여 일 푼의 망설임도 없었다.
정식으로 청혼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서자강의 눈에 섬광이 떠올랐다.
"그것은 내 딸을 말함인가?"
"그렇습니다."
"비무를 청하여 원하는 것을 얻겠다......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 딸을 데려가서 자네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제가 할 수 있도록 허락된 모든 것을 해주겠습니다."
청풍의 진솔한 성품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한마디였다.
솔직함을 표현하는 데 조금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서자강으로서도 그러한 대답에는 꽤나 놀란 듯, 그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말로는 무엇이든 못할까. 하지만 자네는 자네가 말한 만큼 내 딸을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다. 우리는 구파와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갈 수 없다. 숱하게 들어온 말이다.
하지만 청풍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쭉 생각해 왔던 바다. 청풍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숭무련은 정대한 무파입니다. 설령 화산과 비무를 하고 무공을 겨루게 될지라도, 반드시 두 문파가 원수가 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무공을 인정하고 선의의 경쟁을 해 나가면 그뿐입니다."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는군."
"그렇습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불성설! 세상의 이치는 그렇지 않다.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전쟁이야. 무림맹을 소집하고 철저하게 짓밟는다. 그것이 구파가 해온 방식이다!"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한다면.... 제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겠습니다."
"세상을 모를 뿐 아니라 광오하기까지 한 놈이로다! 너 홀로 무슨 방법이 있어 구파를 막겠다는 말인가!"
"사악한 악행을 저질렀다면 모르되, 정식으로 비무를 한 상대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승복을 하는 것이 무인의 도리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구파는 이미 명문정파가 아니요, 그런 구파라면 구파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청풍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서자강으로서도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청풍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확고한 의지가 그 진실됨을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파의 명성에 앞서 그 무엇보다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것, 대의를 저버리는 문파라면 직접 나서서 싸움을 치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삶의 방식이 그가 발산하는 기파 안에 있었으니, 그것을 보는 서자강의 눈이 차츰차츰 누그러지고 있었다.
"그런 문파가 화산파일지라도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화산이라면, 제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만들겠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장담컨대, 숭무련이 화산과 피를 흘리며 싸울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가 책임지겠다는 말이었다.
어떤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는 심력이다. 또한 그 모든 것은 서영령을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 서자강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자네에겐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먼저 해야 할 일이라 함은......"
"그 아이에게 들었다. 자네가 결판을 내야 할 대적에 대하여, 저 장강의 육극신에 대하여 말이다. 그에게 죽는다면, 자네의 그 모든 이야기도 헛된 말이 될 것이 아닌가."
"물론 그렇겠지요."
청풍은 순순히 인정했다.
대신 청풍은 그 다음 말에 강한 힘을 담았다
"그래서.... 말씀 드립니다."
청풍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바로 지금부터다. 그가 서자강을 만나서 하려고 했던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가 여기에 있었다.
"저는 곧 육극신과 겨루기 위해 장강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육극신과 겨루고 올 때까지. 그때까지만 섬서 진출을 뒤로 미루어 주십시오."
"섬서 진출을 미루라?"
"숭무련이 화산과 비무를 하게 되었을 경우, 지금으로서는 전면전을 예상해야 할 것입니다. 장문인이신 천화진인께서 그런 성정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지금의 화산이 그럴 만한 여력이 있나? 도리어 친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하는데?"
"전면전이 아니더라도 큰 싸움이 될 것은 확실합니다.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하심은 바로 그런 이유셨던 것 아닙니까?"
"가는 길이 다르다...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육극신과 싸운 후, 제가 화산으로 돌아오면 그런 전면전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화산과 숭무련의 모든 비무에는 제가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풍의 대답.
침묵을 부르는 대답이었다.
서자강의 얼굴이 굳어진 것은 물론이요, 흥미로운 표정으로 옆에서 듣고 있던 갈염까지 멈칫 몸을 굳혔다.
화산파와 숭무련의 비무에는 청풍이 나가겠다는 것.
그리고 화산파와 숭무련이 전면전을 벌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
그것은 단 한 가지 사실을 뜻하는 까닭이었다.
화산파가 비무에서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곧 청풍 자신이 숭무련과의 싸움에서 모두 이길 것이라는 말, 숭무련의 무력(武力)을 혼자서 모두 받아내겠다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하하하하!"
난데없는 웃음소리. 정적을 무너뜨린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갈염이었다. 갈염이 통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자강을 돌아보았다.
"그것 보십시오, 무상! 내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요. 이런 배포는 전 중원을 다 뒤져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령아를 준다 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놈이란 말입니다!"
"조용히 해라, 갈염! 나도 충분히 보았다."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서자강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 눈빛에는 흡족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청풍의 말에 불쾌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만족하는 듯한 느낌이란 말이다.
갈염과 전혀 다른 성정을 지닌 듯 보여도, 서자강도 사실은 그와 비슷한 인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풍의 마음을 꿰뚫듯 바라보던 서자강이 이내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천하에 이르는 기상과 강인함이다. 그 아이가 왜 너에게 매달렸는지 이제야 알겠다."
서자강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청풍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좋다. 마음에 들었어. 자네 뜻대로 섬서 진출은 무기한 연기하겠다."
역시나 그렇다.
빗속에서 싸울 때는 그렇게나 무서운 기운을 발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달랐다.
같은 사문이다. 숭무련이다. 역시나 갈염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중대한 사안일지라도 결정을 내리는 데 고민하지 않았다.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행하고 그것을 망설임 없이 밀어붙인다. 핏줄은 속이지 못한다고 했던가. 서영령의 성정은 아무래도 그 아버지를 닮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령매를 데려가도 되는 것입니까?"
"부(否)! 그것은 아직 허락할 수 없다."
"하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놈에게 내 딸을 줄 수는 없지 않겠나."
"........"
"모든 은원을 마무리 짓고 오라. 무(武)의 증명이라면, 육극신과 겨루는 것으로 그 의지를 보이는 것도 괜찮겠지. 화산파의 촉망 받는 후기지수라 한들, 내 딸의 배필로는 달갑지 않지만 육극신을 꺾은 남자라면 이야기가 달라."
서자강의 결론은 명쾌했다.
청풍도, 옆에 있는 갈염도 완벽하게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이것으로 한 가지가 더 생겼다.
육극신과 싸워야 할 이유, 이겨야만 할 이유다.
청풍의 두 눈에 육극신을 향한 강력한 투지가 피어 올랐다.
마지막.
네 개의 신검을 찾아 나서던 강호 행의 절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긴 여정의 끝을 알리는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