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육극신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비검맹의 핵심이 되는 그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청풍은 간단히 그것을 해결했다.
숭무련의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취한 방법이었다.
육극신을 지명한 비무 신청이다. 경천동지의 승부를 공개적으로 세상에 알려 버린 것이다.
화산 제자 청풍은 사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비검맹의 파검존 육극신에게 비무를 신청한다. 장소는 장강 대천진, 일시는 섣달 그믐날이며, 승부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일 대 일로 겨루도록 한다.
화산파의 직인이 찍힌 방문(榜文)이었다.
각 성 주요 도시에 빠지지 않고 내걸린 것은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
온 천하 강호인들을 들끓게 만든 대사건이었다.
군산대혈전 이후, 강호에 혼란을 일으키는 무리들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던 비검맹과 전통과 역사로 각인된 구파의 일익인 화산파의 비무는 중원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로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자존심 대결이라 말할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대천진으로 집중되었다. 일전에 그곳에서 질풍검 청풍이 육극신에게 패퇴 당한 바 있다는 소문도 강호에 퍼져 나갔다.
그믐이 되기까지 보름이나 남았다. 그러나 장강 대천진에는 벌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일대 승부를 보기 위한 강호인들과 민초들까지, 인적 없던 대천진이 순식간에 인산인해로 가득 찼다.
이렇게 되면 그 누구라도 비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온 강호인들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육극신 본인을 불러내기에는 그보다 좋은 방법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무 신청에 대한 소문을 듣고 격분한 육극신이 반쪽밖에 남지 않은 그 파검으로 전함 하나를 침몰시켰다는 이야기가 삽시간에 장강 전체를 타고 흘러 나갔다. 섣달 그믐 바로 그날, 질풍검 청풍이 그때 파괴된 전함처럼 장강아래 수장(水葬)될 것이라는 말들도 비검맹 맹도들을 통해 세상 밖으로 흘러 나왔다.
그것은 곧 육극신이 비무에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뜻하는 소문이었다. 화산의 이름값에 질풍검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 장강의 물을 뒤엎는다는 그 명성처럼 화산이라고 하여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람들까지 구구한 예측들이 난무했다. 두 사람이 함께 죽을 것이라는 동사구패의 결말까지 예측하는 사람도 많았다.
"매화검수가 전부 필요할지 모른다. 매 사제는 먼저 가서 정황을 알아두도록. 대천진은 비검맹의 영역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으니."
"기어코 일을 저지르는군. 시일이 촉박하다, 봉산. 모을 수 있는 모든 고수들을 모아라."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맹주께서도 받은 것이 있는데?"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부터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엄청난 숫자의 무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온 강호를 진동시키는 일전이다. 마음을 졸이는 사람들과 싸움을 기대하는 사람들, 싸움에 얽힌 사람들, 그 모두가 이 승부에 각자의 인연을 걸어내고 있었다.
"이 이상의 접근은 불허한다."
비무 날짜로부터 이틀 전, 싸움의 공기가 고조되던 때였다.
대천진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차단당했고, 몰려들었던 무인들과 민초들 대부분이 대천진 땅 위에서 내침을 당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검맹의 짓이었다. 싸움을 구경하고자 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인들이 많았고, 그 때문에 무력 충돌까지 빚어질 기세였지만 그런 불상사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비검맹의 무적전선들, 영검존의 마령선과 태검존의 괴암이 대천진에 그 위용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두 전함의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영검존과 태검존 두 검존들의 기세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었다. 무공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모두가 도망치듯 대천진에서부터 빠져 나오고 말았다.
엄청난 병력을 대천진에 집중한 비검맹이다.
두 검존이 직접 나섰다는 것은 곧, 비검맹의 주 전력이 모두 투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 비무 결과에 관계없이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가 대천진 전체에 깔렸다. 질풍검이 살아서 돌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파검존 육극신이 정작 일 대 일 비무 원칙을 깨버릴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파검존 육극신의 명성도 명성이거니와, 온 천하에 천명한 지명 비무를 두고 차륜전을 벌인다는 것은 그 어떤 무인으로서도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대천진 봉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도리어 비검맹의 처사가 당연하다고 보는 이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수로맹이 재건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비검맹의 입장에서도 그 정도 대비는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래저래 격전의 조짐이 고조되는 나날들이 지나고.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다.
한 해의 마지막을 알리는 추위가 대천진 주변의 물가에 얇은 얼음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군. 결국 이렇게 되었어."
"그렇군요."
새벽 안개 자욱한 대천진의 아침 위에 두 사람의 남자가 서 있었다.
출중한 기도, 매한옥과 하운이었다. 그들의 뒤쪽으로 마령선과 괴암의 선체들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나저나 용케 들여보내 주더군. 하지만 돌아갈 때는 그처럼 쉽지 않겠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겁니다. 이 공기,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두 사람이 대천진에 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비검맹이라고 강호의 법도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참관인으로 온 화산파의 인물들은 비검맹의 대천진 통제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그들뿐이 아니라 불러 모은 매화검수 삼십 명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중이었다.
뛰어난 명성을 가진 몇몇 고수들에게도 관전의 길은 열려 있었다. 물론 이 싸움에 영향을 주지 않을 자들에 한해서다. 대천진이 훤히 보이는 언덕 하나가 완전히 개방된 상태, 새벽부터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무인들이 보였다.
"저기 옵니다."
"그래."
매한옥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한 사람의 모습이 걸린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비무 신청자인 청풍이 관도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이길 수 있을까?"
"이겨야지요. 져서야 되겠습니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하운과 매한옥의 얼굴에는 심각한 우려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장강무적을 칭하는 파검존, 그리고 이쪽은 강호신성인 청홍무적 질풍검.
누가 봐도 육극신을 위로 봐줄 수밖에 없다. 걱정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터벅, 터벅.
그러나 정작 청풍은 산책이라도 나온 듯, 편안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얀 옷에 그려진 노을 빛 화산 산수의 문양의 그의 사문(師門)을 보여준다. 좌청룡 우백호의 쌍검과 등 뒤에 비껴 맨 열십 자 주작, 현무가 여전히 훌륭한 신기(神氣)를 뿜어내고 있었다.
화악!
공기가 바뀌었다.
청풍이 대천진 한가운데 선 직후였다. 벌써부터 싸움이 시작하기라도 한 것 같은 긴장감이 온 땅 위에 퍼져 나갔다.
촤아아아악!
청풍이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다.
팽팽하게 잡아둔 바람 사이로, 새벽 안개 저편으로부터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살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온다.....! 육극신이다."
거대한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모습조차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접근을 알아챌 수가 있었다. 그만큼 굉장한 기파다. 대천진 전체를 날려 버리겠다는 듯한 패도적인 기운이 이처럼 먼 거리까지도 전해질 정도였다.
촤악! 쫘작! 쫘자작!
육극신의 기함이 대천진 선착장에 당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육극신의 기함, 검형.
그 규모와 무장은 오히려 이미 닻을 내리고 있는 마령선이나 괴암보다 못해 보였지만, 그래도 검형은 명실 공히 비검맹 최강의 전선이었다. 육극신이 오직 그 안에 있기에, 오직 그 사실만이 검형을 비검맹 최강 전선이라 부르게 만드는 이유였다.
퍼얼럭!
하늘 위 어딘가에서.
장포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체를 가리고 있는 안개 위쪽으로 마침낸 모습을 드러내는 육극신이다. 안개를 밟고 선 모습이 마치 구름 위의 천신이 강림한 것만 같았다.
텅!
청풍은 갑판을 박차는 소리로부터 과거 기억의 재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안개가 그 모습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때와 다를 것 없는 풍경, 물 위에 내려서는 육극신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 명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저벅, 저벅.
희미하게 다가오던 그림자가 뚜렷한 윤곽으로 다가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육극신의 발걸음을 하나하나에 안개가 걷혀 나가기라도 하는 것 같다. 장강 저편에서 동터오는 여명에 그들의 모습을 커다랗게 비추고 있었다.
쿠웅.
삼 장 거리.
청풍의 앞에 선 육극신의 위용은 여전히 놀라울 따름이다.
무력의 화신.
개세무적의 힘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왜인(矮人)의 복식에 가까운 전포(戰袍) 역시 똑같다. 넓게 흩날리는 주홍색 장포 위에 검은 색의 칼날 무늬가 화려했다.
"질풍검인가."
목소리만으로도 중압감을 배가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뿌리부터 흔들어대는 위력이다. 상을 에던 기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던 청풍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화산의 질풍검이오."
질풍검.
군산혈전 이후, 강호에 몰아친 이름이다.
청홍무적, 무적이라는 거창한 칭호보다 훨씬 더 좋은 별호라고 생각했다. 바람의 이름, 스스로를 질풍검이라고 분명하게 칭하는 순간이었다.
"그전과는 전혀 다른 검이 되었군. 부러뜨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육극신의 말투는 하늘에 선 군림자의 그것이었다.
파검.
부수어 무너뜨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투다.
군림의 절대자와 질풍의 도전자 이 땅 위에 마주한 순간. 그와 같은 말을 들었음에도 청풍은 곧바로 검을 뽑지 않았다.
도리어 한 발 다가가며 포권을 취한다. 그의 입에서 정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산의 청풍이오. 비검맹의 파검존에게 정식으로 비무를 청하오."
예를 갖춤으로써, 그렇기에 더욱더 당당한 그다.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떤 상대를 만나도 다를 것이 없다. 하늘을 우러러 단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예를 갖춘다?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
펄럭!
육극신이 장포 소매를 뒤로 돌렸다. 반 동강 난 파검을 꺼내 든다.
"내가 바로 육극신이다."
그가 청풍을 향하여 파검을 겨누었다.
그의 입이 열리며 압도적인 목소리가 더해졌다.
"오라!"
명령과도 같은 한마디다.
치리리잉!
청풍의 오른손에 백색의 검이 잡혀 들었다. 첫 일보는 언제나처럼 금강호보다. 백호검이 호갑에서 뛰쳐나오며 호쾌한 기세로 바람을 갈랐다.
퀴우우웅!
드디어 시작이다.
세상이 좁아지고 시간이 잊혀졌다.
순수한 무(武)의 격돌이다. 과거의 은원도, 패배의 기억도, 그 모든 것이 지워져 버렸다.
쩌어어엉!
금강탄을 막아내는 파검의 검력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강렬한 진동이 팔 전체를 진동시키며 올라오는데, 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의 힘까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것이 육극신이구나.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쿠웅!
몸 전체가 휘청거릴 만한 충돌이었지만, 청풍은 물러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금강호보를 밟으며 전진한다. 불굴의 기세로 백야참을 휘둘렀다.
위이이잉!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생각했다. 그러나 육극신의 몸은 빨랐다.
어느새 백야참의 궤도를 막아내기에 완벽한 위치로 이동해 있다. 극도로 실전적인 움직임이었다.
대력투형보. 전투를 위한 육극신의 절세적인 보법이었다.
쩌엉! 우우우웅!
백야참이 빗나간 것은 순간이었다. 파검의 쇄도가 이어졌다.
'이것은!'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지는 시공(時空)이었다. 사정거리에 닿지 않는다 하여 피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발출되어 압축되는 기운이다. 육체의 눈이 아니라 공명결의 심안으로만 볼 수 있는 검격이었다. 육극신의 절기, 파검공진격이 오고 있었다.
파아아아아!
여기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풍운룡보를 밟으며 측면으로 돌아갔다. 간발의 차이로 터지는 공진의 일격이 느껴졌다. 폭발에 휩쓸린 뒤쪽의 옷자락이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나갔다.
일격만 허용해도 죽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생사가 한 치의 검격으로 결정되고도 남는다. 회전하는 청풍의 손끝에서 백호무가 발동되었다. 백호탐천의 일격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꽈아아앙!
찍어 누르는 파검이 검력의 벽을 만들었다.
대천마진벽이었다. 백호탐천의 강맹한 검격을 순식간에 흩어버렸다.
우우웅!
육극신의 신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벽을 만들어 놓는가 싶더니, 다시 한번 가볍게 검을 움직인다. 그러자 공명결의 감각의 죽음의 공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별다른 조짐도 없이 압축되는 힘이다. 또 한 번의 파검공진격이었다.
허공에 폭발을 일으키는 검격이라는 것만으로도 믿기 어려운 무공인 바, 그런 것을 이런 식으로 구사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의 경지가 아니다. 청풍이 다급하게 목신운형의 기운을 뽑아내며 풍운룡보를 밟았다.
치리리링!
피하기엔 늦었다. 금강탄으로 공진의 중심을 꿰뚫으며 왼손을 움직였다.
용갑으로부터 청룡검이 뽑혀 나왔다.
꽈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뻗어 나온 충격파가 자욱하던 안개를 발기발기 찢어놓았다.
드러나는 청풍의 모습, 순백과 청백의 검신이 강렬한 기운을 발하고 있다. 육극신의 눈이 이전까지와 다른 빛을 띠었다.
"그걸 막았나? 제법이로군."
청룡검을 꺼내 용뢰섬까지 발동하지 않았더라면 어디가 날아가도 틀림없이 날아갔을 것이다.
이 정도로 위력적인 무공.
이렇게 싸우다가는 팔 하나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두 살함 모두 필살의 일격이 강한 무인들,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더라도 기회만 잡는다면 일순간에 역전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제법이다? 아직 시작도 안 했소."
투지를 끌어올리는 한마디였다.
그 안에서 그 자신의 다른 모습, 남강홍이 튀어나온 것 같다.
청풍이 자하진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려 두 개의 신검에 담았다. 청룡 백호 두 신검이 아름다운 검명음을 울렸다.
텅! 꽈아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동시에 짓쳐 드는 두 사람이다.
빠져나가지 못한 공기가 미친 듯 요동쳤다.
청룡검으로 금강탄, 백호검으로도 금강탄을 펼쳤다. 쌍 금강이다. 꿰뚫어 버릴 기세, 대천마진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보여달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육극신은 대천마진벽을 펼치지 않았다. 대신 지니고 있던 파검을 두 번 끊어 치며 파검공진격을 연쇄적으로 발출한다. 상상의 한계를 훨씬 더 넘어서는 무공이다. 백호검과 청룡검의 중간을 노린 공격이었다.
지이잉! 지이이이잉! 쩌어어엉!
폭발 두 번.
청풍의 몸이 휘청 뒤로 흔들렸다. 백호검과 청룡검을 쥔 양손의 손아귀가 찢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보통의 철검이었다면 그대로 부러져버렸을 공격이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들 말하지만, 그 말을 이처럼 완벽하게 실천하는 자도 세상에 다시없을 듯 했다.
"하압!"
절묘하게 몸을 틀며 경력의 여파를 풀어냈다. 기합성이 터져 나온 것은 그 직후다. 금강호보로 땅을 찍고 청룡검을 앞으로 뻗어냈다. 육극신의 상단을 노린 일격, 그가 지닌 반 토막 파검이 아래로부터 쳐 올라와 청룡검에 부딪쳤다.
치링! 쩌엉!
청룡검이 튕겨 나가기 무섭게 오른손이 움직였다.
바람을 가르는 백야참이었다. 육극신이 신형을 돌리며 대력투형보를 펼친다. 이어지는 파검의 쇄도에 백야참마저도 여지없이 막혀 버렸다.
콰아아아!
단숨에 청룡검을 고쳐 잡은 왼손이 청룡결 청룡도강의 일격을 뿌렸다.
질풍처럼 몰아치는 연환검에 회심의 청룡결이다. 무력이 정점에 이르고 있는 청풍, 누구라도 막기 어렵다. 파검이 허공을 수놓으며 공진격의 힘을 발했다. 파검공진격 세 발이 청룡도강의 신룡 위에 내려앉았다.
우우우웅! 쩌엉! 쩌엉! 쩌어엉!
청룡검의 검신이 연쇄적인 폭발로 인하여 커다란 흔들림을 겪었다.
팔 전체가 뒤틀려 버릴 것만 같은 충격이 찾아왔다. 그래도 청풍의 검을 놓치지 않았다.
물살의 흐름이 아무리 거세도 도강하는 청룡을 막을 수는 없다. 청풍의 의지가 그 검에 실렸다. 청룡검이 막강한 힘을 뿌리며 육극신의 가슴을 향하여 뻗어나갔다.
스각!
육극신은 완전히 피해내지 못했다. 어깨 어림의 장포가 찢겨 나가고 엷은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육극신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상처는 대수로울 것이 못 되어도 이 일격의 의미가 무척이나 컸던 것이다. 무공의 겨룸에서 상처를 입은 것이 대체 얼마 만일까. 근접을 불허하는 절대무공, 그것을 뚫고 들어가 상처까지 입혔다는 것은 청풍에게 있어서나, 육극신 본인에게 있어서나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과연......"
육극신이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지혈한 만한 상처도 아니다. 반 치 깊이도 안 되는 검상. 하지만 그 작은 검상이 결국 절대자의 강렬한 투지를 일깨우고 만다. 육극신이 청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력을 다해야겠어. 그럴 만한 상대야."
지금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육극신은 아직 파검마탄포조차 꺼내놓지 않았다.
'피차 마찬가지.'
그리고 그것은 이쪽으로서도 다를 바가 없다.
백호검과 청룡검만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을 뿐이다. 모든 것을 전개하지 않은 육극신을 꺾어보았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력을 다하고, 모든 것을 봐야 한다.
다른 적이라면 모르되, 청풍에게 있어 육극신은 하늘이 정해준 숙명이기 때문이었다.
파라라라락!
이번에는 육극신이 먼저 짓쳐 들었다.
장포 자락을 휘날리면서.
뻗어오는 연환오검, 검격의 발출보다 거기에 담긴 살기가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장강 물을 뒤엎는다는 파검공진격 오 초식이 단숨에 펼쳐지고 있었다.
청풍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금강호보와 풍운룡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공명결의 힘으로 파검공진격의 궤도를 읽어내면서 쇄도하는 육극신을 맞이했다. 그의 발치에서, 바로 옆, 그의 몸 뒤에서 폭발하는 공기가 비산하고 있었다.
꽈아앙!
백호와 청룡을 교차시키며 파검의 일격을 막아냈다.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괴력이다. 순식간에 침투해 오는 내공이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자하진기를 백호검에 집중하고 청룡검을 비틀었다. 미세하게 생기는 틈 사이로 용뢰섬을 펼친다. 절묘함을 넘어선 신기였다.
키링! 치리리리링!
상대의 파검을 떨쳐내고 뒤로 물러나면서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켰다.
자하진기가 목신운형의 목기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입었던 내상들을 수복하는 것이다.
육극신의 검은 일격 일격이 내상과 직결되는 파괴력을 지녔다. 그것을 그때그때 완하시키지 못하면 이기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한번의 검격으로도 죽을 수 있지만 내상이 축적되어도 죽는다. 자하진기의 무한한 잠재력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숨 한 번 들이킬 시간.
그것이 한계였다. 거리를 좁혀오는 속도가 엄청났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빨라진 것 같았다.
쩡! 파캉!
속도만 빨라진 것이 아니었다. 힘도 더 강해졌다. 청풍의 몸이 두 걸음 뒤로 밀려났다. 육극신의 왼손이 앞으로 나온다. 화살을 활시위에 매기 듯, 뒤쪽으로 돌아간 파검이 살벌하도록 강력한 기운을 품었다.
'마탄포!'
그렇다.
결국 나왔다. 육극신 최강의 절기 파검마탄포가 장전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어느 한 시점, 파검마탄포의 형용할 수 없는 검력이 청풍의 전면을 덮쳤다.
파아아아아!
잊을 수 없었다. 백호검으로 펼치던 백호금광을 단숨에 지워 버리던 그 무공이다.
"하아압!"
이번에도 그렇게 당할 수는 없었다.
청룡검을 앞으로 겨누고, 백호검은 뒤에서 거든다. 청룡운해 두 발, 쌍검으로 펼치는 청룡결의 연환검이었다.
꽈앙! 꽈아앙!
검들이 충돌하는 소리가 화탄이 터지는 폭음과도 같았다.
내력과 기혈이 일순간에 뒤엉키며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죽음의 예감이 뇌리를 스쳐 간다. 마탄포의 발출과 함께 쇄도한 육극신의 파검이 청풍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끝이다."
육극신이 발하는 마음의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백호검과 청룡검은 파검마탄포의 힘에 휩쓸려 제 갈 길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두 팔을 움직여 파검을 막기엔 늦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빠져나올 길은 없었다. 그렇게만 보였다.
그때였다.
치링! 치리리링!
청풍의 등뒤, 열 십 자로 교차된 두 개의 검이 하늘로 뛰쳐나왔다.
현무검의 강렬한 묵광이 청풍의 머리 위에서 파검의 일격을 막아내고, 주작검의 날카로운 홍광이 파검의 옆으로 파고들며 육극신의 목을 노렸다.
놀라움의 순간, 육극신의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쳐갔다.
쩡! 채애앵!
공명결로 뽑아낸 현무검과 주작검은 파검의 마강한 힘을 버텨내지 못했다.
현무검이 일격에 튕겨 나갔고, 육극신의 턱 밑에 이르던 주작검도 가볍게 막혀버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족했다.
위기에 빠졌던 청풍의 목숨을 구해주었을 뿐 아니라, 상대에게 있어서도 충분히 효과적인 한 수였다.
휘익, 턱.
백호검과 청룡검을 고쳐 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파검에 부딪치고 공중을 선회한 두 개의 신검이 청풍의 양옆을 맴돌았다.
"어검(御劍)?"
인세에 다시없을 광경이었다.
깎아지른 외모에, 영웅의 기상이 물씬 우러나는 몸 주위로 생명을 얻은 것처럼 하늘을 날고 있는 신검들이 있었다.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완전에 가까운 모습이다. 천하를 집어삼킬 듯한 육극신의 패기(覇氣)에도 전혀 밀리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다.'
감추어두었던 모든 것을 꺼낼 때가 왔다.
청풍의 발이 화천의 질주를 시작했다. 질풍처럼 나아가는 그다. 하늘을 나는 두 개의 검이 뒤질세라 그의 뒤를 따라왔다.
쿠우웅! 쩌어엉!
청풍의 백호검과 육극신의 파검이 부딪쳤다. 대령투형보의 진각음이 육극신의 일격에 강맹함을 더하니, 선봉인 백호가 단숨에 뒤로 밀려나갔다. 역시나 강했다. 절대자의 위용이었다.
'그래도 간다!'
하지만 그럴수록 도전자 청풍의 눈은 극복의 의지로 불타오록 있었다. 밀려나는 백호검을 손에서 놓고, 청룡검을 내뻗었다. 백호검과 똑같이 밀려나는 청룡검이다. 반보 앞으로 나가며 몸을 회전시킨 청풍이 비어 있던 오른손을 치켜 올렸다. 오른손 손가락에 감겨 드는 홍백의 검자루, 주작검이 그의 손에 잡혀 들었다.
파라라라락!
염화인의 일격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무공, 집약된 살기가 대단했다. 육극신이 반보 뒤로 물러나며 대천마진벽의 검벽을 땅 위에 세웠다.
키잉! 쩌저저저정!
대천마진벽 일 초가 무너지고 있었다.
최강의 공격력, 주작검이다. 육극신의 미간이 좁혀지고, 그의 눈이 살의의 섬광을 띠었다. 반보 더 물러나며 왼손을 앞으로 겨눈다.
뒤로 치켜드는 파검, 파검마탄포였다.
일격필살.
파검마탄포의 일격과 염화인의 일격이 서로를 향해 짓쳐 나갔다.
두 사람 사이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사방의 땅바닥이 움푹움푹 패이고, 근처 물가의 살얼음이 미친 듯 부서져 나갔다. 부서져 나가는 주변의 공기처럼, 염화인의 불길도 꺼져서 흩어져 버렸다.
파검마탄포의 위력은 그와 같다.
더 강하고, 더 강대했다.
염화인을 꿰뚫고도 모자라 청풍의 심장을 향해 다가온다. 수류구보, 흐르는 몸의 뒤쪽으로 청룡검을 놓아버렸다. 그곳으로 하늘을 날던 현무검이 잡혀 들었다.
콰아아아!
해일처럼 올라오는 힘이다. 철해벽의 방패였다.
파검마탄포의 막강한 검격이 현무검의 철벽에 막혀 그 막강한 위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육극신의 파검마탄포는 그 일격으로 끝이 아니었다. 언젠가 참도회주에게 들었던 말이 잇다. 만혼도를 탈출하던 때, 흠검단주, 성왕단주가 된 갈염이 육극신의 파검마탄포 삼 초를 받아냈었다고.
내뻗었던 파검을 휘돌리며 회전을 더한다.
파검마탄포 이격이다.
이전보다 더 강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
청풍은 오른손 주작검을 놓아버리고 공중을 선회하던 청룡검을 잡아들었다.
그대로 쌓아 올리는 철해벽이다. 청룡검이 만들어낸 철해벽 뒤에 현무검이 철해벽이 한 겹 더 올라갔다. 철해쌍벽, 파검의 두 번째 마탄이 그 벽을 향해 쏘아졌다.
퍼어억! 쏴아아아아!
커다란 파도 위에 발사한 함포(艦砲)와 같다.
무적의 방패로만 생각되었던 철해벽이 대번에 터져 나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육극신이다. 회전하는 마탄이 두 번째 철해벽에 충돌했다.
꽈아아앙!
두 번째 철해벽까지 무너진다. 현무검과 마주 닿은 파검이 무서운 진동을 발했다.
세 번째인가.
아니다. 세 번째는 파검마탄포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허(虛)를 찌르는 일격이다. 마탄포 대신 파검공진격이다. 공간을 격하여 모여드는 힘의 압축이 청풍의 가슴 앞쪽에서 무서운 살기를 발했다.
꽈아앙!
청풍의 몸이 뒤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튕겨 나갔다.
그의 입에서 진한 핏물이 울컥 뿜어져 나왔다. 따라붙는 육극신의 파검이 청풍의 허리를 통째로 갈라 버릴 듯 휘둘러졌다.
쩌어엉! 터엉! 터어엉!
현무검의 묵직한 검날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죽었다.
'충격이 너무 강해!'
한번 빼앗긴 싸움의 흐름, 청풍의 신형이 계속하여 뒤쪽으로 밀려났다. 앞에서 몰아쳐오는 파검을 막아내는데, 그 위력이 너무도 강했다. 전진할 도리가 없었다.
촤아악! 촤아아악!
물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발뒤꿈치가 젖어 드는 곳까지 왔다.
대천진 장강 수면까지 밀려온 것이다. 두 사람의 충돌하는 경력에 물방울이 비산하며 떠오르는 동녘 하늘 태양 빛을 반사시켰다.
쩡! 쐐애애액!
부서지는 살얼음 조각과 튀어 오르는 물살이 희뿌연 빛의 장막을 만들었다.
장엄하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그림 같은 일전이었다.
빛의 장막을 헤치고 솟구쳐 오르는 청풍의 손에서 청룡의 신검이 뛰쳐나왔다. 금강탄을 펼치며 던져 낸 비검(飛劍)이다. 일직선을 쇄도하는 청룡검이 녹청의 빛을 머금었다.
"하아아압!"
주작검이 날아와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청룡검을 던진 것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대로 내려치는 염화인에, 육극신의 파검이 대천마진벽의 비기를 펼쳐 놓았다. 청룡검 금강탄과 주작검 염화인을 동시에 막아내는 마진벽! 터져 나오는 충격파에 장강의 물살이 하늘 위로 용솟음쳤다.
쏴아아아아!
비 오듯 쏟아지는 물이다.
멈추었던 육극신의 신형이 다시금 움직임을 시작했다. 뛰어오른 청풍을 향하여 수면 위를 질주한다.
물 위를 달리는 육극신이다. 무한한 능력의 증거였다.
채앵! 채채채채채챙!
공중에 뜬 채로.
파검과 주작검이 얽혀 들며 순식간에 십여 합을 교환했다. 두 사람 모두 쾌검의 극치를 보여준다. 틈을 비집고, 아니 틈을 꿰뚫고 뻗어지는 파검, 청풍의 단전을 행하여 뻗어왔다.
쩌어엉!
어느 것 하나도 육극신을 이기지 못한다? 그렇지 만도 않다. 주작이 버티지 못하면 현무다. 현무검의 넓은 검신 파검을 막아내니, 뒤쪽으로 날아가고 마는 청풍의 몸이다.
살얼음 얼어 있는 수면 위에 청풍의 그림자가 비쳐 들었다. 던져지듯 하늘을 날았지만 그 뒤에는 그의 발을 버텨줄 땅이 없다. 오직 장강의 물결뿐, 이대로라면 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붙는 육극신을 보는 청풍의 두 눈에 일순간 섬광 같은 빛이 떠올랐다.
촤아아아악!
물 위를 걷는 거.
육극신이 가능했으니, 청풍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청풍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수면 위를 스치며 날아온 청룡검 검신 위에 두 발을 올리며 공명결을 최대한 끌어 올린다. 물살을 헤치며 선회하는 청룡검, 그 위에 올라선 청풍이 육극신의 파검을 맞이했다.
쩌어엉!
검 위를 올라 물 위를 난다. 세상에 다시없을 절묘한 기지다.
지닌 바 능력을 다 끌어내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청풍은 비로소 사신검으로 펼치는 어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촤악! 촤아악!
청룡검을 박차고 뛰어올라 육극신에게 짓쳐 든다.
주작검으로 염화인을 펼치는 측면으로 하늘을 날던 백호검이 육극신의 빈틈을 노렸다.
공명결, 자하진기의 의식 안에서 신검의 의지가 하나로 귀결되고 있었다.
쩡! 채애앵!
육극신의 두 눈에 처음으로 다급한 빛이 떠올랐다.
공진격을 펼치고, 파검을 휘두르며 주작검과 백호검을 막아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물살을 가르던 청룡검이 어느새 날아와 그의 등 뒤를 위협하고 있었다. 네 자루의 신검, 상대해야 할 검들이 단숨에 네 배로 늘어버린 것이다.
챙! 채앵!
몸을 돌리며 청룡검을 비껴내고, 이어지는 청풍의 공격을 차단한다. 몰아치는 경력의 여파가 출렁이는 물 위를 미친 듯 내달렸다.
파라라라락!
물 위에서 싸우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일까.
육극신이 장포를 휘날리며 하늘을 향해 신형을 뽑아 올렸다. 수면에서 벗어나 땅 위로 내려서는 것이다. 뒤를 따르던 청풍의 신형이 빠르게 쏘아졌다.
채앵! 키이잉! 채챙!
지닌 바 무공을 바닥까지 끌어내며 서로가 서로를 향해 절기들을 펼쳐냈다.
어느 한쪽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니, 다섯 합이 열 합이 되고, 열 합이 스무 합이 되는 것은 금방이다. 육극신의 무력이 조금 더 앞서는 듯하였지만, 그것은 누가 봐도 백지 한 장 차이라 할 만했다. 길어지는 싸움에 장강 저편에서 떠오르던 태양이 하늘 위로 올라갔고, 피어 오르던 안개가 옅어지며 차갑게 몰아치는 겨울 바람만이 남았다. 시간이 가도 느려지지 않는 두 사람의 신형, 보는 사람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드는 신기(神技)가 속출하고 있었다.
꽈아앙! 쩌어억!
몇 합이나 주고받았는지 모른다. 이미 헤아릴 수 있는 숫자를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내리찍은 파검의 검력이 땅 위에 균열을 만들고, 대지를 밟는 진각에 뚜렷한 족적들이 남는다. 그런 식이다. 그들의 충돌 반경 안에 있는 모든 기물이 무차별로 터져나가며 경천동지의 격전을 알렸다.
"믿을 수 없다. 저것이 사람의 무공인가.....!"
누군가 발한 감탄사. 그것이 곧 그 싸움의 모습이다.
싸우면서 배우고, 싸우면서 강해진다.
청풍뿐이 아니라, 육극신도 마찬가지다.
공중에 떠 있는 검들을 바꾸어가면서, 또는 날고 있는 검들을 그대로 쏘아내며 질풍같은 공격을 펼칙 있지만, 이미 절대자의 위치에 올라 있었던 육극신은 단 한 자루 반 토막 파검만을 휘두르며 그 신검의 위력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쩌어어엉! 파락! 파라라락!
한번의 강렬한 충돌이 있은 후, 두 사람의 신형이 삼 장 거리를 두고 떨어져 나왔다.
청풍의 도포가 발기발기 찢어진 것을 벌써 오래였고, 육극신의 장포 역시 이곳 저곳 성한 곳이 없었다. 곳곳에 배어 나오는 핏자국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직접 검상을 입은 것보다 피부 자체가 견디지를 못하고 터져 나간 곳들이 보였다. 하나하나 파괴력 있는 공격을 주고 받다 보니, 사람의 육신으로 그 공격을 완전하게 견뎌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강하군. 확실히 강해."
육극신의 목소리에는 청풍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 어려 있었다.
서로의 실력을 볼 만큼 본 지금.
기술과 내력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도 알았고, 서로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았다.
"이런 싸움은 실로 오랜만이다. 죽이기 아까울 정도야."
육극신은 진심으로 말했다.
절대자의 풍모 속에 인간이 있다. 서로의 진심이 마주 닿는다.
싸움에서 밀려도, 내력이 부족해도.
청풍은 다짐한다.
그가 그 마음속에 있는 언어를 마음껏 발산했다
"나는 이 싸움에서 죽지 않을 것이오. 얼마든지 그 검을 겨누어 보시오."
청풍의 목소리가 바람이 되어 뻗어나갔다.
스쳐가는 바람.
육극신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이라 할 만한 표정이 깃들었다.
그러한 육극신.
청풍마저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맑은 미소를 떠올린다.
운명과 운명이 통렬하게 부딪치는 지금.
결국은 의지의 싸움일진가.
천명(天命)의 무게와 깨달음의 차이로 모든 것을 결정할 때였다.
터엉! 터어엉!
땅거죽이 터져나가는 진각 뒤에 서로를 향하여 뛰어드는 두 명의 영웅이 있었다.
나아간다.
육극신.
대력투형보 육식에 파검공진격 오 초식이 펼쳐졌다.
선회하여 날아드는 두 자루 신검이 보법의 맥을 끊고, 교차되는 두 자루 신검이 공진격의 막강한 폭발을 견뎌낸다. 모여드는 네 자루 검에 폭발적인 기세가 실리니, 발검 사신(四神), 금강탄의 검격이다. 질주하는 사금강(四金剛)에 대천마진벽이 올라오고, 무너지는 벽검 뒤에 네 자루 백야참이 퍼져 나갔다. 사백야(四白野)의 반월(半月)에 마진벽의 이초가 펼쳐졌다.
상쇄되어 흩어지는 경력이 무시무시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신화(神火)를 지피는 불의 소용돌이다. 주작검을 필두로 한 염화인 네 개가 쏟아졌다. 염화사신(炎火四神)이었다.
대천마진벽 삼초식이 올라왔지만, 염화사신의 겁화는 그 벽을 단숨에 허물어 버릴 만큼 거셌다. 육극신이 몸을 휘돌리며 대천마진벽 사초식을 일으켜 올렸다. 가장 단단하고 견고한 철벽의 무공이다. 공명결로 움직이던 청룡검과 백호검이 먼저 튀겨 나갔지만, 주작검과 현무검은 아직도 염화의 인을 꺼뜨리지 않고 있었다.
빠르게 쇄도하는 두 개의 신검이다. 그에 맞서는 육극신. 그는 대천마진벽을 펼치지 않았다. 왼손을 뻗고 오른손 파검을 뒤로 돌린다. 파검마탄포 일초식, 반격의 마탄(魔彈)을 장전한 것이다.
꽈아아앙!
영화인 두 개와 정면으로 격돌한 파검마탄포다. 불길을 꿰뚫고 쏘아지는 강맹한 검력이 청풍의 중단을 향해 뻗어나갔다. 화천작보의 기쾌함과 수류구보의 신묘함을 동시에 펼쳐 보았지만, 완전히 피해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사금강, 사백야, 염화사신의 막대한 신기가 그의 육신에 부담을 주었던 까닭이었다.
퍼어억!
청풍의 옆구리가 한 웅큼 터져 나가며 붉은 선혈을 내뿜었다.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고통 따위는 대수로울 것이 없다. 회전하는 육극신의 파검이 파검마탄포 이초, 마왕(魔王)을 준비하고 있었다.
죽음의 위기, 확장되는 의식이 공명결의 가속을 불렀다.
백호검과 청룡검이 날아와 철해벽의 검결을 일으킨다. 싸우면서 익숙해진 어검(御劍)의 비기였다. 이제는 어검으로 초식을 만들고, 어검으로 강력한 힘을 담고 있었다.
콰콰콰! 콰아앙!
백호검과 청룡검의 방패는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파검마탄포 이격의 위력을 막아내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박살 나 흩어지는 벽검의 진경 뒤로 마지막 세 번째 벽이 기다린다. 현무검으로 발하는 진정한 철해벽이었다.
꽈아아아아!
검과 검이 닿지 않음에도. 두 검이 뿜어내는 내공의 기파가 강렬한 진동을 일으켰다.
힘과 힘의 싸움. 의지와 의지의 싸움이다.
결국.
철해벽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마탄의 경력이 청풍에게 쏘아졌다.
그러나 삼신검(三神劍)의 철해벽, 철해삼벽 뒤에는 아직 굳게 겨눈 주작검이 남아 있었다.
철해벽의 여력과 자하진기의 공능이 주작검 끝에 모인다.
포(砲)에는 포(砲).
현공포(玄功砲)였다. 북제 현무의 비기가 주작의 살기를 품고서 마탄포의 공력을 휩쓸었다.
한꺼번에 삼켜서 단숨에 내뿜는 일격이다.
마탄포를 무위로 되돌리고 육극신의 전면으로 몰아칠 때.
휩쓸려 깨져 버릴 듯했던 육극신의 파검이 일순가 모든 것을 지워버릴 것 같은 묵광(墨光)을 피워 올렸다. 삼초식 파검마탄포의 마지막 일결, 마신(魔神)이었다.
우우우우우웅! 화아아악!
앞으로 나아가던 현공포 검력이 마신의 위력에 부딪치며 커다란 뒤틀림을 겪었다.
중단을 노렸던 막대한 공력이 단숨에 꺾여 지고 만다.
왼쪽 어깨를 부숴놓고 지나가는 검력.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육극신의 어깨 한쪽이었지만 청풍은 목숨이다. 마신(魔神)의 탄포(彈砲)가 청풍의 전신을 휩쓸었다.
콰아아아앙!
화탄이 터지는 소리다.
지축을 울리는 소리뿐 아니라, 그 광경까지도 그랬다. 일 장에 가까운 땅거죽이 터져 나가며 부서진 돌 가루가 사방에 흩날리고 있었다. 흙먼지가 피어 오르고, 숨 막히는 적막이 찾아 들었다.
"그것밖에 못하나?"
어디에서 들었던 소리였던가.
모든 것이 까마득한 어둠 속이다.
이내 청풍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을지백의 목소리다. 과거의 을지백인지, 아니면 청풍 자신이 발한 마음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목소리가 말했다.
"어검(御劍)의 묘리(妙理)를 깨우치고도 그 정도라니, 아직 멀었어."
여전한 말투였다. 스쳐 지나가듯 의식 저편으로 사라진다. 을지백이 사라진 자리로 진중한 목소리, 천태세의 목소리가 채워졌다.
"타고난 품성이 선(善)하다면, 검(劍) 역시도 세상을 살리는 활검(活劍)을 쥐어야 하겠지. 원한이 제아무리 깊다 한들 똑같이 갚아준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눈으로 하늘을 받아서 마음으로 세상을 열어야 진정한 신검(神劍)을 얻을 수 있느니라."
마음으로 세상을 열어라. 천태세가 세상 밖으로 사라졌다. 자유로 충만한 불꽃의 영혼이 찾아 들었다.
"이제 와 활검이라 한들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아니겠지요. 살검(殺劍)을 알아야 활검도 쥘 수 있는 법! 그것은 구하고자 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닿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장에 있다면 전장의 검(劍)의 마음껏 휘두르는 것이 무도(武道)의 진리일 터.... 검을 잡고 일어나십시오. 지금은 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싸움에 미쳐 버린 무공광, 그렇게만 생각했던 남강홍이다.
그가 말했다.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청풍은 비로소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싸움터다.
그의 육신은 싸움터에 있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육극신. 파검마탄포에 휩쓸려 이르게 된 의식 저편의 어떤 곳, 청풍이 있는 곳은 정신을 읽은 어둠 속 그곳이었다.
"주작살과 현무갑을 펼쳐 놓고도 스스로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는 자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 자가 만검의 제왕을 칭할 수 있겠는가. 내가 모시던 제왕이 아니었기에 무공을 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죽게 놔두어서야 안 되겠지. 이 싸움은 그저 검을 겨루는 싸움이 아니다. 근원에 이르러서 진정한 모습을 보여라."
북제, 북진무의 목소리가 청풍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그를 일깨우는 말이다.
그는 다른 셋처럼 무공을 가르쳐 준 이가 아니었다. 난데없이 나타나곤 했던 다른 세 명 같은 스승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와 가장 큰 깨달음을 전해주는 북진무였다.
숙명의 싸움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준다.
청풍의 근본, 청풍이 청풍으로 있게 해준 모든 것.
그의 몸 깊은 곳으로부터 새로운 힘이 생겨났다.
자하진기다.
훗날 전설이 되어 전해지게 된 화산파 최강의 심법인 자하신공이 그의 몸을 새롭게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