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4화 (4/107)

4장. 천수

이튿날 아침 용천과 용악 그리고 옥천관의 병사들은 옥천관을 지킬 최소한의 병사들만 남겨두고 서축과 황서의 경계도시인 천수로 향했다. 지금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시기. 이종족들이 사막을 넘어 오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대비하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병사들은 남겨두고 천수로 향했다.

오늘 새벽 연왕이 벌써 황서에 들어섰다는 전령이 도착했다.

천수에서 황적관으로 황적관에서 옥천관까지 온 시간을 계산해보면 이제 병사들을 이끌고 천수로 향하면 황서를 막 점령한 연왕과 만날 수 있으리라.

다른 장군들은 황적관에서 그 소식을 듣고 천수로 향했다고 한다.

‘아마도 좌,우 장군이 설명을 했겠지.’

좌,우장군은 서축성의 성도인 난주에 남아 서축지부대인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전쟁을 대장군인 용천이 주도 한다 하더라도 지부대인은 만나야 할 사람. 그래야 이 후의 일들을 계획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말(馬)을 재촉해 예상보다 빨리 용천과 휘하 장군들은 난주에 들어섰다. 난주에 들어서자마자 지부대인을 만나러 용천은 서축관저로 향했고 하후양은 병사들에게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바로 천수로 향한다고 전했다.

“어서오시오. 대장군”

“지부대인께서도 잘 지내셨는지요.”

용천은 지부대인의 인사를 받으며 마주 인사 했다. 서축지부대인 천안호는 관리답지 않은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어 오히려 장군이라 불릴 만 했다. 눈에서 정광이 흐르는 것을 보고 아마 공동신전의 속가 제자라는 소문이 사실인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사실 용천과 천안호가 서로 만날 일은 극히 드물었다. 만날 일이 있으면 서로 부하를 이용해서 만났으니 말이다.

서축지부대인인 천안호는 서축태생으로써 오래전부터 서축을 맡아오는 관리였다. 용천이 워낙 서축에서 유명하기에 그의 이름에 묻힌 인물이지만 지금까지 서축을 이곳 저곳을 발전시키고 상인들과의 교역제도를 바꿔서 서축을 부강하게 만든 것을 보면 그 역시 인물은 인물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용천대장군.”

지부대인의 인사를 받던 중 용천은 지부대인 옆에 서있는 사제가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척을 숨기다니. 물론 용천이 옥문관에서 여기까지 급히 오고 또 바로 천수로 향해야 하기에 정신이 조금 산만했기는 했지만 그래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을 보면 그 사제도 대단한 고수인 듯 했다.

머뭇거린 것도 잠시 금세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용천은 사제에게 인사를 건넸다.

“공동신전의 대사제님이셨군요. 오랜만에 뵙소이다. 아직도 정정 하시군요”

“죄송합니다. 장군님 제가 대사제님께 기별을 넣었습니다.”

우장군 옆에 있던 장수중 한명이 말을 꺼냈다. 우장군 밑에 있는 장수중 공동신전의 사제가 있다고 하던데 그 가 바로 이사람 이구나 하고 잠시 생각했다.

대부분의 장군들은 용천이 알고 있지만 우장군 밑에 있는 장군들은 워낙에 돌아다니는 일이 많고 새로 뽑는 장군들이 많아서 용천이 몰랐던 것 이였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용천과 지부대인 그리고 공동신전의 대사제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들어오면서 우장군 사마군이 용천에게 지부대인과는 이야기가 다 끝났음을 말해 주었기에 다시 말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대사제님, 무림인들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무림인들도 이번 일에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관과 무림은 서로 상관하지 않는 소 닭 보듯 하는 사이기는 하지만 무림은 관의 지배하에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연왕은 무림인들과도 친분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아무래도 장강 북쪽에 있는 무림인은 아마도 연왕에게 힘을 보탤 것으로 생각 됩니다.”

관과 무림.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무림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생겨난 후로부터 관과 무림은 서로 상관하지 않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하지만 관에서 무기를 다루는 무사들은 어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또한 무림인들이 무기를 아무리 잘 다루고 심법을 익혀 내공을 익혔다고는 하나.

초절정 무림인이라도 병사가 수백만 되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거기에 그런식으로 관과 사이가 틀어지면 중원에서 살 수는 없는 일이였기에 웬만한 일이면 서로 상관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관의 힘이 무림보다 더 큰 시기.

대대로 관이 무림을 정복하려고 한 시도는 몇 번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현재는 지배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동반자로 삼으려는 경향이 더 컸다.

그래서 무림인들은 한제국 백성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호패와 여행증명서인 노인 대신에 무림인패 라는 것을 발부 받을 수 있었고 또 받아야만 했다.

그것이 호패와 노인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대문파에서는 그 문파 자체에서 발행한 패가 효력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중소문파나 중소표국들은 각 성에 마련된 심사관에서 심사를 마치고 무림인패를 받는다. 그렇기에 알게 모르게 관이 무림에 영향력을 행사 하는게 지금의 현실 이였다.

“그렇군요. 강북무림인들은 그렇다 치고 강남무림인들도 영향을 받겠지요?

“그쪽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쩌면 더 클 수도...  강남은 강북과는 다르게 명문대문파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기에 파천맹이니 청룡맹이니 하는 대문파들은 좀 더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왕자들과 손을 잡을 것입니다. 대문파들도 그러는데 중소문파가 안 그렇겠습니까?”

용천은 잠시 생각했다.

상황이 이정도니 대사제에게는 말해야 할 듯 싶었다. 혹시라도 서축 무림인들이 다른 지역과 싸워서는 자신이 행 한일이 모두 헛수고가 될 수 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대사제님. 저는 연왕과 친분이 있어 누구보다도 연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왕도 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 보잘 것 없는 목숨과 서축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겠지요?”

용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용천 주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우장군 휘하의 장군들이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용천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우장군이 장군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명령과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명령을 내려 장군들을 만류했다.

대사제와 지부대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의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이윽고 얼마간의 침묵이 있은 후 지부대인이 입을 열었다.

“대장군님... 대장군님과 서축을 바꾼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알고 있다.

하지만 용천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은 것이리라.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지부대인은 우장군과 이번일이 끝나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이미 의견을 다 나누었다. 하지만 그 계획 중 일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우장군이 나중에 용천이 오게 되면 다 알게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이 이런 말일 줄이야....’

대사제는 마른 침을 삼키며 신음을 삼켰다.

“내 목숨을 내놓고 연왕이 서축 에서 손을 뻗치지 못하게 하겠소.”

용천은 말을 마치고 다 식어버린 씁쓸한 차를 마셨다. 자신의 기분이 씁쓸해서 그런지 차가 더욱 쓰게 느껴졌다.

“허허허... 이 노사제는 헛 살았나보오. 이름난 가문의 명장이 목숨을 바쳐 이 땅과 백성을 살리려 하는데 이 늙은 사제는 제 한 목숨 아까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니 말이오.. 허허허. 용천대장군. 대장군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공동신전은 오늘부터 난세가 끝날 때 까지 봉문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서축을 돌며 중소문파들을 만나 자중하라 이르겠습니다. 그들이 어찌 그대의 명을 어기겠습니까. 허허허.”

“하하. 대사제님 어찌 제가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저 그들도 서축에 살아가는 이들이니 부탁을 드리는 것뿐이지요.”

“대사제님. 저도 돕겠습니다. 중소문파들에게 말을 해놓겠습니다.”

지부대인도 대사제를 돕겠다고 하며 나섰다.

지부대인도 이번일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기 때문 이였다. 혹여 무림인들이 말썽이라도 일으킨다면 용천의 희생은 그야말로 헛수고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허허허.. 난세가 도래하니 하늘의 별은 떨어지고 어리석은 무리들만 횡행하는구나..”

대사제의 말이 끝나자 장래는 갑자기 숙연해 졌다. 병사들 그리고 장군들 중 그 누가 모르랴. 용천의 마음을..

“하하하. 대사제님 저 아직 안 죽었습니다.”

용천은 웃으며 말을 했지만 장내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공허하고 슬픈 웃음으로 들렸다.

용천과 용악 그리고 지부대인과 남은 병사들 모두 서축의 다른 병사들이 모여 있는 천수로 향하였다. 공동신전의 대사제는 공동신전에 갔다 온다고 하면서 용천과 만나고 난 후 바로 떠났다.

서축과 황서의 경계도시인 천수성 밖은 낮은 풀들이 자라는 전형적인 평야 형 녹지였다. 그 평야의 한쪽으로는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구릉지대 위에 연왕의 깃발과 4성의 깃발이 휘날리는 게 얼핏얼핏 보였다.

전령이 알려온 사실에 의하면 얼추 보아도 병력은 10만 이상.

4성의 군사들과 연왕의 군대가 함께 왔을 것이다. 연왕은 지금 왕자들과도 싸우기 위해서 병력의 많은 부분을 장강쪽으로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많은 병력을 끌고 오다니...’

“대장군님. 전 군사들이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전장군. 전투의 선봉을 맡는 장군인 마청이 용천에게 창을 건네며 말했다. 용천의 뒤로는 3만의 기마대가 도열해 있었다.

흉갑과 투구에 소용돌이치는 태풍의 모양이 그려져 있는 갑주.

이것이 바로 서축이 자랑하는 철갑기마대. 폭풍기마대의 표식이었다.

“출진한다. 속도는 중보. 대형은 추행진에서 적이 보이는 거리에서 어린진으로 변형한다.”

“옛. 대장군”

마청는 말을 마치고 자신의 말에 올라타며 깃발 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서축군이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은 깃발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물론 북 등을 이용한 소리로 인한 명령전달 방법이 있으나 이종족들과 오랜 전쟁을 통해 서축군은 깃발을 이용한 명령전달 방법만이 남았고 또 가장 익숙했다.

“전군(全軍) 진군(進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