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32화 (32/107)

32장

해적들은 약간 처절했던 그 모습을 보고서는 술맛을 잃었는지 슬슬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그들이 아무리 해적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일을 하고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구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말이다.

용악은 곽철이 시신을 붙잡고 그렇게 해가 뜨고 불귀동이 밝아질 때까지 울었다. 용악이 자신을 떠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가치 없는 눈물뿐이리라.

날이 밝아지고 나서야 용악은 울음을 그치고 바구니 안에 들어있던 음식을 주섬주섬 천천히 씹어 먹었다.

‘어떻게들 살아남으리라. 절대로 곽철형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를. 곽철형을 이렇게 만든 해적들 모두 처참하게 죽이리라.’

자신보다 더 처절하게!

곽철 형보다 더 아프게!

해가 완전히 하늘위로 떠올랐을 때 쯤 위에서 줄사다리가 내려왔다. 사람들이 타고 내려왔던 그 사다리다. 용악은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위에서 해적들이 사다리를 끌어올려주어서 힘이 없던 용악도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불귀동을 빠져 나오자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불귀도의 한쪽 구석에 있던 큰 구덩이였다. 이곳은 해적들이 포로들에게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던 곳 이었기에 그 동안 용악도 이곳이 있는지 몰랐던 곳이다. 용악이 올라가서 땅에 누워 눈을 감고 있자 누군가 용악에게 다가와서 햇빛을 막아 그늘을 만들었다.

‘해적인가.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건가?’

“이제 일어나지 꼬마. 나는 그곳에 없었기에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좀 더 처절했다고 하더군. 어찌됐건 불귀동안에 있는 시체들은 네가 처리해야 된다. 네가 라고 하니 좀 그렇군. 불귀동 에서 살아남은 자가 시체를 처리하는 거다. 이 도르래를 통해서 시체를 끌어올리는 거니 너도 쉽게 할 수 있을 거다. 기한은 없으니깐 알아서 해도 상관없지만 늦장을 부리다가는 다시금 불귀동으로 들어갈 때 고생 할 테니 빨리 하는 게 좋을 거야.

사용방법은 간단해. 그냥 끌어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시체는 저쪽에 보이는 터에서 태우면 된다. 나무는 있으니까. 그럼 수고해.”

‘불귀동에서 살아남은 자가 불귀동에서 죽은 자를 수습하라고? 웃기는군... 자기들은 혹시나 죽은 자들의 원혼의 저주를 받기 싫다는 건가? 흥! 어찌됐든 상관없겠지.’

용악은 쇠로 테두리가 된 천을 도르래에 묶어 내려 보내고는 사다리를 타고 자신도 불귀동 안으로 내려갔다. 용악은 처참하게 널브러져있는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토악질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 시체 썩는 냄새가 싫을 뿐 슬프지도 않았다. 이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이는 없으니...

‘아... 곽철형. 형은 마지막에 올려 줄께요.. 더운 곳보다 여기 있는 게 그래도 더 나을거에요.’

용악은 곽철의 시신을 한쪽 구석에 잘 놓고서 시체를 하나씩 들어서 천위로 옮겼다. 한 번에 한명씩 밖에 옮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죽어버린 자여서 그런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도르래는 적어도 4중 혹은 그 이상의 도르래인지 용악의 힘만으로도 그 시체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체 10명도 끌어올리기 전에 이미 해가 저버렸다. 용악은 대충 아무데나 누워서 잠을 청했다. 주위에는 해적들도 감시를 하고 있지 않았다. 해적들은 다른 포로들이 이쪽으로 오는 것을 막기만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불귀동에서 살아난 자를 밖으로 보낼 수 없다는 뜻이거나.

용악이 가만히 누워 생각해 보니 자신을 불귀도로 다시 보낼 것 같지도 않았다.

‘불귀동에서 돌아온 사람은 없다고 들었으니 자신 역시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그럼 죽을 때 까지 이 지옥 같은 구덩이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이냐!!!! 오냐! 끝까지 살아남아 너희들 모두 죽여주마!

그때를 기대해라.

지금은 이렇게 있지만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나는 너희들 모두를 죽이리라.’

용악은 스스로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용악은 불귀동에서 시체를 꺼냈다. 엄청나게 굶겨 놓고서 어제 겨우 한 끼 먹여놓고서 해적들은 용악에게 일을 시켰다. 용악의 몸 상태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지만 용악은 내색하지 않고 일을 했다. 그래도 오늘은 끼니가 되니 불귀동에 오기 전에 돌을 캘 때 먹었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거라도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고 생각하며 용악은 부지런히 먹었다.

오늘은 다행히도 해가지기 전에 시체를 모두 꺼낼 수 있었다.

곽철의 시체까지도.

그날 밤 용악은 그렇게 곽철의 시체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 이미 죽어버린 곽철의 손이였지만 그래도 용악에게는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시체들을 화장터로 끌고 갔다. 죽은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용악의 힘으로는 들고 갈수가 없었기에 끌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시체들을 끌어다 놓고서는 용악은 시체들의 품을 뒤져서 소지품들을 꺼내고 훼손된 시체들은 대충 모습을 맞추어 주었다. 사실 누구의 손이 누구의 손인지 알 수 없었기에 대충 모양만 맞추었다.

한 번에 몽땅 몰아서 태워 버릴까 하다가 화장터 주위를 살펴보니 비석 근처에서 잘라 온 덤불나무도 꽤 많았기에 한 사람씩 태우기로 마음먹은 용악이였다. 화장터는 꽤 넓었기에 한번에 6.7명은 태울 수 있었다.

다 타려면 적어도 2.3일은 걸릴 테니 다 태우면 대충 시간이 맞을 거라 생각했다. 용악이 불귀동으로 다시 들어갈 때 까지 말이다.

시체를 태우면서 용악은 같이 꺼내온 무기를 가지고 돌을 파서 석함을 만들었다. 해적들은 용악이 무기들도 가져가는 것을 알았지만 머라고 하지는 않았다. 용악은 하루에 2.3개씩 꼬박꼬박 석관을 만들었다. 자신이 배운 무공을 고작 석관을 만들다 는데 쓴다는 생각이 들어 우습기도 했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만들었다.

이렇게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음번에 들어가게 되면 용악이 도움을 청할 사람은 없었기에 무공을 수련해야만 했다.

어떻게든지 살아야 하니.

용악은 시체들을 태우고 석관을 만드는 동안에도 틈틈이 시체에서 나온 소지품들을 살펴보았다.

일기장 비슷한 것도 있었고 금붙이와 값나가는 보석을 가진 자들도 혹은 비급을 가진 자들도 있었고 다들 하나씩은 자신들에게 특별했던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일기장을 보면서 용악은 동해군도의 섬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 수 있었고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도 이와 같은 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붙이와 보석들은 모아서 해적들에게 조금씩 주어서 음식을 조금 더 받아먹는데 사용하였고 비급 같은 것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신이 가진 무공도 모두 할 줄 모르는데 다른 비급을 보아서 무엇 하랴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알면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나처럼 죽음의 위기에 빠져 있을 테는.’

그렇게 30명의 석관을 만들고 난 후 재를 치웠다. 진짜 화장터에서 태워 남은 재처럼 하얀 재는 남지 않았지만 완벽한 화장터가 아니어서 그런지 검게 혹은 붉은 재가 남았다.

용악은 그런 재들을 석관에 담고 무기들 중 아무거나 하나씩 골라서 석관에 앞에 꽂아 두었다.

마지막까지 살아있던 젠국의 두 검객의 소지품은 그 들이 가지고 있던 도 같았다.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모르겠지만 언뜻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도였다. 다른 무기들처럼 석관에 꽂아 주려다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용악은 이 도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하나는 자신이 수련을 하는데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불귀동 안으로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죽은 사람의 유품을 쓰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염 값으로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용악은 다시 배를 타고 끌러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불귀동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바구니를 노리는 자들이 양패구상을 하고 말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용악은 그저 삐쩍 마른 곧 죽을듯한 어린아이였기에 다른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용악은 죽은 척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을 때 생사를 걸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용악은 바구니를 노리던 자들이 다 죽었기에 어부지리로 음식을 차지하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용악은 다시금 시체들을 치웠고 그들의 소지품을 뒤져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았으며 그들의 시체를 태웠고 석관을 만들며 수련을 해 나갔다. 해적들은 용악이 수련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것이 용악이 건네주는 돈이 될 만한 물건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불쌍한 꼬마였기 때문이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뭐라 말을 하진 않았다.

그렇게 또 1달이 지나갔고 용악은 다시금 불귀동으로 들어갔고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이번에는 기습적으로 마지막에 남은 자의 목숨을 취하기는 했지만 용악 역시 상처를 입었다. 다음번도 이렇게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기에는 성공할 확률이 너무 적었다.

용악의 무공이 뛰어나다면 모를까 영양공급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는 다른 성인남자들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살아남은 사람은 같이 온 사람들 중 가장 강한 자가 아닌가. 그랬기에 용악은 해적들 몰래 불귀동 안에 함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해적들이 용악이 함정을 만든다는 것을 알면 아무래도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용악은 보석들을 찔러주면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게 그들의 소지품을 보면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혹은 다른 여러 가지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습득해 갔고 가끔 있는 무림인들의 비급들과 비상약 등을 챙겼다. 확실히 무림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지품들이 쓸 만한 것이 많았다. 적어도 이곳 불귀도 에서는 말이다.

그렇게 용악은 불귀동에서 1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1년 동안 용악은 죽을 뻔한 상처를 입은 적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 죽지는 않았다. 해적들도 이제 용악이 함정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게 어떤 이유여서인지는 용악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소지품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불귀동에 갇힌 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곤 제국어와 젠국어를 배웠다. 물론 그 사람들과 5일까지만 이야기를 하고 그 남은 5일 동안은 죽은 듯이 지냈다. 그래야 사람들이 용악을 경계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렇게 용악은 그 나름대로 세상을 배워가며 1년 동안 지내왔다.

그렇지만 그 동안 이곳 불귀도를 탈출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곳에서 탈출하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오히려 더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또 하나

불귀동 생활을 하면서 생간 습관은 사람들의 이름을 묻고 또 그것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 것 이었다. 용악은 석관에 쓸 이름을 적기 위해서 묻는 것이었지만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은 흔쾌히 용악이 대화를 청하면 대화를 받아주었다.

어쩌면 자신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지도 혹은 그저 자신의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용악이 물어보는 혹은 자진에서 말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1년을 용악은 항상 똑같은 생활을 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얼마 전.

정확히 말하면 10일전.

그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그때는 이 변화가 용악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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