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 불귀동-저주
용악이 그런 생각을 하며 위를 바라보았을 때 불귀동 위로 횃불을 든 해적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해적은 신경 쓰지도 않고 그저 떨어지는 해적을 신호로 다시금 부딪혔고 이번에 드디어 두 사람은 승부를 낼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죽으면서.
젠국무사는 그의 목을 가르는데 성공 했지만 그와 상대하던 무인의 검은 젠국무사의 허벅지를 갈라놓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젠국무사가 죽은 것일까? 바로 용악이 그 동안 잘 숨겨둔 도로 그 젠국무사의 등을 갈라놓았기 때문이었다.
용악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상대하기에는 벅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해적이 떨어진 것은 바로 하늘이 자신에게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저 해적이 떨어지는 순간 달려 들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두 사람 중 한사람에게 달려든다. 누구든지 상관없다. 두 사람의 실력은 비슷할 테니 자신은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거야.’
‘누가 살아남든 간에 말이지.’
그래서 운 좋게 용악이 노렸던 젠국무사가 상대를 가르고 빈틈을 보였기에 젠국무사를 죽여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쿨럭... 젠장. 강호무림에서는 꼬마를 조심하라는 격언을 잊고 있었군. 그래도 좀 더 무사답게 죽고 싶었는데... ”
그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면서 젠국어로 말을 했다.
“이런 곳에 온 주제에 무사처럼 죽기를 바라는 것은 사치지.”
용악은 그에게 그동안 배운 젠국어로 차갑게 말을 해주었다. 그는 용악이 젠국어를 했다는 것에 놀랐는지 놀란 표정을 짓다가 잠시 후 눈을 감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아... 힘들게 이겼어...’
용악은 힘들게 싸우지도 않았지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그만큼 두 사람의 대결이 대단했고 용악은 그 틈을 찾기 위해 취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하아...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 남았다고”
용악은 바구니를 들고 한쪽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쪽에는 떨어져 죽은 해적이 있었다.
‘어? 그런데 떨어져 죽었는데 무슨 피가 이렇게 많이 나오지?’
용악은 해적의 눈이며 코며 입이며 귀며 하는 곳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철철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절대로 떨어져 죽어서 생기는 증상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해적이 이렇게 떨어질 일은 없지 않은가?!
용악은 이제야 불귀동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온통 불귀동안의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느냐 자세히 듣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번에는 그동안의 전투와 달리 정말 죽을 각오를 할 정도로 힘들었다. 어디선가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들리기도 하는 듯 하고 절규하는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보통 때라면 절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대체 무슨 일이?’
용악이 그렇게 불귀동 위쪽을 바라보자 무언가 희뿌연 한 무언가가 스멀스멀 불귀동안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뭐지? 뭐지? 보통 연기는 위로 올라가지 않나?’
용악은 그것을 보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독연? 독연이라면 그럴 수도. 독연은 공기보다 무거우니까. 그런데 독연이 왜? 왜 이런 곳에?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해적의 죽은 모습은 자세히 살핀 용악은 확실히 독연에 중독된 증상인 것을 확신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독연. 독연해독 방법.’
용악은 그동안 배었던 것을 머릿속에서 모조리 꺼내어 찾고 있었다.
‘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하지만 피할 수는 없어. 그럼 막아야지 어떻게 막지? 연기인데? 독에는 불이 가장 효과적이야. 하지만 독연에도 과연 그럴까?’
용악은 그렇게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독연은 천천히 불귀동 벽을 타고 스멀스멀 내려왔다. 다행히도 연기가 퍼지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빠르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독이 더 밀집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독이 더 강력하다는 말이었다.
용악은 서둘러 시체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아무래도 불을 피우는 수밖에는 없었다. 또 당장은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았고 준비물도 없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해적이 저 횃불과 함께 떨어진 게 정말 다행이었다.
용악은 시체를 한곳으로 모으는 한편 시체들의 옷을 벗겨 해적이 흘린 피와 사람들이 흘린 피에 옷을 적셨다. 물이 있으면 좋겠지만 물을 구할 수는 없었다. 이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용악은 피가 가장 흥건히 있는 곳으로 시체들을 모았고 벗긴 옷의 반은 피에 적시고 반은 횃불을 이용해 불을 붙였다. 시체를 다 모을 때쯤 되니 이제 독연은 불귀동 바닥으로부터 3미르 정도까지 내려와 있었다.
마치 삼각뿔 형식으로 쌓아 놓은 시체들 위에 불에 타고 있는 옷 놓아서 시체를 태우고 피에 적신 옷을 이리저리 최대한 많이 껴입고 용악은 시체더미 한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갔다.
불길이 독연을 막아 줄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었다. 용악은 제발 재수 없게 불에 타 죽지 않기를 바라며 피투성이인 땅바닥에 고개를 박은 체 숨을 거의 참고 진기를 온몸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독연은 천천히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길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썼고 불길은 그 독연을 막기 위해 힘든 사투를 버렸다. 하지만 독연을 막기에는 불길이 역부족이었는지 아주 조금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용악을 죽이기에 충분한 독연이 조금씩 시체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렇게 독연이 용악에게 다가서자 용악의 몸 역시 뿌연 무언가로 덮이기 시작했다. 용악의 몸에서 잠자고 있던 용천의 기운과 불귀도에 떠도는 무언가가 섞여 용악의 몸에 스며들며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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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군도의 해적단 중 무력으로 치면 가장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백고래단의 말단인 작삼은 지금 엄청나게 황당한 일을 맞이했다.
자신이 하는 일은 불귀도의 가까운 섬의 망루에서 불귀도를 감시하는 일이였다. 그런데 자신이 감시하는 그 불귀도가 난리가 났다. 여느 때와 같이 작삼이 망루에서 고개를 처박고 자고 있는 동안에 불귀도에 놀러갔던 해적들이 모두 다 죽어버린 것 이었다.
작삼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불귀도를 희뿌연 안개가 완전히 감싸고 있을 때였다. 작삼은 그제야 두목에게 그 사실을 전했고 두목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그게 벌써 이틀 전 일이다.
만 이틀이 지나서야 그 연기가 언제 발생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만 이틀이 지나서야 연기는 완전히 불귀도에서 가셨다. 무슨 놈의 독이 그렇게 지독했는지 바닷물까지 오염을 시켜서 불귀도 근처에 있던 물고기들까지 때죽음을 당했다.
해적들은 완전히 연기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불귀도에 들어섰다.
불귀도는 완전히 지옥이었다.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을 것이다.
불귀도에 놀러간 해적들은 대략 200여명. 불귀도에 있던 포로들은 대략 150여명. 그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칠공에서 피를 토한 체 죽어 있었다.
불귀도는 바위섬. 그것도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물이 잘 스며들지도 않는 곳 이었다. 그랬기에 시체들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마치 강을 이루며 지형이 낮은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해적들은 시체들을 배에 싣고 포로들은 그냥 한곳에 모아서 태워 버리고는 몇몇 정리 할 사람만 남겨두고는 떠나버렸다.
그들은 다시는 이곳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바닷사람들은 원래 미신을 잘 믿기도 했지만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곳은 재수가 없어서 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동해군도의 주요 성채는 이제 다 지어져서 이곳에서 더 이상 석재를 캘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해적들이 다 떠나갈 때에 작삼은 근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이 재수 없는 불귀도에 남아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삼과 같이 근무를 섰던 연중호 역시 작삼과 마찬가지로 투정을 부리며 불귀도에 남아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아 젠장 이제 곧 있으면 해 뜨겠다! 밤새도록 이렇게 있었잖아!”
“시끄러! 다 너 때문이다. 왜 자고 지랄이야!”
“나만 잤냐! 너는! 너도 잤잖아!”
둘은 티격태격하며 불귀동으로 향했다. 불귀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체들이 한곳에 모여 탄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꺼져 있는 흔적도 있었다. 어찌됐건 작삼은 이 빌어먹을 연중호와 함께 이 시체들을 치워야 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작삼은 시체들을 뒤적거리며 혹시나 뭐가 있나 하고 살펴보았다.
‘훗. 있기는 뭐가 있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작삼은 자신의 행동이 자기가 생각해도 어리석었는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 시체를 들어 도르래에 올릴 때 자신의 목에서 무언가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동시에 뜨거운 감촉도 함께. 그리고는 작삼은 목이 잘린 채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