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40화 (40/107)

40장. 불귀도-탈출

어스름한 새벽의 푸른빛이 어둠을 몰아낼 무렵.

용악은 두 자루의 젠국도를 팔짱을 낀 상태로 가슴에 품고 바다를 향해 서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불귀도의 동쪽에 있는 섬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저승의 강에서 얻은 기억들은 쓸모 있는 것이 많았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소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나 물 대신 물고기의 피를 마셔가며 살아가는 방법이나 물고기를 잡는 방법. 그리고 헤엄을 치는 방법을 비롯해서 그야말로 온갖 지식들이 다 들어 있었다.

그 날 이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사실 정확히 반년이 지났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때 보다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계속 흐를 정도로. 아마 지금이 여름 정도 되었으리라.

용악은 그 동안 망령들에게 시달리면서 정말 처절하게 살아 왔었다. 밤에 자신이 자고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보통 낮에 잠을 자고 밤에는 깨어 있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정신을 놓곤 했다.

망령들의 공격에 지쳐 잠시 쉴 틈이면 또 다른 망령들이 다가와 용악의 정신을 제압하고 용악의 신체를 차지하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용악은 처음 피의 강에서 잠을 자고난 다음날 또다시 피의 강에서 아침을 맞이했고 또 다시 손에 들고 있던 젠국도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밤마다 계속 몸을 빼앗겼기에 용악은 하는 수 없이 밤새도록 수련을 계속 하여 아침이 되면 피곤에 지쳐 바로 잠을 자게 만들려는 생각으로 수련을 하였으나 생각지도 못할 성과를 얻었다.

바로 수련을 할 때는 망령들이 들러붙지 못한다는 점이였다. 그랬기에 용악은 더욱더 힘을 내어 수련을 했다. 저승의 강에서 얻은 지식 중에는 수많은 무인들의 지식도 있었기에 그 사람들의 기술을 하나씩 몸에 익힐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망령들은 더욱더 자신에게 다가 오지 못했기에 더욱더 수련이 열심히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망령들은 항상 용악의 주위를 맴돌면서 틈을 노리고 있었다.

한시라도 손에서 검을 놓으면 용악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것은 정말로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한 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자 피의 강은 다 말라 버렸고 용악는 그 안에서 검신까지 붉게 물든 두 자루의 젠국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젠국도 두 자루 모두 그 속에 있었다. 아마도 그가 들고 있다가 피의 강에 누우면서 잊어버렸을 것이다. 어떻게 쇠로 된 검신이 붉게 물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 두개의 도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최상품의 도였기에 용악은 약간 꺼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깨끗이 닦고 날을 새워 그 도로 수련을 했다.

이 두개의 도는 정말 굉장했다.

전보다 더욱 날카로워 지고 부드러워 진 것 같았다.

또 처음 밤에 이 도를 쥐었을 때의 강렬함을 용악은 잊을 수 없었다. 마치 저주처럼 정말로 뿌리 깊은 혼이 이 두개의 도에 서려 있었기에 용악이 이 도를 쥐고 있는 동안에는 수련을 하지 않아도 감히 망령들을 덤벼들지 못했다. 하지만 단지 덤비지 못할 뿐 이었다. 여전히 용악을 말로써 유혹하기는 했다.

그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용악은 저 앞에 보이는 푸른 섬을 바라보며 서 있다. 그 동안 살펴본 결과 저 섬에 있던 해적들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다.

예전에 항상 보이던 망루에 더 이상 불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밥을 짓는 연기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불을 피우는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용악은 이곳 불귀도에서 저 섬으로 이동을 하려고 결심을 했고 드디어 오늘이 결전의 날이 되었다.

그동안의 보아온 봐 오늘과 내일이 불귀도에서 그 섬으로 파도가 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에서의 수영은 파도가 있어서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물살을 타고 간다면 갈 수는 있을 것이다.

거리는 대략 1키로미르 정도.

헤엄쳐서 가기에는 꽤 먼 거리이지만 그래도 저곳은 흙 섬이다.

이곳처럼 바위섬이 아닌 흙 섬.

그냥 보아도 저기는 지금 푸르른 나무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용악은 다시금 자신의 각오를 가다듬으며 옷가지를 묶어 만든 보자기를 등에 매고 두 자루의 도 역시 끈으로 단단히 묶어 허리에 걸치고는 바다로 빠져들었다. 덥더라도 낮에 최대한 섬에 가까이 가야했다.

밤이 되면 또 다시 망령들이 몰려오리라. 바다 위에서 만약에 망령들에게 몸이라도 빼앗긴다면 그야말로 죽음뿐이다. 용악은 천천히 물살을 해치며 나아갔다.

얼마나 그렇게 나아갔을까.

팔과 다리에서는 아무런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자기에 있던 육포를 하나 꺼내 씹어 먹으며 다시금 천천히 용악은 몸을 움직였다. 육포를 먹을 때마다 머리가 욱신거렸다. 아마도 시체에 남아 있던 원혼이 자신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 먹을 수는 없다. 먹지 않는 다면 힘이 없어 건널 수 없다.

이제 서서히 섬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사라졌다. 다행히도 지금 해가 저물기는 했지만 완연히 달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불귀도에서 영원히 살아야 해! 넌!

망령들은 또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니, 해가 질때 쯤부터 계속 걸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지독히도 당해 왔다. 이 정도에 굴복하지는 않아.’

하지만 달이 뜨기 시작하면 점차 강한 망령들이 용악에게 달라붙을 것이다. 작은 물리력까지 쓸 수 있는 그런 녀석들이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 힘들어 져.’

용악은 잠시 손을 멈추고는 허리에 매달린 도를 한동안 움켜쥐었다.

도를 움켜쥐자 날카로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이것은 바로 그 젠국 무사의 혼.

망령들은 그 혼이 담긴 도를 피해 달아나 저 멀리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킥킥킥. 바보 같은놈

-큭큭, 지금 네가 들고 있는 도가 대체 도(刀) 인줄 아나?

-하긴 그게 무엇인지 알면 그걸 계속 가지고 다니진 않겠지 키키키

‘하지만! 너희들 보다는 이 도를 잡는 것이 백배는 낫다.

너희들은 패배자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그런 패배자!

그리고 나는 승리자다!

결코 너희에게 굴복하지 않아!’

용악은 파도 위로 도를 들어 한번 휘두르고는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팔을 놀렸다. 이제 남은 거리는 대략 100미르정도. 하지만 이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달.

굳이 만월이 아니더라도 달은 음(陰)한 성질을 띤 대표적인 것 중 하나다. 굳이 늑대인간들이나 흡혈귀 혹은 수인족들 뿐만 아니라 달빛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며 본능과 욕망을 자극시켜 평범한 인간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랬기에 만월에는 살인 사건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음의 성질을 띤 망령이나 악령들 혹은 요괴들 역시 달이 뜨면 활동이 더욱 활발해 진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용악은 다리와 손이 자꾸 무언가에 막혀 멈춰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벌써 온 것인가! 이 빌어먹을 놈들이!’

-키키키 어딜 그렇게 가시나!

‘미친놈! 난 너희들과 달라 절대 죽지 않는다고!’

용악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팔을 다른 한손으로 붙잡아 허리에 매달려 파도에 흔들거리는 도를 뽑았다.

-키악!

망령들이 물러서면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붉은 검신은 달빛을 받아 더욱더 매혹적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 저 것으로 목을 가르고 싶다. 아무의 목이나. 아 나의 목도 괜찮아. 아직 어리니 싹둑 하고 잘 잘라 질 거야 킥킥.

용악은 팔을 움직여 자신도 모르게 붉은 칼날에 목을 살짝 베였다.

핫!

알싸한 아픔이 느껴진다.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는 게 느껴진다. 상처에 바닷물이 들어가 쓰렸다.

“아.”

그제야 용악은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건가. 네 녀석도 나를 노리는 것은 마찬가지 인가? 큭. 하지만 지지 않아 절대로!’

용악은 칼을 허공에 몇 번 휘두르고는 다시 팔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상처를 계속 자극 하는 바닷물 덕택에 용악은 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망령들은 계속 해서 용악을 방해 했지만 이제는 용악이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파도가 저절로 용악을 섬으로 인도할 정도로 가까이 왔다.

용악은 가만히 힘을 빼고 누운 체 하늘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은 아니다. 다행이었다. 보름달 이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털썩.

큭..

‘드디어 도착했나?’

용악은 자신의 뒤통수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모래를 느끼며 칼을 뽑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아! 거 봐 나는 성공했다!’

용악은 마치 자신의 앞에 있는 망령을 갈라 버리듯이 세차게 칼을 휘둘렀다.

‘하아. 이 녀석들하고 상대하면 할수록 힘이 빠지는 것은 나다. 참아야해. 굳이 도발에 넘어갈 필요는 없어. 어차피 이놈들은 말로 밖에 뭐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놈들이니까.’

용악은 전과는 달리 미친 듯이 달라붙어 자신에게 저주의 말과 유혹의 말을 퍼붓는 망령들을 뒤로하며 다짐했다.

그렇게 용악은 그렇게 새로운 섬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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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흑영기병대 - 249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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