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일검 1-서문 (1/29)

화산일검 1

목차

서문

제1장 화산파(華山派)

제2장 인연의 시작

제3장 마혈도(魔血刀)

제4장 호가장(虎加莊)

제5장 습격

제6장 마령환의 행방

제7장 추적

서문

화산파(華山派).

구파일방에서 최고위 자리에 앉은 문파이자 천하제일인을 탄생시킨 문파다. 오백여 년의 역사를 지닌 화산파는 개파 이후로부터 단 한 번도 천하제일문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한 무력을 지니기도 했지만, 그 무력에 맞게 의와 협 또한 그 어떤 문파에 뒤지지 않아 수많은 무림인들의 존경을 받은 문파였다.

하지만 그것도 사십오 년 전 일이다.

사십오 년 전, 무와 패를 숭상하던 명교는 넘치는 자신들의 힘을 감당치 못해 마교라 개명하고 혈무대전(血武大戰)을 일으키게 된다.

시산혈해.

이보다 정확한 말이 있을까? 무림인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그들의 피가 바다를 이뤘다.

일반인들은 감히 집 밖으로 나서지 못했고, 문파가 자리 잡은 마을에선 비명과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터져 나왔다.

마교의 침범을 가장 먼저 받았던 청해성에 자리 잡은 문파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것은 구파일방 중 하나인 곤륜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멸문하지는 않았지만 수십 년간 봉문하게 될 정도의 막대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혈무대전이 끝날 시기에는 천이백여 명에 달했던 곤륜파의 무인과 도인은 삼백여 명만이 살아남게 된다.

하지만 가장 막대한 타격을 입었던 문파는 천하제일문이었던 화산파였다.

정도 무림의 최고수라 불린 매화검 옥철린을 선두로 이천백여 명 중 이천여 명의 화산 무림인이 마교의 본대와 투쟁하다 전멸해 버린 것이다.

마교 역시 마교주 혁월린과 그의 친위대인 수라멸천대, 그리고 십사 인의 장로 중 아홉 명의 장로를 잃게 된다. 결국 화산파의 멸문에 가까운 투쟁에 마교는 삼십 년간의 봉문을 선언하고, 중원 무림에서 물러나게 된다.

혈무대전은 정도 무림에 큰 타격을 가져왔다. 화산파와 함께 마교의 본대와 맞선 무림의 거송이었던 소림사는 삼십 년의 봉문을, 곤륜파는 사십 년의 봉문을, 무당파는 이십오 년의 봉문을 선언하게 되고, 가장 적은 타격을 받았던 아미파와 점창파 역시 십오 년의 봉문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도 무림 역시 같았다.

사도 무림의 사천(四天) 중 하나인 사마련과 악혈문이 삼십오 년의 봉문을 선언하게 되고, 추월문과 도혈파 역시 각각 이십 년의 봉문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혈무대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화산파는 백여 명의 인원이 남았지만 각각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사십오 년 후, 연화봉(蓮花峰)에서 마지막까지 화산파의 유지를 지키던 화산파의 도인이 그 생을 다하게 된다.

“이제 네가 화산이니라.”

“…….”

“크크큭, 뭘 그렇게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느냐? 나는 이제 곧 죽는다. 그건 네놈도 잘 알 터인데?”

선풍도골의 노인의 입에서 도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진철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진철은 입을 열며 자신의 사부를 바라보았다.

“사부님.”

“이놈이 닭살 돋게 갑자기 사부님이라니! 카하하! 왜 그러느냐?”

“가시는 길 심심하지 마시라고 여기 매화주를 가져왔습니다.”

“크큭, 크크큭! 네놈이 어서 가라고 등을 떠미는구나!”

“…….”

“오냐! 어디 한번 제자가 주는 매화주 맛 좀 보자꾸나!”

노인은 가늘게 삐쩍 마른 손으로 진철이 건네주는 술잔을 받아 들었다. 진철은 노인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호리병을 들어 술잔을 채웠다.

누런 황금빛의 액체가 술잔에 가득 차자 그윽한 주향이 주변을 물들였다.

“크으! 맛 좋구나!”

“…….”

“크크큭, 역시 이 연화봉에서 마시는 매화주는 천하제일이야!”

노인은 술잔을 한 번에 털어 넣고는 주변을 훑어보듯 천천히 살펴보았다. 마치 곧 떠나는 나그네가 언제 또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고향의 모습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 같았다.

노인의 시선이 주변에 심어져 있던 매화나무를 지나 자신이 어렸을 때 벌을 받던 이름 모를 바위를 훑었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제자의 얼굴에 멈춰 섰다.

“좋으냐?”

“…좋습니다.”

“그러하냐.”

진철은 눈에 무언가 끼는 것을 느꼈는지 손을 들어 눈가를 비볐다. 노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말했다시피, 네놈이 이젠 화산이니라.”

“예.”

진철은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말아먹진 말아라.”

“…….”

털썩.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진철은 여전히 눈을 비비며 그 소리를 외면했다.

그렇게 한참 눈을 비비던 진철은 손을 내리고 자신의 앞에 누워 버린 노인을 바라보았다. 진철의 눈은 얼마나 거칠게 비볐는지 빨간 액체가 솟아 나왔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쓰러져 있는 노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났을까? 진철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려 있는 호리병을 바라보다 입가로 가져갔다.

“말아먹진 않겠습니다, 사부님.”

천하제일인의 사제이자, 차마 사형의 체면을 생각해 자신의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던 화산파의 숨겨진 제일검수(第一劍樹) 옥린수. 백이십육 세의 나이로 연화봉에서 깊은 잠에 들었다.

0